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 이어 흑산-백령공항도… 부실한 설계 뒤늦게 바꾼다
국내에 없는 50인승에 맞춰 설계
80인승기 운항으로 바꿔 재설계
공사비 부담에 계기→시계비행 변경
악천후때 수시 결항-항행 안전 우려
도서 지역 소형공항인 흑산, 백령 공항도 울릉공항처럼 80인승 항공기 운영에 맞춰 기존 설계를 변경하거나 계획을 선회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현실성이 없었던 50인승 기준 계획을 세웠던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3개 공항 모두 추가 부지나 사업비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착륙 시 조종사 눈에 의지하는 ‘시계비행’ 기준으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안전성과 정시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26일 본보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도서 소형공항 시설개선 방안 검토’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울릉과 흑산, 백령 공항 모두 공항 등급을 ‘2C’에서 ‘3C’로 변경하기로 했다. 공항은 취항할 항공기의 날개폭과 최대이륙거리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2C는 50인승, 3C는 80인승 항공기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울릉공항과 흑산공항은 2013년, 백령공항은 지난해 각각 2C 기준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국내 항공사는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50인승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 이에 국토부는 뒤늦게 프랑스 ATR의 ‘ATR 72’와 브라질 엠브라에르의 ‘E190-E2’ 등 80인승 항공기 취항을 고려하고 있다. 이 비행기들이 취항하려면 기존 설계안보다 활주로 양옆과 끝단의 안전구역인 ‘착륙대’가 훨씬 넓고 길어야 한다. 활주로 끝에도 더 긴 종단안전구역이 필요하다.
항행 시설의 도움을 받아 이착륙하는 계기비행 방식을 유지할 경우 공항 규모를 2C에서 3C 등급으로 올리려면 착륙대 폭은 최대 280m로 늘려야 한다. 이 경우 공사비가 기존의 1.5∼2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국토부는 보고 있다. 해상 매립 형태인 울릉공항의 경우엔 공사비가 현재 약 7500억 원에서 1조5000억 원까지도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비행 방식을 계기비행에서 시계비행 기준으로 설계를 변경하고 있다. 시계비행은 조종사가 직접 눈으로 지형지물 등을 확인하며 비행하는 방식이다. 시계비행 공항은 3C 등급이라도 착륙대 폭을 150m까지만 늘려도 돼 울릉공항의 경우 수십억∼수백억 원의 공사비만 더 들이면 된다. 실제 흑산공항은 착륙대 폭을 기존 80m에서 150m로, 종단안전구역을 30m에서 90m로 설계를 변경했다. 울릉공항은 착륙대 폭을 140m에서 150m 늘리기로 했다. 백령공항은 설계 기본 계획을 확정하는 단계다.
하지만 시계비행은 악천후나 안개, 야간 등에는 이착륙이 어려워 섬 지역에서는 수시로 결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항공사의 한 조종사는 “시계 비행을 할 경우 항행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는 등 안전 관련 대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 상태로는 승객이나 조종사 모두가 회피하는 유령 공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계 또는 기본계획 변경이 이뤄지면서 공항 개항 시기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울릉공항은 당초 2025년에서 2026년 초로 이미 개항을 미뤘다. 흑산과 백령공항은 2027년 개항이 목표지만 새로운 기준에 따른 설계안을 마련해야 해 일정이 더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근시안적 공항 정책으로 설계와 사업비가 수없이 변경되며 안전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없는 누더기 공항이 되고 있다”며 “국민과 업계가 납득할 수 있는 안전대책 등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종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