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고민
무기(武器)가 제때 사용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개발(開發)과 보유(保有)에 많은 비용(費用)이 들어가므로 성능(性能)이 현격(懸隔)하게 뒤질 정도가 아니라면 내구연한(耐久年限, Persisting period) 까지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이다 보니 정작 실전(實戰)에 사용하려 할 때 구식(舊式)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면 일단 보유 중인 무기로 싸우게 되는데, 제2차 대전처럼 전쟁이 장기화(長期化)되면 급속(急速)히 새로운 신무기(新武器)로 대체(代替)가 이루어집니다.
↑제2차대전 초기와 말기의 독일 전차, 모습만으로 성능의 차이를 알 수 있을 만큼 변화가 빨랐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만들어진 무기라 해서 살상력(殺傷力)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필요하다면 신무기가 등장한 이후에도 계속 쓰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무기는 질(質)뿐만 아니라 양(量)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에 뒤진 무기들이 승리(勝利)의 주역(主役)이 되기도 하는데, 종종 예상(豫想)을 뛰어넘는 전과(戰果)를 올리기도 합니다.
영국의 소드피시(Swordfish) 뇌격기(雷擊機)가 그러한 사례(事例)에 해당(解黨)되는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무기입니다.
↑760kg 어뢰를 장착하고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시 뇌격기
해전사(海戰史)를 살펴보면 탄약고(彈藥庫) 등에 직격탄(直擊彈)을 맞고 굉침(轟沈)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적함(敵艦)을 침몰(沈沒)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갑판 상부 타격(甲板上府打擊)보다 배의 흘수선(吃水線) 아래를 격파(擊破)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무장(武裝)을 갖춘 거함(巨艦)이라도 선체(船體) 밑에 구멍이 나면 쉽게 침몰합니다.
그러나 함포(艦砲)로 흘수선 아래를 정확히 공격(攻擊)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격에 격침 당한 순양전함 후드,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믑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런 목적(目的)에 가장 최적화(最適化) 된 무기가 등장(登場)했는데, 바로 어뢰(魚雷, torpedo)입니다.
어뢰는 소형 함정(小型艦艇)이나 잠수함(潛水艦)이 주력함(主力艦)에 맞설 수 있는 대표적 수단(手段)입니다.
하지만 소형 함정은 거친 대양(大洋)에서 작전(作戰)하기 어렵고 잠수함은 속도(速度)가 느려 목표까지 신속(迅速)히 접근(接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비행기를 이용하여 어뢰를 투사(投射)하는 방법(方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탄생(誕生)한 군용기가 바로 뇌격기(雷擊機)입니다.
↑상당한 성공작이었던 일본의 B5N 뇌격기
현대(現代)에 들어와 대함(對艦)미사일이 일반화(一般化)되면서 뇌격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제2차 대전 당시만 해도 당당한 바다의 주역 중 하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뇌격기는 해군 열강(海軍列强)들이 사용했습니다.
지상 기지(地上基地)에서 연안 해역 제해(沿岸海域制海)를 목적(目的)으로 운용(運用)할 수도 있지만 대양(大洋)에서 사용하려면 항공모함(航空母艦)에 탑재(搭載)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전사(戰史)에 인상적(印象的)인 활약(活躍)을 펼친 뇌격기는 대부분 함재기 형태(艦載機形態)입니다.
↑온갖 악평의 대상이었던 미국의 TBD 뇌격기, TBD 뇌격기는 좋지 않은 성능으로 말미암아 중요했던 해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당했지만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낸 숨은 주인공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통(傳統)의 영국 해군은 1913년에 81형(Short Type 81) 수상기(水上機, Seaplane)를 이용하여 어뢰 공중 투하 실험(魚雷空中投下實驗)을 사상(史上) 처음으로 실시(實施)했으며,
제1차대전 당시에는 184형(Short Type 184) 수상기에서 발사한 어뢰로 오스만 제국(Osman Empire)의 선박(船舶)을 최초(最初)로 격침(擊沈)시킨 뇌격기 분야의 선도국(先導國)이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상당한 항공모함 전력을 구축(構築)한 미국, 일본에 비해 서서히 전력(戰力)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어뢰로 격침 전과를 올린 184형 수상기
미국이나 일본도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義)를 신봉(信奉)했지만 나름대로 항공모함 전력 구축에 열심이었던 반면, 영국은 최초로 항공모함을 만들고 실전에서 사용한 나라였으면서도 발전(發展)이 정체(停滯)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항공모함뿐 아니라 영국군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 문제였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영국의 국력(國力)이 서서히 쇠퇴(衰退)하기 시작하자 이전 같은 규모(規模)의 군비(軍備)를 계속 유지(維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918년부터 사용된 페어리 Mk. III 뇌격기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쉬. 성능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영국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많은 전과를 올렸다.
< 출처: Public Domain >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영국의 자존심(自尊心)이자 최후(最後)의 보루(堡壘)라 할 수 있는 해군 전력은 현 상태를 유지(維持)하여야 했습니다.
제1차대전 직전(直前)까지 계속되었던 대규모 건함(大規模建艦) 같은 신규 투자(新規投資)는 어렵더라도 노후 무기(老後武器)는 순차적(順次的)으로 대체(代替)해야 했습니다.
그중 1910년대에 개발된 Mk. III 뇌격기는 시급(時急)히 바꿔야 할 대상(代償)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예산(豫算)이 한정(限定)되다 보니 개발(開發)에 투자(投資)할 비용(費用) 등은 최대한 절감(最大限節減)하여야 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