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7](화) [동녘이야기] / [동녘글밭] 한가위에 천부경을
https://youtu.be/lp6IrvC6Zpc
어쩌다 주말에 이어 한가위를 맞아 비교적 긴 한가위 연휴를 보내게 되었읍니다. 한가위 앞뒤로 쉬는 날이 붙어 있어 연휴가 되고, 거기에 주말이 시작되어 뜻밖에도 더 긴 연휴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긴 연휴는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느긋하게 만들어 우리네 삶을 더욱 넉넉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마음의 여유도 생겨 보이지 않던 일들도 볼 수 있게 되어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는 기회로 삼게 됩니다. 미쳐 챙기지 못했던 핏줄의 소중함이 자연스레 찾아와 가정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해서 또한 삶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게 만듭니다.
나아가 나를 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의 소중함에도 머무르게 되고, ‘우리들’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 공동체의 아름다운 꿈도 펼치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우리들을 지키는 나라로 그 틀을 넓히게 합니다.
누군가는 이 사회와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한 점에서 지금, 잘하고 있는지를 또한 잘못하고 있는지를 살피게 되고, 그것에 따라 그 다음의 행동을 준비하게 합니다. 사사로움에서 시작하여 공공의 영역으로까지 우리들의 생각을 넓히고 그것에 맞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만듭니다.
늘 아니 가끔씩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모든 문제는 바로 ‘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에서 비롯되어 ‘너’를 그리고 ‘우리들’로 그 폭을 넓혀 갑니다. 이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그건 바로 ‘생명’이며 ‘생명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생명으로 있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그 긴 과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명의 작동 원리’입니다. 바로 그것이 까닭인 ‘욕심‘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이 ’욕심‘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르게 보면 모순 투성이인 ’나‘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욕심을 지닌 욕심 덩어리요, 모순 투성이인 나인 것을 인정하는 일이지요. 그것은 어쩌면 깨달음의 시작이요, 깨달음의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적당히‘를 익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욕심을 부리는 나‘를 찾는 일이고, 그렇게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적당히‘를 찾으려고 스님들은 면벽 참선 수행으로 애를 씁니다. 그 ’적당히’를 찾으려고 목사와 신부님들은 예수의 길을 걷고자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우리들은 굿을 하고요.
여기에 무애거사 원효가 있고, 만주를 달리던 광개토가 있으며 천부경을 푼 최치원이 있고, 훈민정음 한글 세종이 있으며 내가 곧 하늘을 연 최제우가 있으며 울돌목 이순신이 있고, 홍길동 허균이 있으며 님의 침묵 한용운이 있고... 그리고 그리고입니다.
내가 나라의 주인으로서 서로 힘을 모아 멋진 나라로 꾸려 가자는 ‘공화’를 꿈꾼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홍익인간 대동세상의 꿈이며 억강부약을 하면 크게 어렵지 않게 이룰 수가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100년 남짓된 시간을 역사 시간으로 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극히 짧은 시간을 두고, 욕심을 크게 내지는 말 일입니다. 이것저것을 돌아보며 가을 한 중간인 ‘한가위’ 연휴를 즐깁니다. 이제 천부경을 꺼내 들 참이네요.
이런 오늘도 고마움으로 ‘일시무시일’로 ‘일종무종일’을 삼킵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오늘, 글밭 제목은 '한가위에 천부경을'입니다.
한가위를 보내면서 천부경을 꺼내 들고,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의지'를 내 보이기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의지를 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가위 연휴를 느긋하게 보내는 여유도 있기에 꿈꾸는 것이지요.
이것은 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이 있기에 내 본 욕심이기도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시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