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태종•이방원:⤵
태종•이방원 제46편: 방석을 세자로...
(정도전과 남은의 출현)
진정한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방원은 함흥을 향하여 개경을 떠났다.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처럼 황급히 단기 필마로 떠난 것이 아니었다. 호종하는 무사들과 노복, 그리고 수레가 뒤따르는 대열을 이루었다. 아버지의 고향이며 자신의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변방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일국의 왕이 되었으니 조상께 광영의 길이었지만 가벼운 마음만은 아니었다.
행차대열이 철령에 이르렀다. 따르는 호종들을 쉬도록 하고 북녘을 바라보았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준령이 장엄했다. 천군만마가 백두산 넘어 평원을 향하여 질풍처럼 내달리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방원은 가슴이 뛰고 뭉클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방원이 다시 한 번 바라보았을 때 역시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에 맞서 요동에 출병한 아버지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명나라와 한판 전쟁을 벌였다면 지금 현재 내가 철령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을까?” 지나간 일은 가정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방원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요동을 정복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패퇴하여 전 국토가 명나라의 발 말굽에 짓밟혔을 것이다. 모두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요구하지 않는가?
“중국은 자신들의 안보 전략상 철령과 대동강을 노린다. 한반도의 생존권은 압록강이다. 그렇다면 대동강과 압록강 사이의 땅은 충돌의 땅이지 않은가? 중국과 싸우지 않고 충돌의 땅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무거운 머리를 들어 남녘을 바라보았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것이야. 한수(漢水)와 철령을 지배한 자가 진정한 한반도의 주인이야.”
여기에서 가다듬은 구상이 훗날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의 대명외교 전략의 초석이 되었다. 문 밖에서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 방원이 조상의 선영을 참배하기 위하여 함흥으로 떠나 열흘째 되던 날. 태조 이성계는 측근 신하 몇 명을 조용히 불렀다. 배극렴, 조준, 정도전
이었다. “짐이 세자를 세우려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적장자(嫡長子)로 세우는 것이 고금(古今)을 통한 의(義)입니다.”
배극렴이 당연한 것을 하문하느냐는 듯이 즉각 거침없이 답했다.
순간 이성계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며 일그러졌다. “현비(강씨)에게 아들이 둘이 있는데 짐은 방번이를 생각하고 있소이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순리를 따르자는 배극렴의 진언을 무시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방우를 비롯하여 방원까지 전처소생은 모조리 제외한 예상하지 못했던 구상이었다. 둘러앉은 배극렴, 조준, 정도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황당한 발언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조준을 지목하며 이성계가 물었다. “경의 뜻은 어떠한가?” “세상이 태평하면 적장자를 먼저 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공(功)이 있는 이를 먼저 하오니 원컨대 다시 세 번 생각하소서.” 배극렴의 지론과 같이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정도전에게는 묻지 않았다. 이미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이성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과인이 하는 말을 받아 쓰도록 하라.” 조준에게 명했다. 내인들이 준비하고 있던 지필묵을 조준 앞에 대령했다.
“세자는 방번으로 한다.” 이성계의 선언이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조준의 손끝으로 쏠렸다. 조준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지금 한 말이 임금의 진심인지 신하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던진 말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붓을 들고 있던 조준이 받아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경은 무엇 하는가? 어서 쓰지 못하고!” 이때였다. 팽팽한 긴장을 깨고 가느다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현비였다. 왕비로 책봉된 강비가 문밖에서 이들의 논의를 엿듣고 있다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흠칫 놀란 이성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방번은 광망하고 경솔하여 볼품이 없으므로 취소하겠다. 누구를 세자로 세워야 하겠는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문밖에서 강비의 흐느낌이 이어졌다 끊어지고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자
(長子)로 세워야만 되고,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서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배극렴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막내아들이 좋습니다.” 이성계의 얼굴이 밝아지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문밖에서 흐느끼던 여인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도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뒤늦은 정보는 사후약방문? 한편, 이 정보를 접한 방원의 수하는 함흥으로 말을 달렸다. 다음날 세자는 방석으로 한다는 세자책봉과 함께 홍영통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삼고, 안종원을 영삼사사(領三司事)에, 배극렴을 문하좌시중, 조준을 문하우시중으로 하는 조정의 관직과 개국공신이 발표되었다. 오늘날의 조각이다.
주요 관직은 다음과 같다. 서제(庶弟) 이화를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도절제사, 윤호를 판삼사사(判三司事), 김사형을 문하 시랑찬성사, 정도전을 문하시랑찬성사, 정희계를 팔위상장군(八衛上將軍), 이지란(李之蘭)을 의흥친군위 절제사(節制使), 남은을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로 임명했다. 이른바 좌 날개 정도전, 우 날개 남은의 출현이다.
개국공신에도 등수가 있는데 일등공신은 다음과 같다. 배극렴, 조준, 김사형, 정도전, 이제, 이화, 정희계, 이지란, 남은, 장사길, 정총, 조인옥, 남재, 조박, 오몽을, 정탁, 김인찬 등 17명이었다. 2등 공신은 다음과 같다. 윤호, 이민도, 박포, 조영규, 조반, 조온, 조기, 홍길민, 유경, 정용수, 장담(張湛) 등 11명이었다.
1등 공신과 2등 공신은 그런대로 자타가 인정하는 공신들이었지만 3등 공신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공신록이 작성된다는 소문이 돌자 정도전 집 문지방을 번질나게 드나들었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3등 공신 16명은 다음과 같다. 김균, 유원정, 이직, 이근, 호조 오사충, 이서, 조영무, 이백유, 이부, 김노, 손흥종, 심효생, 고여, 장지화, 함부림 등이었다. 심효생이 공신록에 오름으로써 조선 초기 정도전을 축으로 한 정도전, 남은, 심효생 트리오가 출범했다.
태종•이방원^다음 제47~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