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주교좌본당 사순절특강 <3>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온다
고통 말고 '주님의 선물' 봐야 신달자 시인
▲ 신달자(엘리사벳) 시인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산다면 수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그렇다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나의 고통은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삶을 살아왔다. 내가 35살 때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남편은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20일이 지났을 때 나는 우연히 혜화동성당에 갔다. 걷다보니 우연히 혜화동성당 앞을 지나친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을 만났다. 그때 나는 무척 외로운 상태였다. 남편은 아팠고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은 나에게 그저 "다 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예수상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성당에 간 지 3일째 되는 새벽 남편은 기적처럼 깨어났다. 그는 나에게 편안한 목소리로 "나 많이 잤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깨어났지만 그의 몸은 마비가 됐고 나는 수많은 날 동안 그의 몸을 문지르며 남편의 몸이 깨어나길 기도했다. 남편은 조금씩 나아졌고 마침내 퇴원했다. 퇴원한 날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기쁠 줄만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아난 것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치료비는 걷잡을 수 없었고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남편을 살려낸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아있는 것이 저주스러웠고 성모님께 "남편을 왜 깨어나게 했냐"고 원망했다.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함께 살던 시어머니마저 쓰러졌고 의사는 시어머니가 한 달 이상 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잘 해드리자'는 생각으로 정성을 쏟아 간호를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의 몸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부님을 찾아가 "시어머니 좀 빨리 돌아가시게 해주세요"라고 하소연도 했다. 신부님은 "조금만 더 참아보라"며 시어머니의 영세를 권유했다. 시어머니가 세례를 받은 후 함께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니 다시 마음에 폭풍이 일고 시어머니가 귀찮아졌다. 그렇게 두 환자 병수발을 하다가 어느 날 내가 쓰러졌다.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다음날 새 삶의 의지를 다지고 대학원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중환자를 둘이나 돌보며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이번엔 돈이 없었다. 친척 언니 도움으로 겨우 대학원을 등록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내 품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나는 "어머니 한 달, 아니 일주일만 더 사세요"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시어머니는 '나라도 미워하며 이를 악물고 살라'고 그렇게 오래 사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주님의 깊은 뜻이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편은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2000년, 23년 간 긴 투병을 끝내고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남편이 죽고 나서야 그가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붙잡고 힘들다고 하소연할 사람도 생활비를 내 놓으라고 화를 낼 사람도 없다. 이제 고통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005년 내가 암에 걸려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며 하느님을 다시 원망했다. 수술대 위에 올라 "이제 주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통을 주실 거면 지금 다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마침내 수술을 받았고 오랜 치료 끝에 완쾌했다. 나는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받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축복이었다. 고통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건데 내가 예수님이 주신 것을 내려놓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무겁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느님은 고통을 주시면서 좋은 선물도 반드시 함께 주신다. 고통은 혼자 찾아오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것과 함께 온다. 고통이 올 때 고통만 보지 말고 눈을 돌려보면 하느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오늘 나의 고백을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통과 상처가 작아지길 바란다. 하느님이 나를 이곳에 세우신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평화신문, 제1012호(2009년 3월 29일), 정리=임영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