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흰색 드레스의 의미
동요속의 Anne라는 인물은 Bretagne의 마지막 영주이자 여자였다고 전해진다.
결혼식때 흰 색 드레스의 유래를 만든 인물로도 추정되며
대리인을 내세워 두 번의 정략 결혼을 하게되는 비운의 여인이면서도
전래동요에 남을만큼 사랑받은 영주이기도 하다.
노래를 들어보면 「나막신을 신고」라는 가사가 되풀이된다.
중세 유럽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가사이다.
그런데 흰 색 드레스와 결혼, 동요속 안느는 어떤 관계일까.
결혼식이란 여자에게 있어 인생 최고의 기쁜 날이자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 하겠지만
흰 색 드레스에 관한 구전에 의하면 흰색 드레스의 원조격 인물로 알려진 Anne의 일생은 불행했다 전해진다.
프랑소아2세의 딸로 태어나 1488년 12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동시에 후계자로서 브레따뉴 공국의 공작의 작위를 이어받게 된 어린 소녀 안느.
이를 두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맥스밀리언 대공은
브레따뉴 공국과 합쳐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자 대리인을 시켜 안느에게 수작을 걸어오기 시작 한다.
그런데 브르따뉴 공국의 남쪽에는 프랑스왕국이 버티고 있었는데 맥스밀리언 대공의 수작을 가만히 지켜보던 프랑스왕국의 왕 샤를8세가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라. 안되겠다 싶었는지 샤를 8세가 군대를 일으켜 브레따뉴 공국을 향해 침공을 개시한다. 그리고 안느가 피난한 르네라는 지역을 포위하고 있던 샤를8세는 맥스밀리언 대공의 중재 제의를 받아들인다.
사실 맥스밀리언 대공과 샤를 8세는 장인과 사위였던 것,
결국 장인과 사위의 우스운 대결구도가 형성되자 맥스밀리언 대공은 한 발 물러나 브레따뉴를 사위인 샤를8세에게 양보한다.
맥스밀리언 대공의 딸 마가렛과 이미 결혼한 샤를 8세는 장인의 중제안을 받아들이고 브레따뉴 침공을 멈춘다.
샤를8세는 안느와 결혼을 조건으로 침공을 멈추고 두 왕국의 합병을 선언하지만 당시 두 사람의 결혼은 카톨릭 결혼 규정에 어긋났던지라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로마 교황청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리하여 1491년 15세의 나이로 샤를8세와 결혼을 하게된 안느, 어린 나이에 행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안느의 왕국 브레따뉴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결혼 7년 후인 1498년 샤를8세가 덜컥 죽고만다.
스물 두 살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안느, 추모기간중에도 왕국의 안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지만 주변국의 대외 정세가 불안정 했던지라 여자의 몸으로는 무리였다 판단해서였는지 이듬해 1499년 샤를8세의 후계자인 루이12세와 재혼을 한다.
1499년 재혼, 바로 이 때 안느가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샤를 8세와의 결혼이 비록 정략적 결혼이었다고는하나 미망인으로서 전남편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입게된 옷이 아니었는지 사료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안느의 정략 결혼 덕분에 브레따뉴 공국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던 것은 확실한 듯 하다.
그리고 1514년 안느 역시 3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듬해 1515년 루이 12세 역시 세상을 떠나자 1532년 브레따뉴 공국은 프랑스 왕국에 완전 합병되어 오늘날까지 프랑스의 한 주로 남게 되었다.
안느가 재혼을 하면서 왜 흰 색 드레스를 입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입은 것은 아닌 듯 하다.
공국의 영주로서 자신의 행복 보다는 공국의 존립을 위해 정략 결혼을 두 번이나 해야했던 38세의 비운의 여인이 입어야만 했던 슬픈 사연의 옷은 아니었을까.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