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아침을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을 대하기 전에 주의 말씀으로 먼저 주를 만나게 하시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이 묵상이 매일의 습관처럼 되지 않도록 나를 쳐서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주어진 일과를 해치우는 것처럼 처리하는데 그치지 않게 하시고 나의 맘과 뜻을 다하여 교제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세상의 온갖 죄의 때로 뒤덮여 있는 나의 영육을 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온전케 하여주소서.
주의 말씀 앞에 선 내가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주 앞에 섰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오늘 외부에서 손님이 오셔서 찬양을 합니다.
주님이 먼저 받으시고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27:30-46
제목 : 언약 안에 있다고 자고하던 자가 주님의 심판을 통하여 긍휼의 그릇이 되었습니다.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징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일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제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 나의 묵상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로 이삭과 에서를 속였다.
결국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서 야곱에게 장자가 받을 축복을 다 해주었다.
그 축복을 마치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다.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 이삭에게 가지고 가서 자기를 축복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미 장자에 대한 축복을 다 끝낸 이삭은 깜짝 놀라면서 네가 누구냐고 묻는다.
에서는 맏아들 에서라고 하자, 이삭이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미 복을 선포했기 때문에 야곱이 그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에서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통곡을 하면서 자기에게도 복을 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삭은 네 아우 야곱이 나를 속여 너의 복을 빼앗아 갔노라고 한다.
이에 에서는 동생의 이름을 야곱이라 한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자기를 두 번이나 속였던 일을 고한다.
그것은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일이며 또한 이번에 내가 받을 복을 빼앗은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내게 빌어줄 복이 없느냐고 묻자,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줄 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야곱을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니 내가 너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이에 에서는 울면서 재차 축복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위하여 마지못해 한 마디를 한다.
그것은 에서의 장래가 불안정할 것에 대한 예언이다.
너는 땅의 기름짐에서부터 멀고 하늘 이슬에서부터도 멀 것이다.
너는 칼을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고 네 동생의 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애를 쓰고 또 애를 쓰면 동생에게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에서의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자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서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에서의 노가 풀릴 때까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고 있으라고 한다.
에서의 분노가 풀려서 이 모든 일을 잊어버리면 그 때 너를 다시 부르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 이삭에게 이곳에 있는 가나안 족속의 딸들과 결혼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결혼하도록 하자고 요청한다.
이는 곧 야곱을 하란으로 도피시키기 위한 리브가의 작전이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등 인간적인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언약이다.
하여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쌍둥이가 서로 싸우는데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두 민족이 서로 싸우며 나누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더하여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까지 하신다.
이는 그들이 태어나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들을 택하시고 유기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다.
다만 진흙으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자유는 오직 토기장이에게 있을 뿐이다.
이를 가지고 그릇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다.
에서와 야곱은 토기장이가 만드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두 종류의 그릇 중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는 유기하신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
(롬 9:21-24)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따라서 택함 받은 자라고 해서 교만할 필요도 없고, 육신적으로 강한 자라고 해서 더더욱 자신을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야곱은 언약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 에서에 비하여 윤리 도덕적으로 함량 미달이다.
이처럼 함량 미달인 야곱으로 인하여 에서가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말이다.
나는 창세전 언약에 근거한 영생을 오늘도 받아 누리는 자임을 믿는다.
그 영생이 내 것이라고 해서 내가 더 교만할 이유도 없고 자고(自高)할 필요도 없다.
그 이유는 이전에 언약 백성이요 구원을 받은 주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누구보다 높이는 자였기 때문이다.
영적 자만과 자기주장의지는 나를 괴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바로 속이는 자 야곱이었으며 형의 발꿈치를 잡은 자였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서 나를 드러내고자 죽을 힘을 다했던 자가 바로 나였다.
부교역자로 섬길 때 모든 부교역자들은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함께 한 마음으로 주를 섬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서 항상 제일이 되고자 했던 자이다.
나보다 앞선 자들을 두고 보지 못했으며 그런 이들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시기하고 미워하며 욕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살면서 물론 담임목사나 성도들에게 뭐든지 잘한다고 인정과 칭찬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였는지는 글쎄요!, 가 아닐까?
구원 받았다는 미명 하에 다른 이들을 깔보고 비웃으며 속이는 것을 다반사로 여겼던 나는 영락없는 속이는 자 야곱이다.
내 안에 그런 속임과 거짓의 피가 흐른다.
그것은 단순히 야곱의 피를 넘어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옛 사람의 본성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과연 언약 백성이요 언약의 자녀라는 사실을 바르게 깨닫고 있는지 말이다.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구원과 영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세상에 속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은 작은 도덕과 규칙부터 바르게 지켜야 할 것이다.
오늘은 주일이다.
밖에서 활동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있든지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의 향기를 풍겨내는 아름다운 꽃으로 살기를 소망해본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들에게 말은 제대로 못한다 할지라도 예수의 꽃향기를 계속 흘려보내는 자로 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이 사셨기 때문이다.
구약의 인물이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완전한 사람으로서 삶을 사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선망의 대상이요 우리가 따라 가야할 푯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주님을 온전히 앙망하며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은 특별히 OO신학교 학생 몇 명이 와서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는 날이다.
이들의 찬양과 워십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이 영광 받아주시기를 소망하며 우리 성도들도 은혜에 흠뻑 젖기를 간절히 바란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구원 받은 언약 백성일지라도 세상에서 윤리 도덕을 무시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야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인해 주셨건만 야곱은 그 언약을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였음을 봅니다.
물론 구원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꽃이 되어야 함에도 그는 전혀 그러질 못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거짓되고 악하며 방탕한 자였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는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멸하기로 준비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셔서 관용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이제 구원 받은 자로서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아 영원에 잇댄 삶을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삼아주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