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궂어 하나마나한 산행 – 덕유산
1. 무주덕유산리조트 웰컴센터 앞 주차장에서 바라본 덕유산
남쪽 명산의 정상 가운데 덕유산이 가장 기이하니, 구천뢰(九千磊 구천동(九千洞)) 위에 칠봉(七峯)이 있고, 칠봉
위에 향적봉(香積峯)이 있다. 덕유산은 감음(感陰 안음(安陰)의 옛 이름)ㆍ고택(高澤 장수(長水)의 옛 이름)ㆍ경양
(景陽 금산(錦山)의 옛 이름)의 여러 군에 걸쳐 있는데, 곧장 남쪽으로 가면 천령(天嶺 함양(咸陽)의 옛 이름)과
운봉(雲峯)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정상이 나란히 우뚝하며, 이어진 산봉우리에 연하가 300리나 서려 있다.
봉우리 위에 못이 있는데 못가에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자라는 나무는 특이한 향기가 풍기는 사철나무가 많
은데, 줄기는 붉고 잎은 삼나무와 같으며 높이는 몇 길이 된다. 못의 모랫가엔 물이 맑으며, 깊은 숲에서는 특이한
향기가 난다.
산을 오르는 데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감음의 혼천(渾川)을 따라 구천뢰 60리를 오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
는 경양의 자갈길을 따라 사자령(獅子嶺)에 올라서 이르는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내일 (역) | 2006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덕유산기(德裕山記)」
▶ 산행일시 : 2024년 12월 21일(토), 흐리고 눈발 날림
▶ 산행코스 : 무주덕유산리조트 주차장,곤도라 탑승,설천봉,향적봉,향적봉대피소,(그대로 뒤돌아 옴)
▶ 산행시간 : 3시간 5분(10 : 45 ~ 13 : 50)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30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4 – 양재역 1번 출구 200m 전방 스타벅스 앞
08 : 32 - 죽암휴게소( ~ 08 : 50)
10 : 45 – 무주덕유산리조트 웰컴센터 앞 주차장, 산행시작
11 : 22 – 곤도라 탑승
11 : 42 – 설천봉(雪川峰, 1,521m)
12 : 05 – 향적봉(香積峰, 1,614m)
12 : 12 – 향적봉대피소, 점심( ~ 12 : 35)
13 : 06 – 설천봉(雪川峰, 1,521m), 곤도라 탑승
13 : 50 - 무주덕유산리조트 웰컴센터 앞 주차장, 산행종료, 휴식( ~ 16 : 03)
17 : 20 – 신탄진휴게소( ~ 17 : 30)
18 : 48 – 양재역
2. 덕유산릉, 눈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였다
3. 무주덕유산리조트 웰컴센터 앞 주차장에서 바라본 덕유산
주초만 해도 멀쩡할 거라던 덕유산 날씨가 주말이 되자 급변하였다. 서울에는 금요일 저녁부터 눈이 내렸다. 전국에
눈이 내린다고 한다. 이러다 덕유산은 통제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럴 리는 없다고 보았
다. 이튿날 덕유산 가는 대형버스는 눈발 날리는 양재역을 아침 일찍 회원들 가득 태우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불안
감은 적중했다. 선이산행대장님은 죽암휴게소에서 비로소 덕유산 사정을 회원들에게 알렸다.
대설주의보 발효에 따라 06시 34분에 설천봉~향적봉 구간을 제외한 전 탐방로 통제되었다고(곤돌라를 이용한 설천
봉~향적봉~설천봉 구간만 가능). 나는 고전코스인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동엽령을 올라 백암봉, 중봉, 향적봉을 넘
어 백련사, 구천동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덕유산을 가려는 다른 산악회는 대둔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했는데, 우리는
일곱 분이 미리 곤도라를 예약하여 달리 변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어제만 해도 설천봉을 오르는 곤도라는 매진이
었으나 탐방로 통제로 취소가 잇달아서 구매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무주덕유산리조트 주차장을 6.4km 남겨두고 언덕배기 눈길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버스
기사님은 한숨 푹푹 내쉬며 이러다 여기서 날 새겠다고 푸념하고, 선이산행대장님은 버스에 내려 대체 어디까지 차
량들이 막히는지 걸어가 보았다. 이때는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을 오르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교통경찰
차가 오고, 제설차가 오고, 길이 뚫렸다. 주차장까지 6.4km를 가는 데 50분이 넘게 걸렸다.
웰컴센터 앞 주차장에서 곤도라 매표소와 탑승장까지 약 0.5km이다. 등산객들과 스키 타려는 사람들, 승용차들이
한데 뒤섞여 오른다. 곤도라 매표소는 물론 그 뒤쪽 탑승장은 눈발이 날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어둑한데도 길게 줄섰
다. 승강장 앞 ‘스타트랙 곤도라 제원표가’ 눈에 띈다.
제작사 : POMA(프랑스)
선로길이 : 2,659km
표고차 : 792m
운전속도 : 5m/sec
수송능력 : 1,100P/H
형식 : 8인승 자동식
POMA(프랑스) 홈페이지에는 이런 곤도라를 현재 90개국, 8,000여 곳에 설치하였으며, 매 시간 65,000명이 이용하
고 있다 한다.
설천봉을 오르는 곤도라 창은 성에가 워낙 짙어 밖을 내다볼 수 없고, 바람소리만 차갑게 들린다. 안개 속을 20분간
오른다. 승강장을 나와 그 옆 설천봉레스토랑 문간에서 아이젠을 맨다. 설천봉 광장에 나서니 매서운 칼바람과 눈발
이 맞이한다. 안개는 자욱하여 지척도 분간하기 어렵다. 기온은 영하 7.8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밑돈다. 향적
봉 0.6km. 고개 수그리고 데크계단을 오른다.
등로는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들과 내리는 사람들이 각각 줄서서 오간다. 상고대 눈꽃이 특히 가경인 데는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등로 바로 옆 전망대에 들러도 만천만지한 안개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등로 주변의 눈꽃이 유일한 볼거리다. 향적봉에는 정상 표지석(두 곳에 마련했다)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잠시 서성이다 대피소로 내려간다. 대피소는 만원이다. 어렵사리 구석에 자리 잡아 점심밥을
먹는다. 입맛이 쓰다.
중봉을 몰래 갔다 올 수 있을까? 등로를 이중으로 막았다. 눈도 깊다. 아무도 가지 않았다. 백련사 쪽도 막았다. 백련
사 쪽은 이날 17시 43분에야 개방했다. 아쉽지만 뒤돌아선다. 설사 갈 수 있다 해도 안개가 이토록 자욱하여 무망한
노릇이라 선뜻 내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향적봉을 오르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어린아이들
도 완전무장하고 아장아장 올랐다. 설천봉 아래 광장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어느 해 겨울에 오른쪽 슬로프로 내려간 적이 있다. 그쪽을 기웃거렸다. 스키는 여기부터 타지 않고 저 아래 쪽에서
만 탄다. 어둑하다. 시계는 불과 1m 내외다. 휴대폰에 장착된 오룩스 맵을 보려면 맨손으로 터치해야 하는데 매서
운 칼바람에 금방 손이 얼어붙을 지경이라 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곤도라를 타고 내린다. 내 오늘 같은 이런
산행이 대체 있기나 했던가. 하나마나한 참 허망한 산행이다. 굳이 산행거리를 따지자면 2.6km이다.
4. 주차장에서 0.5km 대로 따라 오른 곤도라 승강장, 곤도라를 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5. 안개가 자욱하여 어둑했고, 가로등은 불을 밝혔다. 곤도라를 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6. 곤도라 내린 설천봉 광장. 벌거벗은 나무들이 세한도(歲寒圖)다.
7. 곤도라 내린 설천봉 광장.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8. 향적봉 가는 길. 설천봉에서 향적봉 가는 길은 거대한 행렬이었다. 요행이 빈틈을 발견했다.
9. 상고대 눈꽃도 무척 추웠다
11. 거대한 행렬은 이런 눈꽃을 보게 되면 나오면 일제히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 찍었다.
12. 설원에 핀 상고대 눈꽃
13. 향적봉. 인증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옛사람의 덕유산 산행기 한 편을 간단히 소개한다.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峯記)이다.
유정열(대전대학교 H-LAC, 강의전담교원)의 논문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峯
記) 연구- 산지적(山誌的) 성격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이 산에 ‘덕유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정확한 유래는 미상이다. 다만 현재 임진왜란 등과 관련된 유래가 몇 가지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1898년 간행된 무주군읍지인 적성지(赤城誌) 산천(山川) 조에서는 “李提督如松謂此山曰
: ‘德哉, 此山! 可活萬人.’ 因名之曰德裕”라는 유래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유래는 그 이전에 이미 ‘덕유산’이라
는 명칭이 존재했던 점을 고려하면 신빙성이 부족하다.
갈천은 1552년 8월 24일 ~ 29일 여정으로 올랐다.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峯記)의 첫 부분이다. 황봉
(黃峯)은 지금의 남덕유산이고, 불영봉(佛影峯)은 무룡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덕유산은 내 고향의 진산(鎭山)인데 우리 집도 그 밑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곳의 여러 사찰을 찾아가 공부했기
에 이 산속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산의 상봉(上峯)으로 불리는 것이 세 개가 있는데 황봉(黃峯) · 불영봉(佛影峯) ·
향적봉이다. 나는 젊었을 적에 영각사(靈覺寺)에 우거한 인연으로 황봉에 올랐고, 삼수암(三水菴)에 우거한 인연으
로 불영봉에 올랐다. 유독 향적봉만 여태껏 한 번도 오르질 못했으니 그 아래에 인연할 곳이 없었던 탓이다. 세 개의
봉우리 중에 향적봉이 최고 높고 경치가 빼어나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오르진 못했으나 마음속에서 잊은 적이 없
으니 세상일에 얽매인 것이 한스럽기만 했다. 두 봉우리를 오른 것도 필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의
승지도 인연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은 점점 흐르고 사람 일은 잘 풀리지 않는데 나이는 50을 넘어 이미
쇠약하고 늙음을 느끼고 있으니 평생의 한을 한 번 씻기를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갈천이 향적봉에서 바라본 일출 조망이다.
“뭇 봉우리가 펼쳐진 가운데 붉은 구름은 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모두 한 가지 색을 띠고 있는
데 수도산(修道山)이 제일 밝았다. 이윽고 보자 붉은빛이 화살 쏘듯 비추고 샛별이 희미해지면서 둥근 해가 점점
봉우리에서 솟아나왔으니 참으로 빼어난 광경이었다.”
갈천은 대단한 산악인이기도 했다. 그의 산지적 견해는 뛰어나다.
“이 산의 근원은 조령(鳥嶺)에서 말미암아 속리산(俗離山), 직지산(直指山), 대덕산(大德山)을 거쳐 초재[草岾:
초점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솟아 거창(居昌)의 삼봉(三峯: 삼봉산)이 됩니다. 이것이 이 산의 첫 번째 봉우리입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뻗어 대봉(臺峯)이 되고 또 서쪽으로 뻗어 지봉(池峯: 못봉)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백암봉(白巖峯)
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불영봉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황봉이 됩니다. 그리고 백암봉에서 북쪽으로 돌면 이 봉우리가
됩니다. 이 봉우리[향적봉]가 가장 높고 황봉이 그 다음이며 불영봉이 또 그 다음입니다. 이것이 이 산의 대략입니다.”
14.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향적봉 정상 표지석을 두 군데에 마련하였다.
15. 설원에 핀 눈꽃
17. 바위틈에 핀 눈꽃
18.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나목, 이 나목과 너도나도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섰다.
19. 나무숲도 화원이다
20. 다시 설천봉 광장. 안개는 여전히 자욱했다
22. 오후 들어 곤도라를 타려는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23. 스키나 스노우보드 타려는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24. 주차장 주변
첫댓글 지난 주말 국립공원 다수가 통제되어 산악회들이 혼란스러윘는데 덕유산도 역시였군요 저는 설악 양폭에서 한참 퍼 자다 왔습니다 ㅎㅎ
그랬군요.
다른 데도 마찬가지였을 테여서 좀 낫습니다.ㅋㅋ
이렇게 눈이 내리는 계절의 덕유산은 같이 야생화 탐사 다니던 친구를 생각나게 합니다. 어느해 연초 눈이 그득히 쌓인 향적봉에서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난 그 친구는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요.ㅋ
겨울산 안산하시길 빕니다.
안타까운 일이 있었군요.
덕유산의 멋진 설경을 구경하려던 꿈이 무참히 박살난 하루였습니다.
공치는 날도 있는게지요
왕복 하시느라 멀리까지 고생하셨읍니다
향적봉에서 단 한 장의 조망이라도 트였으면 덜 서운했겠습니다.ㅠㅠ
조만간에 멋진 조망을 보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 하길 기대합니다.
장마다 꼴뚜기가 있는 것은 아니니.ㅋㅋ
안개속 곤들라 탑승도 운치있을 것 같아요. 하얀 안개 하얀 입김.
20분간 완전 밀폐된 창고에 갇힌 기분입니다.
아무 운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