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어치 행복
현관과 복도에는 시화를 비롯 여러 교육활동 실적물들이 아기자기 놓여 있었다. 어제 일과 후 축제 준비위원들이 각자 분담한 일들을 잘 마무리 지어 놓았다. 오전은 교내 특별실과 강당에서 장터를 비롯한 기획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오후가 더 기대되는 시간이다. 학교와 인접한 늘 푸른 전당에서 서너 시간 공연이 펼쳐진다. 축제일이면 나는 할 일이 없어 우두커니가 된다.
앞 단락은 동짓날 아침 출근길 단상을 적은 마지막 부분이다. 제목을 ‘동지 아침’이라 붙였다. 밤이 길어 학교에 닿으니 7시 20분이었는데 그제야 날이 밝아왔다. 축제일이라 평소 수업이 진행되는 날보다 더 서둘러 온 학생들이 더러 있어 절반에 이르는 학급에서는 실내등을 켜 놓아 교실이 훤했다. 간밤에도 늦은 시각까지 준비를 하였다고 들었는데 학생들의 축제 열기가 대단하였다.
나는 새벽에 적어둔 원고를 검토한 후 동지를 즈음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아침 출근길 걸어오면서 올해는 애동지라 민간에서는 팥죽 대신 팥떡을 만들어 먹는다는 속설을 떠올렸다. “정유년 윤오월로 음력이 뒤쳐져서 / 동짓달 상순에야 동지가 들었기에 / 팥죽을 대신한 팥떡 한 해 액을 막으렴” ‘애동지 팥떡’ 전문. 올해는 지난여름 윤오월이 들어 음력이 예년보다 뒤쳐져 따른다.
자작 시조를 복사해 메신저로 새벽에 남긴 ‘동지 아침’이라는 글을 동료들에게 날렸다. 그리고 몇 지인들에게 이미지로 끌어온 팥떡과 함께 ‘애동지 팥떡’ 시조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몇 친구들은 근황 사진과 함께 안부 문자가 회신으로 돌아왔다. 축제 담당 부서는 연일 고생인데 축제 당일에도 분주히 움직였다. 야무지고 성실한 동아리장이나 반장들도 여러 준비로 바빴다.
9시가 지나자 담당부서는 중앙 현관에서 오색 리본을 펼쳐서 커팅식을 가졌다. 학교 관리자와 학생회 대표들이 하얀 장갑에 가위로 리본을 잘랐다. 이어 복도와 특별실에 전시된 교육 활동 실적물을 둘러봤다. 나는 미술실에 들려 교지 표지로 삼을 만한 작품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이 가득했다. 내가 눈이 높음도 아닐 텐데 표지로 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어 교무실에서 선배 문인이 보내준 시집을 읽었다. 그 즈음 한 학생이 어묵과 호빵을 챙겨왔다. 아마 교무부장은 부담임으로 위촉된 학급 반장에게 선금을 지불하고 주문 배달된 음식이었다. 같이 드십사는 청이 있어 곁으로 가 어묵을 한 개 집어 먹었다. 그러면서 교무부장이 농으로 건네는 말인즉 담담 부서에서 들으면 욕을 얻어먹겠지만 축제를 한 사흘정도 했으면 좋게다 했다.
나는 별달리 할 일이 없어 교무실 밖으로 나가 뒤뜰로 내려섰다. 그 때 마침 장애인고용촉진법에 의해 우리 학교가 평생직장인 젊은이를 만났다. 동편 울타리 밑에서 낙엽을 긁어모아 손수레에 실어 산언덕 아래 쌓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 오늘은 축제일이니 일은 웬만큼 하고 나랑 학생들이 펼친 장터로 가보자고 했다. 강당에 가서 학생들이 파는 어묵으로 새참을 들자고 했다.
강당 입구에서 어느 학급 반장이면서 내가 지도하는 교지편집부 동아리장을 만났다. 아직 먹거리 장터가 운영된다고 했다. 나는 만원을 건네면서 마련된 음식은 교문 근처 야외테이블로 가져와 주십사 했다. 젊은 친구와 함께 야외테이블에 앉았으니 이내 따뜻한 국물이 채워진 어묵과 김이 모락모락 피는 호빵을 가져왔다. 가까이 배움터지킴이 박스에 지킴이 선생님이 있어 합류했다.
학교에 매점이 있긴 하지만 평소 근무 중 교직원들이 그곳의 빵이나 음료는 들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축제일이라 학생들이 펼친 장터 음식은 사기 진작을 위해 팔아주어도 좋을 듯했다. 어묵과 호빵이 많아 지킴이선생님과 먹고도 남았다. 남은 것은 젊은 친구에게 학교에서 수고하는 청소아주머니와 나누어 드십사고 했다. 젊은 친구는 어묵과 호빵을 싸들고 자리를 먼저 일어났다. 1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