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라요”
스리 사카르는 “영성(sprituality)을 앎(known)에서
모름(unknown)으로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천상 지식인 타입이라 그동안 알고자 애를 썼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서
눈에 보이는 물질에서부터 정신까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알아내고자 했고
제법 아는 듯 행세도 했다.
이제 살 날 많이 남지 않은 노인이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름(주님?)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모름이 무지인지 순수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모른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혹 세상을 다 겪고난 노인의 모름은
아이의 천진함과는 다소 다를까?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노인이 천국의 문에 도달했다.
천국의 문지기가 이곳은 순수한 아이만 들어올 수 있으니
노인은 들어올 수 없다고 문을 막았다.
주 시바는 화를 내며 문지기에게 벌을 내린다.
“넌 지상에 가서 살고 돌아와야 한다.
지상에 가서 90번 선인으로 살다 오겠느냐?
3번 지상에 가서 악인으로 고통을 당하다 오겠느냐?”
그는 악인을 택했다고 한다.
시인 엘리오트는 “East Coker”에 via negativa에서
영성의 길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그대가 모르는 길에 도착하려면
무지의 길을 가야만 한다
소유하지 않은 길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무소유의 길을 가야 한다
존재하지 않은 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그대가 모른다는 것은 그대가 아는 유일한 것
그대가 소유한 것은 그대가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
그대가 존재한 곳은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 곳
요사이 나는 아주 오래된 트로트,
“나는 몰라요”를 늘 흥얼거리고 있다.
가수 옥희는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밤이 오면 왜 우는지
나는 몰라요....
빗소리가 슬프다해도
사랑이 무엇인지, 눈물이 무엇인지
나는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