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청와대 재단’?… 오리무중 청와대 활용법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이사를 갔나요?” 지난달 초 청와대를 찾은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해설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한국 대통령이 이곳에 살지 않는다는 설명에 대한 물음이었다. 대통령만의 공간이었지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민에게 개방됐다는 설명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 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개방된 청와대가 향후 어떤 공간이어야 할지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관리·활용하는 조직은 수시로 바뀌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칭 ‘청와대 재단’을 설립해 내년부터 업무를 위탁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5월 개방 이후에는 문화재청 청와대 국민개방추진단이 맡아왔다가 올해 3월 문체부로 관리 주체가 이관돼 청와대 관리활용추진단이 신설됐다. 하지만 실무는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에 위탁했는데, 내년부터는 다시 문체부 산하에 별도 법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방된 청와대의 정체성도 오락가락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해 1월 “역사관을 만들거나 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러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문체부는 돌연 ‘프리미엄 근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후엔 의견을 수렴한다며 대통령실에 청와대 관리활용자문단을 만들었지만 정작 활용 로드맵은 공개하지 않고 올해 1월 활동을 종료했다. 뚜렷한 방향이 없으니 4월 문체부가 발표한 활용 방안은 ‘역사 문화 예술 자연이 공존하는 복합 공간이자 관광 랜드마크’ 같은 온갖 말을 갖다 붙였다.
▷국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온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이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 주재 행사가 열린 것만 50차례가 넘는다. 대통령이 국격에 맞는 공간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당분간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국빈 행사보단 국정과제 점검회의, 부처 업무보고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달 13일 영빈관에서 열린 행사도 굳이 청와대일 필요 없는 ‘제20차 비상경제민생회의’였다. 대통령 행사는 보안 사항이라 방문객들은 당일에야 영빈관을 볼 수 없단 사실을 알고 발길을 돌리곤 했다.
▷권력의 정점이자 구중궁궐을 상징하던 청와대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초반에 월 50만 명에 이르던 관람객이 최근엔 월 10만 명대로 떨어질 정도로 열기는 식은 상태다. 이제부터는 이 역사적 공간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 내에서만 뚝딱 처리할 게 아니다.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말에서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핵심이다.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