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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섭 브리가다-윤기정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윤기정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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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없는 지하 300척 캄캄한 갱내로 첫 대거리 몇 패가 저마다 이마에 붙인 안전등을 번쩍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채탄 브리가다의 책임자인 리창섭은 내리 굴 바른편 막장에서 작업을 날래 끝마치자마자 잡은 참 왼편 막장을 향하고 급한 걸음걸이로 바삐 걸었다.
시꺼먼 탄가루에 더께가 앉은 갱도 바닥은 군데군데 곤죽이 된 수령이 있어 이리저리 골라 디디는 동안까지도 그는 사뭇 더딘 것만 같아 매우 불안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창섭이는 자기의 손이 채 못 미쳐 뜻하지도 않은 사고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써 마음이 몹시 조이게 하였다.
이처럼 두 곳에서 그의 손을 기다리므로 컴컴한 갱내에서도 바쁜 걸음을 아니 칠 수 없었다.
갱내는 후덥지근하면서도 음산하다. 통풍 관계인지 약간 코가 매캐하고 목구멍이 알싸하다.
새까만 속에 오직 안전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여기저기서 번뜩인다. 그것은 마치 구름 사이로 별들이 껌벅이는 것만 같다.
바른편 막장으로 들어오는 어구에 두 개의 전짓불이 오도 가도 않고 고정된 채 명멸할 뿐이다.
창섭이가 그리로 차차 가까이 가서 보니 갱내 운반공인 박복례와 이명숙 두 여성이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밀차 울검지에다 제각기 손을 걸치고 서서 무슨 이야기인지 재미나게 하느라고 사람이 가까이 가는 줄도 모른다.
창섭이는 둘의 옆을 모른 체 하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동무들 수고허우. 혼자 미느라고 너무 힘들지 않소?"
부드러운 그의 음성은 둘의 귀를 찔렀다.
그제서야 일제히 고개를 움찔하고 명숙은 바른 켠 막장으로, 복례는 창섭이의 앞을 지나, 탄차를 제게 밀며 각각 헤어졌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국부 선풍기와 잉잉거리는 소리가 긴 갱도 안을 요란스레 뒤흔들어 놓는다.
"복례 동무! 몇 차째요?"
창섭이는 그리 많지 않게 쌓인 탄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갔다 와야 겨우 여섯 번인걸요, 뭐."
"오늘도 스무 차 넘긴 힘들겠군그래."
"흥 큰일 났군! 의로 치나 둘러치나 매한가지람. 두 패로 나누면 좀 날가 했더니…."
창섭이는 이렇게 웅얼거리며 막장께를 기웃이 들여다 본다.
곡괭이질 소리가 우드럭우드럭 난다. 암만해도 곡괭이 끝이 암팡지게 들이 박히는 소리가 아니다.
박봉규의 일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일제 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던 모양 그대로다.
창섭이는 불현듯 자기의 지나온 과거가 머리에 떠올랐다.
새벽같이 별을 이고 나가면 밤늦게야 별을 지고 돌아오던 일제 때의 고역살이는 회상만도 소름이 끼칠 만치 괴로운 생활이였었다.
아무런 보호 시설이 없는 갱내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숫한 사람의 목숨을 시시로 노렸다. 생지옥과 같은 구덩이 속에서 마음 조이며 열네 시간 이상씩 일을 하고도 끼니를 제때에 못 끓일 만치 가난하기만 하였었다.
학대와 불안 속에 휩싸인 하루의 노동은 온 몸이 솜 피듯 누그러지는 무서운 피로를 가져올 뿐이었다. 물론 글을 배울 사이도 없었지만 뼈가 쑤시고 사지가 물러나는 듯한 피로에 견디지 못해 책은 읽을 생심도 나지 못했었다. 그래 글과는 아주 인연이 멀어졌다.
8․15 해방 전까지 문맹이었던 창섭이는 문맹 퇴치 운동의 혜택으로 쉽사리 국문을 깨쳤다. 차차 글 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신문과 쉬운 책들을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가서 수준이 무척 높아졌다.
이 세상의 가장 옳은 리치와 참된 일을 나날이 깨닫고 쉽게 가려낼 줄 알았다.
남을 위하여 나라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견디어 나가는 것을 배웠다. 그의 매일 같이 하는 노동은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힘으로 되며, 통일 독립을 빨리 가져오는 길로 되며, 모든 사람들의 자유롭게 행복스런 생활을 누리게 하는 원천이 된다고 굳게 믿자 온갖 열성을 다 바쳐 흥겨웁게 일하였다.
그리하여 해방 두 돌을 채 맞기 전 5․1절을 앞두고 그는 노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애국심과 헌신성을 더욱 나타내어 뛰어나는 모범 노동자로 남들이 우러러보게 되었다.
"뭣에 틀려 후끈 달았는지 퉁퉁 부었어. 그러니 채탄이 불을 게 뭐람."
"승리의 기를 아주 먹긴 다 틀렸수."
창섭이는 아까 지나다 귓결에 들은 복례와 명숙이의 주고받던 말이 퍼뜩 생각난다.
"이즈막 후끈 달거나 벨이 돋기로 말하면 봉규가 아니라 오히려 이편이라고 창섭이는 생각하면서 그의 골이 난 이유를 더듬어 보았다.
‘왜 틀렸는지 모르지만 5․1절 증산 경쟁을 내걸고 한창 바빠 날뛰는 판에 자기 맡은 일을 저렇게 태공하는 것은 정말 돼먹지 않은 짓이야….’
생각하니 그동안 그의 한 짓이 한두 가지만 꺼림칙한 게 아니다.
봉규는 흘낏 돌아다보더니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곡괭이를 또 쳐든다. 참말로 량볼이 솜보퉁이처럼 퉁퉁 부었다.
"건방지게 웨 이 모양이여, 사람의 말이 말 같지 않어? 대답이 없게."
창섭이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예볏 나오려고 혀끝에서 뱅뱅 도는 것을 간신이 참았다. 그는 한술 눙쳐가지고
"몸이 아프지 않고야 꼭괭이질이 그게 뭔가? 탄이 아퍼헐가봐 겉으로 슬슬 다듬기만 허나?"
이렇게 봉규의 부아를 좀 건드려 보았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다. 아주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야. 창섭이는 자기 이마에 달린 전짓불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윤이 나는 탄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제보다 매우 단단해진 것 같다. 그래 손에 들었던 망치로 두드려 보았다. 탄벽이 어지간히 굳다.
"탄이 굳어 힘드는 모양인데, 웨 피크를 안 쓰구 그대로 강다짐만 허는 거야? 흥 사람의 성질두 어찌 그리 괴팍할까.“
하고 창섭이는 덕근이를 돌아다보며
"동무! 어서 코르피크를 가져 오구 압축기 줄을 이리 가차이 끌어오게."
"나두 피크를 써보자구 몇 번 말했지만, 도제 들어 먹어야죠.“
하고 덕근이도 매우 못마땅해 입을 삐죽 내밀며 본갱 쪽으로 사라졌다.
창섭이는 동발을 세우면서 생각할수록 봉규의 빙퉁그러진 태도가 여간 괘씸하지 않았다.
‘일이 이처럼 뒤틀리고 서로 사이가 어근비근해지는 이유가 뭐며, 생산이 잘 안 되는 원인이 어디 있나? 누구의 탓일가? 아니다. 아무에게도 잘못이 없다. 오직 당원인 자기가 크게 책임져야할 노릇이다. 어떡하면 여럿을 한 사람처럼 움직이게 하나?… 낙후한 봉규를 무슨 방법으로 다시 작업에 열성을 내게 하고 안일성을 뿌리 체 뽑아 주며 하루속히 우리 대렬 내에 끌어 들이나?’
이렇게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면서 창섭이는 일손을 더 자주 놀렸다. 그는 일을 통해서 남을 감복시키며 또 한 사람처럼 묶어 세우겠다고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였다.
양편 벽에다 맞붙여 굵직한 동발목을 세운 다음 그 우로 가름대를 질러 놓고 새새 틈틈에 얇고 두꺼운 쐐기를 쳐서 암만 흔들어도 움직여지지 않게 완전히 끝을 마치는 동안에 다른 때보다 사뭇 빨랐다.
덕근이는 부지런히 삽질을 한다.
쇼트판에 탄이 부딪쳐 가지고 마냥 미끄러져 탄차 우로 쏟아지는 소리가 귀청을 쏘는 듯이 요란스리 난다.
피크를 쓴 뒤로 낙탄이 훨씬 잘 되어 탄무지가 여간 붇지 않는다. 삽질이 무척 빠른데도 퍼낸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순식간에 시꺼먼 탄이 듬뿍듬뿍 쌓인다.
창섭이의 마음은 저으기 후련하고 흐뭇해졌다. 기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다.
탄광 전체의 1/4분기 책임량을, 열흘을 앞당겨 완수하자 전 직장적인 축하회를 가졌다. 그때 리창섭 브리가다는 <승리의 깃발>을 두 달 연거푸 받았다. 앞으로 계속해 한 번만 더 쟁취하면 영예의 깃발을 아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5․1절을 앞둔 이 달은 어느 브리가다 보다도 채탄 브라가다 에서는 더 중요한 달로 되였다.
그날 창섭이는 여러 브리가다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승리의 깃발>을 받아 쥐는 순간, 무한한 기쁨이 가득 벅차게 부풀어 올랐었다. 내달에도 이와 같은 영예를 꼭 쟁취하고야 말리라고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였었다.
창섭이는 축하회를 마치고 한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하여 오는데 김용준이가 곁에서 바싹 다가오며 어숭그레한 농담조로 말을 걸었다.
"동무네 브리가다가 번번이 우승을 하는 건 네가 용해서 이기는 줄 아나? 급수 높은 사람이 다른 데보다 월등 많은 까닭이지 뭐. 생각해보게. 그렇지 않은가, 일곱 사람 가운데 7급이 둘씩이나 되고 게다가 자네까지 8급도 둘이 안야. 그리고도 우승 못 헐 머저리가 어디 있담."
김용준이는 리창섭 브리가다와 내리 두고 경쟁하는 격수 브리가다의 책임자이다.
"이 사람아, 뭣이라구? 급수 높은 사람이 많아서 매번 이긴다고? 그럼 한 사람 데려 가려나?"
창섭이는 누글누글한 태도로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줘만 보라구, 어련히 안 데려 가리."
"정 그렇다면 자네 소원을 풀어 줄 테니 그래두 졌다간 혼날 줄 알어."
그 이튿날 창섭이는 지도부와 상의한 다음 8급짜리 한 동무를 보내고 그 대신 7급인 고병삼을 데려 오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봉규는 누구보다도 먼저 이것을 찬성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이틀이 채 못 가 브리가다 중 가장 낙후한 성적으로 뒤 꼬리만 줄창 따라 오던 전경수 브리가다에서도 또 한 사람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해 왔다.
그때 창섭이는 한참 망설였으나, 봉규만은 선참 나서서 두 번째 바꾸는 데도 선선히 동의하였다.
봉규가 어떠한 꿍꿍이세음을 품고서 이처럼 찬성한다손 치더라도 누구보다 일에 욕심이 많고 고집에 센 창섭이라 간청하는 편이 오래 두고 가장 낙후한 브리가다가 아니라면 종내 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허지만 계속해 뒤떨어져 내려오던 패가 치열한 조국 해방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5․1절을 맞이함에 지금까지의 불명예를 깨끗이 씻고 생산을 한번 버쩍 올려 보겠다는 데는 이편이 좀 불리하더라도 끝끝내 버틸 수는 없었다. 그래 그 곳 6급과 이쪽의 7급 짜리 한 사람을 또 바꾸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함에 창섭이의 속심은 진정 전체를 위하는데 있었으나, 봉규의 배짱은 틀림없이 딴 데 있었다. 급수 많은 사람이 한둘씩 줄어 들면 도급제의 분배를 급수에 따라 쪼개므로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이로우리라고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은연중 장사치의 심보가 또 떠올랐던 것이다.
허나 봉규의 바라던 것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열흘 동안에 새로 온 두 사람이 겨끔내기로 무단결근을 하여 출근율에 검은 점을 찍었다. 그리하여 사업 조직에 큰 혼란을 일으켰으며 생산에 적지 않은 지장을 가져왔다.
창섭이의 입맛은 소 쓸개나 씹는 듯 여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동무들은 둘에게 대하여 사뭇 원망도 하고 욕설까지 물 퍼붓듯 했지만 책임자만은 회의 때 한 번 몹시 비판을 준 외에 다시는 입을 뗀 적이 없다. 생산 기준량에서도 매일 몇 톤씩 떨어져 내려오던 차에 결근까지 있은 날은 더 말이 아니었다. 일곱 사람이 하던 것을 여섯 사람이나 다섯 사람이 하게 된 생산이 줄 것만은 정한 노릇이다. 더구나 먼저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이 서로 손이 잘 맞지 않아 지장이 많았다. 그리하여 그날그날의 책임량조차 채우지 못하고 허덕지덕할 지경이었다.
창섭이는 매일 같이 생산이 떨어지고 있는 데에 무척 초조하였다. 속에서 사뭇 불이 이는 것만 같아서 진정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참고 견디다 못 해 그는 마침내 당에다 자기의 의견을 내놓고 옳은 지시를 받았다.
당은 올바른 지시를 주었다. 창섭이는 자신이 노동자들의 앞장서서 전쟁 승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노동당원의 영예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 이튿날 작업 비판회 끝에 창섭이는 무거운 입을 떼였다.
이미 줄어든 책임량을 보충하며 더 나아가 승리의 기를 꼭 앗아오기 위해 한 개의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운반 거리가 좀 멀어진다면 전혀 쓰지 않던 사업 조직 방식이니, 두 패로 나눠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양쪽 막장을 캐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걱정이 되던 여성 둘이 저마다 나서서 혼자 힘으로 넉넉히 탄차를 밀 수 있다고 열렬히 토론하였다.
복례는 인민군대인 자기 남편이 지금 이 시각에도 전방 화신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적과 용감히 싸우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가 안 된다고 기세를 올렸고, 명숙이는 자기 아버지가 국기 훈장까지 받은 모범노동자이기 때문에 저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며, 또한 전선에서 영용히 싸우는 전사들만 못지않게 일하겠다고 새로운 결심을 다진 것이었다.
다른 동무들도 한결같이 찬동하였다.
그러나 박봉규만은 끝까지 어물어물하다가 마지못해 토론이랍시고 겨우 한마디 한 것이 미적지근하였고 끝끝내 우물쭈물하는 태도이었다.
그 이튿날부터 창섭이는 두 곳으로 달리다시피 뛰어다니며 동발을 꾸리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봉규와 병삼은 각각 두 곳의 선산으로 곡괭이를 들고 채탄을 하였다.
봉규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
운탄하는 동무들이 줄곧 자기 맡은 일을 도와주므로 삽질이나 슬슬 하던 것을 선산을 시켜 혼자서 탄을 연달아 캐야만 되니 무척 고되었다. 그래 점점 일에 짜증만 나서 전혀 열성을 내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전날에 가만히 앉아서 상점을 보던 시절을 눈앞에 그려보기도 하였다.
새 방식으로 일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날 하루의 책임량조차 채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창섭이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 사람씩이나 바꿈질을 한 자기의 처사가 잘못되지나 않았나 하고 처음에는 후회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 점에는 도리어 잘한 짓이며 떳떳한 노릇을 한 거라고 누구 앞에서나 서슴지 않고 말할 만치 자신이 차차 생겼다. 자기의 브리가다도 점차 성적을 복구하게 될 것이며 다른 브리가다에서도 전에 비해 현저히 생산을 높인다면 전체를 위하여 여간 보람 있는 일을 한 게 아니라고 굳게 믿어지기 때문이다.
창섭이는 덕근이와 봉규 사이에 섞여서 그들과 함께 갱도 바닥을 터벅터벅 걸었다.
"봉규 동무! 피크를 쓰니까 힘이 훨씬 덜 들지 않던가?"
창섭이는 약간 고개를 뒤로 들이키며 다정스런 말씨로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난 몰라, 어느 게 힘이 덜 들구 더 드는지를."
봉규는 아주 퉁명스럽게 입안에서 내뱉듯이 쏘아 부친다.
"허허, 난 모르겠다? 그럼 누가 아누? 대관절 뭣이 못마땅해 그러는거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자기 혼자만 속에다 넣구 꿍꿍대니 남이야 알 수 있어. 시연스리 말이나 좀 해보게."
봉규는 또 아무 대꾸가 없다. 다시 잠잠한 채 걷기들만 하였다.
한참만에 창섭이는 추근추근하게도 또 입을 떼였다.
"봉규 동무! 그러지 말구 무슨 불평이 있으면 작업 비판회 때 죄다 툭 털어놓게."
"난 불평이구 뭐구 없어!"
"그럼, 웨 그러는 거야? 남들은 지금 5․1절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 어떡하면 다른 달보다 더 많이 생산을 낼가하고 저마다 1분 1초를 다퉈 가며 서로 경쟁을 허고 우리 브리가다만 허드라두 승리의 깃발을 아주 차지하려고 눈에서 불이 날만치 날뛰는 판인데, 동무는 암만해도 일부러 태공하는 거 같으니 우리 브리가다를 아주 망쳐 먹자는 심본가?"
좀 체로 성을 잘 안 내는 창섭이지만 너무 참고 견디다 못해 볼멘소리를 하였다.
"흥, 기멕혀! 날더러 망쳐 먹는다구!"
봉규는 코웃음을 쳤다. 그가 하는 말에 날래 눈치를 챈 창섭이는
"그만 허면 다 알았네. 사람 바꾼 게 불만이란 말이지? 두 패로 나눈 것 허구."
"맞았어 맞어! 호통을 해 바꿔 놓고 일이 노끈처럼 꽤들어 가니까 두 패로 나눈다? 웨 열 패로 나누지 않구!"
"그럼, 동무는 웨 반대허지 않구 좋다구만 했나? 그랬다구 해서 내가 아주 책임을 안 진다는 건 안야. 허나, 우리 직장의 전체 생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잘한 노릇이라구 생각하니까, 여기 대해 정 내게 불만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시비를 가려보세."
"시비 가릴 것 없이 두나 다른 데로 보내 줘, 서로 속 시원허게."
창섭이는 벌컥 화를 내며
"뭣이 어쩌구 어째? 날 다른 데로 보내 달라고? 딴 브리가다에 가서도 그 따위 행세를 허게. 그런 돼먹지 않은 배짱을 부려 누구의 망신을 더 시키자구."
봉규는 밉살스럽게 축 늘어진 태도로
"웨 자네 망신을 더 시켜. 내 혼자 욕먹으면 욕먹었지."
"이 딱헌 위인아. 좀 깊이 생각해 보라우. 우리 브리가다에서 1년 동안이나 함께 일한 사람이 칭찬을 받지 못할 망정 노상 깨우기만 헌다면 자네 망신이 내 망신이 아니겠나."
봉규는 이 말에 약간 찔림이 있었던지 맞대들던 기세가 좀 수그러지며 한풀이 꺾였다.
창섭이도 말을 더 계속하지 않았다.
탄이 묻어 시꺼멓게 된 작업복을 입은 세 사람이 얼마 사이 두지 않고 갱도 밖으로 천천히 걸어들 나왔다.
구름 한 점 없이 훨쩍 트인 쪽빛 하늘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햇볕이 쌩쌩 내리쪼여 눈이 부시다. 탄가루가 땀에 반죽되어 끈적끈적한 얼굴에도, 강기슭을 스치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홱 끼친다. 무더운 속에서 머리가 휭 하던 게 새 정신이 버쩍 들만치 상쾌하였다.
갱도로 들어가는 어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민주 선전실 안으로부터 낮 방송의 음악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다.
휴게실 안에는 점심 식사가 한참 벌어졌다. 먼저 식사를 끝낸 각 브리가다의 남녀 노동자들이 한둘씩 선전실 안으로 모여든다.
복례와 명숙이도 선전실 문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생산 도표가 붙여 있는 쪽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복례와 명숙이는 무척 속이 상했다. 생산 도표를 암만 들여다보아도 자기네 브리가다가 제일 뒤떨어진, 차마 볼 수 없는 꼬락서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