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을 기다리며 불철주야 몸 만드신 ‘닭가슴살교’ 근육질의 수도자들 바닷가를 점령할 터. 그들의 백사장 런웨이에 들러리가 될 필요 없다. 나는 산으로 간다.
운동이라곤 숨쉬기운동밖에 할 줄 모르나 딱 하나 좋아하는 것이 등산이다. 그럼에도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편이다’라는 조지 핀치의 말을 빌려, 산을 오르지만 나는 ‘비운동권’이라 외친다. 핀치는 1922년 제2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 때 산소통을 가지고 해발 8326m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다. 에베레스트, 여름날 그 이름만 들어도 서늘하지 않은가! 당시 같은 팀에서 핀치보다 먼저 산소 없이 8천m를 넘어선 이가 조지 맬러리다. 핀치는 등산은 운동경기가 아니니까 삶에 유용한 도구라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산소통도 자신이 직접 고안한 것. 아무튼 이때부터 산소를 쓰느냐 마느냐가 히말라야 등반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결국 산을 오르는 일은 삶의 방식과 별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맬러리는 다음 원정 때 실종돼 전설이 되었는데, 물론 그땐 산소통을 가지고 갔다.
케케묵은 옛이야기 들먹여 “거기 산이 있기 때문에”라는 맬러리의 말로 산을 편들겠다고 시작한 소리가 아니다. 당연히 바다도 늘 그 ‘거기’ 그대로 있잖은가. 더구나 산은 종종 굴착기에 먹혀 사라지기도 하지만 누가 감히 바다를 없애겠는가. 오,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 바다! 그러니 부디 지혜로운 사람(智者)이여, 제발 물 좋은 바다로 가시라. 이렇게 온 국민을 해수욕장으로 보낸 다음, 한적한 산마루에 올라 북적이는 바닷가를 굽어보며 인자(仁者)처럼 웃고 싶다. 인산인해의 피서철, 더위보다 사람부터 피하는 게 상책 아닌가.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바다는 물 흐르는 대로 누구나 가닿을 수 있지만 산은 최소한 준비와 각오가 된 사람만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서늘하고 적막해지는 법. 그래서 그곳에선 징그러운 사람마저 반가울 때가 있다. 한번 물어보라. 여름휴가 산으로 가자 하면, 더운데 왜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가느냐고 볼멘소리부터 나올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 산이 좋다. 적어도 정말 산이 좋은 줄 아는 사람만 무거운 배낭 메고 높이 올라갈 테니.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얼마나 시원하겠느냐고 꾀어도 소용없다. 해수욕장이 종종 해운대탕, 경포대탕 같은 목간통으로 변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 물 모두 산이 골골이 길러서 낮은 곳으로 흘려보낸 선물이다. 그러니 높은 산 깊은 골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이가 어디 바다를 부러워할까. 무엇보다 등산은 몸 안의 연료를 태워 스스로를 뜨겁게 데우는 운동이다. 그렇게 해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서늘한 산바람에 식혀보았는가. 바닷물에 열기를 식히는 게 에어컨을 트는 단순 처방이라면 산에 올라 서서히 땀을 식히는 건 이열치열로 속을 다스리는 여름철 보양식이다.
그렇다고 바다여, 야속해 마라. 설악산 뒤풀이는 늘 속초 앞바다로 갈 테니. 목이 터져라 부르는 ‘여수 밤바다’도 금오산에 오른 다음 만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