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구에서
십이월 셋째 일요일이다. 올겨울 들어 초반부터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지역도 겨울이면 빙점 아래로 내려가긴 해도 몹시 추웠다. 아침 최저가 영하 5도를 더 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도시락을 챙겨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산행이 아닌 산책을 나설 요량이었다. 미명의 어둠 속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창원터널을 통과하는 김해행 97번 버스를 기다렸다.
날은 춥고 그 버스 통과는 더 기다려야해 먼저 온 170번을 타고 장유까지 갔다. 거기서 김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 경전철 수로왕릉역에 닿았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승객은 한산했다. 사상행을 타고 김해 시청과 인제대학 역을 지나니 비로소 동녘에서 아침 해가 떴다. 해운대 일출은 황령산을 넘어 백양산 산마루로 솟아올랐다. 김해 들판은 아직 볕살이 비치지 않았다.
김해공항을 두 정거장 앞둔 등구역에서 내렸다. 등구(登龜)마을은 재미있는 땅이름이었다. 바다의 거북이 낙동강을 거슬러 뭍으로 올랐다는 뜻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자연석에서 그런 내력을 밝혀 새긴 빗돌이 서 있었다. 강변로를 건너 강둑으로 올라섰다. 북으로 가면 대동이고 남으로 가면 을숙도였다. 나는 을숙도 방향으로 걸었다. 강 건너는 부산 사상과 사하와 북구에 해당했다.
을숙도에서 김해 대동에 이르는 낙동강 둑은 자전거 라이딩족에겐 무척 인기 있는 코스다. 시원스레 뜷린 길고 긴 강둑 자전거길 양쪽 벚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다. 봄철 벚꽃이 피어날 때뿐만 아니라 사철 라이딩을 즐기기에 좋다. 자전거 마니아들만이 아니라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도 혼자거나 동호인들이 흔히 보였다. 거기에다 나처럼 산책을 나선 사람들까지 가세하기도 한다.
나는 김해공항에서 가까운 등구역이나 덕두역을 기점이나 종점을 삼아 강둑 아래와 위로 더러 걸었다. 주로 을숙도 근처 명지시장에부터 걸었는데 이번엔 등구에서 시작했다. 강둑을 걸으니 나목이 된 벚나무들의 열병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뭇잎이 없는 앙상한 가지였지만 햇볕이 일부 가려지고 강바람이 불러 추위가 더 느껴졌다. 그래서 볕살이 더 잘 드는 둑 아래 산책로를 걸었다.
추위가 심해서인지 강둑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 인적이 없다시피 했다. 여러 차례 강둑을 걸었지만 둑 아래 산책로를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겨울철에는 햇볕도 따갑지 않아 오히려 강둑보다 둔치 산책로가 걷기에 더 좋았다. 너른 강폭에는 사상으로 건너가는 경전철 교각이 걸쳐져 있었다. 이어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지선 낙동대교 밑을 지났다.
강 건너 산비탈은 사상 엄궁에서 사하 하단에 이르는 아파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동대교를 지나니 넓고 너른 둔치는 맥도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늦가을까지 꽃을 피웠을 쑥부쟁이를 비롯한 야생화들은 모두 시들었다. 갈대나 물억새는 이삭이 바람에 부대껴 야위어져 갔다. 둔치에 흔히 자라는 달맞이꽃이나 망초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임무를 다하고 시들었다.
둔치 생태공원에는 여러 산책로 있었다. 버드나무길도 있고 수변오솔길도 있었다. 나는 강가와 바로 접한 수변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강물은 하구언에 막혀 수면은 일정한 높이를 유지했다. 상류로부터 여러 오염원과 부유물을 안고 흘러왔을 강물은 자정작용을 거쳐서인지 아주 깨끗해 강바닥 모래까지 훤히 드러났다. 까만 민물가마우지와 덩치가 큰 고니들도 한가로이 떠 다녔다.
을숙도를 앞두고 수변오솔길에서 강둑 가까이로 나왔다. 산책로 벤치에서 배낭의 도시락과 곡차를 꺼냈다. 달리 바람과 추위를 피해 앉을만한 지리가 없었다. 보온도시락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수저를 쥐려니 장갑을 벗어야 했다. 국순당으로 도시락을 비우는 사이 손이 많이 시렸다. 세 시간 남짓 걸으면서 소진된 열량을 보충하고 강둑으로 올랐다. 명지시장이 가까웠다. 1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