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참고말씀: 레19:18; 마26:14-16; 눅22:3; 요12:6; 고후5:14; 엡4:27,28; 벧전5:2,3
읽을말씀: 요13:1-38
주제말씀: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첫째, 끝까지 사랑하시며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1-20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님은 무엇을 아셨습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기신 것과 당신이 이제 곧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1절 상) /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3절)
그러기에 더욱 어찌 하셨습니까?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절 하) 이 같은 사랑은 유월절 전 날 밤 어떤 행동으로 드러났습니까?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신 사건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4,5절)
그 자리에 있던 누구의 발도 씻어주셨습니까? 당신을 배신하게 될 가룟 유다입니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11절) 왜 그리 하셨습니까? 그 역시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양 무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되, 항상 자원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그리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이 날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제자들이 처음부터 다 깨달았을까요? 아닙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7절) 그러기에 수제자 베드로마저도 횡설수설하지 않았습니까!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6,8,9절)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닥친 일들을 처음부터 다 이해하고 헤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기꺼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고 하셨습니까? 겸손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4,15절) 즉 제자들도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받아서 겸손하게 서로의 발을 씻어주기를 원합니다.
둘째, 배신하고 부인해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21-3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13:21)
예수님은 심령이 괴로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말씀해주셨습니까? 제자 중 하나가 당신을 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21절)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 사실을 아셨습니까? 처음부터입니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11절) / “내가 너희 모두를 다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18,19절)
이는 무엇을 통해 증명되었습니까? 당신을 팔 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요한의 물음에 대해서 가룟 유다를 정확하게 지목하신 점입니다.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25,26절)
왜 그 자리에서 밝히신 것입니까? 마지막까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입니다. 즉 이제라도 돌이키기를 위함이요, 설령 배신하게 되더라도 베드로처럼 나중이라도 돌이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절)
참고로,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싹트게 되었을까요?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부터일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조금씩 잠식당했고 결국에는 마귀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7,28) /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22:3) /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찼더라.”(마26:14-16) /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27절 상) /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30절)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어떤 교훈을 베풀어주셨습니까?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34절 상) 이는 분명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19:18 중)의 연장선상으로 주어진 것 같은데, 어찌 새 계명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의 근거와 원리 면에서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새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지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하)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서로를 사랑하되,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형제를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지체를 섬기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또는 끄는도다)...”(고후5:14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