트레이시 맥그레이디 Tracy McGrady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반은 제가 NBA에 발을 푹 담그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화이트 초콜릿 제이슨 윌리암스에 이끌려 밀레니엄 킹스를 열렬히 응원했고 그후로 몇 년간은 레이커스를 끝판왕 악당이라 여기며 어디든 ‘BEAT LA’가 이뤄지길 바래왔죠. 이때는 지금보다 경기를 덜 봤지만 뭔가 더 순수하게 즐기던, 단순히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고1 어느 토요일. 창세기전2 이후 백업시디와 와레즈만 찾던 제가 수 년만에 구입한 정품 NBALIVE 2001를 가방에 넣고 집에가던 그날의 벅찬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킹스로 페이크와 점프패스를 남발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죠. 킹스 멤버들의 드래프트 순위, 출신학교와 키를 다 외웠을 무렵 선택한 두 번째 팀은 제 2의 조던과 피펜이 그려지는 그랜트 힐과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올랜도였습니다. 구영탄 or 마법사의 아들 코리의 눈이 친근했던 맥그레이디는 매우 뜨거운 스타였고 게임으로 친근해진 그가 실제 경기에서 게임보다 더한 능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금세 정신 못차리게 되었죠. 그후 게임을 접을 때 쯤 어느새 저는 티맥2를 신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티맥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참 짧았습니다. 불같은 몇 년 이었죠. 저의 가벼운 팬심은 그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았고요... NBA에서의 마지막이 벌써 일년을 넘겼지만 그의 플레이를 즐겼던 한명으로서 간략하게 그의 커리어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데뷔 전 전미 최고의 고등학생
79년 5월 24일생인 티맥은 플로리다 주에서 태어났다.
오번데일 Auburndale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Junior까지 농구로 어느정도 명성을 얻었으나, 학교에서 일으킨 말썽으로 문제가 생겼으며, 그로인해 노스캐롤라이나 North Carolina의 마운트 자이언 Mount Zion 고등학교로 전학하게된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티맥은 기독교학교인 마운트 자이언에서 귀걸이, 목걸이등의 장신구, 옷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제제를 받았고 합숙을 해야하는 일상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학과 동시에 ABCD 캠프로 초청받은 티맥은 빼어난 활약으로 MVP로 선정되었고 이때부터 전국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짜여진 스케줄 속에 티맥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직접 자신을 데려온 코치 조엘 홉킨스 Joel Hopkins의 뛰어난 관리 속에 경기당 27.5점 8.7리바운드 7.7어시스트 2.8스틸 2블록을 기록하며 USA TODAY 올해의 고등학생, McDonald All-America에 선정된다. 전미의 관심을 받으며 고향팀인 Florida St.와 Kentucky의 구애를 받았지만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NBA 직행을 선택한다.
*나중에 말하길 대학을 선택했다면 릭피티노의 Kentucky였을 것이라 말했다.
1997년 드래프트
팀 던컨 드래프트로 불렸던 97년에 6-7 205의 티맥은 9순위로 토론토에 지명된다. 당시 지명된 티맥이 스턴과 악수한 뒤 처음으로 등장하는 NBA 선수는 다름아닌 코비였다. 중계진의 코멘트 이후 지난 시즌 고등학교에서 직행한 코비의 티맥을 위한 인터뷰영상이 이어졌고, 이어서 코비의 이야기를 들은 티맥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토론토랩터스 숨길 수 없는 재능
97-98 16승 66패
10월 31일. 티맥은 6분간의 데뷔전에서 한 개의 슛 시도도 없이 1리바운드 1턴오버를 기록한다. 루키시즌 64경기를 뛴 티맥은 평균 18.4분의 출장시간을 기록했는데, 2번의 20점 이상 경기가 있었지만 11번의 0점 경기를 가지며 아직은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고 소속팀 또한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득점원이 없던 랩터스는 감독이 바뀐 뒤 오히려 성적이 더 하락했고 그 결과 독보적인 동부 꼴지, NBA 전체 팀 중 뒤에서 2등을 기록하며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 이해에 티맥은 대체선수로 올스타 루키게임에 출장했다. 티맥은 이후 루키 시즌을 돌아보며 "hell"이라고 표현했는데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98-99 23승 27패
단축시즌. 랩터스는 18.3점으로 팀내 득점을 이끈 신인왕 빈스 카터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동부 10위를 기록한다. 티맥은 자신의 팔촌친척에게(티맥의 할머니와 카터의 할머니가 사촌) 가려졌지만 주로 벤치에서 출전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고 MIP 투표 결과 8위에 선정되었다. 카터와 티맥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팀 메이트였던 Dee Brown에 따르면 그들은 샴쌍둥이 같았다고 한다.
99-00 45승 37패 1라운드
카터는 덩크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평균 25.7득점으로 전체 4위, 올스타, NBA 3rd팀 그야말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티맥도 카터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월등한 성장을 보여줬다. 79경기 중 34경기를 주전으로 출장한 티맥은 15.4점으로 첫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유력한 식스맨 상 후보로 거론되었고 시즌 종료 후 투표 결과 3위를 차지했다.
2월 18일 이후 한 자릿수 득점이 없던 티맥은 시즌 막판 계속 주전으로 출장했으며 구단 역사상 처음 진출한 플옵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플옵 데뷔전에서 25점 10리바운드(8공격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을 포함해 3경기에서 16.7점으로 19.3점을 기록하며 부진한 카터와 비등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3번시드 뉴욕닉스의 트윈테러는 경기당 37.7점을 기록하며 36점을 기록한 토론토의 듀오와 점수에선 차이가 없었지만 평균 47%의 야투율은 34%의 영건들에게 경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었고 결과는 0승 3패 스윕이었다. 모든 경기의 최종 점수차가 7점 이내였지만 1차전에서 카터가 부진하고 2차전에서 티맥이 부진하며 시너지가 나지않은게 패인의 요인 중 하나였다.
*2월 CNNSI는 티맥을 식스맨상의 1순위 후보로 봤으나 시즌 종료 후 로드니 로저스가 받았다. 티맥은 MIP 투표에서 5위, 올스타 투표에서 동부 가드 9위를 차지했다.
*3월 CNNSI는 선수 랭킹을 발표했는데 티맥은 47위로 선정되었다. 주요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 Tim Duncan
2. Shaquille O'Neal
3. Kevin Garnett
4. Antonio McDyess
5. Karl Malone
6. Chris Webber
7. Grant Hill
8. Jason Kidd
9. Stephon Marbury
10. Alonzo Mourning
15. Vince Carter
32. Kobe Bryant
47. Tracy McGrady
올랜도 매직 동쪽의 티맥
00-01 43승 39패 1라운드
FA가 된 티맥은 카터에 이은 두 번째 역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적을 추진했다. 그 후보로는 고향 플로리다의 올랜도, 시카고 불스, 마이애미 히트였는데 세 팀 모두 최고의 대우로 티맥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 그 승자는 모두가 알다시피 닥 리버스가 되었고 00년 8월 3일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한 티맥은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이적한 그랜트 힐과 함께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경기에서 32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 3블록을 기록한 티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활약을 펼쳤고, 아이버슨에 이어 올스타 주전에 선정됨은 물론 26.8득점으로 득점 7위, NBA 2nd팀, MIP를 수상하며 팀을 동부 7위로 이끌었다. 그러나 시즌 4경기만 뛰고 아웃된 힐의 공백 속에 홀로 플레이오프를 통과하긴 어려웠다. 티맥은 플옵 4경기 동안 33.8점 6.5리바운드 8.3어시스트의 괴물같은 활약을 펼쳤지만 레이알렌과 샘 카셀이 꾸준히 활약한 밀워키의 벽은 높았고 결국 1승 3패로 패배했다. 이때 빌 시몬스는 3차전 42점 10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한 티맥을 보고 그의 슈퍼스타 오디션 테이프라고 극찬했다.
*토론토에서 이적한 뒤 티맥은 ESPN과의 인터뷰를 통해 카터만 주목받았던 토론토 시절의 불만을 토로했다. 게다가 자신이 카터를 완벽히 막아낼 수 있다며 도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만난 올랜도 홈경기에서 카터는 33점 6리바운드 7어시스트 8턴오버, 티맥은 22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 4턴오버를 기록했으며 경기는 올랜도가 승리했다.
*티맥은 페니 하더웨이의 팬으로 Auburndale시절 페니가 대학 때 쓰던 25번을 쓰고 Mount Zion부턴 페니의 등번호의 1번을 사용했다.
01-02 44승 38패 1라운드
힐은 시즌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 둘이 같이 뛴 경기도 7승으로 대단하지 않았다. 다만 티맥은 계속해서 성장했으며 25.6득점으로 득점 4위, PER는 오닐과 던컨에 이은 3위였다. 올스타 투표에선 조던과 아이버슨에 이어 3위에 그쳤지만 후보로 출전해 동부 최다 득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후엔 1st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아디다스와 종신계약을 맺으며 슈퍼스타임을 증명해냈다.
5위였던 올랜도는 플레이오프에서 샬럿 호넷츠를 만났고 티맥은 30.8점 6.3리바운드, 5.5어시스트의 신들린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샬럿은 25점 9리바운드 9어시스트 2.8스틸을 기록한 배런 데이비스의 티맥 못지않은 활약과 빅맨진의 리바운드로 매직을 압도했고, 유일하게 리바운드 수가 같았던 2차전을 제외하고 골밑을 압도하며 올랜도를 탈락시켰다.
이시즌 힐은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발되지 못하며 슬슬 먹튀라는 불명예를 얻기 시작했다.
02-03 42승 40패 1라운드
티맥은 팀내 득점 어시스트 블록 스틸을 리드했고 PER 30을 넘기며 조던의 재림을 보여줬다. 리그 득점 1위였으며 올스타 동부 최다 투표자(코비에 이어 전체 2위), NBA 1st팀 멤버였다.
8번 시드인 올랜도는 디트로이트를 만나 티맥의 43점 구든의 18점 14리바운드로 1차전을 승리했고, 여세를 몰아 4차전까지 3승 1패로 시리즈 승리를 눈앞에 둔다. 그러나 그 후부터 시리즈는 앞의 결과가 민망할 정도의 일방적이었다. 5차전에서 31점차 6차전 7차전 각각 15점차로 매직은 어이없게 탈락하고 만다. 이 시리즈에서 빅벤의 골밑 장악은 대단했는데 빅벤은 11.1점 17.9리바운드 3.1스틸 3.3블록을 기록했고 총 42개의 오펜스 리바운드를 잡았다 (올랜도는 총 69개의 오펜스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티맥은 5차전과 7차전에서 부진했는데 특히 7차전에서 29.2%의 야투율로 45분동안 21점의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그래도 플옵에서 팀의 득점 어시스트 블록 스틸을 리드했으며 리바운드는 2위였다. 그를 제외하고 두 자릿수를 기록한 선수는 구든이 유일했으니 이번에도 플레이오프 아웃 상태인 힐의 부재는 그저 한숨일 뿐이었다.
*시즌 종료 후 2003 FIBA Americas Championship 대표로 참가해 12.6점 2.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03-04 21승 61패
힐은 한경기도 뛰지 못하며 대표적인 먹튀로 불렸다. 닥리버스는 1승 10패를 기록한 뒤 경질되었고 티맥과 GM과의 마찰이 보고되었으며 팀은 전체 꼴지를 기록했다. 티맥의 활약만 변함이 없었는데 28점으로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이것은 공동 2위인 페이자와 가넷의 24.2점과는 큰 차이였다. 동부 주전 중 가장 낮은 표였지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시즌 종료 후 2nd팀에 뽑혔다. 이 시즌에 코비에 이어 사상 2번째로 어린 24세 272일의(코니는 193일) 나이로 1만득점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왼쪽 무릎 부상이 시작되었다.
휴스턴 로켓츠 성치않은 맥밍듀오
04-05 51승 31패 1라운드
6월 24일 하워드를 픽하면서 리빌딩을 원하지 않았던 티맥은 6월 29일 트레이드 된다. 초반 호흡이 안맞는 모습으로 11월달 20.2점 5.1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부진했지만, 결국 티맥은 25.7점 6.2리바운드 5.7어시스트로 팀내 득점 1위 어시스트 1위 리바운드 2위를 기록했고 야오밍은 18.3점 8.4리바운드 2블록으로 골밑을 지켰다. 두선수 모두가 올스타주전으로 뽑혔으며 티맥은 서부 가드 1위의 투표로 주전을 꿰찼다.
서부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휴스턴은 댈러스를 만나 적지에서 먼저 2승을 거두며 쉽게 가는 듯 했지만 홈에서 열린 3,4차전을 모두 4점차로 패배하며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후 각자의 홈에서 승리를 거두고 열린 운명의 7차전, 무려 40점차로 휴스턴은 패배했고 티맥의 1라운드 돌파는 이번에도 무산되고 만다. 이 시리즈에서 티맥은 30.7점 7.4리바운드 6.7어시스트, 야오밍은 21.4점 7.7리바운드 2.7블록으로 활약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저조했고 댈러스는 제이슨 테리의 활약과 더불어 5명이 두 자릿수 이상의 득점을 해내며 승리를 가져갔다.
이 시즌 티맥은 득점 6위였고 코비와 함께 3rd팀에 선정됐다. 그리고 04년 12월 9일. 그 유명한 35초동안 13점의 티맥타임이 나왔다.
05-06 34승 48패
지난시즌부터 스몰포워드로 활약한 티맥은 등 통증으로 47경기만 출장했고 그 경기는 27승 20패를 기록한다. 야오밍도 57경기에 그친 팀의 공격력은 30개 팀 중 29위였으며 결국 서부 12위로 시즌을 마친다.
휴스턴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포워드로 선발 출장한 티맥은 팀원들의 도움 속에 36득점을 했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았고 결국 2점차로 동부에 패하며 르브론에게 MVP를 내줬다. 이 시즌이 끝난 뒤 8월에 한국을 찾기도 했다.
*1월 8일엔 등 통증이 재발해 전반이 끝나고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06-07 52승 30패 1라운드
71경기를 소화한 티맥은 24.6점으로 득점 10위에 올랐으나 토론토 시절 이후 처음으로 팀내 득점 1위를 놓쳤다. (야오밍 48경기 25점 9리바운드 2블록) 커리어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시즌이 끝난 뒤 2nd팀에 뽑혔다. 티맥은 올랜도 시절보다 팀플레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변한 스타일을 유지했다. 맥밍듀오는 경기당 50.4점으로 제 역할을 했고 티맥은 7.3어시스트로 팀을 리드했다. 각자의 홈에서 승리를 모두 챙긴 뒤 휴스턴에서 열린 마지막 7차전 맥밍은 58점을 기록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부저는 마지막 경기에서 35점 14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을 포함해 24.6점 11리바운드 3.4어시스트로 시리즈의 주역이 됐다.
이시즌 티맥은 71경기를 소화했지만 등 통증은 문제가 되었으며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몸이 더 이상 폭발적이지 않음을 인정했다.
*이후 올스타 투표에서 08년 아이버슨에 이어 3위, 09년 폴에 이어 3위, 10년엔 4위였고 그 이후 순위에서 벗어났다.
07-08 55승 27패
티맥은 21.6점으로 마지막 20득점 이상 시즌을 보냈다. 3rd팀에 선정되었지만 그의 능력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았다.
4위로 플레이오프에서 유타와 다시 만난 휴스턴은 6차전 끝에 2승 4패로 패배했고 6차전은 22점차 대패였다. 그래도 티맥은 야오밍이 아웃된 시리즈에서 27점 8.2리바운드 6.8어시스트로 마지막 불꽃을 보여줬고 6차전은 홀로 40점 10리바운드로 분전했다. 이 시즌엔 22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티맥은 시즌이 끝난 뒤 5월 왼쪽 무릎과 왼쪽 어깨를 수술했는데 왼쪽 무릎은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이 필요함에도 관절경 수술로 대체했다.
08-09 53승 29패 2라운드
티맥은 15.6점으로 마지막 두 자릿수 시즌을 보냈다.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통증을 느껴 구단은 훈련시간과 백투백 제한 등으로 관리해줬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부상으로 35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2월 9일 무릎수술이 필요해 시즌 아웃되었다. 지난해 미룬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2월 24일 시카고에서 받았다.
팀은 야오밍이 77경기를 소화했으며 플옵에서 1라운드 포틀랜드를 꺾고 2라운드엔 이시즌 우승을 차지한 레이커스와 7차전 끝에 3승 4패로 패배했다. 티맥은 커리어 처음으로 2라운드 로스터에 포함되었지만 당연히 2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저니맨 끝없는 내리막
09-10 휴스턴->뉴욕 닉스
12월 15일 복귀한 티맥은 그가 후원하는 수단의 난민캠프를 위해 3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이 시기에 그와 관련된 단체에서 수단 지역 다큐멘터리 ‘3 Points’를 제작했다.
이후 10년 2월 18일 3각 트레이드로 뉴욕으로 향한 티맥은 2월 20일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팬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티맥은 비록 연장에서 패배했지만 26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팬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고문이었다. 티맥은 이후 24경기를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9.4점에 그쳤고 per는 12,2로 최전성기의 반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10-11 디트로이트
자유계약 선수가 된 티맥은 디트로이트와 8월 1년 계약을 맺고 72경기 중 39경기를 주전으로 출전했다. 등번호도 1번으로 다시 바꿨다. 디트로이트는 30승 52패로 동부 11위를 차지했고 더이상 티맥의 부활을 믿는 팬은 없었다.
*2010년 12월 7일 처음으로 돌아간 휴스턴에서 박수와 야유가 합쳐진 함성 속에 11점 3리바운드 3어시시트를 기록했고 팀은 97대 83으로 패배했다.
11-12 애틀랜타 40승 26패
12월 9일 애틀랜타와 1년계약에 성공한 티맥은 벤치에서 16.1분 출전하며 평균 5.3점을 기록했다.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에도 벤치를 지켰는데 3차전에선 40분을 뛰며 유일한 두 자릿수인 12점 9리바운드로 활약했다.
12-13 칭다오 이글스
10월 9일 스퍼스 밥캣츠와의 워크아웃이 실패로 돌아가자 티맥은 중국으로 향했다. 1년 계약을 맺은 뒤 티맥은
49.6%의 야투로 25점 7.2리바운드 5.1어시스트 1.6스틸 0.6 블록을 기록했고 팀은 8승 24패로 꼴지를 차지했다.
12-13 샌안토니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4월 16일 스퍼스와 계약했다. 레이커스와의 1라운드 4번째 경기에 처음 등장한 이전의 득점왕은 파이널을 포함한 플레이오프 6경기동안 총 7개의 슛을 던졌지만 림을 모두 외면했고 1.3리바운드 1.2어시스트만을 기록했다. 우승하진 못했지만 1라운드를 넘어 파이널까지 코트를 밟는 경험을 했다.
두 번의 은퇴
13년 8월 26일 ESPN에 출연한 티맥은 해외에서 뛸 가능성은 있지만 NBA에서는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그후 별다른 행보가 없던 티맥은 14년 2월 4일 야구선수의 꿈을 이룬다며 독립리그 투수로 등장했고 올스타 게임에서 첫 삼진을 잡은 뒤 바로 두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기록
리더로서 6번의 플옵탈락과 그 중 3번의 게임7 패배는 티맥에게 나약함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해줬습니다. 물론 모두 사실이고 티맥의 평가는 동년배의 선수들이 오래가는 만큼 점차 낮아져만 갔죠. 몸 관리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스스로의 말이 보여주듯 그의 커리어는 등과 무릎 어깨 부상으로 얼룩져있습니다. 말년에 아시아까지 올줄은 정말 몰랐는데..
그래도 제게 티맥은 여전히 ‘멋’으로 기억되는 뛰어난 선수입니다. 옛기억 추억하며 급하게 작성해봤습니다. 앞으로 티맥에 관련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원합니다. 카페의 많은 글들을 참고했는데 출처남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류나 부족한 부분이 꽤 있을 듯 한데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첫댓글 잘봤습니다ㅠㅠ 나의 영원한 올랜도 넘버 원의 두번째 성님!!
아 티맥 영원한 제 넘버원 그립네요 ㅠㅠ 좋은글 잘봤습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두고두고 복습해야겠네요ㅎㅎㅎ
님을 위한 글이네요!
잘봤습니다. 누가뭐라든 저한테는 넘버원인 선수입니다
잘봤어요^^ 저에게도 영원히 최고의 선수입니다
멋이라는 측면에선 더더욱이고요^^
티맥의 파란만장했던 커리어를 잘 정리한 기록물이네요. 잘봤습니다.
그립네요 티맥.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티맥타임을 라이브로 본것만 해도 감사했습니다
그리운 서코비, 동티맥...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농구선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이름은 티맥입니다. 정말 그립네요
몸관리만 잘했어도 꾸준히 nba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았을거고 2만점도 쉽게 넘겼을 선수라 정말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하이커리어를 쌓은 코좀비가 얼마나 독종인지 알겠네요
본인의 몸상태도 아쉽지만,,,,,, 이상케도 파트너의 몸상태도 그 이상으로 안좋았던 불운이,,,,힐,,,야오,,,, 지금의 커리어만으로도 명전가능성이 있지만, 정말 그가 가졌던 재능에 비하면 아쉬운 커리어입니다. 정말 '멋'으로 똘똘 뭉쳤던 선수였는데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다시 보고 싶내요 위긴스가 이렇게 크긴 힘들까요.
순수 전성기기량으로만 보면 스윙맨 탑10안에 든다고 봅니다.
나의 영원한 넘버원 티맥!!
정독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어디 영상에서 본 기억에 자고 일어나서 몸 풀지도 않고 바로 경기뛰고 그랬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고.ㅜㅜ
알럽어디선가 그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부분에 있어선 좋은 멘토가 아쉽습니다.
크흑 ㅠㅠ 티간지
올랜도시절 서코비 동티맥 시절 , 특히 02-03시즌 플레이오프 디트 1차전은 ... 개인적으론 르브론 07년 5차전과 더불어 일기당천, 만부부당의 포스를 보여준 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는 전부다 디트인게 공통점이군요. 엄청났지만, 그 시리즈는 반대로 긴팔원숭이 테이션 프린스가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된 시리즈라서... 그런게 뇌리에 남아있네요. 티맥이 부상이 없었다면 스몰포워드 자리엔 (뭐 티맥은 슈팅가드에 가깝긴 했지만...) 서티맥 동르브론쯤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프린스가 없었다면 희대의 업셋 중 하나가 나올 뻔 했었죠.
그때 진짜 ㅎㄷㄷ했죠 엄청난 덩크까지.. 프린스의 주가상승 저도 기억납니다
귀중한 자료 감사드립니다.
티맥하면 간지죠 ㅋ AI와 더불어 최고의 간지
한두발짝 광속 퍼스트스텝에 이은마무리~ 간지점퍼~부상만 아니면 아직도 커리어를 이어갈수있다고생각하는데..ㅠㅠ 티맥을 괴롭히던 등부상이 정확하게 어떤부상인지 알고싶네요~!!
개천절에 침대누워서 오랜만에 추억팔이했네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티맥이 벌써 추억이 됐죠ㅜㅜ
전성기가 좀더 길었다면... 하 ㅠㅠ 정말 두고두고 아쉽네요
잘봣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