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진이 NBA에 지명되는 경사를 맞았다. 어느 팀에 지명되었는지는 농구 팬들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 테고.. 기자 개인적으로는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자랑스럽다. 러스 그러닉이 하승진 이름을 호명할 때의 느낌이란...)
글 진행에 앞서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올리자면(변명이지만)..... 드래프트 지명 후 기자와 서신으로, 혹은 전화로 인터뷰를 나누었던 美농구관계자들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토론토 랩터스의 게리 보이슨이라는 스카우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따지듯 물었다. “하승진을 40위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말은 정녕 립 서비스였냐”라고. (사실 립 서비스라 보기 어려웠다. 그쪽에서 먼저 기자에게 연락이 와서 하승진의 추가 정보를 번역해서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그는 “최종결정권자-제네럴 매니저-는 마지막으로 라파엘 아라우조(BYU)를 선택했다.”라며 그 날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본의 아니게 오보가 되어버린 6월 21일자 점프볼 기사에 대해 사과 드린다. (몇몇 분들이 하승진의 이름이 40위가 지나도록 불리지 않자 분노하셨다고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하승진이 2라운드에 지명되자 지금 미국행을 택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언론의 기사를 읽었다.
지명된 것은 경사지만 2라운드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04시즌의 2라운드 지명 선수들 중 제대로 역할을 부여받은 선수는 13명에 불과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2년 뒤를 보장할 수 없는 처지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는 익명의 NBA 전문가가 동감했던 그 말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하승진이 한국에 와야한다는 주제의 기사들을 보면 익명의 NBA전문가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에 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NBA 진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니면 유럽에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왕 한 박자 늦출 거, 미국에서 늦추면 안되나?
어차피 NBA선수 되고 싶다면 영어도 잘해야 할텐데 미국에서 늦추면 안되는건가?
그렇게 하승진 선수가 실패할 것이 두렵나? 혹시 평균 1~2점이 망신이라 생각하나? 너무 걱정해주는 거 아닌가?
먼저 짧게 맺을 수 있는 유럽부터 살펴보자.
유럽은 미국에서 210cm 센터를 수입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장신 선수들은 유럽에도 널렸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도 볼 수 있듯, NBA에 지명된 장신들 중 대부분이 유럽이나 남미 출신 아니었던가. 그곳에서는 이미 수 백 명의 유망주들이 조련 받으며 크고 있다. 올해 지명된 포드콜진도 유럽 출신이고, 다르코 밀리치치 역시 유럽 리그에서 배우다 왔다.
NBA에서 낙방한 후. 혹은 방출된 후 외국에서 뛰며 재미를 보고 있는 선수들도 대부분 가드나 포워드들이며, 유럽 농구를 보면 무작정 센터에 의존하는 농구는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상황에서 하승진의 2라운드 지명 경력은 아무런 볼거리가 되지 못하며, 갈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유럽 농구 협회관계자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리그에서는 김주성이나 김승현이 더 잘 먹힐 것이라 말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평균 30점, 20리바운드를 기록한다고 치자. 그러나 이 경력은 단지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인상적인 숫자(statistics)’라는 단 한 줄을 쓰는데만 사용될 뿐, 실제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한국 농구 관계자들이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를 생각해보자.
선수의 비디오를 보기에 앞서 그들이 가장 우선시 하는 게 경력이나 성적이지만, 그 기본 전제는 “어디서 뛰었는가”에 기인한다. NCAA 디비전 II에서 뛰고, 아르헨티나에 가서 30점 올린 외국인 선수와 NCAA 디비전 I에서 식스맨으로 뛰고 스페인 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둘 만 놓고 보면 10명 중 8명은 후자를 뽑을 것이며 실제 기량도 차이가 클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03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래리 존슨의 에이전트, 마이크 카운트氏는 “외국선수들에게 한국이나 아시아 리그는 블랙홀처럼 여겨졌던 경향이 있으며, 지금도 그런 느낌이 남아있다. 더 나은 리그로 나아가는데 경력이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선수들도 아직까지는 한국 무대를 경력을 키운다는 면에서는 높이 사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승진도 다를 것은 없다.
물론, 그가 한국 감독들과 한국 동료들로부터 한국말을 들어가며, 5:5 플레이를 익히고 실전 경험을 쌓는 것도 좋겠지만, 이미 하승진을 당해낼 적수가 없는 대학 무대에서 30점, 20리바운드 올려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다. 전술에 차이가 없더라도, 그 전술을 수행하는 인물들의 기량차이는 부정할 수 없다.
설사 그 리그가 KBL일지라도 말이다. 야오밍이 중국 리그에서 기량을 쌓은 것을 예로 들지도 모르겠지만, 야오밍은 중국 리그에 왕즈츠, 멩크 바테르 혹은 다른 장신들이 있기에 경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승진은 되든 안되든 포틀랜드에서 버텨볼 생각을 해야 한다.
NBA 전문가의 의견을 빌렸다는 그 기사를 보면 3년 뒤 드래프트에서는 하승진이 막대한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지만, 3년 뒤 드래프트에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때가면 더 싱싱한 거인들이 나타날 것이며, 1라운드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하승진이 NCAA에서 경력을 쌓는다면 모를까(그것도 에이전트를 계약하면서 오래 전에 물 건너갔지만)
NBA 드래프트는 갈수록 ‘즉시전력감 찾기’보다는 ‘투자대상 찾기’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조차 2004-05시즌에 평균 20분 이상 뛰고, 평균 10점 이상 올릴 선수가 몇 명이나 될 지도 불투명하다.
그래도 감독들은 기다릴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올해는 기대하지 않는다. 3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하승진도 또 다른 기회를 받았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따라서 당장 하승진이 다르코 밀리치치처럼 평균 1점을 기록해도 당장은 실망할 바가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NBA다. 강조하고 싶다. NBA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특히 그가 2004 드래프트에서 Sleeper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던 5:5 경기에서의 경험을 미 현지에서 키우며 인정받아야 한다.
에이전트 S.F.X社의 관리는 더 이상 도움이 안된다.
중요한 것은 NBA 코칭 스태프의 관리다. 포틀랜드는 비록 선수들 인성 관리에는 실패한 구단이지만, 폴 알렌이 구단주로 있으며, NBA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와 함께 시설 및 복지 관리가 가장 우수한 구단이기도 하다.
썸머리그와 빅맨 캠프도 개인이 신청하는 것보다는 NBA 구단이 주최하는 캠프에 구단이 추천해서 출장해야 도움이 된다.
SK 나이츠의 아비 스토리는 매년 여름마다 SPL에 출장했다. 그러나 그가 2003년과 2004년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아비 스토리 개인이 신청한 썸머리그는 기간이 지나면 커뮤니케이션도 자연스럽게 끝난다고 한다.
반대로 NBA 썸머리그는 구단 코칭스태프가 직접 관리하고 지도하기 때문에 하승진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농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NBA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NBA 감독이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일의 센터로 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낫다. 하승진이 앞으로 3년동안 연세대학교에서 있으면서 챙길 최소 2번의 연고전 승리와 최소 3~4차례의 대학농구연맹전과 농구대잔치 우승의 영광보다 낫다.
만약 그가 그렇게 성장한다면 한국 농구는 농구대잔치 우승 이상의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정규 로스터에 들어라”라는 말은 해주지 못할망정 “2라운드 지명되면 생존 가능성 희박, 2라운드 지명되면 어렵다” 따위의 기사를 곧바로 내보내는 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지명되긴 했지만 그냥 기대는 하지 말라, 그런 의미인가?
하승진에게 필요한 것은 그보다 훨씬 강한 적수다. 하승진 앞에서 IN YOUR FACE를 마음놓고 찍어댈 수 있는 슈퍼스타들과 겨뤄봐야 한다.
그리고, 2라운드 지명 선수들 중에도 훌륭한 선수는 많이 배출되었다. 물론, 우리 언론이 하승진이 당장 야오밍 같은 대스타가 되길 원한다면(미 현지 감독들조차도 “야오밍 같은 선수는 금방 나오기 힘들 것”이라 말하고 있다) 모를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되길 절실히 희망한다. 모 잡지에서 몇몇 기자들과 연합하여 연재 중인 Battle of the Titans라는 코너에서 가장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야오밍과 하승진의 배틀이다)
최근 3~4년만 봐도 라샬 버틀러(2002/53위), 타마 슬레이(2002/54위), 댄 개쥬릭(2002/43위) 메멧 오쿠어(2001/38위), 루벤 붐췌붐췌(2001/50위), 브라이언 카디날(2000/44위), 토드 맥칼러(99/47위), 마누 지노빌리(99/57위), 숀 막스(98/44위) 등이 처절한 노력 끝에 롤-플레이어로 부상했고 또 몇몇은 장기계약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미국 대학에서의 제법 볼만한 배경을 지닌 선수도 있었고, 국제 무대에서의 경험도 있었기에 중용받을 수 있었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선수들은 아니었다.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선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NBA에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발전의 기회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만약’을 부정적인 용도에만 쓰지 말자.
이제 20살도 안된 유망주가 한국 농구 역사에 획을 그을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그가 싱글 A에 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올라올 수 있도록 박수쳐주자.
ps_1
돈 얘기.
하승진이 만약 3년 뒤 1라운드로 지명된다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로터리일 경우 130만 달러~300만 달러
그 이하일 경우 69만 달러~120만 달러
만약 하승진이 15위쯤 지명되었다고 볼 때 3년간 받을 연봉은 370만 달러. (+옵션 해도 500만 달러 정도)
이렇게 3년 (드래프트 준비 기간) + 4년(루키 계약 기간)이 지나면 26살이 된다.
만약 하승진이 26살 쯤 올스타급이 되었다고 친다면. 그때 4년차들이 맺을 수 있는 MAXIMUM 계약은 6년. (옵션 제외) 7,000만 달러에서 8,000만 달러다. 그러나 무릎이 안좋았던 병력이 있는 센터, 하승진이 33살 이후에 다시 장기계약을 맺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샤킬 오닐조차 30대를 넘기자 LA 레이커스에서 거액을 내주길 꺼려하지 않던가.
지금 상황에서 하승진의 연봉은 40만 달러가 안되겠지만.
주가를 올려서 재계약을 갱신해간다면 몸값은 차곡차곡 올라갈 것이며 만약 그가 올스타 투표에 이름이 거론될 정도의 네임 밸류만 갖춰도 33살 이전에 5~6년 짜리 장기간 계약을 두번은 맺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봐도 지금 더 노력하면 미래가 더 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준비하는 3년은 좀 더 멀리 바라봤을 때 불리하다.
ps_2
NBA전문가가 한국인이라면, NBA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NBA전문가는 미국인 맞는가?
그렇지 않다면 영어라도 한 마디 더 가르쳐주던가.
개인적인 기억에는 MLB 코리안리거들도 처음 진출했을 때 언론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ps_3
서장훈이나 외국인 선수 한 명 제대로 막기도 힘든 게 KBL. 그들을 막기 위해 때때로 팔꿈치도 써보고 할퀴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고. 심판이 차마 보지 못해 불지 못하는 휘슬이 많은 골 밑에서 하승진이 선다면... 글쎄... 사람 성격 버릴까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