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송
시편 47(46),2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제 1 독서
<야곱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다(27,36 참조).>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7,1-5.15-29
1 이사악은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큰아들 에사우를 불러 그에게 “내 아들아!” 하고 말하였다.
에사우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 그가 말하였다.
“네가 보다시피 나는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3 그러니 이제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나를 위해 사냥을 해 오너라.
4 그런 다음 내가 좋아하는 대로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것을 먹고,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겠다.”
5 레베카는 이사악이 아들 에사우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래서 에사우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 15 레베카는 자기가 집에 가지고 있던
큰아들 에사우의 옷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을 꺼내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16 그리고 그 새끼 염소의 가죽을 그의 손과 매끈한 목둘레에 입힌 다음,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 주었다.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가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20 그래서 이사악이 아들에게
“내 아들아, 어떻게 이처럼 빨리 찾을 수가 있었더냐?” 하고 묻자,
그가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이사악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인지 아닌지 내가 만져 보아야겠다.”
22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가까이 가자,
이사악이 그를 만져 보고 말하였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
23 그는 야곱의 손에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24 이사악이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냐?” 하고 다져 묻자,
그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러자 이사악이 말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너에게 축복해 주겠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그것을 가져다 드리니 그가 먹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다 드리니 그가 마셨다.
26 그런 다음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입 맞춰 다오.”
27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사악은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였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는 주님께서 복을 내리신 들의 냄새 같구나.
28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29 뭇 민족이 너를 섬기고 뭇 겨레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는 네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고
네 어머니의 자식들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들과 벌어진 논쟁이나 갈등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제자들과 선의의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인 안드레아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제자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1,35 참조). 또한 루카 복음서는 주님의 기도를 전하면서 제자들이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11,1)라고 청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사람들에게 더 유명한 인물이었고, 제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 예수님께 ‘제자들이 왜 단식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단식과 혼인 잔치는 상반된 이미지입니다. 단식이 절제와 보속의 의미라면 혼인 잔치는 기쁨입니다. 유다인들은 단식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실천하고, 율법을 더욱 열심히 지키고자 규정보다 자주 단식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에도 혼인 잔치는 큰 축제였고, 친척과 지인들이 여러 날을 함께 머물며 신랑 신부를 축하하여 주는 기쁨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때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단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짧은 비유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활동하시는 시간이 끝남을 암시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출처 : 매일미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https://missa.cbck.or.kr/DailyMissa/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