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추석 냄새가 풍기는 완연한 가을인 것 같구려
그동안 별고 없으리라 믿네.
이 몸도 자네의 염려 덕분에 잘 있다네.
뉴스에 의하면 자네네 회사가 어려운 것 같던데 마음 고생이 심하겠구려.
그래도 힘 내시게.
어려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 몸도 웅진생활을 그만 두었네.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뒤로 한 채 작년 10월에 막살하고
깊은 마음적 공황으로 앞날에 대한 막연함과 실의로 그날 그날을
메꾸어 나가다가 어느 한 순간 마음 한번 돌리니 나도 행운아임을 알아채렸네.
일자리는 잃었지만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어 하던 오늘이
나에게 있고,건강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더란 말일세.
반 컵의 물을 놓고 어떤 이는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또 어떤 이는 아직도 반이나 남았구나 하고 희망을 가진다는데
후자를 택하니 어둡기만 한던 마음이 환해 오더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야 할 중대한 고비에 일자리를 잃게 되니
한 가지 기술도 없는 내 처지로서는 감당하기는 어렵네마는
참고 준비하고 기다리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런지 누가 알겠는가.
요즘은 삶에 장애를 가져오는 자존심을 던져버리고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여 여수시내 번화가에서
하수구 오물을 퍼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네.
한때는 샐러리맨, 또 한 때는 세일즈맨.
이제는 하수구청소라 참으로 기막힌 인생유전이로세.
하수구청소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몸은 수고롭지만 마음은 편하더이다.
흔들리지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라고는 하지만 적자인생속에 세월만 흐르니
안타까움만 절로 더하는구려.
아주머님께서도 건강하리라 믿으며 자녀들도 잘 있겠지.
우리 아이들은 대학생 그리고 고3이라 우리 부부만 따로 국밥일세그려.
아무쪼록 건강하여 바라는 바를 이루어 행복하기를 바라네.
그럼 잘 있으시게.
1999.9.6 김민수 올림
★★★
이 편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반송되어 왔었네.
4년이 지난 지금 내 생활은 무척 좋아졌고
두려워하던 대부분의 근심걱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네.
죽을 각오가 되있으면 산다고 하는 말을 나는 사랑한다네.
별안간 잠에서 깨어나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에 나가니
상쾌한 가을 밤바람에 듬성 듬성 흰구름 흘러가고
그 사이로 별빛이 유난히도 반짝거려 벗들이 그리워지는구려.
대한민국은 불륜천국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바람을 피워도 남자는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고 가정이 유지되는 확률이
많으나 아내가 바람피면 회귀불능에다 가정함몰이 거의 100%이고
남편이 볼 때 아내가 멋대가리 없게 보일지 몰라도 다른 남자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남편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했더군.
두 집 걸러 이혼하는 시대라 아내를 안정시키는데는 대화와 배려가
명약이라고 하더이다.
그렇다고 공처가되어 유약한 모습만 보여서는 안되겠지.
평온한 날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태풍을 그리워하는 법이니까...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 들으니 남의 감저밭에 감저 훔쳐 풀밭에다
대충 문질러 급히 먹어치우던 그 시절이 아른거린다. [金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