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인간의 정서
"처연하기는 가을 같고, 따뜻하기는 봄 같아서 희노(喜怒)가 사계절과 통한다(凄然似秋 煖然似春)”
-「莊子•大宗師」
자연은 늘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중가요 가사에도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낙엽지면 설움이 더해요/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람 떠나 쓸쓸한데 여기에 낙엽은 처량한 마음에 일격을 가한다.
오 헨리(O.Henry:1862~1910)의 소설 「마지막 잎새」(1905)에서 폐렴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존시(Johnsy)는
담쟁이덩굴잎울 보면서 그 잎이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구절은 사계절이 끼치는 인간의
감정을 잘 정리했다.
“대저 희노애락의 발동은 날씨의 맑고 따뜻하고 춥고 더운 것과 함께 그 실상이 일관된 것이다. 희기는 따뜻한 것이
되어서 봄에 해당하고 노기는 맑은 것이 되어서 가을에 해당하고 즐거운 기운은 태양이 되어서 여름에 해당하고
슬픈 기운은 태음이 되어서 겨울에 해당한다. ~~~ 춘기(봄)로는 사랑을 하고 추기(가을)로는 엄하게 하고 하기(여름)
로는 즐거워하게 하고 동기(겨울)로는 슬퍼하게 한다
(夫喜怒哀樂之發 與淸暖寒暑 其實一貫也 喜氣爲暖而當春 怒氣爲淸而當秋 樂氣爲太陽而當夏 哀氣爲太陰而當冬~~~
春氣愛 秋氣嚴 夏氣樂 冬氣哀)” -『春秋繁露ㆍ陽尊陰卑』
“봄에는 여인들이 양기에 감응하여 그리움에 젖고, 가을에는 선비들이 음기에 젖어 슬퍼한다(春女感陽則思 秋士見陰
而悲)” 는 ‘春女思 秋士悲’ 구절을 설명한 것이다. -「淮南子•繆稱訓」
즉 양기가 가득한 남성들은 음기가 상승하는 가을에 쓸쓸함을 느끼고, 음기로 뭉쳐진 여성들은 양기가 발동하는 봄날
에 쉽게 사랑에 빠져든다는 얘기다. 봄은 여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은 문예창작론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의 글이다.
“사계절을 따라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고 만물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분분해진다. 세찬 가을에는 낙엽에 슬퍼하고,
향기로운 봄날에는 어린 나뭇가지에 기뻐한다(遵四時以嘆逝 瞻萬物以思紛 悲落葉於勁秋 喜柔條禦芳春)”
-육기陸機(西晉:261~303)
낙엽에 슬퍼하고 나뭇가지 새싹에 기뻐함은 고금을 막론한 인지상정 아니겠나?
“봄과 가을은 차례로 바뀌면서 교체되나니, 음의 기운은 사람의 마음을 처량하게 하고 양의 기운은 사람의 마음을 명랑
하게 한다. 경물의 변화는 이렇듯 사람의 마음도 함께 동요시키게 마련이다(春秋代序 陰陽慘舒 物色之動 心亦搖焉)”
-유협劉勰(465?~520)『文心彫龍ㆍ物色』
사람을 처량하게 만드는 가을엔 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어 멜라토닌 분비가 떨어지니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른바 '계절
성 우울증' 으로 우울감과 무기력, 공허함, 피로감 등의 증상이 특정 계절과 맞물려 일어난다.
동양의 전통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중시한다. 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적 사고로
“인간의 정서가 경물에 따라 변화하고, 그 변화하는 정서를 따라 문학이 탄생한다는 입장으로 연결된다(情以物還 辭以
情發)” -『文心彫龍ㆍ物色』라고 했으니 이때 탄생하는 문학이 최고의 예술 경지인 ‘정경합일(情景合一)’ 의 절창이 되는
것이다. 노래 가사 “가을에 편지를 쓰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란 구절도 이때쯤이면 누구라도 센티멘
탈해져(감성에 젖어) 시인이 된다는 뜻이다.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이성선(1941~) '가을편지'
아나로그 시대에 손글씨 꾹꾹 눌러써서 주고받던 편지가 그리운 건 자간(字間)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의 체취와 숨소리
에 깃든 따뜻한 정감(情感) 때문일지라. 이 가을이 가기전에 고마운 사람에게 손편지 한장 보낸다면 그 충격(?)은 영원히
휘발되지 않을 것이다. 2022년 '교보 손글씨 대회'에서 '최고상(으뜸상)' 을 수상한 김혜남(82) 할머니는 손으로 글씨를
눌러담는 행위를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세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꼭 손글씨 쓰세요. 같은 곳에 살더라도, 전화를 할수 있어도 글은 내 감정에 가장 솔직
해지는 수단이에요. 젊음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글쓰기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담는 연습이에요"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