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서울시청 한·미FTA 날치기 비준 통과 반대시위 참관기
이렇게 오래 지속된 가을에 대한 기억이 없다. 11월 하순이 다 되도록 일부 가로수와 야산의 단풍이 늦가을의 풍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어느해보다 따뜻한 날씨도 계속되었다.
가을 날씨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고 했던가? 한반도의 차가운 겨울을 예견이라도 하려는듯 기온이 급전직하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 대한민국의 땅은 날치기 현장에 터뜨려졌던 체루탄보다 맵고, 시베리아 동토보다 더 춥고, 먹구름 뒤덮인 날보다 더 어두운 한·미FTA을 맞았다.
그 광경을 속보로 지켜보며 울분을 토해냈지만 금새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멀리서 찾아온 친구와 찬소주나 씹어 먹으며 쓰린 속을 쓴 소주로 달랬지만 돌아온 것은 괴로운 아침뿐이였다.
술에서 깨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데 권기태(남동소통과 연대 공동대표)군에게서 저녁에 있는 서울 덕수궁앞 반대시위 현장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전화가 왔다.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시대를 넘는 고비때마다 한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것 같다. 호기심이었는지, 책임감이었는지, 소속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80년대이후 중요하고 고비가된 시위현장에 꼭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노무현대통령 탄핵반대시위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까지 두세번씩은 꼭 참예하였다. 나이를 먹어서는 사실 행사에 참여하였지만, 시위를 하러 가는 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지, 구경하려 가는 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가는 것인 지 가끔씩 나도 헷갈렸다. 많은 경우 행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무교동이나 종로 피맛골이나, 인사동쪽으로 이동해서 옛친구들을 만나 무용담으로 날새우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기온은 더욱 떨어져 낙엽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속절없이 흩날리고 모이는 것이 꼭 한·미FTA체결이후 우리네 민초들의 상태와 같아 보여 예사롭지 않았다. 아직 남은 가로수 잎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찬바람에 매섭게 울고 있었다.
대충 방한등산복을 차려입고 나왔지만 차가운 날씨에 속수무책이었다. 송내역에서 같이 갈 일행을 기다리는데 너무 일찍온 탓에 기다리는 동안 찬바람이 벌써 뼈속까지 스며들어왔다. 권기태군이 도착하자 나는 뒷사람을 기다릴 생각과 여유도 없이 무조건 열차에 오르자고 졸랐다.
그래서 이날 두사람의 동행은 시작되었다. 용산행 급행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시청역에 도착한 시간이 6시 40분이었다. 시위에 참여하러 온 사람들인지 배낭을 매고, 추레한 방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나쳐 갔다. 그들을 따라서 대한문에 도착하니 벌써 앰프소리가 귀청이 떨어나갈 지경이다. 왠 노인네들 몇십명이 집회현장을 미리 점거하고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를 표방하는 몇몇단체가 반대진영의 집회에 깽판을 치기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일이다. 이들은 합법적인 집회조차도 여지없이 나타나 집회를 방해하고, 폭언, 폭력을 일삼아 왔지만 속수무책이다. 사실은 일종의 백색테러이다. 거의 매번 동일단체와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무법천지의 세상을 만들고 있지만 이들에게 법적조치가 내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오늘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충돌을 막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이들 집회현장을 경찰이 빙 둘러쳐 보호하고 있다. 집회도 공권력의 보호를 받아가며 하는 귀족집회와 이유없이 무자비한 탄압을 받는 대다수의 집회 두종류로 나뉘어 져 우리 사회현상과 동일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는가 보다.
이들에 대해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 이들의 조직은 실체가 있는가?
-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 이들의 조직 운영비는 진정 회원들이 조달하는가?
- 오늘 집회는 과연 집회 신고를 했을까?
- 오늘 참여한 사람들은 공짜로 왔을까?
저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테고, 이 광경을 그들의 자식들이 보고 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실체와 배후를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일 것이다.
두리번 거리며 우리 집회 장소를 찾고 있는데 서울광장 동쪽으로 집회 장소가 바뀌었다고 떠드는 모기마냥 작은 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거세지고 날씨는 더욱 사나워져가는데 몇 명이나 참여했을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기우는 빗나갔다. 벌써 시작된 집회에는 벌써 수천명이 운집해 있고 앞쪽에는 촛불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깔판도 없이 맨 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앉을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웅성거리는 군중 뒤쪽에서 웅크리고 서서 집회를 관전하였다.
“야5당 정당연설회”라는 현수막과 함께 차량에 연단이 설치된 것 같은데 뒤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스피커 소리가 대한문에서 하는 어버이연합 앰프소리에 비해 1/5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한문과 정 반대편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데도 뒤쪽에서는 대한문쪽의 앰프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뒤쪽에서 서 있는 우리에게 연설자들의 연설이 들리는 듯 말듯, 말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되었다. 답답한 참여자들은 “안들려”를 연발했다.
이름도 생소한 노래패의 노래공연도 간간히 이어졌고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비준 철회, 명박퇴진을 요구하는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힘찬 구호가 울려퍼졌다.
자유발언자로 나선 안산에서 왔다던 고등학생이 큰 웃음을 선사하고 중학생도 자신이 만든 피켓에 최근 유행하는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추위에 제대로 기억할 수도 없었다.
민노동 이정희 대표는 국회에서 비록 날치기로 통과되었지만 비준을 막기 위해 법적인 대응 뿐만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비준에 서명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이를 시민들의 힘으로 막아내자고 호소했다.
진보신당에서 대표로 누군가 나와 연설하였고, 창조한국당 대표도 외국의 사례를 빗대 한·미FTA 날치기를 비난하였다.
미국에서 쓸개를 떼내기 위해 귀국했다던 유학생은 미국의 의료제도속에서 비용이 6만불이 드는 비용을 병원에서 4만 5천불에 깍아 수술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소개하며, 한국의 보편적 의료제도와 보험이 한·미FTA 비준으로 영리병원이 들어서고 사적보험 주도로 넘어가면 엄청난 의료비 상승은 불보듯 뻔하다고 사자후를 토해내고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 해외 유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해 달라고 참여자들에게 호소하였다.
한시간이 지나자 추위에 온몸이 굳어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았지만 나는 엄두도 낼 수 없이 뒤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군중들도 많이 들어나 스케이트장 설치를 위해 공사중인 가림막을 떼내고 서울광장을 잠식하였다. 일부는 공사용 목재더미에 올라가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쳐댔다.
경찰차가 주변을 에워싸고, 불법집회니 해산하라는 방송이 연설중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위축되는 사람하나 없이 아랑곳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꾸역꾸역 더 늘어났다. 만명을 훨씬 넘는 것 같았다.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드디어 나꼼수 정봉주 전의원, 김어준총수,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등장해 시위의 절정을 맞았다. 정봉주전의원은 민주당 소속으로서 한미FTA를 막지 못한 사과를 전하고 민주당내 협상파를 비난하였다. 김어준씨의 말을 듣기 위해 참여자들이 “김어준”을 연호했지만 김어준씨와 주진우가자는 끝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 듯했다. 늦게 도착한 김용민 교수의 발언을 끝으로 집회가 정리되었다.
더 진행되는 것을 보고는 싶었지만 추위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서둘러 집회현장을 빠져나왔다. 덕수궁앞 신호등을 열어주지 않아 신호를 무시하고 군중틈에 섞여 지하철로 내려오자 온기가 느껴졌다. 인천으로 오는 중에 권기태군이 페이스북을 검색하며 시위현장소식을 전했다.
우리가 시위현장을 떠난지 정확히 5분만에 물대포가 발사되었다. 2-3시간동안 꽁꽁언 몸에 발사된 물대포를 맞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현장에 끝까지 같이 있지 못한 미안함보다 물대포를 피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내가 물대포를 맞았다면, 그 끔찍한 상황은 상상으로 족했다.
공권력이 시민들에게 얼마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는지 두고 볼 일이다.
언제까지 눈뜨고는 보지 못할 처참한 광경을 봐야 할 것인가?
첫댓글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는 행위는 살인에 해당합니다.
인권의 차원이 아니라 발포행위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아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대를 향한 발포가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독재국가의 야만성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경찰력으로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