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가시
이승리
파 먹힌 앞니가 드러날까 봐
유인물에 머리를 숙였다
돌아가며 일어나 자기소개를 할 땐
빠짐없이 손뼉을 쳤다
예배에 처음 온 사람이 받는
장미 한 송이가 자신은 어떤 꽃인지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새 신자들은 서로 인사하며 자릴 떴다
고개를 드니 전도사와 소그룹 장에게
앞 옆을 봉쇄당한 채 혼자 남겨져
- 지적장애인은 어울릴 수 없습니다
- 공황장애지만 지적장애는 아닙니다
취급 주의 스티커처럼 꽃은 자신에게서
장미를 뜯어내고 가시만 박기로 했다
크든 작든 중간 정도이든 가능한 한
교회들로부터 떨어진 방향을 찾아
열외가 된 주일을 걸었다
하나님 아빠 미안해요
타버린 어금니 속으로 혀를 숨겨
피어있는 구멍을 닦는 것 같았다
공동체
한때 지인이었던 사람의 결혼 소식을
건너 듣는 밤
전화를 끊고 양치질한다
반쯤 상실된 치아가 돋아날 리 없는데
입천장 벌려 유적을 만져본다
반려 거울 위 번지는 흰 숨
피 섞인 침방울 맺힌 얼굴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걷는 게 힘들어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는다
잠든 자녀 머리맡 쓰다듬을 나이에
떨어져 나간 액정 필름 어루만질 때
페이스메이커 일행이 지나간다
수다와 호응과 이에 미소를 머금는
걷기.
아빠가 안수집사 엄마가 권사였더라면
청년부 축복 속에 행진했을 텐데
가로등이 싹둑 벤 빗줄기가 의치 같다
수북하게 자라진 않는 수염을 깎고
책 먼지 일으키는 짙은 은발의
오르골,
몸집보다 큰 망토 걸친 어린 왕자가
펜촉처럼 칼을 꽂고 원판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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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 두 편
피는 가시 / 이승리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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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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