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너무 어려도 자기의 모습이 아니며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 늙어서 쭈글쭈글해져도 역시 자기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 삼십대가 그 사람의 가장 적당한 모습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께서는 태초부터 아들에게 삼십의 외모로 허락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후에 주신 그 거룩한 육체 역시 그 나이와 모습으로 빚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영원토록 늙지 않고 그 삼십 세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며 그와 같은 형제자매와 그리스도의 몸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아담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나이와 모습을 허락하길 원하셨다. 아버지의 둘째사람에 대한 계획은 아들과 동일한 모습의 창조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그리스도의 명을 받은 종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형상과 모양을 보고 그대로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와도 마찬가지이니 하와를 아이처럼 혹은 할머니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자기의 모습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그 나이로 빚으셨다.
한편 둘째사람이 처음에 창조되었을 때의 키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면 우선 아버지께서 상체와 하체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를 깨달아야한다.
사람들은 발로부터 허리까지를 하체로 허리부터 머리까지는 상체로 여긴다. 하지만 하체라는 것은 오로지 그 몸의 한부분만을 뜻하는 바요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발과 다리이니 하체는 몸의 전체가 아니다. 하지만 상체라는 것은 사람의 발끝서부터 머리끝을 뜻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몸의 전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아담을 삼십 세의 모습으로 또한 상체크기는 120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첫째사람들의 후손은 그 상체의 크기가 각기 다 달랐으며 둘째사람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컸다. 예를 들어 첫째사람의 다리는 둘째사람보다 다섯 배내지 여섯 배가 컸으며 몸의 윗부분도 그와 같았다. 그러므로 첫째사람의 남자는 둘째사람의 남자보다 모든 것이 평균적으로 5-6배가 컸으며 첫째사람의 여자는 둘째사람의 여자보다 모든 것이 3-4배가 컸다. 물론 첫째사람 가운데는 그보다 더 크거나 좀 더 작은 자들도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아버지의 자녀 될 둘째사람들 가운데 남자가 첫째사람의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 그 육적인 사람들과 한 몸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사이에서 나오는 후손인 네피림들은 처음에 태어날 때는 둘째사람의 상체보다 오히려 작았으되 그가 성장하면서 크기가 그의 어미보다 더 장대해졌다.
사람은 자신보다 상대방이 수십 센티만 커도 상대방을 상당히 크게 본다. 예를 들어 상체가 170인 사람이 자기보다 불과 30이 큰 사람을 볼 때 그를 마치 거인처럼 본다. 그러므로 당시 둘째사람이 코끼리처럼 큰 짐승들을 마치 작은 강아지처럼 다루는 그 첫째사람을 어떻게 여겼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첫째사람과 둘째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계획은 그들에게 각각 허락하신 복을 통해 깨달을 수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여섯째 날 지으신 첫째사람에게는 이 땅의 육적인 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허락하셨으나 영은 허락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거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한편 안식 후 팔일 째 지으신 둘째사람에게는 거룩한 영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땀과 고난이 있으며 그로인해 이 땅에 있는 동안 썩어질 육과 원수가 이끄는 이 불의한 세상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대신 거룩을 이룬 그들에게는 셋째하늘의 영원한 약속들을 허락하셨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것을 의롭게 또한 공평하게 계획하셨다. 그러나 원수는 당시 첫째사람들에게 둘째사람에 대한 시기를 마음에 심어주었다. 즉 너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린들 무슨 소용이 있느뇨? 하지만 둘째사람은 이 땅에서도 모든 것을 누리다가 죽은 후에는 영원히 사니 아버지는 불공평하시다고하며 첫째사람들로 하여금 둘째사람을 미워하며 핍박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거짓말과 시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생명과 사망에 이르는 자를 태어날 때부터 정하신다고 말한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영의 복과 육의 복 하늘의 복과 이 세상의 복을 겸하여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수를 따르는 자들은 당시의 첫째사람들처럼 오늘도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 또한 자신을 믿는 자라하며 첫째사람처럼 세상을 따르며 육을 취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붙드는 자에게는 거듭남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는 영광을 주신다. 그리고 홍수심판 이후로는 첫째사람이 없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첫댓글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와 같이 거하면 마음과 몸이 편할 것이되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가 볼 때 보는 자와 같이 거하면 깨달음이 없으니 동문서답을 하며 자신의 마음도 몸도 불편하고 힘들어 질것이니 동문서답을 하는 자와 함께 거함이 어리석음이 아니건만,,,,
마찬가지로 지구는 구라는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과 함께 거하고, 평평하다는 믿음을 가진 자도 자신과 같은 자들과, 북극과 남극이 약간 눌려져 있으니 완전한 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 자도 자신과 같은 자들과 함께 거함이 어리석음이 아니건만,,,,
그러나 이 어리석음 보다 더 한 안타까움을 취하는 불쌍한 자들이 있으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을 주장하며 믿음과 행위로 구원 얻음을 믿는 자에게, 혹은 반대의 경우로, 구라고 주장하며 평평하다고 믿는 자에게, 혹은 반대의 경우로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저주들이 말씀하며 찬양하는 그 동일한 입술에 가득하다.
만일 이렇게 입술을 열어 저주를 발하는 자들에게 권위가 주어지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는 자신과 반대의 주장을 하는 자들을 반드시 죽이게 되어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죽으신 것이되 아버지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으니 죽음에서 살아난 자가 진리였으되 죽인 자가 진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불쌍한 것이 있으니 어리석음은 돌이킴이 쉽되 안타까움은 어리석음에서 더 나아간 것이요, 사람은 선한 영이든 악한 영이든 영에 의하여 말과 행위가 지배 받고 있는 것이니 쉽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입을 닫고 돌이킬 것이요 그 마음을 버리는 영혼은 자신을 돌이키지 못하여 자신의 혀를 끝까지 제어하지 못할 것이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하리요?
첫댓글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와 같이 거하면 마음과 몸이 편할 것이되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가 볼 때 보는 자와 같이 거하면 깨달음이 없으니 동문서답을 하며 자신의 마음도 몸도 불편하고 힘들어 질것이니 동문서답을 하는 자와 함께 거함이 어리석음이 아니건만,,,,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을 믿는 자가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얻음을 믿는 자와 함께 거하면 마음과 몸이 불편할 것이니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을 믿는 자와 함께 거함이 어리석음이 아니건만,,,,
마찬가지로 지구는 구라는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과 함께 거하고, 평평하다는 믿음을 가진 자도 자신과 같은 자들과, 북극과 남극이 약간 눌려져 있으니 완전한 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 자도 자신과 같은 자들과 함께 거함이 어리석음이 아니건만,,,,
그러나 이 어리석음 보다 더 한 안타까움을 취하는 불쌍한 자들이 있으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을 주장하며 믿음과 행위로 구원 얻음을 믿는 자에게, 혹은 반대의 경우로, 구라고 주장하며 평평하다고 믿는 자에게, 혹은 반대의 경우로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저주들이 말씀하며 찬양하는 그 동일한 입술에 가득하다.
“님은 양심이 썩었어요! 영지주의에요! 사기꾼이에요! 이단이에요! 바리새인이에요! 사탄이에요!”
만일 이렇게 입술을 열어 저주를 발하는 자들에게 권위가 주어지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는 자신과 반대의 주장을 하는 자들을 반드시 죽이게 되어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죽으신 것이되 아버지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으니 죽음에서 살아난 자가 진리였으되 죽인 자가 진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주장이 진리임을 증명하고 싶은 자는 우선은 어떠한 말이든 전하되 그 다음에는 입을 닫고 자신이 전한 말을 위해 죽을 때를 잠잠히 기다림이 옳다.
그러나 불쌍한 것이 있으니 어리석음은 돌이킴이 쉽되 안타까움은 어리석음에서 더 나아간 것이요, 사람은 선한 영이든 악한 영이든 영에 의하여 말과 행위가 지배 받고 있는 것이니 쉽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입을 닫고 돌이킬 것이요 그 마음을 버리는 영혼은 자신을 돌이키지 못하여 자신의 혀를 끝까지 제어하지 못할 것이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