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1년 치 10년 치의 양식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 필요한 것만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그날그날 내려주신 만나로 매일을 살던 것처럼(탈출 16,4 참조), 우리도 오늘 필요한 양식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야누스오 같습니다.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갖고 있는데, 얼굴 하나는 과거를 보고 있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야누스에겐 오늘을 바라보는 얼굴이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습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염려로 언제나 불안하고 몸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기도할 때 입으로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라며 노래하지만 속으로는 내일에 대한 걱정 근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 아빠에게 언제나 어린아이입니다. 하늘 아빠가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현재를 살아라”,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이 있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잊어라”,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 등의 이런 말들은 너무 많이 들어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랑어Ellen Langer 교수는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를 영어로 ‘mindfulness’라고 정의합니다. 우리말로는 ‘정신차림’으로 번역하면 정의할 것입니다. 한편 미래에 정신이 팔려 살아가는 태도는 ‘mindlessness’라고 합니다. ‘정신이 없음’, ‘넋이 나감’ 정도일 것입니다. 토머스 머튼이 선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선방에서 1년간 수련을 마친 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뭔가 영적 깨달음에 대해 말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스님은 “문을 열고 닫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지 않고, 우유를 따르면서도 우유를 따르지 않습니다. 어서 끝내야 한다고 서두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담고 집중하지 못합니다. ‘mindfulness’와 연결해서 나오는 개념이 ‘flow’입니다. 우리말로는 ‘몰입’으로 번역됩니다. 이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입니다. 그에 따르면, 몰입은 무슨 일에 푹 빠져있는 것입니다. 암벽을 등반하든지, 피아노를 연주하든지, 필라테스를 하든지, 수술을 집도하든지, 집안일이나 요리를 하든지, 산책을 하든지, 차를 마시든지 간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한 상태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어린아이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 아빠에게 언제나 어린아이입니다.
하늘 아빠가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