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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작은학교에서 천지(天地)들과 지낸 일주일 이야기 (6/3~6/9)
6월 3일 흙날- 작은학교 첫날
아침 미술수업을 마치고 말씀과 밥의 집에서 점심밥모심을 하였다. 밥모심을 마치고 작은학교에 선물로 드릴 양파, 마늘, 완두콩을 보자기에 쌌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실상사작은학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순천역에서 3시 무렵 출발 남원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선민, 지안, 재민, 상율, 지영은 1시 20분 버스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민재와 도희는 승용차로 좀 늦게 출발했다. 출발전 도서관 어른들과 장로님께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드렸다. 두더지는 수입 초콜렛 상자를 주셨다. 제인이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선물로 산 거라면서 가는 길에 나누어 먹으라고 하셨다. 순천역 앞에서 학생들을 먼저 내리게 하고 주차할 곳을 찾았다. 흙날 오후라서 그런지 주차자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동천 근처에 주차하고 걸어서 역으로 갔다. 동물맘과 서로별이 잘 갔다 오라며 배웅을 나왔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동무들은 의자를 돌려서 마주 보며 탔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얼마 후 남원역에 도착하였다. 실상사로 가는 버스가 올 때까지 약 한 시간 정도 기다릴 것이라서 밖으로 나와 벤치에서 모여 쉼을 갖고 준비해온 구운 달걀, 초코렛 등 주전부리를 같이 먹었다. 근처에 택시기사님들이 모여 윷놀이에 열중이었다. 꽤나 시끌시끌 했다. 남학생들이 호기심에 그 자리에 끼어들어 열심히 응원을 하고 모가 나오면 박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니, 기사님들이 너희들 어디서 왔냐며 물어보신다. 선민이는 남은 초코렛 상자를 들고 가서 아저씨들 드시라며 나누어 드렸다. 아마도 그 분들 그런 초코렛은 처음 드셔보지 않았을까?
실상사 가는 버스를 탔다. 조그마한 20인승 버스였다. 탑승한 손님은 우리가 다였다. 동무들은 신이 나서 온갖 이야기들을 서로서로 풀어내더니 급기야는 만화주제가들을 합창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커브길이 많았는데 돌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꽤나 떠들썩한데도 기사님은 뭐라 하지 않으셨다. 약 1시간 후 실상사 정류장에 도착하자, 작은학교에서 지렁이 샘이 우리를 태우려 기다리고 계셨다. 동무들은 처음 만나는 지렁이 샘에게 격없이 인사하고 수다 떨며 차에서 있었다.
드디어 실상사작은학교에 도착했다. 동무들은 도착하자마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대표 배움지기인 최수옥샘과 권시은(이하 시몽)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동무들이 마치 가까운 친척집 온 것 마냥 편하게 놀고 인사하고 말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다고 하셨다. 낯선 곳에 와서 위축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격이 전혀 없어서 놀랍다고 하셨다.
간단한 소개와 묵을 작은집을 정하고 한 곳씩 가며 인사를 하고 안녕했다. 도희, 상율, 민재는 별장, 지안은 달장, 선민과 재민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순아네에서 묵게 되었다. 동무들은 들어갈 때마다 작은집이 좋다며 감탄했다. 동무들은 작은집에서 작은학교 동무들과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작은집에서 서로 어울려 주말을 잘 지내고 월요일 아침 밥모심 자리에서 만나자고 인사하였다. 수옥샘과 시몽샘이 남은 우리를 데리고 가서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사주셨다. 저녁을 함께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영과 내가 묵을 곳은 실상사 내에 있는 템플스테이 공간이었다. 절에서 며칠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여러 해 전부터 있었는데 이렇게 성사가 되는구나 싶었다.
6월 4일 해날 – 실상사에서 지낸 하루. 도법스님 법문
지영과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깊이 잠에 든 지영을 두고 새벽 예불에 참여했다. 실상사는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이라는 주제로 정진기도중이었다. 약사전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뒤 7시 울력, 아침 공양에 참여했다. 템플스테이 첫날에는 아침법석에 들어가서 인사해야 한다는 안내를 듣고 지영을 깨워 함께 참여했다.
늦잠이 그리운 지영은 다시 방에서 잠에 들고 이 사람은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세 시쯤 지영과 함께 실상사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생협매장에서 장을 보았다. 여유있게 장 볼 시간이 이때 뿐일 것 같았다. 지영은 구례에서 지영을 찾아온 부모님을 만나고, 나는 약수암 길을 지나 삼화마을, 산내초등학교 등을 거쳐 약 두 시간 반 넘게 걷기 명상을 하였다. 어제 방에 들렀다 가신 최수옥 샘이 고무신을 바꿔 신고 간 바람에 수옥샘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뒤 쪽이 다 갈라져 있어서 천천히 조심조심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신을 신고 어떻게 걸으셨나 싶었다. 돌아오니 마침 저녁 공양 때였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데 지영과 지영부모님을 만났다. 지영 아버님은 바로 용인으로 가셨고 지영어머니는 도법스님 법문을 듣고 지영과 하룻밤 주무실거라 하셨다.
운좋게도 도법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의 수행법을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설명해주셨다. ‘인간은 본래 붓다이니 본래 붓다, 보살로 살자, 그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다.’라는 요점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빛이 참 아름다웠다.
6월 5일 – 달날. 기능익히기 집중배움 주간 시작날
아침 6시 50분쯤 실상사에서 나가 원백일길 입구까지 걸어가니 선민과 작은학교 동무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작은학교까지 걸어올라갔다. 신발이 불편해서 발이 빠질까봐 땅만 보고 걸어올라갔는데 어느 순간 갈림길이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동무들이 안보였다. 아뿔사, 동무들이 내가 어련히 잘 따라올 줄 알고 올라갔구나. 이제부터는 짐작으로 길을 찾아 나섰다. 한참 가다보니 저쪽에서 나를 기다리는 작은학교 동무를 만났다. 반갑고 고마웠다.
작은학교에서 아침밥모심을 마치고 시몽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학교 남학생 동무들이 어제 옹기종기방(교무실)에서 컴퓨터를 지나치게 많이 했다고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시몽 샘이 합석하고 우리 동무들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샘이 몇 시간 사용했는지 묻는데 대부분 2시간이라고 말했다. 샘은 그 정도면 정해진 시간 정도 한 것이라며 작은학교 안에서 컴퓨터 사용에 대한 규칙을 말씀해주셨다.
작은학교 식구들과 우리 동무들 모두 강당에 모여 한 주간의 집중기능익히기를 여는 아침열기를 하였다. 우리를 환영하는 박수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각자가 배울 곳으로 나누어졌다. 내가 속해 있는 집짓기 활동을 할 현장으로 이동했다. 하수용(이하 하숑)샘이 지도선생이고 시몽샘이 함께 하고 우리 학교의 민재, 상율, 작은학교 3학년(9학년)인 은서, 신욱, 2학년 재원, 유민재 그리고 나까지 집짓기 모둠이었다.
시작한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유민재학생이 화를 내며 거칠게 굴었다. 시몽샘이 화를 내는 민재의 손을 잡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를 내는 내용이 우리 동무들과 관련된 것 같아 나도 같이 자리하게 되었다. 약 삼사십분 정도 민재의 말을 들었다. 민재가 화를 내는 요점은 이러하였다. 지난 번 사랑어린학교에서 상율이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자신은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고 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사랑어린학교 동무들은 다 풀린 줄 알고 거리낌 없이 대해서 불편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때려주고 싶다고 하였다. 시몽샘은 이런 상태로 상율이와 한 모둠으로 활동을 한다면 더욱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울 테니 네가 옮기든 사랑어린 동무들이 옮기든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셨다. 그리고 좀더 얘기하자며 민재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현장으로 돌아와서 일을 도왔다. 한 시간 쯤 후에 샘과 유민재학생이 돌아와서 점심밥모심 때까지 같이 집짓기일을 하였다. 점심밥모심을 마치고 작은학교 샘들이 모여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지영이 같이 자리했다. 오전의 상황을 공유하고 유민재동무가 모둠을 모듬북으로 옮기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샘들과의 공유자리를 마친 후, 우리 동무들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동무들은 모두 귀기울여 듣고 이후 이 곳에서 서로 더 잘 배려하며 잘 지내고, 혹시 어떤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자고 마음을 모으고 자리를 마쳤다.
오후 현장에 와서 유민재학생이 옮기겠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현장일은 지붕 아래 부분을 루바를 전기드라이버로 박는 것이었다. 상율, 은서, 재원이 주로 피스를 박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톱질을 하고 나르는 일이었다. 은서는 16세 여학생인데 피스박기를 잘해서 현장에서 기술자 대접을 받는다. 무척 씩씩하다. 어느새 마무리시간이다. 하숑은 진행이 잘되고 있다며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나는 오늘 저녁에도 도법스님 질의응답이 있는 줄 알고 마무리하자마자 절로 출발하려 하였다. 하숑이 걸어서 가면 절의 저녁공양시간을 못 맞출것이라며 절까지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실상사에서 저녁공양을 하였는데 물어보니 오늘 도법스님 질의 응답 시간이 없다고 한다. 아마 내가 잘못 이해했나보다.
상율이가 다음날 있을 축구대회 참가를 할 계획이라 상율아빠가 데리러 오셨다고 한다. 나가는 길에 잠깐 만나서 인사를 했다. 상율아빠와 인사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어두컴컴해졌다.
씻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이렇게 기능익히기 첫날을 보냈구나.
6월 6일 불날. 집중배움 이틀째
아침 6시50분쯤 절에서 나서서 작은학교까지 걸어올라가는 길에는 새로 이루어진 마을들, 주택들, 그리고 길가의 온갖 꽃들이 어우러져있다. 특히 진홍색의 꽃양귀비가 눈길을 잡아끈다.
아침밥모심을 하고 각자의 배움자리로 나섰다. 민재는 오늘 전기드라이버사용과 기계원형톱으로 나무자르기를 주로 했다. 심부름 위주로 했던 나도 드릴로 피스박기를 배우고 임시피스질을 하였다. 지붕쪽에 피스를 박는 작업이다보니 자세도 안정되지 않고 높이 있기도 해서 힘있게 박으려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피스박는 작업자가 좀더 수월하도록 미리 루바에 피스를 살짝 박아놓은 상태로 올려주면 기운을 덜 쓸 수 있어서 더 많이 할 수 있다. 미리 피스를 살짝 박아놓는 일이 오늘 나의 새로운 작업이었다.
어제는 피스박기가 힘들다고 상율이에게 맡기고 주로 톱질을 했던 민재도 오늘은 상율이가 없음으로 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시간 하다보니 점점 능숙해지는 게 보였다. 지붕 아래 루바가 꽤 속도감있게 메꿔지고 있다.
은서가 오늘은 오후에 나왔다. 어제 너무 무리해서 힘들었을까? 선생님들은 일부러 찾아나서지 않고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학생들이 종종 지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그에 대한 약간의 고민을 말씀하셨다.
점심밥모심 때에 지영이 제안을 했다. 배움터 동무들이 모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자고 하고 시간을 맞추었다. 저녁 전에 만날까 했는데, 지영의 집중배움시간 마치는 시간이 빡빡해서 저녁밥모심 직후에 만나기로 하였다. 상율이는 오늘 저녁무렵까지 경기를 뛰게 되어 내일 아침 올 것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하루 마무리 모임때 이 소식을 전하니 남자동무들이 아마도 결승까지 진출한 것 같다고 한마디씩 한다. 한 바퀴씩 돌며 하루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인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더 놀고, 나는 절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6월 7일 물날 – 나의 기능익히기는 기다림과 끈기
오늘 아침은 아침밥모심을 하지 않기로 하고 좀 천천히 나왔다. 걸어가다보니 순아네에서 한 분이 배낭을 메고 나와서 작은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그 분 한참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데 그분이 멈춰서 길가에 자란 쑥들중 부드러운 새잎을 따고 있었다. 어느새 그분께 가서 인사를 했다. 김태훈 선생님 동반자이자 순아엄마라고 소개하시고 작은학교 공양간에서 일하신다고 한다. 곧 단오가 오니 그때 쑥떡을 준비하려 틈나는대로 쑥을 따신다고 한다. 시간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해줄 제철반찬과 먹거리를 위해 죽순도 채취하고 나물도 뜯고 텃밭 농사도 지으신단다. 지금은 두 사람이 해서 이 시간에 나오지, 혼자 하셨을 때는 새벽부터 일하셨다고 한다. 말씀하시는 그 마음이 곧 부지런한 어머니의 마음이라 들으면서 뭉클했다.
집짓기 현장일 전에 먼저 하는 일이 모둠마다 맡은 공간을 청소하는 것이다. 집짓기 모둠은 재활용쓰레기장과 생태뒷간을 맡았다. 8시 10분부터 약 20분간 청소하고 현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작은학교는 청소와 울력이 일상화된 것 같았다. 풀이 나기 시작하는 철이 되면 매일 아침 일찍 (6시 무렵) 새벽 울력을 자율적으로 한다고 한다. ‘울력의 일상화’, 우리도 필요할 듯 하다.
요즘은 8시부터 더워진다. 집짓기는 밖에서 하는 일이라서 1시간만 일해도 몸 여기저기에서 땀이 난다. 땀이 잘 나지 않는 나도 땀이 난다. 열시반쯤 되면 샘중 한 분이 공양간으로 가서 새참꺼리를 가져오신다. 실상사 앞 유기농매장인 느티나무에서 구입한 오미자쭈쭈바나 수박, 빵등 있는대로 가져와서 함께 나눈다. 그래. 바깥일에 새참은 피로를 날려주는 꿀이지.
동그라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달날 농사일 때 감자를 모두 캤고, 작은학교에 감자 한상자를 보내겠다는 얘기였다. 참 고맙고 좋다.
11시쯤 되니, 상율아빠가 상율이를 데리고 오셨다. 모두들 반갑게 맞이했다. 상율이는 자기가 없는 하루 새에 일이 많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감탄했다. 민재도 의기양양하였다.
이 동무, 저 동무 할 것 없이 언제 물놀이 가냐고 성화다. 하숑은 일 열심히 하고 내일 오후에 가자고 하신다. 그 말에 모두들 기뻐했다. 특히 민재가 좋아했다.
점심밥모심 때에 고양자유학교 학생들 십여명이 순례 중에 들렀다며 인사하고 점심도 같이 했다. 이끔이는 ‘딸기’라는 이름의 여자선생님이었다. 맞은편에서 밥을 먹으며 간단히 인사했다.
점심밥모심을 한 후 운동장에는 동무들이 족구도 하고 농구도 하며 뛰어놀았다. 사랑어린 남학생 동무들은 족구에 열심이다. 도희는 아킬레스건이 아프다며 내내 뛰지 않다가 조금씩 함께하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한쪽에 마련된 그물로 된 방방이(트램펄린) 안에서 뒹굴며 놀았다. 나는 쉼을 가지러 달장으로 갔다. 달장 2층 방 주인장이 집중공부하느라 방을 비운다며 나보고 편할 때 쉬라고 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의 일은 작업공간이 좁아서 비계를 사용하지 못하고 사다리로 오르락 내리락 피스박기를 하며 밑에서는 보조가 사다리를 잡아주고 필요한 것을 갖다주었다. 나는 아래에서 보조역할을 했다. 사다리를 잡아주는 것이 생각보다 긴장이 상당히 되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발치 아래에는 연못이 있어서 사다리가 잘못되면 모두 연못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몇 시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집짓기를 진두지휘하는 하숑은 힘들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돌본다. 문득 존경심이 생겼다.
일하던 중 하숑이 내일 새벽에 논에 피사리를 갈 것이라고 동무들보고 같이 하자고 하였다. 민재가 나에게 피사리가 뭐냐고 묻길래 며칠 전 우리 논에서 했던 뜬모작업과 비슷한 일이라고 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피사리는 논에 있는 피등 풀을 메는 일이었다)
어제 시몽샘에게 도법스님 뵙는 것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약속을 잡아주었다. 내일 저녁으로 잡았단다. 사랑어린동무들과 하루 마무리를 하면서 내일 저녁 도법스님께 인사드리러 갈 것이니 질문을 생각해보라고 일러두었다. 동무들이 순순히 들어주었다.
하루 마무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동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는 듯 이야기했다. 재민은 배움터에서 배운 난타와 박자가 조금 달라 익숙해지는데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고 한다. 선민은 좋아하는 바느질을 실컷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지안은 바느질이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지만 계속하니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고 한다. 민재는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가고 할 만하다고 한다. 상율이는 하루를 비우고 왔더니 집 공정이 많이 진행되어 놀랐다고 한다. 도희는 바느질이 어렵지만 나름 해보려한다고 한다. 지영은 원하던 공부를 집중해서 하니 기쁘다고 한다. 나는 집짓기에는 기술자만이 아니라 그를 거드는 보조가 없으면 안되며, 그 보조에게는 기다림과 끈기가 필수 덕목임을 배웠다고 하였다. 모두들 참 고맙다.
6월 8일. 나무날 - 뱀사골계곡에서의 물놀이, 도법스님
실상사작은학교는 논농사를 많이 짓고, 매우 열심이다. 논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실상사 앞에도 꽤 넓게 있다. 새벽에 피사리를 한다하여 아침 6시에 극락전 앞 논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논으로 들어가 빈 자리에 모를 추가로 심고 풀도 메고 한다. 어제 점심 때 방문했던 고양자유학교학생들이 절에서 자고 함께 피사리를 하러 나왔다.
모판에 볍씨를 심어 모를 키우는 것부터 한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 배움터도 그랬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내년 논농사때에는 배워서 일부라도 모판을 직접 키우면 좋겠다.
마무리를 하고 작은학교로 가서 집짓기 일을 함께 했다. 이번 일은 실내 천장에 단열재 넣기 작업이다. 단열재가 유리섬유로 된 것이라 호흡기나 피부에 자극이 되어서 마스크, 두건, 보안경을 끼고 하였다. 날씨가 더우니 땀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고, 역시 집짓기는 인내를 요구한다. 시몽샘이 단열재를 천장에 고정시키는 타카질을 주로 하고 내가 보조역할을 했다. 타카질이 드릴로 피스박기보다 더 힘들었다. 내가 해보니 아예 핀이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몽샘은 체구도 아담하고 체력도 약한데 타카질을 잘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물어보니, 어렸을 때 골목에서 신나게 놀았던 게 밑천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상율과 민재는 밖에서 지붕 마무리 일을 하였다. 꽤나 자잘한 공정이 있는 일이라 언제 하나 싶었고, 보고 있으면 둘이서 장난하는 게 주로 보였는데 어느새 다해 놓아서 깜짝 놀랐다.
오후가 되자 물놀이를 갔다. 처음에는 집짓기모둠만 가기로 했다가 다른 모둠 동무들도 가고 싶어해서 원하는 동무들은 모두 같이 갔다. 그 유명하다는 뱀사골계곡으로. 민재는 수영복까지 준비해왔다. 다이빙을 하고 헤엄치고 모두들 신이 났다. 작은학교 학생들은 매우 익숙하게 놀았고 남녀할 것 없이 서로 어울려 즐겁게 물놀이 했다. 나는 물이 차서 발만 들어갔다. 도희는 처음에는 한쪽 바위 위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내가 “너도 같이 물에 들어가 놀아봐” 하니 “준비한 여벌옷이 없어요.”... “여벌옷 없는 동무들 여럿 있던데.” 대꾸하였다. ...... 좀 있으니 물에 들어가고 다이빙도 하고 신나게 논다. 보는 내가 즐거워졌다. 작은학교에 사는 ‘새벽’이란 이름의 보더콜리개를 데리고 갔는데 정말 물놀이를 좋아했다. 공을 던져주면 그곳이 어디든 헤엄쳐서 입에 물고 던져준 사람에게 가져오고 다시 던져달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도 쉼없이 반복하고 싶어해서 던져주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해야 할 정도였다.
문득 물놀이에 여념 없는 동무들과 어른들을 보며,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학생들이 받는 여러 선물 중 지리산계곡에서의 물놀이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동무들이 물에 풍덩 빠지고 서로 어울려 격없이 노는 게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 경험일지 말이다.
사랑어린동무들중 선민은 계곡에 가지 않았다. 바지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물놀이에서 돌아와서 잠시 쉼을 갖고 저녁밥모심을 한 후 지렁이샘의 차로 실상사로 향했다. 드디어 도법스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동무들은 스님을 처음 뵈었을텐데 마치 친한 할아버지 댁에 놀러온 마냥 재잘재잘거린다. 스님이 주전부리가 들은 통을 내놓으시자 신나게 열어서 냠냠거리며 먹는다. 인사를 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민과 지영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의 말씀이 꽤 길었는데 동무들은 별로 지루한 내색 없이 먹으면서 잘 듣고 있다. 9시가 다되어가자 스님이 이제 마칠 때가 되었다고 힘들지 않냐고 물으셨다. 상율이는 안힘들다고, 밤도 샐 수 있다고 답하여 모두가 웃었다. 마무리로 사진을 요청하니 순순히 응하신다. 나가는 길에 스님 “또 뵈어요”라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그래, 나는 싸구려니까 언제든지 요구하고 만나러 와.” 하셨다. 참 유쾌하고 고마웠다.
지렁이샘이 다시 오셔서 동무들을 데리고 가시고 나는 숙소로 향하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6월 9일 쇠날 – 안녕, 작은학교!
마지막날, 짐을 챙기고 시몽샘에게 연락했다. 배낭이며 장본 바구니며 짐이 꽤 된다. 짐을 시몽샘 차에 싣고 작은학교로 왔다.
집짓기 현장으로 왔다. 어제 물놀이 여파로 오늘 할 일이 꽤 많다. 동무들은 물놀이로 기분이 좋아졌다며 열심히 일한다. 어제 몸이 아프다며 쉬었던 재원도 물놀이 후에 몸이 나아진 듯 오늘 일하러 왔다.
오늘은 단열재를 넣은 천장에 합판으로 마감을 하는 것이 주요 공정이었다. 또 주변정리도 같이 해나갔다. 바닥에 쓰레기들을 주우며 실수로 떨어진 피스들을 일일이 주워서 통에 담았다. 그것도 모으니 꽤 되었다.
오후 4시부터 모둠 발표시간이라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발표준비에 들어갔다. 작은학교 학생들이 서로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사다리타기를 제안했고 2학년 재원학생이 발표자로 나서게 되었다. 발표를 준비할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뒷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드디어 4시. 발표를 하러 강당에 모두 모였다.
모듬북 모둠부터 시작했다. 재민은 앞자리에서 북을 쳤다. 배움터에서 난타를 배운 덕인지 여유있게 잘한다. 마치고 한 사람씩 마무리 이야기를 하는데 재민은 생생하고 솔직하게 얘기를 잘했다. 나도 모르게 “말 참 잘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모두들 합을 맞추느라 연습을 많이 했던게 느껴진다. 지렁이 샘이 참 애쓰셨겠다.
천다루기 모둠이 그 다음 차례였다. 자기가 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배움을 가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선민과 지안과 도희 모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을 보여주었다. 이야기하는 표정들이 모두 밝다.
집짓기 모둠은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때 배움터에서 보낸 감자가 맛있는 삶은 감자로 되어 새참으로 나왔다. 모두들 감자를 한 손에 쥐고 먹으면서 집짓기 발표를 들었다. 민재와 상율 그리고 다른 동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집중해서 일하다보니 어느새 이만큼 되어 있었다는 얘기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얘기였다.
우리 배움터에서도 그간 목공선생님을 몇 번 모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안되서였는지 길게 유지되지 못했고 지금은 목공수업이 없는 상태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위험한 공구를 다루는 일이라 어린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겠다 싶었다. 하숑도 어린 동무들, 그리고 나 같은 생초짜들과 며칠 동안 실제 집짓기를 했으니 표현은 안했지만 안전에 대해 무척 신경 썼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동안 동무들에게 낯 한 번 안 붉히고 지도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사랑어린동무들이 작별의 인사를 했다. 민재가 대표로 롤링페이퍼를 작은학교 학생대표에게 주었다.
마치자마자, 도희 어머니에게서 작은학교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도희의 집이 산청이라 별로 멀지 않아서 직접 데리러 온가족이 왔다.
남원역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많이 남아서 배움터 동무들, 도희네 가족들, 작은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몇몇 작은학교 동무들과 실상사 앞에 있는 ‘메밀꽃’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저녁을 다먹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수옥샘, 시몽샘이 옆에서 기다려주셨다. 게다가 근처에서 공부하고 나온 지우가 와주어서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우는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6시 55분이 되자 버스가 왔다. 모두 빠이빠이하고 사랑어린동무들은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 피곤했는지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조용하다. 9시가 다된 시각, 순천역에 도착해서 나오니 동무들 가족들이 나와서 반겨준다. 동무들이 엄마 품에 하나씩 안기는데 보는 나도 참 기뻤다. 모두들 무탈하게 잘 지내다 돌아와서 고맙고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