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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요한 묵시록 12,10-12ㄱ
요한 12,24-26
미워하란 말은 흘려보내란 뜻이다
2014년 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주님의 종들을 복자품으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많은 성인이나 복자들의 삶은 우리가 세세히 잘 알지는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윤지충 바오로가 어떠한 분이신지, 왜 124위 한국 복자들의 대표가 되었는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자는 누구일까요? 이승훈 베드로입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사제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윤지충 바오로인 것입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함께 순교하였지만 아무래도 윤지충 바오로가 더욱 용맹하였고 먼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기에
복자들 중 첫째로 놓은 것 같습니다.
윤지충 바오로가 순교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사’ 때문이었습니다.
제사 문제가 불거지고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제사를 금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양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윤지충 바오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위폐를 불살라버리고 천주교 예절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전라 감사가 그를 문초할 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그것을 부모처럼 공경했다면, 땅에 묻는 것은 혹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 불사를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그것을 부모처럼 공경했다면 어떻게 그것을 불사를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신주에는 제 부모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기 때문에 불사른 것입니다.
그것을 땅에 묻든 불사르든 먼지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매를 맞아 죽어도 천주교를 버리지 못하겠느냐?”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다면 제가 어디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전라 감사는 윤지충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문을 당할 때 피를 흘리고 살이 터지면서도 찡그리거나 신음하는 기색을 얼굴이나 말에
보이지 않았고, 말끝마다 천주의 가르침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임금의 명을 어기고 부모의 명을 어길 수는 있어도 천주의 가르침은
비록 사형의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다고 하였으니, 확실히 칼날을 받고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뜻이 있었습니다.”(「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791년 12월 8일 윤지충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얼굴로 군중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면서 씩씩하게 나아갔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33세였고 “예수, 마리아”를 여러 번 부르며 태연하게 칼을 받았고, 9일 만에 친척들이 시신을 거둘 수 있었는데 몸이 전혀 상하지 않았고 방금 피를 흘린 것처럼 형구에 묻은 피가 선명했다고 전합니다.
그 피를 닦은 손수건을 만진 이들의 병이 나은 일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저렇게 버리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 것일까요, 미워한 것일까요?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기에 이웃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요?
사람은 자기 목숨과 자기 자신이 같은 것이라 혼동합니다.
목숨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아 소유한 것입니다.
목숨을 잃어도 자신은 남습니다. 목숨은 피입니다.
피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는 생성되었다가 죽는 것을 반복합니다.
만약 피를 좋아해서 자신 안에 모아두려고 하면 썩어서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따라서 피를 몸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생명도 흘려보내야 자신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를 미워하라는 말은 붙들고 있지 말고 흘려보내란 뜻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맏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며느리에게 흘려보내지 않아서 며느리도 죽고 자신도 아들의 사랑을 잃게 된 예화를 제가 자주 씁니다.
이것이 생명과 같은 자녀를 붙들어놓으려고 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안에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워하라는 말은 세속적인 미움이 아니라 ‘흘려보내라’라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책에서 선물 받았던 난을 흘려보내니 그렇게 마음이 편했다는 것처럼,
내가 가진 모든 것, 그것이 생명일지라도 그것을 흘려보내야 많은 열매를 맺고 자신도 영원한 생명을 계속 공급받게 됩니다.
피가 흐르지 않고 죽지 않으면 새로운 피가 생성되지 못합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면 지금의 생명이 썩지 않게 이웃에게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또한, 내가 흘려보낸 목숨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시 얻는 방법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미워하는 것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5월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요한 12,24-26
주님을 섬기는 것을 어찌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124위 순교 복자 시복식이 거행된지 벌써 1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참 세월이 빠릅니다.
통상 바티칸 외에서 거행되는 시복식은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집전하는 것이 보통인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친히 방한하셔서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식을 거행하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기념일에 다블뤼 주교님께서 쓰신 복자(福者) 윤지충 바오로(1759~1797) 대한 약전을 읽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는 현재 충남 금산군에 위치해 있는 진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산은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 그곳에 가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념하는
진산성지(대전교구 관할)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의 가문은 여러 정관계 인사들을 배출한 명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예의바르고 총명했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25세 되던 1783년 과거에 응시해서 진사(進士)를 취득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물론 가문의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도 컸습니다.
그런 윤지충 바오로가 1784년 겨울 경성에 머물렀을 때,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놀러갔다가
운명 같은 책을 두 권 발견합니다.
그 유명한 ‘천주실의’와 ‘칠극’입니다.
순식간에 두 권의 책을 읽은 윤지충 바오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두 권의 책을 사본으로 만들어 계속 탐독하였습니다.
그의 내면에서 시작된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갈증은 그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있는 여러 가톨릭 관련 서적들을 읽은 그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좋은 교리교사로부터 예비자 교리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가톨릭 관련 서적을 스스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포한
윤지충 바오로의 신앙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과 진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그 자발성, 그 적극성 앞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지충 바오로의 하느님과 진리, 새로운 세계와의 달콤했던 순간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조상제사 문제, 신주 문제를 이유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그는 즉시 관아로 자진 출두했습니다.
진산 군수와 윤지충 바오로 사이에 이루어진 심문 기록이 아직도 정확히 남아있습니다.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탁월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군수: “소문이 매우 심각한데, 근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군수: “그것이 사교가 아니냐?”
윤지충 바오로: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진산 군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윤지충 바오로를 잘 설득해서 배교시키려고
안간힘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군수는 탄식을 터트리며 그를 전주 감영으로 이송시켰습니다.
전주 감영의 감사가 또 다시 묻습니다.
감사: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감사: “그렇다면 천주의 종교가 사교가 아니더냐?”
윤지충 바오로: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이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 “너는 죽게 되더라도 이 종교를 버리지 못하겠느냐?”
윤지충 바오로: “만약 제가 높으신 아버지를 부인하게 된다면, 살아서든 죽어서든 어디로 제가 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 때문에, 견고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임금 앞에는 반역자, 부모 앞에는 불효자, 친구들 앞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윤지충 바오로는 단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함을 드러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에 대한 사형은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30대의 곤장을 맞고 난 그에게는 효수형(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이 언도되었습니다.
1791년 12월 8일 그는 33세의 나이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강론>
(2024. 5. 29. 수)(요한 12,24-26)
<예수님의 기쁨>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26).”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오셨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ㄴ).”
그래서 신앙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영원하고 참된 기쁨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이고, 그 기쁨에 대한 희망 속에서 ‘지금’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여기서 ‘먹고 마시는 일’이라는 말은, 음식 문제에 관한 율법 규정들을 가리키는데, 넓은 뜻으로는
‘율법 준수만 강조하는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키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만 신경 쓰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사랑도 평화도 기쁨도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강제노동입니다.
“찡그린 성인은 없다.” 라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순교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성인 성녀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쁨’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뻐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이
성덕을 쌓는 일의 출발점입니다.
2) ‘밀알’이라는 말에서 다음 시편이 연상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여기서 ‘환호’는 ‘큰 기쁨’을 뜻합니다.>
이 시편은 씨를 뿌릴 때 누구나 울게 된다는 뜻은 아니고, 또 울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씨를 뿌릴 때 울었더라도 추수 때에는 크게 기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기쁨을 알고 있는 농부는 씨를 뿌릴 때부터 기쁨으로 뿌립니다.
<그 기쁨을 모르거나 안 믿으면, 씨를 안 뿌릴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을 수도 있고, 슬픔과 아픔을 겪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힘든 일들이 신앙인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는 못합니다.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은 많은 열매를 맺을 때의 기쁨을 희망하고 믿기 때문이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 ‘기쁨’에 초점을 맞춰서 묵상해야 합니다.>
3) 요한복음에 ‘수확의 기쁨’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요한 4,35ㄴ-36).”
여기서, ‘씨 뿌리는 이’는 아버지 하느님이고,
‘수확하는 이’는 예수님인데,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이 말씀은, 아버지와 예수님이 함께 씨를 뿌리시고, 함께 수확하시고, 함께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 신앙인 전체가 참여해서 함께 기뻐합니다.
사실 인류 구원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의 기쁨이고, 예수님의 기쁨이고,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완성되는 것이 구원 사업입니다.
십자고상에 있는 예수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날마다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기쁨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교자들의 기념일이라고 해서 꼭 박해, 고난, 고통만 묵상해야 하는가?)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쁨의 생활’이 되고,
그리스도교가 ‘기쁨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기쁨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슬픔과 고통은 정신을 차리는 데 효과가 있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기쁨’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4.6-7).”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