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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에서 수도 이름을 따온 외국 국가는 어디?
조회수 5.1만 2023. 4. 13. 10:01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이 용어는 그리스 디아와 스포라를 어원으로 하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를 만든 후 세력 확장을 위해 자국민을 이주시킨 역사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시대에는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처럼 모국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채 유랑하거나 타국에 거주하는 민족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죠.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유대인이나 쿠르드인 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에도 디아스포라가 있습니다.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반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그리고 그 후손들입니다.
주로 러시아나 중국, 미국, 일본 등으로 떠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후예들은 부모 및 조부모가 조국에서 겪은 기근, 압제, 일제의 식민 통치와 같은 모국의 배출요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해외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 더 좋은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한국을 떠난 재외동포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며, 우리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포용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조국 때문에 평생 가슴속에 한을 품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 인천공항에서 8시간 떨어진 중앙아시아에는 지구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는 거인국 '카자흐스탄'이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서유럽 전체 면적에 버금가는 광활한 영토를 가졌는데 이곳에 자신들 스스로를 한국인의 후예를 자처하며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단군의 후손임을 증명하려는 이들의 정체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를 '알마티'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지만, 공식적인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스타나'입니다. 1997년 수도를 이전하면서 아스타나로 명명했다가 2019년 초대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따 누르술탄으로 변경했다가 다시 아스타나로 되돌렸습니다.
공식적인 수도는 아스타나이지만 가장 번성한 도시는 아무래도 이전의 수도인 알마티인데요. 그런데 알마티에서 중국과의 국경을 향해 쭉 달리면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산으로 꼽히는 칸 텡그리라는 산을 만날 수 있는데 중국, 키르기스스탄까지 세 나라 국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산은 해발 7,010m로 가장 높다 보니 오래전부터 하늘과 닿아있다는 의미로 하늘산, 즉 천산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칸 텡그리를 잘 들어보면 단군과 닮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되는 여러 유물들과 신화를 배경으로 카자흐스탄을 단군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재 수도인 아스타나라는 이름 역시 단군이 세운 최초의 수도 '아사달'이 어원이고, 2016년 카자흐스탄 정부가 단군을 기념하는 동전을 별도로 제작하기도 하는 등 들으면 혹할만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카자흐스탄과 비행기로도 8시간이 떨어져 있는데 왜 이토록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인지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5세기 초 '킵차크 칸국'의 후예 '아불 하이르 칸'은 '우즈벡 울루스'라는 민족을 이끌고 유목민족을 통합시켰는데 결국 극강이 기마병으로 무장한 몽골의 끊임없는 침입에 완패당하고 맙니다. 이때 아불 하이르의 수하였던 '케레이'와 '자니벡두'는 서쪽의 광활한 초원으로 이동해 장막을 펼쳤는데 이들은 스스로에게 '떨어져 나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카자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6세기 '카슴 칸'이라는 우두머리는 다른 유목민과 만나면 항상 '독수리를 이용해 사냥하는 카자흐 유목민이 초원에서 가장 자유로운 민족'이라고 소개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즈벡 울루스에서 떨어져 나와 현재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이동한 유목민들이 바로 카자흐스탄의 조상인 겁니다.
이후 이들은 세력을 급격히 불리면서 국가를 세웠는데 1920년 소련이 이 지역을 점령해 '소비에트 연방국'이 되었다가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카자흐스탄으로 독립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카자흐스탄에는 두 부류의 한국인 후예가 살고 있습니다.
한 부류씩 살펴볼까요? 우선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입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30개가량의 민족이 사는데 그중 8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고려인입니다. 이들이 카자흐스탄에 뿌리내리게 된 역사를 거슬러 가면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일제의 폭압을 견디지 못한 조선인 중 일부는 러시아의 연해주로 대거 탈출했습니다. 당시 연해주로 건너간 조선인의 수는 2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원래 러시아 모든 땅이 그러하듯 연해주 역시 살을 에는 추위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만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밭을 일구고 돌밭을 개간해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밭을 개간해 정착에 성공한 조선인들의 삶이 파괴된 것은 스탈린의 불안감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언젠가 일본과 전쟁을 치러 손에 넣어야 하는데 표면상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는 조선인들은 그의 눈에 일본인이었죠. 즉 언젠가 일본과 협력해 자신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겁니다.
결국 1937년 10월 22일 스탈린은 연해주에 거주 중이던 조선인을 전부 열차에 밀어 넣고는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로 이주시켜 버립니다. 말이 좋아 이주인 것이지 사실상 버려진 겁니다. 그때 카자흐스탄 등지에 버려지듯 이주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바로 고려인입니다.
이렇게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은 꺾이지 않고 기어코 삶을 감내하며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대표적으로 벼농사가 그렇습니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연해주로 탈출했던 조선인들은 그 죽음의 땅에서도 기어코 벼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했는데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에서도 벼농사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는데요.
강제 이주 당시 연해주에는 하늘의 도움으로 풍년이 들었는데 일부 조선인들은 연해주에서 볍씨를 몇 개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볍씨를 카자흐스탄 땅에 심었죠. 물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성과가 거의 없었지만 점차 카자흐스탄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도록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덕분에 한때 크즐오르다 지역은 소련 전역에서 가장 많은 쌀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군림하기도 했죠. 현재도 크즐오르다 지역은 광활한 카자흐스탄에서 거의 유일한 쌀 재배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듯 카자흐스탄과 그 인접 국가로 강제로 이주당한 조선인들은중앙아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약 4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려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가장 노력한 것은 역시나 교육입니다. 노동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에 자신들의 삶을 바쳤죠. 한국인의 교육열이야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열성적이지만 강제로 이주당한 상황에서도 이 DNA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 혹독한 노동에 노출되어도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대학에 진학시켰는데 그 결과 고려인이 소련 내 최고 학력을 갖춘 집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 인민으로 공민권을 부여받은 그들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군사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허용되었는데 이때부터 고려인 젊은이들이 고등 교육 기관으로 몰려들었죠.
1989년 강제 이주 반세기가 지난 후 조사한 결과 고려인 67명이 노동 영웅 칭호를, 1,156명이 산업, 농업, 건축, 무역, 교육의 명예 노동자 칭호를, 44명이 국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현재 남아 있는 고려인의 55%가 교사, 의사, 기술자 등 전문직으로 진출했는데 주목할 점은 과거에는 농민들이 대다수였으나 50년이 지나 그들은 전문직 종사자로 도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층 농업 민족이 교육을 통해 직업전환에 성공한 후 도시 거주인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이며, 고려인 후손들은 대기업, 국회의원,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 최상위층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만약 당시 강제로 이주당한 부모들의 뼈를 깎는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여기 또 다른 부류의 한국인 후예가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이달순 수원대 명예교수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알마티에 위치한 키맵대학교를 방문했는데 한 학생이 그를 데리고 칸 탱그리 산을 찾게 되는데요. 잠시 언급했듯 칸 탱그리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천산인데 그 학생은 '단군이 이곳에 내려와 카자흐스탄을 건국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라고 알려줬죠.
이 교수는 그 학생이 언급한 단군이 우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동일한 인물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카자흐스탄 박물관을 찾아 관장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박물관장은 몇 해 전 김지하 시인을 만나 당신들과 우리는 형제지간이라는 말을 남겼던 인물이기도 한데 그 발언의 진위를 확인차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는 소식에 부관장과 연구소장을 만나게 되죠. 그들은 '몇 해 전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유적에서 갑옷을 입고 칼을 찬 사람들의 그림과 신라라는 국명이 새겨진 담도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 수도 졸본이라는 말은 우리 역사에서 금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옛날부터 카자흐스탄 사람에게는 익숙한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며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한국 사람은 얼굴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고 생활 습관도 비슷하다고 했죠.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카자흐스탄에는 어감과 유래가 비슷한 단어가 상당히 많습니다. 보통 인간은 타국으로 이주하더라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지명을 사용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어느 국가든 같은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마을을 형성해 살기 마련인데 그러한 마을에는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이태리타운과 같은 이름이 붙습니다. 일례로 뉴욕은 원래 뉴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 네덜란드인들이 맨하탄 섬에 무역 거점을 세우기 위해 원주민에게 24달러를 주고 매입해 뉴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다 영국이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이 섬을 차지하게 되는데 당시 이 땅을 하사 받은 요크 공의 작위 명을 따 뉴욕이 되었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스타나입니다. 이를 두고 동국대학교 변정용 교수는 아스타나라는 지명은 단군이 수도로 삼았던 아사달에서 따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사 또는 아스는 아침이라는 뜻이고 스탄 또는 스타나는 땅을 의미한다고 하죠.
다시 말해 아사달은 수도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침을 맞이하는 땅 또는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땅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사달에 살던 우리 조상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간 후 그 땅에 아스타나라는 지명을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아전인수식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땅에서 건너간 조상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면 조금 과한 해석일까요?
아주 먼 옛날 유목민이었던 카자흐스탄에서 단군의 후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다만 현재 한국인의 피를 가진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것은 정확한 증거입니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로 불굴의 의지로 생존한 고려인들을 우리와 다른 민족이라고 배척하지 않고 오늘만큼은 그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펌글/끝]
제육볶음, 댓글모아보기1시간전
친일만큼 무서운게 환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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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불꽃, 댓글모아보기2시간전
고려해 볼 문제입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만리타향에서 온갖 고생을하며 독립투쟁과 자손을 키워낸 우리의 형제들을 박대한 것은 친일하며 호의호식하던 매국노들이었읍니다! 인구절벽을 이민정책으로 해결하자는 정체성도 미래지향적 철학도 없는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기가찹니다! 일본인들의 인성이 천박하고 약탈을 좋아하는 것도 대륙에서 죄짓거나 반역에 실패한자들이 도망가서 세운나라이기 때문이지요! 우수한 우리민족의 유전자를 잘 발전시켜서 성현군자를 키워낼 수 있어야 희망이 있읍니다! 볍씨의 종자가 소중했듯이 인간의 종자는 더욱 소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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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나무, 댓글모아보기6시간전
노르망디 도 놀뫼(논산의 순우리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주민과 논산 주민은 형제입니다. 뭐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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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바위, 댓글모아보기10시간전
국뽕 이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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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jmirage, 댓글모아보기13시간전
남의 나라 역사 지 멋대로 왜곡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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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Rationalist, 댓글모아보기14시간전
단군신앙은 중앙아시아에 널리퍼졌던 텡그리교의 일종일 뿐. '아스타나'는 고려인 강제 이주 전부터 카자흐어로 '수도'라는 뜻... 환빠 수준의 기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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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랄랄라, 댓글모아보기15시간전
내가 알기로 카자흐스탄 동전에 단군초상이 있는걸루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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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크리슈티나무르, 댓글모아보기23시간전
고국은 단군을 아애 교과서에서 못 빼서 난리인데, 오히려 외국에 우리 역사가 남아 있음. 단군은 신화고 아담은 역사고.. 서을대 교수가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참 한심한 민족이 되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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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매미가맴맴, 댓글모아보기2023. 4. 13. 18:50
하아.... 이거 컨텐츠 신고해야겠네 환들이 아직도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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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123, 댓글모아보기2023. 4. 13. 13:12
일본어 아침 아사(朝,あさ)의 어원도 고조선의 아침, 아사가 어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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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하이, 댓글모아보기2023. 4. 13. 11:34
좀도와줘라 왜놈에 갔다바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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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백순호, 댓글모아보기2023. 4. 13. 11:05
환국 - 배달 -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줄기로 보면 천산부근 아스타나에 살았던 단군의 후손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아사달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등 따스고, 배부르니, 친미든, 친일이든 다 좋다. 이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