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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쨍쨍~♪ 아스팔튼 후끈~♬
벽장에는 곰팡이가~♩ 방바닥은 껍쩍껍적~♩♩
빤쮸한장 달랑차고~♬ 방안에서 뒹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ㅇㅂㅇ)~
덥다 그러니 다 죽자!!!
<필자가 너무 더워서 발광중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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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을 탈환하기 위한 노력들 -제1차 금산성 전투- >
노친네와 땡추가 타고 앉은 금산.
전라도의 이름조차 전주의 '전'과 나주의 '라'를 따서 붙였으리만큼 전주는 전라도의 핵심도시 였으며 더욱이 공업화와 산업화로 평범한 내륙도시로 위상이 많이 줄어들은 오늘날(그래도 아직 전라북도청이 있을 정도지만..)과 달리 전주는 당시 전라도 최고의 행정-경제-정치-문화적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전라감영이 있었고, 왕실의 사초를 보관하는 사고가 있었다.(더욱이 전주는 조선왕실의 본관이기 까지도했다!)
<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전주. 얼쑤~ (응??!!) >
그런 전주와 금산의 직선거리는 고작 47Km. 산맥등으로 우회하는 거리를 감한한다 해도80Km를 넘지 않는 거리다. 군대 다녀오신 분이라면 익히 아시겠지만 이정도 거리는 알보병이라도 군장 챙겨서 '조금 무리' 한다면 하루나 이틀안에 달릴수 있는거리다.
<물론 군대용어로 "조금 무리하다"는 민간용어 "김부장 이 씨박새퀴!"랑 맞먹지 말입니다>
이런 금산에 1만 7천이 넘는 정예병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편 마지막에 본인이 표편한대로 [불화로를 머리에 이고있는 지경] 이었던 거시다. 아니 오히려 이 표현조차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로 압박적이었다.
게다가 금산은 [전라도 진출의 교두보]라는 이점을 제외한다 해도 일본군에게나 조선군에게나 중요한 땅이었다. 얼핏 잘 이해가 안 가신다는 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교통요지인 대전과 천안이 어느 동네에 쳐박혀 있는지 우리나라 지도를 빨리 살펴 보시기 바란다.
일본군 점령지가 부산에서 평양까지 대각선으로 한반도를 종단하는 형태였던 만큼 일본군에게는 중간연결지. 즉 사람으로 치자면 허리와 다름 없는 충청도 지역이 매우 중요했다. 더욱이 간지좔좔 이순신 장군님하 활약으로 인해 서해 진입로가 봉쇄된 당시로서는 충청도 일대의 연결로가 끊어질 경우 평양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군 선발대는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게 고립될 위험조차 있었다.
더욱이 비교적 험악한 지형으로 인해 수운이 발달한 조선의 사정을 생각해 볼 때 한강을 통해서 강원도와 경기일대가 연결되고 문경쪽으로 소백산맥 하나 넘어가면 경상도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충청도의 가치는 더욱 부각 되는것이어따.
여튼 각설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충청도는 [일본군 남북 연결로]와 [전라도 진공의 교두보]라는
두가지 요점으로 인하여 조선군과 일본군간의 밀고 당기는 힘싸움이 일어날수 밖에 엄는, 그런 곳이었다. 당연히 조선군은 이곳을 탈환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런 이유로 아직 이야기엔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도 않은(..) 조헌이 한참 병력을 모으고 있을 무렵인 7월 초순경에 의병장 고경명이 이끄는 전라도 의병의 주도로 제 1차 금산성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
<우려먹기의 진수>
빛고을 광주에서 군대를 일으킨 고경명. 경명이 횽은 운이 좋아서 삑사리가 크리티컬로 들어 맞은건지 치밀하게 짱구를 굴려서 일본군 주력이 비어 버린 금산을 노린건지 몰라도 참으로 적절한 때에 금산앞에 떡 하니 나타나셨다. 고경명군이 금산성을 둘러 싼 날짜는 바로 7월 9일. 바로 전날인 8일날 배나무 고갯길에서 포석궁궁궁포포궁석의 자비심 업ㅂ는 40단 콤보로 까대는 권율군에게 죽을 똥을 싸고 금산으로 돌아온 일본군에 다시 한번 샤스킥을 날리는 실로 간지나는 시간차 공격이었다.
당연히 7군 오야붕인 고바야가와씨, 졸라 쫄았다.
정담이랑 곰고개에서 멱살 쥐어 잡고 싸웠던 6군의 에케이는 전주성 성벽 관광만 해 보고 돌아 오느라 아직 채 금산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돌아온다 해도 정담에게 곰고개에서 걷어 차인 옆구리는 욱신욱신하고 박치기에 강냉이 몇개가 흔들거리등 썩 믿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고바야가와의 7군도 애시당초 조선으로 출병했을 때의 병력은 1만5천 가량 되었으니 언뜻보기에 전력상으로는 압도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아닌 것이 충청도의 기타 지역의 치안유지와 후방경비를 위해 분산배치 시켜 놓은 병력도 그 숫자가 상당하거니와 무엇보다도 7군 자체도 바로 전날 FM대로 죠낸 까대는 권율에게 배나무 고갯길에서 손발리 오그라지게 죠낸 두들겨 맞은 후유증이 심했던 것이다.
<고바야가와씨 눈에 비친 경명씨(틀려!)>
당연히 졸라 쫄은 7군 오야붕 고바야가와씨 금산 성문을 걸어닫고 그 안에 틀어 박혔다.
- 아~ 씨바~ 이젠 어쩌지? 아~ 씨바씨바씨바씨바~
9일, 고경명이 이끄는 조선군은 금산을 둘러싸자 마자 즉시 몰매를 놓기 시작한다. 30명 안팍의 돌격조를 편성해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개돌..아 이게 아니구나;; 성문을 폭파하고, 성벽 주변의 민가를 불태워 연기로 일본군의 시야를 방해하며, 포격을 가하여 성내의 건물들을 불 태우는 등 종일 공격을 퍼부었으나 지극히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일본군이 지키는 성을 탈환 하는데는 실패 하고 만다. 날이 저물자 공격군을 철수시킨 고경명은 야습에 대비, 야음을 틈타 복병을 배치하기 위해 몰래 출성한 일본군도 수십여명을 사살했다.
10일, 고경명은 금산성 서문을 목표로 잡고 의병의 주력을 서문으로 집중투입했다.
씨바 거리면서 조선군의 진형을 살피던 고바야가와씨, 앞서서도 얘기했지만 그는 이미 60세의 노련한 장수였으며 본토네 30만 석이라는 큰 영지를 지닌 실력자였다. 서문에 공격이 집중되는 것을 보며 안절부절 하다가는 동문의 공세는 비교적 약하다는 보고를 듣고는 바로 짱구를 팽팽 소리나게 굴렸다.
-야 이 새퀴들아~ 죄다 동문으로 튀어나간다~~ 동문이다~ 10초 준다. 8초,9초 다 필요 없다. 10초다.
7군 오야붕 고바야카와 지휘아래 과감하게 출성공격을 감행한 일본군은 비교적 포위망이 얇은 동문의 조선군들을 하나씩 격파하는데 성공했고 이곳을 책임지던 곽영 휘하의 관군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라고 쓰고 도망이라고 읽는다)함으로 조선군의 포위망은 구멍이 뚫렸다.
-아따 썅!! 밀어!! 싸게싸게 밀어붙여!
-서문 놈들도 꽤나 버티는 구마. 잉! 확 눈깔에 먹물을 쪽 빨아 뿔라.
-@#$%#@$%#$%#@$%@#!!
-이것이 뭔일이래냐? 웜매~ 뒤에서도 총알이 날아 오네~
-워매!! 포위망에 구멍이 뚤려 부렀네!! 뒤에도 왜놈이여!!
-큰탈 나부렀네~ 이를 우짜쓸까잉!!
-으어~ 서문이 열린다!! 왜놈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문 포위망을 돌파한 일본군이 우회를 성공해서 후방을 압박하고 서문의 일본군도 과감한 출성공격을 감행하자 앞뒤로 적을 맞게 조선군은 결국 혼란에 빠지고 만다. 퓨덜 소드맨의 닥돌에 밀리타 스피어맨들의 진형이 개판이 되고 후방의 아쳐들이 깃발 날리며 Weavering 상태가 되자 대빵 고경명에게 후퇴를 건의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경명이횽은 후퇴를 거절하고 끝까지 이리저리 달리며 재집결 뿔나팔을 울려대고 [Come Back You Coward!]를 외치며 전투를 독려 하다가 끝내 [Your General has fallen!]메세지를 보고말았다(..) 일본군의 클리어 빅토리였다. 로드세이브 신공이 안 먹히는 상황에서 조선군으로 서는 대략 낭패라고 할 수 있겠다.
이로서 전라도 침략의 교두보인 금산성을 탈환하려는 조선군의 1차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거시어따. 곽영이 새퀴 좀만 더 버티지 ㅆㅂ. 이건 툭하면 도망이여.
<후 . . . 이 새퀴가 녹봉을 똥꾸녕으로 쳐 먹었나>
< Noblesse Oblige -가진자의 의무- >
노블리스 오블리쥬. 이처럼 조헌에가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가진것이 많을수록 자기 한 몸 건사해 도망치기 바쁘던 때에 조헌은 가진자의 의무를 실천할 줄 알았다. 본인이 이 졸문을 써보겠다고 깝쭉거리며 이런 저런 자료를 쑤셔 보기만해도 조헌 선생에 대한 본인의 단상은 이랬다.
- 성리학 광신도지 뭐. 별거 있겠어? 그나저나 책상 물림치고 전투력은 놀랍네. 뽀글이 친군가-_-;;
<이 친구 처럼 조또 없는 주제에 그저 악과 깡으로 개기기!! . . 아닌가? . . 어!?>
그러나 김화백의 만화보다 뻔한 패턴이듯이 자료를 찾아보면 찾아 볼 수록 조헌 선생의 행적은 본인에게 놀랍게 다가왔다. 사실상 비주류로 권력의 가장자리를 맴 돌았으면서도 언제나 중앙에 쓴소리를 하길 마다하지 않았고,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했으며, 국난에 임하여 가지고 배운자가 행해야 할 바를 알았다. 우리 시대에 실종 되어 버린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표상이라고 본인이 표현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 . . 지나치게 분위기 잡은것 같다. 해골에 쥐가 나는것 같다 . . ㅅㅂ . .
뭐-,.-);;;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애당초 무장공비는 글을 쓰며 국사시간에 잠이나 퍼자던 아무개도 즐겁게 읽을수 있고, 기독교의 목사와 조선시대의 지방 관직 목사도 구분 못하는 정신분열증 캐초딩도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너무 감상적으로 무게 잡는거 안좋아한다.
그리고 솔직히 . . .
<이런거 재미 업ㅂ다규 !!!!!!!!!!!!>
안그래도 해골 복잡한 세상인데 이런 뻘글도 딱딱하면 세상 퍽퍽해서 어디 살겠는감. 대강 철저히 쓸꺼니까 오늘도 그러려니 하시라 독자제헌이여. 뭐 사실 장사 하루이틀 해 보는 것도 아니잖오 -ㅂ-) ㅋ
<독자제헌 : 닥치고 진행>
어험-_-;;;;;
조헌 이 양반은 1544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응지는 가난한 시골 양반이었고 족보나 벼슬등을 떠나서 일단 땡전 한 푼 없이 가난하다는 점부터 ☆ 볼일 없는 집안이었다. 조헌도 어린 시절에는 직접 소꼴을 베어 소 먹이고 나무 해오고 밭일을 하는등 근로장학아동(..)을 면치 못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것도 당시로는 조금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20세가 넘어서였다. 20세의 나이로 성균관에 입학한 그는 2년후 문과에 급제해 교서관 부정자/온성 도호부 훈도등의 벼슬을 지냈다.
백과사전엔 그냥 [...벼슬을 지냈다]라고 얘기해버리고 훌렁 넘어가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히 대단치 않은 벼슬이었다는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교서관은 중앙직이긴 하지만 책을 인쇄하고 활자를 찍어내거나 문서를 교정하는 등 잡다한 행정업무와 각종 서류에 찍을 도장과 종묘제례에 쓰는 제수용품등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 해하실 독자제헌들을 위해 뻥 조금 보태서 조금 더 쉽게 얘기하자면 [미스 조 이거 복사 두장 부탁해, 그리구 여기 인주랑 도장도 좀 가져와. 아 그리고 커피도 한잔] 정도의 일을 하는 기관이었다-_-;;
급제 이듬해에 제수 받았다는 온성 도호부조차 품계는 종 9품으로 사실상 9급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품계인데다 덤으로 외직이었다. 훈도란 500가구 이상의 도시에서 젊은 선비들을 모아 가르치는 . . . 긍께 사실상 고등학교 선생-_- 정도의 일이었다. 거기다 위치 조차도 멀고 먼 북쪽끝. 강 하나 건너면 한겨울에 소가 얼어죽는다는 간도땅과 가까운 함경도 온성이었으니 . . .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조헌이 얼마나 권력과 상관없는 벼슬을 하며 외지에서 싸고 돌았는지 독자제헌도 잘 아실듯 하다.
<돈업ㅂ구 빽업ㅂ으면 벼슬을 해도 하는게 아녀~>
몇년지나 26세가 될때까지 품계도 좀 오르고 했지만 조헌은 지방 공무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이때 홍주목 교수로 부임한다. 교수는 종6품으로 종 9품의 말단인 훈도에 비하면 자리가 좀 높아지긴 했다만 교수가 훈도랑 차이 나는 점은 부임지가 교육을 담당하는 도시가 좀 더 크다는 차이 밖에 없다. 요즘으로 치자면 철원에서 평교사로 고딩을 가르치다 인천이나 대전쯤으로 학생주임으로 전근 온 정도?
하여튼간 별 문제없이 홍주에서 교수직을 지내던 조헌은 이즈음 토정 이지함과 친구먹고 우계 성혼, 율곡 이이등에게 배우며 사실상 서인 계열의 학풍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교서관 정자로 다시 중앙직으로 들어온 조헌의 경력에 크리티컬을 날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은 의외로 작은일에서 발생했다.
- 대비 曰 : 불공을 드리게 님하 향 좀 주세연
별일이 아니라면 진짜 별일이 아닌 일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하고 유교를 국시로 삼은 이래 숭유억불 정책은 유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유지 되었지만 불교의 세력 또한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성계 조차도 쓸쓸해진 말년에 불교에 심취했으며 세종도 불사를 여러번 지원했고 세조의 경우에는 [부처의 도가 공맹의 도보다 낫다]라는 발언을 하며 불교에 호의적 모습을 보이던게 조선 초중기의 모습이었다.
특히나 불교를 신봉하는 이런 경향은 대비와 같이 궐안의 여인들일수록 강하기 마련이라 이정도 요청은 당시로서는 별다를 것도 없는 요청일진데. 조헌은 한마디로 거절해버렸다
- 즐!! 킹마마님하 이거 종묘제례에만 쓰는 향 이거등요?
그러고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궁중에서 하는 불교행사에 교서관의 향을 못쓰게 해주3]하고 선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런 조헌의 과격한 행동은 불교라면 박박 갈아서 개밥으로 주고 싶어 하던(..) 유학자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본인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왕이라도 사초를 볼 수 없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사관의 정신.
[왕이라도 용봉장막을 함부로 칠수없다!]라고 간하고 표표히 죽어가는 선비정신.
즉 [이 향은 종묘제례에 쓰는 나라의 물건. 왕족이라도 사사로이 쓸 수 없습니다]라고 떳떳하게 윗사람에게 간언하는 조선 특유의 언론정치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뭐? 아냐? 아님말구 음훼훼훼훼~
<아니면 말지 말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
하여튼 기건 아니던 조헌은 이 일로 강직함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반대 급부로 선조에게 오지게 찍히는 계기가 되었다-_-;; 선조가 노발대발하면서 자신의 상소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헌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벼슬을 버리고 옥천으로 낙향 해버렸다.
조헌표 성깔이 드러난 최초의 사건 되겠다.
독자제헌들이여 저런 성격의 사람이 어떤지 잘 알것이다. 저런 타입의 사람 최대 단점은 주변 사람을 졸-_-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_-;;; 동기고 선배고 후배고 엄따. 티끌 만큼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조낸 물고 늘어지며 사람을 겁나게 피곤하게 만든다;;
하물며 예나 지금이나 엉망진창인 정치판에서야!!
채근담에 말하길 [물이 너무 맑으면 큰 고기가 없으며, 사람이 너무 곧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조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겠지만 그의 그런 성격은 [임직->파면-> 낙향->은거->임직->파면->낙향->은거->임직->파면->귀양->임직….]이라는 졸라 산만한 싸이클을 무한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이 일으킨 작은 파문이 잠잠히 가라 앉아 갈 무렵 -그러니까 대략 1년후- 선조는 조헌을 다시 부른다. 그리고 직급도 두 직급 올려서 종8품인 교서관의 저작으로 임명했다.(저작은 때때로 왕과 함께 공부하는 경연에 참석하기도 하는 벼슬이다.) 아마 선조는 내심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한게 아닐까 한다.
- 너 잘난거 나도 안다. 그러니까 시골 구석에 쳐박혀서 그만 까칠거리고 와서 나를 위해 일 좀 해줘.
이쯤되면 한 수 접고 못이기는 척하면서 다시 공무원 밥을 먹을만도 한데 조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아놔. 난 불교행사에 향이나 내줘야 되는 자리는 싫데두?
- 긍께 말여 왕 니가 [아무리 대비라도 궁중불교 행사에 교서관 물품을 쓸 수 없다.]라고 한마디 해서 도장만 찍어주면 하면 나도 일 한다니까? 싫어? 그럼 나도 않해.
라고 다시 상소를 올리면서 러브콜을 날리던 선조에게 지대로 튕겼다.(사관은 논한다 이것이 왜국의 옷고름 스르륵 고쟁이 훌러덩 오락에 자주 등장하곤 하던 春大來란 말인가?) 그리고 이쯤되면 독자제헌도 눈치 까셨겠지만 당연한 순서로우리의 선조는 빡이 돌아서 폭발 해버렸다.
- 조헌! 조헌! 이 @#$%#@$%#$ 씨박새끼!
임진년의 전쟁으로 인해 선조실록의 사초는 거의 훼손 된지라 그날 조헌의 상소에 대한 선조의 반응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조헌의 튕김 이벤트에 선조가 선택지를 잘못 골랐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대로 폭주해 버렸다는 것이다. 갖은 폭언과 함께 조헌을 죽이라고 날뛴것만은 확실한듯 하다. 물론 다른 나라 같으면 '넵참수ㅋㅋㅋ'하고 왕이 보낸 프로페셔널 킬러에게 즉시 모가지가 날아가는 [BAD ENDING1]을 봤겠지만 조헌에게는 다행히도 조선의 정치체계는 그렇지 않았다.
<연산군이 아닌이상 조선의 정치체계로는 이럴일이 업ㅂ다>
선조가 연산군을 능가하는 폭군이 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상소를 트집잡아 선비를 죽이기란 불가능한 일. 물론 선조가 화 좀 내고 으르렁 좀 거리고 거품 좀 물고 마빡에 핏줄 좀 쎄우고 신하들을 진땀 뻘뻘 흘려가며 말리고 하는 실랑이가 좀 있었겠지만 내려진 결론은 하나.
- 쉿파~ 뭔 AT필드라도 전개했냐~ 나 왕 맞아? 하여튼 조헌이 너 이 쉬박새퀴 두고보자.
그 뒤로는 조헌은 비교적 조용하게 지낸듯 싶다. 명나라에 사신으로도 다녀오고 다시 교서관에 와서 박사(종 7품)도 하고 호조좌랑, 예조좌랑,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 . . 써놓긴 했는데 솔직히 나도 뭐하는 벼슬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감찰이나 좌랑 정도 되는 벼슬이면 일선에서 제일 높은 실무직 관리라는 정도 밖에;; 뭐ㅡ,.ㅡ) 그동안 조헌이 짬밥도 좀 늘었고 봉향 반대 이벤트 후 조헌이라는 이름값 꽤 높아졌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통진 현감으로 있던중에는 행패를 부리는 관노를 잡아 문초하다 때려죽인 일 때문에 탄핵을 받아 부평으로 3년여를 귀양을 가기도 하고 귀양지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듣는등 우여곡절도 있었다.(사관은 논한다. 조헌이 후일 귀양에 풀려난뒤 동생으로 부터 "어버님이 임종전에 소고기를 드시고 싶어했지만 못해드렸어요."라는 들은후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대다수의 기록들이 [조헌이 효자네요 아흣T^T]하며 애널썩힝을 하나 이는 저승꽃이 활짝 펴서 다 죽어가는 영감탱이 고기 한 쪼가리 못 먹일정도로 집안꼴이 말이 아니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1582년 귀양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몇몇 벼슬을 지내나 보은현감으로 있던중 1584년 조헌의 스승 율곡 이이가 서거한다.
율곡 이이. 단순한 주자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 뿐만 아니라 조세제도의 개혁과 민생문제에 대하 고심하는등 실용을 추구하는 정치가 였으며 일생 동안 날로 심해지는 동서인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농담 따먹기는 잠시 접어두고 실록의 한 토막을 꺼내보자.
[오늘의 형세는 반드시 경장(개혁)을 한 뒤에야 백성을 구제할수 있는 형세입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경장(개혁)을 말하면 번거로이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 하니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조정에 좋은 계책과 정직한 의논이 귀에 가득할 지라도 백성의 곤궁함과 나라 재정의 곤궁함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어 마침내는 멸망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선조 8년 6월 24일-]
[민생의 극심한 폐해를 바로 잡으려면 옛법을 경장(개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대개 법이 오래되면 반드시 헛점을 악용해 사익을 챙기는 무리들이 나타나며 반드시 폐단이 생기는데 이는 고금의 공통된 걱정거리 이옵니다. 폐단이 큰 옛법을 그대로 두고 경장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착한 정치를 기해할수 없사옵니다. -선조 7년 2월 1일-]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필자가 글 쪼가리 두두리며 나름 많이 배웠다.(공부를 안 할 수 없는게 조헌의 행보를 이해하려면 선조 초기의 붕당정치에 대해 전반적 이해가 필요하더라. 본인이 글을 쓰다보면 거의 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야 된다 십라.....) 여의도에서 맨날 싸우기 바쁜 국개으원들도 율곡 이이의 이런 정신을 좀 보고 배운다면 소원이 없을듯 하다.
<괜히 오천원 권에 새겨 넣은게 아니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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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금산전투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왠지 초기의 붕당정치에 대하여 논하는 논문이 되었스빈다 ㄳ
첫댓글 낄낄낄. 유익한 글 맛깔나게 잘 읽었습니다.
사실 율곡의 개혁안중 현실성이 없던것도 있었습니다만(......) 율곡이 단순한 사상가만이 아닌것은 맞죠
아놔~~ 사약을 들라 짤방이 최고였습돠~!! ㅋㅋ~!!
전주.. 조선왕국에있어서는 성지인곳이지요. 흡.. 록타!
록타!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자! 참 정겹습니다(...)
오호라~
오....
'사약을 들라' 최고입니다. 재미있게 술술 넘어가는군요.
마뷁노기 퍽커스에 춘대래(...)까지 = ㅈ=;; 꼬미사르도 모에당으로 이적하는 것이빈까
[마뷁노기 퍽커스]가 멈미카?
어익후 손이 미끄러?네. 데햇~을 외치며 오늘도 무기 망가뜨리시는 마비노X의 그 빌어먹을 퍼거X 말씀하시는 거겠?. 짤방보이 2번째가 아마도 퍼거스........
야광/ 아 그렇군요... 전 줌홍의 모팔모인줄 았알습니다;;
짤방들이 너무너무 잼있습니다. 저런 짤방들 다 어디서 구하시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잘봤습니다. 다음에도 기대하겠습니다.
횽아 무서워서 대글 달아요
재밌어요~ 다음편이 기대되는...
오... 기다리던 중편이 올라왔네요. 오늘도 배잡고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무장공비님 최고지 말입니다~
짤방없으시다더니 대체 사약을들라는 ㅋㅋㅋㅋㅋㅋㅋ 아 내용도 충실합니다.ㅋ
잘 읽었습니다.비상한 두뇌와 타고난 해학의 조화의 글이네요.하지만,글의 마무리가 왠지 필자의 AGS감염이 추정되는것은 왜일까요..ㅋㅋㅋㅋ
하하하 ㅡ,.ㅡ;; 비상한 두뇌라뇨;; 저처럼 글을 끙끙데며 쓰는 사람도 없을겁니다. 쓰고 고치기를 하두 많이해서 워드작업이 아니면 글쓰기가 안 될 정도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지적은 할 말 없습니다(..)
ㅋㅋ 어쩔 수 없는거죠. ㅋㅋ 쓰다보면 어느순간 뇌가.;
애널썩힝에서 폭소했습니다 암튼 숨겨진 조헌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군요
아.. 아놔.. 미치겠다 진짜..
해학이다! 쿨럭!
아놔 짤빵들보고 완전 털석 ㅋㅋㅋㅋㅋㅋ 특히 록타~~완전 대박 ㅋㅋㅋ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