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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사대부에게는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옛날 대부는 예를 지켜 범죄함이 없으므로 면목을 존중해 주고, 또한 절의(節義)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刑 : 형벌 형(刂/4)
不 : 아닐 불(一/3)
上 : 윗 상(一/2)
大 : 클 대/큰 대(大/0)
夫 : 지아비 부(大/1)
출전 :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
형(刑)은 위로 대부(大夫)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배계층은 예(禮)로 다스리겠다는 말이다. 사대부에게는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옛날 대부는 예를 지켜 범죄함이 없으므로 면목을 존중해 주고, 또한 절의(節義)를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게 물(水)이다. 인류 문명이 강(江)을 따라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자연히 강에서 멀어지면 땅을 파서라도 물을 찾아야 한다. 우물(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정(井)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짠 나무틀을 본떠 만든 것이다. 우물을 판 뒤 흙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정(井)에 칼 도(刂)가 붙으면 형(刑)이 된다. 칼로 나무를 잘라 우물이나 갱도의 버팀목을 만드는 형상을 나타냈다. 우물 파기나 갱도 만들기 같은 일은 힘들다. 형벌이란 뜻은 많은 경우 죄 지은 사람이나 전쟁에서 잡힌 포로를 여기에 동원했기에 나왔을 것이다.
예기(禮記)의 곡례(曲禮) 편에 보면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란 말이 있다. 예(禮)는 아래로 서인(庶人)에게까지 적용되지 않으며, 형(刑)은 위로 대부(大夫)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회의 피지배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되 지배계층은 예로 다스리겠다는 주(周)대의 사법 정신을 담고 있다. 대부의 몸에 형벌을 가하지 않겠다는 건 대부가 예를 지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설사 잘못을 할 경우라도 그 체면(面目)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또 한발 더 나아가 대부의 절의(節義)를 장려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절부터는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처럼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지도자가 사라졌다. 바로 장쩌민 시대에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라는 말에 빗대어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란 말이 나왔다. 상위(常委)는 중국의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원들을 가리킨다. 적게는 5명, 많게는 11명이 될 때도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조직 가운데 최상층에 존재한다.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는 결국 정치국 상무위원에 해당되는 중국의 고위 관료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잘못을 처벌할 경우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에 큰 먹칠을 해 일당 집권의 기초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가에선 2007년부터 5년간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원회 서기에 대한 조사설이 흘러 나오고 있다. 형불상상위의 불문율이 깨질 공산이 커진 것이다. 자고로 영원히 지속되는 특혜는 없는 법이리라.
형벌은 위로 대부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대부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존재이므로 예로써 대우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할 뿐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란 말에 대한 斷想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 오경(詩經,書經,周易,禮記,春秋)의 하나로 禮(례)의 이론과 실제를 기술한 예기(禮記) 곡예(曲藝) 편에, '예(禮)는 서인(庶人)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대부(大夫)이상은 형(刑)으로 다스리지 않는다(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 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라는 말이 있다. 즉 서인 이하는 禮로 다스리지 않고 대부 이상은 형(刑)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인간 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고, 무식하고 천한 인간들은 예의를 모른다는 말로, 오늘 이 시점에서 보면 격세지감 한 말로 오늘날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법칙'과 다를 바 없다.
중국 주(周)나라의 동천 이전인 서주(西周) 시대는 사회적으로 엄격한 신분질서가 체계적으로 구성되고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차별적인 통치행태가 시행 되었던 시대였기에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서인 이하는 禮로 다스리지 않고 刑으로만 엄격히 다스리겠다'는 뜻인 반면에, 형불상대인(形不上大夫)은 '대부 이상은 刑으로 다스리지 않고 禮로 다스린다'는 말로, 사전적 뜻은 '형벌은 대부의 몸에는 가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사대부의 면목을 중히 여기고 또 그 절의(節義)를 장려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전하여 오는 기록들을 보면 귀족이나 사대부 같은 지배계급들은 자신의 체면이나 면목 뿐 아니라 사상이나 신념을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사대부들을 禮로 다스린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기 때문에 刑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개인의 신념에 따라 형벌의 경중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禮로 다스린다는 것은 전형적인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되돌아 생각하면 못 배운 평민들은 개인의 가치 기준이 없다고 판단하고 刑을 기준으로 다스리고, 많이 배운 지배계층은 개인의 가치 기준에 따라 禮로 다스린다는 것으로, 이것은 전형적인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평민과 지배계층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재력(財力)으로, 권력이나 배움의 차이도 재력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차별적인 적용은 재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란 논리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도 이런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사례가 비일비재 많이 있다. 처음부터 禮와 刑으로 불공정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법을 기준으로 판단함에도 돈(재력)에 따라 형벌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비리를 돈으로 막는 것이나, 재력가라면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경우 등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하드래도, 有錢無罪 無錢有罪란 이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가장 옳지 못하고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법칙이라고 하겠다. 법 적용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겠다, 아니 정의감에서나 재력에 의하여서가 아닌 사회적인 눈 높이 기준으로 정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이 우리사회에서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할 법칙이라 하겠다.
신문 TV 등 언론 보도를 보고 들으면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법치주의가 위기라고 하는 말이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법대로 살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법조계도 문제라 有錢無罪 無錢有罪에다 有權無罪 無權有罪(유권무죄 무권유죄) 시비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 가운데, 요즈음 들어 여론(輿論) 재판이나 이념(理念) 재판이라는 편파 판결 행태도 국민의 눈에 자주 비치고 있다. 일례로 근래 재판 중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재판이 여론재판의 전형이며, 이념재판은 많다보니 이제는 법보다 판사 멋대로 한다는 의미의 판사 입법(判事立法)이란 말로 불리고 있을 정도이다.
아이러니(irony) 하게도 有錢無罪 無錢有罪를 동양대학 진중권 교수는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자, 이를 두고 有錢集猶 無錢服役(유전집유 무전복역)이라고, 즉 '돈이 있으면 유예(猶豫)이고 돈이 없으면 복역(服役)한다'고 parody(풍자)한 말을 통하여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하여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돈(재력)에 관련하여 有錢天國 無錢地獄(유전천국 무전지옥)이니 有錢有孝 無錢無孝(무전무효 무전무효)라는 속담과 금언 등 재미있는 parody(풍자)한 말들이 우리 주위에 많고도 다양하다. 또한 한명숙 전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관련 재판을 두고 요즈음 들어 左派無罪 右派有罪(좌파무죄 우파유죄)가 법원 판결의 유행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 때도 있는데, 이는 한명숙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관련 재판 때문에 생겨난 parody(풍자)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物質萬能主義로 중병을 앓고 있다. 돈(재력)에 대한 도를 넘는 맹신이 사회 전역으로 퍼져 有錢無罪, 無錢有罪가 사회 전반에 걸쳐 휩쓸고 있는 작금의 실정인데다가, 특히 신문 TV 등 언론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들도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돈의 흐름에 따라 경제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경제 체제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돈을 벌어 이익을 얻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노력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이익을 나누어 갖는 제도이나, 반대되는 제도인 자본주의는 개개인이 자기가 일한 만큼 이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수용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오늘날 자본주의는 경제 발전의 모태지만 물질만능주의와 같은 역기능도 낳기도 한다, 물질만능주의는 돈(재력)을 최고로 여기는 생각, 즉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되고 사악한 믿음을 갖게 하고, 또 돈을 어떠한 일을 성사시키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돈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有錢無罪, 無錢有罪란 parody(풍자)한 말도 나온 것 아닌가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子曰: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하면 有恥且格이니라.
자왈: 도지이정하고 제지이형이면 민면이무치니라, 도지이덕하고 제지이례이면 유치차격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을 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다. 백성을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규제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자연히 선에 이를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글은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 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정편의 이 구절은 법가적(法家的) 방법보다는 유가적 방법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법가에 의해서 통일됩니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총체적 난국에서는 단호한 법가적 강제력이 사회의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치(德治)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治世)의 학(學)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法治)는 난세(亂世)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법가와 유가의 차이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구절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형(刑)과 예(禮)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사회의 지배 계층은 예로 다스리고 피지배 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나라 이래의 사법(司法) 원칙이었습니다.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이지요. 형은 위로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예는 아래로 서인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물론 예의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여기서는 형과 예의 차이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하지요.
예와 형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관계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입장이지요. 사회적 질서는 이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의 기본적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형벌에 의한 사회질서의 확립이 더욱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예는 그 접근 방법에 있어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간관계의 개념으로 재조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법가가 통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가 단명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사실을 들어 법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진한(秦漢)은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진(秦)의 시기는 통일과 건국의 과정이며 한(漢)의 시기는 이를 계승하여 통일 제국을 다스려 나가는 수성(守城)의 시기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법치와 덕치의 비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부끄러움(恥)에 관한 것입니다.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政刑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네다섯 대 중에서 한두 대만 딱지를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타락론(墮落論)'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의 지표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교통법규 위반 사례와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적발된 사람만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 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정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전략적 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조선시대의 형벌제도
우리나라의 전통 형벌 제도는 다른 제도와 비슷하게 중국의 형벌 제도를 참고하여 실시되었습니다. 한(漢)나라 이전부터 고대 중국에는 묵형, 의형, 월형, 궁형, 대벽 등 다섯 가지의 형벌이 있었습니다. 이 중 묵형은 먹으로 죄명을 문신하는 형벌이며, 의형은 코를 베는 형벌이고, 월형은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형벌이며, 궁형은 남성의 성기를 잘라내는 형벌이었고, 마지막으로 대벽은 사형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형벌은 원래 죄인의 범죄 유형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즉 성범죄를 저지르면 궁형을 행하였고, 음식을 훔친 경우에는 입에 형벌을 가할 수 없으므로 음식 냄새를 맡는 코를 벤 것이고, 도망간 범죄자를 잡았을 경우에는 발뒤꿈치를 잘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라 때 흉노족에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받게 된 사마천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 유형과 형벌의 직접적 연관성은 점차 약해지고, 위정자의 판단에 따라 형벌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형벌이 행해졌을까요? 일단 한국에서는 고대 중국보다는 형벌이 가혹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궁형은 전혀 기록이 나오지 않으며, 의형이나 월형, 두 귀를 베는 이형도 악독한 상전이 노비에게 가한 경우는 있지만, 국법으로 시행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묵형과 사형은 실시되었습니다.
먼저 묵형은 주로 도둑질한 자를 잡았을 경우 얼굴 또는 팔뚝에 '절도', '강도' 등의 글자를 문신하였습니다. 이를 자자(刺字) 또는 경형(黥刑)이라고도 했는데, 우리가 요즘에도 자주 쓰는 말인 '경을 칠 놈'이라고 할 때 바로 이 경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 말의 뜻이 좀 무시무시하네요. 어쨌든 비교적 후대인 조선 시대에도 묵형은 간간히 시행되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참조하여 절도를 저지르면 초범은 오른쪽 팔뚝에 '절도(竊盜)' 두 글자를 새기고, 재범은 왼쪽 팔뚝에 새기며, 삼범은 교수형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사면령을 내려 삼범 이상의 경우에도 교수형에 처하지 않고 목 뒤나 빰에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형벌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묵형, 즉 자자는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형벌이었을까요?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묵형은 몸에 글씨를 새겨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기본 자료로 삼으려는 의도와 함께, 사람들에게 수치심이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범죄를 미리 예방하려는 효과도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쪽 팔뚝이나 목 뒤에 글씨를 새겨서는 거의 표시가 나지 않아 도적들이 또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해지자, 그 대책으로 정부에서는 도둑질한 액수가 크거나 도적집단의 우두머리에게는 초범이라도 뺨에 문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자형은 16세기말 임진왜란 때 쓰여진 '난중일기'에도 등장하며, 18세기 숙종 때까지도 시행하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만, 사람의 신체에 문신을 평생 새기는 일은 너무 가혹한 것이라 하여 1740년 영조의 어명으로 완전히 폐지되었고 이때 문신 도구들도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고대의 형벌 제도들 대신 중국의 수·당 시대에 새로 제정된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을 새로운 오형제도로 채택하여 주로 시행하였습니다. 우선 태형과 장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태형은 10대부터 50대까지, 장형은 60대부터 100대까지 각각 5등급으로 나누어서 남자의 경우 죄인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볼기를 치게 하였고, 여자의 경우에는 홑옷을 입힌 채로 형을 집행하되 종종 엉덩이에 물을 끼얹어 물볼기를 치는 형벌이었습니다.
원래 태형은 등을 치는 태배(笞背)로 실시되었는데, 오장(五臟)이 모여 있는 등을 쳤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볼기나 다리를 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형이나 장형에 쓰이는 매는 대체로 길이 약 1.1미터에 매 치는 부분 지름은 태의 경우 8mm, 장의 경우 1cm 정도였다고 하니, 몽둥이보다는 가늘고 회초리보다는 굵은 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죄인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면 '매우(맵게) 치라'는 관장(官長)의 소리에 따라 집장사령(執杖使令)이 매를 치는데, 이때 주위에 둘러선 다른 관속이 활처럼 생긴 산판(算板)의 나뭇조각을 하나하나 옮기거나, 또는 종이에 숫자를 적거나, 아니면 여러 관속들이 한꺼번에 합창을 하며 매 수를 세었습니다. 그리고 매를 칠 때에는 죄인이 요동치지 못하게 가죽끈으로 죄인의 손목, 발목, 허리를 묶었으며, 매를 맞는 도중 죄인이 기절하면 회생시켰다가 사흘 정도 후에 다시 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를 맞을 경우에도 신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과는 달리,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즉 형벌은 대부에게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전통적 법사상에 따라 사대부의 경우 그가 데리고 있던 노비가 대신 맞거나 한 대당 얼마씩 오늘날의 벌금에 해당하는 속전(贖錢)을 받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나 조선의 신분제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매를 때리는 형벌은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즉 일제에 의해 1910년 제정된 범죄즉결령(犯罪卽決令)에서는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이 3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태형을 즉결처분할 수 있게 하였으며, 1912년에는 조선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구실 하에 정식으로 조선태형령(朝鮮笞刑令)을 제정하여 조선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태형을 집행하게 하였습니다.
당시의 매는 아주 혹독해서 대개 한번 맞으면 혼자 걸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부축 하에 실려 나왔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런 형벌을 조선 사람에게만 실시했다는 것은 참으로 비인도적이요, 민족차별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곤장(棍杖)과 장은 아주 다른 것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즉 배의 노처럼 길고 끝이 넓적한 나무로 때리는 곤장은 장과는 다른 것으로서, 원래 '곤(棍)'이라고 하였습니다. 곤은 가볍고 탄력성 있는 버드나무로 만드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등장하였고, 군대에서 군법을 집행하거나 토포영(討捕營)에서 도적을 다스릴 때에 한해 사용된 형벌 도구였습니다. 일종의 특수목적용 도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곤장은 관찰사, 병사, 수사, 토포사나 변방 지역의 수령들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일반 고을 수령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 번에 30대 이상은 치지 못하게 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법조문이 무시되어 일반 백성들을 때리는 데 사용되거나, 버드나무보다 강력한 참나무나 박달나무를 써서 만들거나, 또는 한번에 30대 이상을 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곤은 그 크기와 길이에 따라 소곤(小棍), 중곤(中棍), 대곤(大棍), 그리고 죽을죄를 저지른 자를 다스리는데 썼던 중곤(重棍), 그리고 도둑을 다스리는데 사용한 치도곤(治盜棍)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이 곤장형은 태형이나 장형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한말 외국인의 견문기를 보면 불과 몇 대에 살갗이 검푸르게 변하고 피가 맺히더니, 10여 대에 이르자 피가 땅바닥에 흐르고 곤장에 살점이 묻어나기 시작하여 급기야 죄인이 기절하더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자료는 곤장형의 참혹한 상황을 생생히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다음으로 도형(徒刑)은 죄인을 중노동에 종사시키던 형벌이었습니다. 이 도형에는 1년, 1년 반, 2년, 2년 반, 3년의 다섯 등급이 있었으며, 도형을 당하게 되면 관청에 소속되어 소금을 굽거나 쇠를 불리는 등의 힘든 일을 수시로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죄인들이 이를 피하려 하였는데, 만약 도형을 감하려면 징역 1년에 대해 장 60대를 맞아야 했으며, 한 등급마다 10대씩 증가시켜 맞아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도형은 오늘날의 징역살이에다가 힘든 강제 노역을 추가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유형(流刑)이란 중죄를 범한 자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멀리 추방하여 종신토록 귀환하지 못하게 하는 형벌을 말합니다. 유배는 주로 모반이나 반란을 꾀한 자, 정부 정책을 비판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산 자, 권력 다툼에 밀려난 자 등 주로 정치적 사건에 관련된 관리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배는 중앙 정치무대로부터 멀리 격리되어 각종 정치참여나 사회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국왕이 있는 한양과 유배지와의 거리는 물론이고, 유배지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 유배지가 내륙이냐 섬이냐 등에 따라 각각 단계와 차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형은 대개 살인자에게 가해졌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워낙 특별한 중죄인의 경우에는 ‘부대시(不待時)’라고 하여 때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처형했지만, 일반적인 죄인들은 추분부터 춘분까지만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봄과 여름에는 만물이 소생하여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의 순리에 맞추어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사형에는 목을 매는 교형(絞刑)과 목을 베는 참형(斬刑), 그리고 능지처사(陵遲處死), 이렇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교형은 신체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로 여성들이나 노약자, 관리 등을 대상으로 시행된, 참형보다는 한 등급 가벼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교형이 사람들이 직접 죄인의 목에 줄을 걸고 이를 양쪽에서 잡아 당겨서 목을 졸라 죽였던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고 대부분 그저 죄인의 목을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방식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형은 주로 조선시대 도적이나 역적과 같은 무거운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사형 제도로서, 몸과 머리를 분리하는 사형 방법을 말합니다. 만일 지체가 높거나 권위 있는 집안의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대부분 참형보다는 사약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약을 내렸던 이유는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비록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체 높은 신분의 사형수에 대한 정부의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참수형의 경우 망나니들은 큰 칼로서 죄인의 목을 치는데, 죄인을 앉혀 놓고 목을 치면 목이 제대로 베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을 형틀에 묶고 땅에 엎드려 놓고서 나무 목침 위에 사형수의 목 앞부분을 걸쳐 몸을 고정시킨 후 망나니가 칼을 아래로 내려치는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능지처사는 교형이나 참형보다 더욱 잔혹한 사형이었습니다. 능지처사는 대개 주인을 살해한 노비나, 부모, 조부모 등 가까운 혈족 어른을 죽인 패륜아나, 일가족 3인이상을 죽인 흉악범이나, 대역죄를 범한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가해지는 극형이었습니다.
'능지(陵遲)'란 글자 그대로 완만한 언덕을 오르내리듯이 서서히, 그리고 고통을 최대한 느끼도록 산 채로 온몸을 도막내어 죽이는 것입니다. 능지처사는 대개 팔다리, 어깨, 가슴 등을 잘라내고 마지막에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이는 방식으로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주로 중국에서 거행되었고, 조선에서는 대개 환형, 즉 죄인의 팔다리, 그리고 목에 다섯 개의 줄을 매달은 상태에서 다섯 마리 소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서 결국 죄인의 팔다리와 목을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이 주로 실시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대역죄인이 취조 중 죽은 경우에도 그 시신을 거열하였는데, 이를 '육시(戮屍)'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치다 사형당한 사육신들은 취조 중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거열형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참형이나 교형이 도성 밖에서 진행되었는데 비해 거열형은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인적이 많은 도성 안 저자거리에서 실시되었습니다. 더욱이 역모죄의 경우에는 관료들로 하여금 형장에 둘러서서 구경하도록 하여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수형이나 능지처사와 같은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그 자체로서도 매우 끔직한 사형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대 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을미개혁 때 칙령이 반포되어 참수형과 능지처사는 사라지고, 민간인의 교수형과 군인의 총살형만을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우리나라의 형벌 제도는 중국 제도를 많이 따랐지만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중국보다는 한층 온건한 방법으로 시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형벌 제도의 변천사를 보더라도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주어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는 방법보다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 생명을 중시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재범을 방지하려는 방향으로 진보해왔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刑(형벌 형/탕기 형)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鉶(형)과 통자(通字)이다. 체형(體刑)을 가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 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규칙의 뜻을 가진 井(정, 형)으로 이루어졌다. 체형(體刑)을 가하여 규칙에 복종(服從)시킨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刑자는 '형벌'이나 '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刑자는 幵(평평할 견)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刑자의 금문을 보면 본래는 井(우물 정)자와 刀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우물과 칼이 '형벌'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실 여기에 쓰인 井자는 죄수를 압송하거나 가두어 두던 나무 우리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刀자가 더해진 刑자는 죄수에게 벌을 내린다는 뜻이다. 소전에서는 井자가 幵자로 바뀌면서 지금의 刑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刑(형)은 (1)형벌(刑罰)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형벌(刑罰) ②법(法) ③꼴, 모양 ④국그릇 ⑤형벌(刑罰)하다, 벌(罰)하다 ⑥제어(制御)하다 ⑦모범(模範)이 되다, 준거(準據)하여 따르다 ⑧본받다 ⑨다스리다 ⑩되다, 이루어지다 ⑪죽이다, 살해(殺害)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형법의 적용을 받는 사건 또는 사복 경찰관의 통칭을 형사(刑事), 죄지은 사람에게 주는 벌을 형벌(刑罰), 범죄와 형벌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법률을 형법(刑法),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의 정도를 형량(刑量), 사형을 집행하는 곳을 형장(刑場), 죄지은 사람을 형벌에 따라 죽임을 형륙(刑戮), 형을 받은 사람의 집을 형가(刑家), 형장으로 정강이를 때리던 형벌을 형문(刑問), 형벌을 받은 일이 있는 일 또는 그 사람을 형여(刑餘), 형벌 또는 형벌을 받아야 할 죄를 형죄(刑罪),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에 대한 형벌을 요구함을 구형(求刑), 형을 덜어 가볍게 함을 감형(減刑), 실제로 받는 체형을 실형(實刑), 형벌에 처함을 처형(處刑),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매로 볼기를 치는 형벌을 태형(笞刑),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줄로 죄명을 써 넣던 형벌을 묵형(墨刑), 죄명을 죄인의 이마나 팔뚝이나 귓전에 먹실로 써 넣던 형벌을 경형(黥刑), 형벌의 양을 정함을 양형(量刑), 더 할 수 없이 무거운 형벌을 극형(極刑), 목을 베어 죽임 또는 그러한 형벌을 참형(斬刑), 아주 무거운 형벌을 중형(重刑), 형벌의 목적은 형벌이 없게 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는 말을 형기무형(刑期無刑), 사대부에게는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옛날 대부는 예를 지켜 범죄함이 없으므로 면목을 존중해 주고 또한 절의를 장려하기 위해서임을 일컫는 말을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행실이 예를 벗어나면 형벌의 범위에 들게 됨을 이르는 말을 출례입형(出禮入刑), 엄하게 벌을 주어 범죄를 밝혀 냄을 일컫는 말을 엄형득정(嚴刑得情)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上(윗 상)은 ❶지사문자로 丄(상)은 고자(古字)이다. 上(상)은 一(일)위에 짧은 一(일)을 쓰기도 하고, 또는 긴 一(일)위에 (ㆍ)을 쓰기도 하여 어떤 위치보다도 높은 곳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본디는 무엇엔가 얹은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며 下(하)에 대한 上(상), 위에 얹다, 위쪽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지사문자로 上자는 ‘위’나 ‘앞’, ‘이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上자는 하늘을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二(두 이)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아랫부분은 오목하게 윗부분은 짧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다. 上자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위’나 ‘윗’을 뜻하고 있다. 다만 소전에서는 二자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윗부분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上(상)은 (1)상감(上監) (2)위나 상부 (3)등급이나 차례 따위를 상(上), 중(中), 하(下) 또는 상, 하로 나눌 경우의 맨 첫째 , 중(中), 하(下) (4)무엇에서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따위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위, 윗 ②앞 ③첫째 ④옛날 ⑤이전 ⑥임금 ⑦군주(君主) ⑧사성의 일종 ⑨높다 ⑩올리다 ⑪드리다 ⑫진헌하다(임금께 예물을 바치다) ⑬오르다 ⑭탈것을 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무거울 중(重), 높을 고(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위로 올라감을 상승(上昇), 토의할 안건을 회의에 내어놓음을 상정(上程), 윗 등급이나 계급을 상급(上級), 높은 지위나 윗자리를 상위(上位), 위와 아래를 상하(上下), 정부에 세금을 냄 또는 진상품을 윗사람 에게 받침을 상납(上納),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오름을 상륙(上陸),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높은 하늘이나 어떤 지역에 수직되는 공중을 상공(上空),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위쪽의 부분을 상부(上部),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손을 상객(上客), 퍽 오랜 옛날을 상고(上古), 아래쪽으로부터 위쪽으로 향함을 상향(上向), 가장 좋은 대책 또는 방책을 상책(上策), 보통 사람보다 아주 많은 나이 또는 그 사람을 (上壽), 가장 좋은 계교를 상계(上計), 지붕 위를 옥상(屋上), 맨 위나 정상을 최상(最上), 책상이나 식탁 등 탁자의 위를 탁상(卓上), 상품을 사들임을 매상(買上),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끌어 올림이나 물건값을 올림을 인상(引上), 한 집안이나 한 민족의 옛 어른들을 조상(祖上), 위나 앞을 향해 발전함을 향상(向上), 산꼭대기나 그 이상 더 없는 것을 정상(頂上),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부상(浮上),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 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을 상루하습(上漏下濕),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괸다는 뜻으로 몹시 꼬이는 일을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맞추어 나감을 상하탱석(上下撑石),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상산구어(上山求魚),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따름을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에 있는 땅으로 곧 천지를 상천하지(上天下地),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천상천하(天上天下) 등에 쓰인다.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
▶️ 夫(지아비 부)는 ❶회의문자로 一(일)은 여기서 상투의 모양이고, 大(대)는 사람이나 어른 또는 훌륭ㅡ한 사람을 나타낸다. 夫(부)는 상투를 튼 어엿한 장부(丈夫)를 말한다. 장부(丈夫)란 지금의 성인(成人)에 해당하는 말이며, 옛날엔 스무 살이 되면 상투를 틀고 관(冠)을 썼다. ❷상형문자로 夫자는 ‘지아비’나 ‘남편’, ‘사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夫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夫자를 보면 사람의 머리 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남자들이 머리를 고정할 때 사용하던 비녀를 그린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남자들도 머리에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됐음을 알렸다. 그래서 夫자는 이미 성인식을 치른 남자라는 의미에서 ‘남편’이나 ‘사내’, ‘군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夫(부)는 ①지아비 ②남편 ③사내, 장정 ④일군, 노동일을 하는 남자 ⑤군인(軍人), 병정(兵丁) ⑥선생, 사부 ⑦부역(負役) ⑧100묘(畝)의 밭 ⑨저, 3인칭 대명사(代名詞) ⑩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발어사(發語辭) ⑪~도다, ~구나(감탄사) ⑫다스리다 ⑬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른 장(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시어머니 고(姑), 아내 처(妻)이다. 용례로는 남편과 아내를 부부(夫婦),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덕행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의 높임말 또는 남편의 높임말을 부자(夫子), 두 암키와 사이를 어울리 엎어 이는 기와를 부와(夫瓦), 남편이 아내에 대하여 가지는 신분이나 재산 상의 권리를 부권(夫權), 부모의 제삿날을 부일(夫日), 남편의 친족을 부족(夫族), 남편과 아내를 부처(夫妻), 남편과 동성동본인 겨레붙이를 부당(夫黨), 국가나 공공단체가 부과하는 노역을 부역(夫役),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따름으로 가정에서의 부부 화합의 도리를 이르는 말을 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됨을 이르는 말을 부위부강(夫爲婦綱), 오륜의 하나로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에는 인륜상 각각 직분이 있어 서로 침범하지 못할 구별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 사이의 애정을 일컫는 말을 부부지정(夫婦之情), 혼인을 맺자는 언약을 일컫는 말을 부부지약(夫婦之約), 부부의 화합함이라는 말을 부화부순(夫和婦順)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