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다곤 파고다의 밤하늘
유기섭
쉐다곤 파고다 위 총총한 별들이 황금빛 불상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주변세상은 캄캄할지라도 황금빛 파고다가 내일의 희망을 더 밝게 비춰줄 것이다. 세계 최대의 불교국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 파고다의 모습에다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미얀마의 양곤공항에 도착했다. 밤 시간인데도 30도를 육박하는 기온이 옷을 한 꺼풀씩 벗게 한다. 한때 버마로 잘 알려졌지만 지금은 미얀마로 국호가 바뀌었다.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꺼리는 정치사회적인 환경으로 발달이 더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던 70년대만 하더라도 미얀마의 스포츠 종목 중 축구는 동남아시아에서 상위그룹에 속하였다.
오래전 일이지만 우리나라와 여러 차례 결승전에서 다투며 번성하였는데 그 후로 국력과 함께 쇠락의 길로 걷기 시작하였다. 유년시절 미얀마의 대표선수인 ‘몽윈몽, 몽에몽’ 선수의 이름까지 외우며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국제경기에 나타나지 않아서 기억에서 멀어져갔지만 불교유적은 번창하여 세계인의 시선과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사원 앞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릴 때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입구 도로를 한참 걸어서 들어간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의아하였으나 곧 적응하여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에 이슬람사원을 방문할 때 입구부터 신발을 벗고 경건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도록 요청받은 적은 있으나, 미얀마 불교사원 방문에서는 사원 근처 도로에서부터 맨발을 요구하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불교유적지 쉐다곤 파고다도 입구에서부터 맨발로 부처에 대한 최대의 예의를 갖춘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한 행복더미로 충만해 있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모자람이 있을지라도 그 현실에 낙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즐기는 순수한 모습들에서 나는 가진 것의 몇 배나 되는 성취와 행복감을 선물로 받는다. 그들의 티 없는 얼굴을 보며 우리들도 한때는 그리하였는데 하며 중얼거린다.
쉐다곤 파고다를 찾는 이들은 부처의 머리에서부터 물을 부어 부처를 씻기며 일상에서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는 탐욕을 씻는다. 부처를 세안해주며 마음의 위안과 소원을 빈다는 믿음에 동참하며 그들과 한마음이 되어본다. 밤의 그윽한 조명 아래에서 색다른 체험을 했다. 불교의 나라 미얀마의 상징으로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뒤덮인 세계적인 불교유적. 주민들의 일상의 삶은 척박할지라도 부처님을 섬기는 불심은 항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금사원 승리의 광장에서 기도를 하며 꿈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시간 영롱한 밤 조명 아래에서 승리의 아름다운 뜻을 새겨본다.
쉐다곤 파고다 가는 길에 들러본 아웅산 국립묘지. 30여 년 전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위시한 외교사절들이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하기 위하여 들렀다가 북한의 소행인 폭발사고로 큰 희생을 치른 슬픔의 현장이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이 아직도 주변을 맴돌며 그날의 아픔을 되씹고 있지나 않을지. 그들의 슬픔이 불심의 중심지인 쉐다곤 파고다의 경건한 위로를 받아 고이 잠들기를 빈다. 고요한 불교의 나라에서 일어난 우리의 동족 간에 흘린 피의 자국이 오랫동안 마르지 않은 아픔의 현장. 떠나지 못하는 미련의 상념들이 사람들이 비는 간절한 소망과 함께 한마음이 되기를 바라며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나라를 위해 애쓰다 희생당한 사절단의 정신을 되새기며.
빈곤과 가난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불심에 의지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 수많은 불자들의 바람이 소망대로 이루어지기를 같이 빌어본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모두를 끌어안으며 골고루 비춰주고 있는데 이 시각에도 온갖 핍박과 차별 속에서 신음하는 미얀마 땅 한곳의 로힝야족.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이웃나라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가는 피난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슬픈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모두를 품어 안는 아량과 여유는 먼 나라 이야기인가.
그들의 슬픔에 동참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은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 교황 일행이 밤 늦은 시각 사람들을 쓰다듬는다. 핍박받는 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교황의 배려가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난다.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야족이 차별과 억압을 받고 이웃나라로 피난을 가는 아픔 속에서 나라 안에서는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되어 세계인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이때, 세계도처의 분쟁지역을 찾아서 양보와 화해 참된 사랑을 외치고 있다.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달구는 교황 일행의 행보가 어느 때보다 그윽한 행복감을 실어다주는 밤이다. 모두를 차별 없이 비춰주는 밤하늘의 별처럼 이 밤 사람들의 얼굴에도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경북문단 2023년 후반기 제43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