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도
박이레
영하 12도의 1월 하오
바람 부는 바닷가에 모인 할머니들
눈만 보이게 칭칭 싸매고는 불을 쬔다
고구마도 오징어도 술 한 잔도 없이 불은 붉고
바다는 아직 가슴을 열기 전
할머니들이 밀대를 밀고 들어가고
바람은 굽은 허리들을 지나간다
갯벌이 서서히 몸을 열었다
바위와 개땅에 악착같이 붙은
뭉뚝한 손들, 닮은 석화들
바구니에 뽀얀 살로 담겨
여든 훌쩍 넘은 할머니들이 다시
펄에 불 피우고 시리고 곱은 손을 쬘 때
바다도 멀리서 숨을 고른다
굽고 곱은 손으로도 조새는 멈추지 않고
바구니가 차고 비닐 팩이 찬다
쌀이 차고 기름이 차고 아픈 관절들 잠시 돌볼
병원비와 옆집 잔치에 보탤 것이 차고
손주들 줄 용돈이 찬다
고희 희수 미수 지난 할머니들의 고개가
들려지고 안 펴지는 허리가 조금 펴지고
바다도 다시 인간의 마을로 들어올 즈음
경운기들 털털털 들어오고
게처럼 걸어 나오는 할머니들과
굴 실은 경운기가 개를 나오면
바닷물이 개흙을 덮고 고요해진
간월암에도 불이 켜진다
바다는 제 몸을 치며 다시 수행에 들고
작은 섬에 달빛이 내린다
안간힘
나는 제자가 태우고 가겠다 했다
스물 갓 넘은 제자는 제법 배가 나와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차를 타고 이동했고
오토바이는 잘 달렸으며 바람은 시원했다
속도가 더해지고 내리막길로 달리면서
몸이 자꾸 제자 쪽으로 붙었다
아이가 있구나, 좀 전의 생각을 떠올렸다
혹 거리의 아이가 아닌지 염려됐으나
묻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 가르친 아이
몸은 계속 밀착된 상태였고 답답하게도
아랫도리가 자꾸 부풀어올랐다
제자 엉덩이에 닿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으나
뺨을 갈기는 바람만큼이나 제어가 안 됐다
안간힘과 체념 속에 도착했다
같이 모이기로 한 장소가 아니었다
제자는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묵묵히 들었고 아랫도리도 진정되었다
속으로 몇 번 하나님, 불렀다
팔을 옮기다 손이 제자의 엉덩이를 스쳤다
말을 멈춘 제자가 나를 차갑게 돌아보았다
선생님도 똑같다는 말이 내 뺨을 갈겼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벤치에
나를 남겨두고 제자는 갔다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일말의 즐김도 있었나 내겐,
시원한 바람결 따라 산벚꽃들 흩날려
고개를 돌리니 아내가 쌔근거리며 자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조금 전의 여자는 누구인가
설마 했는데 팬티가 젖어 있다
쉰 넘어 몽정이라니!
이것은 어떤 힘이고 어떤 안간힘인가
줄기찬 새소리가 왕성하게 들어온다
새벽부터 새들은 왜 지저귀나
미명의 하늘도 어떤 힘으로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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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 박이레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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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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