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늦기 전에 개정해야
법 시행 대상인 사업장, 사망사고 3.2% 증가
규정 불분명해 ‘묻지 마 식’ 안전 비용 지출도
개정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유예할 때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건설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인 기업에만 적용되던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도 적용된다. 이 법은 근로자나 일반 시민이 사망 등을 한 경우 안전담당자뿐만 아니라 대표나 원청 대표도 1년 이상 징역 등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상시근로자 4인 이하 사업주나 대표는 형사책임이 면제되고, 민사책임은 공히 사업주 등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면책될 수 있다.
문제는 사업주 등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법 규정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법은 기업에 매우 추상적인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무를 이행하면 형사 처벌을 면한다는 근거 규정이 없다. 이는 유무죄가 판사의 재량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주 등의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확보하고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묻지 마 식’ 비용 지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형사 처벌을 면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지금까지는 상시근로자가 50인 이상인 기업들이 그 대상이었던 만큼 재해 예방 조치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여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 4개월 후부터 50인 미만 기업들이 이 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31%에 달한다고 한다. 그곳의 소속 근로자는 최소 700만 명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영세사업장으로 인해 우리 노동시장의 근로 생태계가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용노동부가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 법의 적용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의힘도 이에 공감하고 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입법이 되었고, 시행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168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동의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이 법은 결함이 많은 만큼 기업이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올 7월 대통령의 “킬러 규제 제거” 발언 이후 이 법의 개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사업주나 기업 대표 봐주기식 입법안이라고 비판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의 목적은 산업재해 등으로부터 국민 생명과 건강의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사업주 등에 대한 형사처벌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올해 1월 고용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에서의 사망사고는 법 시행 이전보다 오히려 3.2%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법 적용 대상 기업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증가했지만 하청업체가 대부분인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오히려 5.7% 감소했다고 한다. 원청 경영자 책임을 강조한 중대재해법이 낙수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 시행 1년 만에 입법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감소했는데 굳이 이 법을 4개월 후에 적용해야 할 명분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을 법치주의의 근간인 명확성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도입했음에도 법이 먼저 적용된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보호법익이 존재하지 않는 불필요한 법률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결자해지 차원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합심해 중대재해법 개정에 동참하는 것이 유일한 답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50명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이 법의 적용을 2년간 더 유예하도록 부칙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대재해법의 시행으로 인해 가장 힘든 주체가 기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이 지출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예로 건설비의 증가로 인한 분양가 인상이나 재건축단지의 분담금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2년의 유예 기간을 더 거친 후에도 여전히 중대재해법의 보호법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감이 확산되면 이 법을 폐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점검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