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 삼일!! 경주로 포항으로!
힘든 일정이었다. 지난주에 이어서 치루어진 모임이라 더 그랬을 거다.
아니면 나이 탓?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1시, 미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 결혼 참석을 핑계로 역사의 고장 경주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각자의 방법대로 목적지 경주로 향했다. 나는 찬임이의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명숙, 영호, 설기와 같이 경주로 출발하였다. 찬임이의 차를 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용기 있고 거침없는 태도가 부럽다. 장거리에다 4명의 친구들을 싣고 운전하는 게 어찌 부담이 안 되겠는가마는 찬임이는 전혀 티 내지 않는다. 명숙, 영호, 설기를 차례로 픽업하여 경주로 내리 달렸다.
오래 된 나무들, 특히 소나무들, 건물들, 왕릉을 비롯한 문화재들로 가득한 경주는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의 도시였다. 소설가 김동리는 경주에 대해 “ 한이 있는 인간들을 한이 없는 자연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는 도시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경주에 와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오랜 세월 버터 온 나무만 봐도 그렇다. 오래된 나무들과 건물들, 주변 환경이 사람들을 경주로 이끈다. 숙소인 캔싱턴 리조트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연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착한 연희는 모처럼 경주에 친구들이 온다니 몇 날 몇 칠 ,온갖 것에 신경을 썼을 게다. 2711호에 여장을 풀었다. 명숙이와 영호는 오자 마자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주방 싱크대에 탁 불는다.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완성된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설픈 주부인 나는 항상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큰 영희네 집 고기리 송년회 때 부터 이미 알아챘지만 하루 이틀에 된 게 아닐거다. 영호는 불심으로 명숙이는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와중에 설기는 친구들에게 선물할 수세미를 짜기 위해 뜨개질 바늘을 꺼낸다. 이미 완성된 모자를 받은 친구들은, 수세미 모자를 머리에 써 보며 ‘우하하하’ 기뻐한다. “설기야 고마워.” 미국 여행 중에도 하나! 당진 가서도 하나! 경주에 와서 또 하나! 우리 집 싱크대 위에 차례로 걸려있다.
우리가 왔다는 말에 미자가 포항으로부터 왔다. 싱싱한 회와 직접 담근 김치를 꺼내 놓는다. 신혼집 김치냉장고에 채워줄 거란다. 백점짜리 시어머니다. 아들 결혼 땜에 신경 쓸 일도 많을 텐데 친구들이 왔다는 말에 포항으로부터 단숨에 달려왔다.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미자는 돌아가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밀려오는 피로감은 어쩔 수 없다.
다음날 아침 영호, 연희랑 보문호수를 산책하였다. 연희를 가이드 잘 못한다고 잘랐다 붙였다 하며 1시간 40분여 산책이 끝났다. 명숙이가 ‘엄마가 밥해 놓았다 얼릉 와’라는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곧바로 경주 투어로 들어갔다. 먼저 토함산에 있는 불국사를 둘러본다. 찬임이는 토함산에 푹 빠졌다. 속 깊은 야그까지 다 하게 해 주는 가장 마음이 푸근해 지는 산이란다. 역시 경주의 자연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 속 깊은 야그를 할 사람들일랑 다들 토함산으로 오셔유! 무열왕릉을 돌아본 후 연희가 사준 점심을 먹었다. 청국장에 고등어 조림 꽁치조림인데 무척 맛이 있었다. “연희야 고마워”
그때 핸드폰이 노래한다. 명빈이로 부터 전화! 울산공항에서 기희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란다. 명빈아! 영남친구들 의리를 잘 보여주고 있구나. 명빈이를 보니 몸도 마음도 전보다 훨씬 단단해 보인다. 골프를 해서 그런가? 기희는 50분 만에 와서인지 피곤한 기색 없이 싱싱하다.
식구가 늘어난 우리는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을 둘러 보았다. 사실 경주에 여러 번 왔어도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 이런 곳만 가 보았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문화재이다. 연희 덕분에 이런 보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 묵묵히 서 있는 석불을 보니 신라의 혼, 아니 한국의 힘이 느껴진다. 이런 힘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반만년을 버텨온 겨.
이어서 진평왕릉에 갔다. 연희말에 의하면 가장 예쁜 왕릉이란다. 선덕여왕의 아버지다. 셋째딸은 선화공주란 말도 있다.
토요일 오후에 대장하고 부반장이 합류할 예정이라 전화 통화를 수시로 한다. 서울서 천안까지 엄청 밀려 4시간이나 걸렸단다. 천안에서 일보고 대전을 지나 지금 경주로 내리달리고 있다. 명빈이 짐을 푸니 완전 잔치물건이다. 불판, 언양 한우, 오리고기, 묵은 김치, 은행, 고구마.... 그 뿐인가? 직접 만든 천연화장품까지!
천연 화장품을 가지고 와서 제조 과정을 강의한다. 아하! 그래서 명빈이가 예뻐졌구낭. 참 부지런도 하다. 아무도 못 따라가지.
‘요리’하면 영호와 찬임이가 빠질 수 없다. 무엇이든 맛있게 요리하고 여러 사람 기쁘게 해주는 영호 덕에 모두 맛있는 저녁을 들었다. 먹는 도중에 드디어 대장과 부반장이 들어왔다. 저녁 후 우리는 안압지 야경을 보러 갔다. 그러나 안압지를 못보고 명숙이는 뱅기타고 집에 가야한다. 울산공항까지 명빈, 연희, 나 이렇게 셋이 배웅해 주었다. “명숙아! 잘 가. 같이 못 가 주어 미안타.” 사위가 공항 꺼정 나와 준다니 걱정은 덜었다. 배신 때렸다고 너무 날 탓하지 말아줘. 이렇게 재미있는데 워떻게 가야한단 말야? 이해 해 주라. 잉?
안압지에서 다시 전원 합류! 멋진 야경이었다. 최고! 최고!
숙소에 돌아와 씻고 명빈이가 가져온 화장품 발라보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잔다.
본래의 목적을 위해!
밤 열한시에 뱅기타고 간 명숙이의 문자가 온다. 생글거리며 들어오는 명숙이를 보고 남편이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아” 그 문자를 보고 모두 또 한 번 모두 깔깔깔...........
다음날 새벽 6시 피곤한데도 정숙이는 성당에 가려고 나선다. 신심이 더욱 두터워진 것 같다. 잠이 깬 나도 명빈 연희 기희와 함께 본관 지하로 가서 온천욕을 하였다. 생각보다 수질이 좋았다. 이제야 피로가 가신다. 그 사이 영호랑 찬임이 설기가 벌써 아침 준비를 다 해 놓았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방정리를 한다. 아침 9시에 포항에 사는 최유영씨가 우리와 합류한단다. 친구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모든 일정 미루고 달려온 것이다. 멀리서 보니 여유를 갖춘 멋진 남자가 걸어온다. 바로 최유영씨다. 몇 년전 감포에 갔을 때도 우리에게 문화재 안내를 멋지게 해서 기억에 남았었다. 미자 아들 결혼식에 가기 전 양동마을을 소개해 주고 싶다 한다. 우리야 당연 좋지요!!
명빈이 차는 숙소에 두고 대신 유영씨 차가 뛰기로 했다. 유영씨 차엔 명빈, 연희
찬임이차엔 영호 설기 수련, 대장 차엔 정숙이 기희 이렇게 3대가 양동마을로 향했다. 고귀함과 기품이 있는 마을이다. 용인 민속촌, 순천 낙양읍성, 안동 하회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전통의 마을이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씨족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한국의 마을로 등재되어 있다.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주요문화재에 들렀다. 서백당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다. 종부가 하루에 참을 忍을 백번 쓴 다는 의미의 이름이라 한다. 서백당에서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손소의 둘째 아들 손중돈, 외가에서 태어난 이언적, 나머지 한 명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택 앞마당에는 향나무를 심는 전통이 있어서인지 오래된 향나무들이 많았다. 무첨당은 이씨 종가의 별당으로 손님을 접대하고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던 곳이다. 관가정은 농사짓는 풍경을 보던 정자란 뜻인데 실제로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너른 안강평야가 한 눈에 펼쳐진다. 이제 포항으로 가서 결혼식 참석을 해야 한다.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마음에 가는 길에 귀래정, 월성주사 고택도 보고 탐스럽게 익은 사과밭에서 포즈도 잡아 본다.
식장에 가니 뜻밖에 이건영씨가 와 있다. 우리 친구들은 이렇게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다. 미자를 꼭 닮은 신랑과 어여쁜 신부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또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 친구들은 모두 자녀들 잘 두었고 결혼도 잘들 시킨다. 둘 다 결혼 시킨 미자는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아들아! 꼭 행복하게 살아야 혀!
건영씨는 왔던 버스를 타고 다시 대전으로 가고 우리는 호미곶으로 출발!
영일만의 토끼꼬리다. 해마다 신년 해맞이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탁트인 동해를 바라보며 우리가 참 멀리도 왔구나 생각해 본다. 학창시절엔 이렇게 40년후에 동창들과 호미곶으로 경주로 함께 동행하여 여행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바닷가에 널어놓은 오징어들, 멀리 수평선, 동해안의 푸른 물을 바라보니 가슴이 트인다. 동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차를 마셨다. 기희는 포항공항까지 유영씨와 데이트 후, 서울로 가고 우리는 못다 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눈다. 공항 갔던 유영씨가 돌아오자 포항의 별미 물 회를 먹으러 갔다. 이제 아쉬운 작별의 시간 ! 이박 삼일 동안 친구들과의 즐거움을 뒤로 한 채 각자 집으로 향했다. 나를 집 앞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준 흥식씨 정숙아! 고마워!
교실 창 밖에서 바라보는 낙엽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11월이 오면 이 아름다운 모습도 사라지겠지.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끝이 있다. 아이들과 지낼 시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헤어져야 할 준비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후세 교육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면, 앞으로 인생 후반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화두를 나에게도 우리 친구들에게도 던져보며 글을 마무리 한다.
그 누가 알았으랴? 40년 후, 우리가 경주까지 와서 이렇게 정답게 지내게 될 줄을!!
친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 한결같은 마음이다(진평왕릉에서 친구들과)
첫댓글 연희 명빈 미자 유영씨
영남 친구들!! 즐거운 추억 만들어 주어 정말 고마웠어. 푸근하고 따뜻한 마음 오래 잊지 못할겨.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빌어
와! 작품이네. 직가가 누구야1? 수련이가 올린 사진인데 수련이는 사진 속에 있고 찬임이?
찬임이가 찍은 "친구들"이란 작품이야. 정말 잘 찍었지? 근데 찬임이 본인 얼굴은 없으니 섭섭하겠당.
담엔 영희도 꼭 함께하자. 알았지?
그래 내가 봐도 참 멋지다!! 수련인 여행 후기 작가로 충분하다. 그날의 추억이 새삼 물씬 느껴진다.,,,,,, 언젠가 되돌아 볼 수 있는 추억이 있음에 또 한 번 행복해진다....
수련이가 이제야 피곤이 풀렸구나. 여행이야기를 쓴 걸보니....오늘, 미자가 영남 친구들에게 맛있는 저녁 사준다고해서 잔치 치른 선생님이 주신떡도 가방에 넣어 놓았다. 넷이 모여 그날의 일들을 이야기하겠지 .뒷담화, 오늘 너네들 귀가 간지러울거야
연희야! 영남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꼭 전해 줘. 특히 유영씨에게
맛있게 먹고 야그도 많이 하고 와. 뭔 이야기 했는지 요기다 꼭 올리고 말야. 그래야 귀 안 간지럽지.
글도 사진도 훌륭한 작품이로구나. 나의 1박2일이 생생이 떠 오르네.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본교 교사딸 결혼 다녀온 후로 감기 몸살로 병이 나서 지금까지 고생중이란다. 행락철이라 그런지 올라오는길에 버스 전용차로까지 막히던데,... 가만히 버스 타고 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포항 왕복으로 운전한 친구들 몸살 안났나 모르겠네. 피곤이 엄청 오래 갔을 것 같아.
수련아, 다시 그 날로 돌아가게 해줘서 고마워. 찬임아, 사진 멋지게 잘 찍었다. 니 얼굴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거 알지?
붓 만 잡는줄 알었는데 펜도 강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