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naver.me/Gvc38LZf
현대 사상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그의 독보적 사상인 〈신실재론〉의 총체를 차근히 향유하게 해주는 명저 『허구의 철학』
모든 가치의 전복을 외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AI와 가상 현실이 새 시대의 정체성이 된 듯한 디지털 혁명기에 이른 지금. 우리는 실재와 허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여기는, 이른바 〈탈사실적 시대〉의 존재론적 혼란에 사로잡혔다.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한 이 경향성은, 그러나 허구를 실재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영역으로 가두어 버림으로써 오히려 인간 상상력의 경계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불러왔다. 실재는 허구라는 배경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우리는 허구를 통해 우리 자신을 객관화한다. 허구들은 우리의 정신적이며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다. 이 책은 근래의 자연 과학적 객관성 강요가 빚어낸 존재와 가상의 잘못된 대립을 바로잡고, 허구를 실재하는 우리 삶의 영역으로 올바로 인식해야 함을 치밀한 논리로 전개한다. 이로써 인간 정신과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허구를 실재에서 축출해 버린 자연 과학의 시대,
정신 과학과 사회 과학의 실재성을 복권하다
오늘날 자연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주목한 많은 지식인은 이른바 〈자연주의〉에 귀의했다. 자연주의는 자연 과학의 방법론과 성취를 보편적 존재론과 세계상으로 부풀리는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자연 과학의 방법으로 측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것들만 실재한다고 본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자연 과학적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허구〉를, 그리고 정신 과학과 사회 과학을 진지한 학문적 담론에서 추방하거나 격하하고 있다. 이에 맞서 『허구의 철학』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허구의 실재성 그리고 정신과 사회의 실재성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작업에 나선다.
이 책 1부에서는 정신의 실재성을 되찾고자, 우선 허구의 존재론적 실재성에 치밀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허구성〉이 엄연히 실존하는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곧 정신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의 인간관은 우리의 〈자화상 제작 능력〉을 핵심으로 삼는다. 인간은 자화상을 그리고, 거기 맞춰 삶을 꾸려 가는 정신적 동물이다. 자화상이란 〈나는 누구인가〉,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신, 곧 자화상을 그리는 능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의 삶꼴(Lebensform)은 물론 인간의 생존꼴(Überlebensform)에 의존하지만, 그 생존꼴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생존의 조건들에 속박되어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매 순간은 그저 한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자화상에 비추어 꾸려 가는 삶의 한 단계로서 의미를 획득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으로, 정신은 잠재적 환상, 곧 허구와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자화상 그리기 능력은 인간다움, 정신, 허구를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정신적·사회적인 것의 특성에 주목하며
소셜 네트워크의 착취 구조를 발견하다
이 책 2부에서는 자연주의에 맞서 정신의 실재성을 논증한 뒤, 3부로 넘어가 사회적인 것의 실재성을 주장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의견 불일치〉와 〈불투명성〉은 사회적인 것의 본질을 이루는 두 요소다. 저자는 〈인간 사회성의 본성은 의견 불일치, 곧 엇갈림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따라서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타인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여 나를 놀라게 함으로써 나의 견해를 수정한다. 거꾸로 나는 나의 견해로써 타인의 견해를 수정한다. (이는 〈실재하는 것이란 나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나의 뜻을 꺾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 논지와도 연결된다.) 이 엇갈림은 제거해야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아울러 저자는 〈실재〉의 정의를 사회적인 것의 〈불투명성〉과 연결한다. 실재는 반드시 불투명한 구석을 가진다. 우리에게 완전히 알려진 것은 실재하는 것일 수 없다. 완전히 알려진 것은 우리를 착각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불투명성〉이라는 요소에서, 흥미롭게도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 비판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는 〈누군가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즐겨 하는 행위의 영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적 영역은 진정한 공론장을 위한 전제 조건인데, 바로 그 사적 영역을 잠식한다는 점에 소셜 네트워크의 위험성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모든 상황과 집안 살림에 개입하는 디지털 기반 설비에 의지하는 탓에 자동으로 공론장의 잠식에, 따라서 민주주의 법치 국가의 잠식에 기여〉한다. 또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전시함으로써 사적 영역을 공론화한다. 이로써 〈어디에나 공론장이 있지만 진정한 공론장은 아무 곳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소셜 네트워크는 애당초 〈우리의 자화상 그리기 능력을 공개하고 착취하는〉 것을 〈사업 모형〉으로 채택한 플랫폼이라며, 디지털 기반에서 작동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착취 구조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지러진 시대정신을 극복하는, 허구의 존재론적 좌표 찾기
한편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 등 디지털 기술이 총체적 투명성과 완벽한 감시를 불러오리라는 전망이, 바로 그런 상황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디지털화는 무조건적인 해방의 과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디지털화는 자유 잠식의 자동화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와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 자동화는 새로운 착취 가능성들의 형태로 현실 역사에 개입한다.〉
〈자유 잠식〉, 바로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환기하려는 중요한 사안 중 하나일 터이다. 자연 과학적으로 측정되고 증명되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보는 자연주의에 맞서, 존재와 가상의 그릇된 대립을 깨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재를 복원하고, 우리의 〈자유〉에 확고한 실재성을 부여하려는 것. 상상력이 지닌 인간학적 핵심 지위를 재정립하여 인간의 〈자화상 제작 능력〉 즉 〈허구〉의 실재성을 확인하는 이 방대한 철학의 향연은, 위험에 처한 우리의 실재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존재론적 혼란을 극복하고 좀 더 바른 시대정신을 세우는 주춧돌이 되어 줄 것이다.
https://naver.me/FhUl04Xl
‘객관성’이란 내가 착각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나아가 “실재(실재성)란 ... 우리가 그놈들에 관하여 착각할 수 있다는 사정”이며 “착각할 수 없다면, 그 무언가는 실재하지 않는다.”
가브리엘을 포함한 동시대 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던의 시기에 성급하게 포기한 ‘객관’, ‘실재’, ‘객체’의 개념을 복구하려 노력한다. 포스트모던의 ‘구성주의’적 태도가 지금의 문제들을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브리엘이 언급하는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 담론을 펼치면서 실재와 가상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디즈니랜드와 구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가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사고의 배경이 되었다.
포스트모던을 비판하기 위해, 근대(모던)의 사고방식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가브리엘 역시 ‘전체로서, 먼저 존재하는 실재’라는 근대적 개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스트모던의 방식처럼) ‘모든’ 판단이 주관적인 것은 아니다. 가브리엘은 “참인 생각을 붙잡는 성공 사례와 그 반대의 착각, 둘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구성주의의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착각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객관성의 개념- 나아가 그를 위해 필요한 ‘허구’의 개념이 도출된다.
가브리엘은 인간에 관해 논하는 것으로 자신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이 아니고자 하는 동물”이다. 동물처럼 자연의 토대에 있으면서도, 동물이 아니고자 스스로 인간상을 그린다는 말이다. 인간상을 그리는 작업이 ‘허구’에 속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린 허구는 실제 세계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권과 평등을 존중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우리는 사회적인 규범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토론할 수 있다.
“ 규범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파악은 우리가 생각한다는 점, 곧 진실인 믿음과 거짓인 믿음을 품는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이 점을 명시적으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타인들이 우리와 다르게 판단하는 덕분이다. 타인들의 판단은 우리 자신의 판단에 이르는 필수 불가결한 통로다. 타인을 우회할 길은 없다.”
그렇기에 가브리엘은 “의견 불일치가 인간 사회 형성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의견 불일치하는 자들의 공동체”이다. 그점을 인정할 때, 객관성이란 내가 착각할 수 있음에서 나온다고 말할 때, 우리는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 꾸며 낸 대상들이 지표를 통해 정박된 우리의 실재에 (간접적으로) 인과적으로 끼어든다는 점을 인정할 때만 그 (허구와 실재 사이의) 경계가 명확해진다는 사실은 겉보기에만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처한 모든 각각의 상황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초월을 거쳐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적 삶은 항상 허구라는 매체 안에서 움직인다.”
이 말은 사회적인 이슈를 말하려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허구를 도입하는 이유, 나아가 사회적 이슈를 예술의 방법으로 다루는 이유를 설명한다.
https://naver.me/FHlsih5R
독일 관념론의 슈퍼아이돌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다
그는 16세때 칸트,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를 읽
고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 20대때 이미 하이젠베르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현재는 본대학교 석
좌교수다. 80년생 젊은 나이지만 10개국 언어를 한
다는 언어천재이기도 하다
내가 그의 철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평소 나는 인간은
의미의 세계'를 산다고 이야기해 왔는데 그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자답게 이것을 치열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일컬어 :신실재론'이라 부른다. 그는 먼저 세상은
모두 허구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이미 칸트가 사물자체에 대한 인식 한계를 인간은 관념적으로 범주를 부여해 인지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가브리엘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래서 사실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으며 의미만이 존재한디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진 나같은 평자도 누구나 주장할수 있는 내용이고, 그는 오랫동안 연구를 통해 '의미장 이론'을 정립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의 여러 의미장안에서 어떤것은
어떤때는 실존하고 어떤때는 실존하지 않는다. 그래
서 문학과 에술은 비록 허구이지만 의미장안에서 현
존 할수 있다. 사실로서의 허구를 의미로서의 실존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허구를 믿는 인간'으로써 유발하라리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가브리엘의 주장은 보다 이론적이면서 분석적이다
가브리엘은 여기에 더욱더 도발적으로 접근하는데 현대의 자연주의(모든 것은 자연의 인과), 과학주의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인간의
의미장안에서 해석되어지는 것이지 사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등장한 철학이론 중 물질주의에 대한 가장 유의미한 도전이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현재 정설이 되어가고 있는 '뇌과학'도 비판하고 있다. 그의 첫번째 글로벌 히트작 제목이 <나는 뇌가 아니다>이다
인간의 정신은 생물학적 기계주의, 물질 정신론으로
해명할수 없는 의미 파생이 발생하고 이걸 설명하는
뇌과학의 논리는 허점이 많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우리는 자신과 주변 환경이 존재한다고 자연스럽게 믿음.
물리적 대상(핸드폰, 공기 등)은 직관적으로 존재를 인식함.
2. 유발 하라리의 주장 – 픽션으로서의 사회적 존재
종교, 국가, 기업 등은 물리적으로 실체가 없는 픽션.
이 픽션들은 사람들의 믿음에 의존해서 유지됨.
예: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만, 국민이 부정하면 사라질 수 있음.
3. 픽션과 물리적 존재의 차이
바위, 강 등은 믿음과 무관하게 존재함.
반면 국가는 공동의 믿음에 의존하여 존재함.
물리적 존재 → 기초 입자로 이루어짐 → 믿음 불필요.
사회적 픽션 → 상상력과 집단 신념에서 발생.
4. 물리적 존재의 상대성과 구성
물리적 대상도 지각 주체에 따라 달리 인식됨.
예: 코끼리는 사람에겐 하나의 대상이지만, 기생충에겐 하나의 세계.
인간 중심의 분류는 보편적이지 않음.
5. 물리학의 발전과 ‘존재’ 개념의 변화
과거에는 에테르, 중력 등이 실재로 믿어졌지만 지금은 다르게 봄.
지식의 변화에 따라 근본 물질의 정의도 바뀜.
따라서 “변하지 않는 물리적 실재”라는 믿음도 의문.
6. 형이상학적 실재론 비판 (마르쿠스 가브리엘)
형이상학적 실재론: 인간과 무관하게 우주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
가브리엘: 이는 근거 없는 현대의 신화이자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고 주장.
과학이론은 계속 변화하며, 근본 실재는 알 수 없음.
7. 가브리엘의 대안: 의미장 존재론
모든 존재는 특정 의미장 안에서만 존재함.
의미장: 규칙에 따라 배열된 대상들의 장(場).
물리적 의미장: 바위, 나무, 사람 등.
허구 의미장: 유니콘, 소설 속 인물 등.
과거 의미장: 에테르, 마녀 등.
8. 의미장의 특징
모든 대상을 아우르는 총체적 의미장은 존재하지 않음.
어떤 대상도 모든 의미장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음.
따라서 “절대적 존재”는 존재하지 않고, 의미장 내의 ‘확실한 존재’만 존재.
9. 존재 vs 실재 구분
실재하는 것은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가능한 대상.
허구적 대상은 진실과 거짓의 기준이 모호.
예: 홍길동은 소설이라는 기준 내에서 진실/거짓이 판단됨 → 실재로 존재.
10. 진실의 조건
진실은 거짓과 구분될 수 있을 때만 성립.
우리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
11. 가브리엘의 결론
이 세상은 환상이 아님.
우리는 의미장을 통해 항상 실재와 마주하며 살아감.
진짜 존재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다층적 의미장의 집합.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총체는 형이상학적 상상일 뿐.
의미장 존재론은 총체적 설명을 지양하고, 열린 다원주의적 사유를 지향함.
https://m.blog.naver.com/playa_24/223751603455
마르쿠스 가브리엘_허구의 철학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허구의 철학』: 심층 분석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의 허구의 철학(Philosophie des Fiktiven) 은 현대 철학에서 실재와 허구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그는 기존의 실재론(realism)과 반실재론(anti-realism)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신실재론(New Realism)’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을 제안하며, 허구와 실재의 경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개념임을 논증한다. 이 글에서는 『허구의 철학』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가브리엘이 제시하는 철학적 논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본다.
1부: 허구 실재론 - 실재는 무엇인가?
1.1 허구와 실재의 관계
기존 철학에서 ‘허구’는 종종 ‘비실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실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이러한 전제를 비판하며, 허구도 실재의 일부이며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1.1.1 기존 철학에서의 허구 개념
플라톤: 이데아론에 따라 물리적 세계는 불완전한 허상이며, 오직 이데아만이 참된 실재이다.
데카르트: 코기토(Cogito, ergo sum) 를 통해 확실한 실재를 추구하며, 감각 경험은 불확실할 수 있다고 봄.
칸트: 현상과 본체 개념을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현상계)는 주관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며, 절대적 실재(물자체)는 인식 불가능함.
니체: 모든 실재는 해석이며,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산물이라는 입장.
포스트모더니즘: 실재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견해.
가브리엘은 이러한 전통적 입장들을 검토하며, 허구가 단순한 ‘비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에서 실재하는 것임을 논증한다.
1.2 의미의 장(Field of Sense)과 실재
가브리엘은 ‘의미의 장(Field of Sense)’ 개념을 통해 실재를 설명한다. 그의 철학에서 실재란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 체계 내에서 이해되는 방식이다.
실재는 다층적이다.
→ 물리적 실재(자연과학적 세계)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윤리적 실재가 있다.
의미의 장은 특정한 방식으로 실재를 규정한다.
→ 예를 들어, 법적 실재(법률 개념)와 예술적 실재(작품의 의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가브리엘은 허구도 하나의 실재적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2부: 정신 실재론 - 허구를 창조하는 인간의 정신
2.1 인간의 사고와 허구의 관계
가브리엘은 인간이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이 단순한 상상력(imagination)이 아니라, 실재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화상(self-portrait)’을 그리는 존재이다.
→ 인간은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의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자화상은 허구적 요소를 포함한다.
→ 우리는 완벽한 자기 인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일정 부분 허구적인 해석을 가미한다.
2.1.1 허구와 자아
가브리엘은 인간의 자아(self) 역시 일정 부분 허구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하며, 현실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해석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자기 서사(self-narrative)’를 만들어낸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은 일정 부분 허구적 서사에 기반한다.
2.2 자연주의적 환원론에 대한 비판
현대 과학주의(scientism)적 사고는 인간의 정신을 단순한 신경 활동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뇌과학은 의식을 단순한 신경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이러한 환원론을 비판하며, 정신은 단순한 물리적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의미의 장에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부: 사회 실재론 - 사회적 실재와 허구
3.1 사회적 실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는 허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예를 들어, 법, 돈, 국가, 기업, 종교 등의 개념은 모두 인간이 창조한 허구적 구성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재적 요소로 작용한다.
돈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가치가 부여된 실재이다.
법률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는 실재이다.
국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및 정치적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실재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가브리엘은 사회적 실재가 허구적 요소를 포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적인 힘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3.2 디지털 시대의 허구와 실재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은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소셜 미디어 속의 정체성: SNS에서의 자아 표현은 종종 이상화된 자아 이미지로 구성된다.
가상 현실(VR)과 증강 현실(AR): 물리적 실재와 디지털 허구가 혼합되는 새로운 환경.
딥페이크와 AI 허구: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허구적 정보 조작이 가능해짐.
가브리엘은 이러한 기술적 변화 속에서 실재와 허구의 관계를 재고해야 하며, 인간이 허구를 통해 실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허구의 철학이 주는 의미
가브리엘은 허구를 단순한 ‘비실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존 철학적 전제를 해체하며, 허구가 실재의 본질적인 일부임을 강조한다.
허구는 실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허구적 존재이며, 자아와 사회적 실재는 허구적 요소를 포함한다.
현대 사회에서 허구와 실재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의 철학은 허구를 단순한 착각이나 비실재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보며, 허구적 사유를 통해 인간이 더욱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허구의 철학은 현대 철학에서 실재와 허구의 관계를 가장 심층적으로 탐구한 중요한 저서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