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역사를 통틀어 칼과 창의 대결은 크게 두번일어납니다.
그리스의 팔랑크스와 로마의 군단병.
중세의 파이크창병들과 란츠크네히트의 도펠졸트너.
두가지 경우 다 아마 최종 승리자는 칼이라고 할겁니다.
결국은 군단병이 이겼고, 결국 파이크 창병의 시대는 끝났으니까요.
어딘가에선 이겼으니 잘났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라 칼이 창보다 잘났다고 합니다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지요.
어쨌든, 오늘은 팔랑크스와 로마의 레기오나리에 대해서만 봅시다.
이 주제를 언급한 책중에 재미있는게 하나 있습니다.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Warfaer in the Calssical World)", 존워리, 임 옹 옮김. 2001 르네상스 출판사.
라는 책입니다. 꽤 쓸만한 책이지요.
책의 233p에서 239p까지, 군단대 팔랑크스라는 제목으로 군단병과 팔랑크스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97년의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와 기원전 191년 마그네시아전투와 기원전 167년 피드나전투의 세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세가지 다 로마 군단병의 승리입니다.

위 그림은 피드나 전투 당시의 그림으로, "로마전쟁영웅사"(아드리안 골즈워디, 강유리 옮김,2005 말글빛냄)에 수록된 피터 코넬리씨의 그림입니다. 여담이지만 피터코넬리 이 아제가 이런쪽의 그림을 참 잘그리지요.
위에 언급한 세가지 전투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1. 더 두껍고 느려진 팔랑크스.
알렉산더 대왕 시절,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는 육중했지만 유연했습니다. 필리포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전진밖에 모르던 팔랑크스를 유연한 기동이 가능하도록 명령체계를 다듬었지만 기우너전 2세기경의 마케도니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때의 팔랑크스는 예전의 느리고 둔중한 전진밖에 모르는 팔랑크스였습니다.
2. 평지가 아닌 지형.
키노스케팔라이는 '개의 머리'라는 지명처럼 작은 언덕들이 있는 산 마루에서 진행되었고, 마그네시아는 자석이 발견된곳으로 그리 험한 지형은 아닙니다만, 피드나는 또다시 울퉁불퉁한 언덕지형이었습니다.
3. 우발적인 전투.
키노스케팔라이에선 두 진영은 그냥 이동중에 서로 갑자기 만나 전열을 짤 틈이 없었고, 피드나에서도 우연찮은 사건으로 갑자기 전투가 시작됩니다. 아, 마그네시아는 예외로 둘다 제대로 준비하고 맞장을 뜹니다.
세 전투 모두 비슷비슷하게 진행됩니다.
키노스케펠라이 전투에서, 로마군의 우익은 필리포스의 팔랑크스를 격파하고, 로마군의 좌익을 상대하고 있던 팔랑크스의 뒤를 공격해 승리합니다.
마그네시아 전투에서도 기병대와 분리된 팔랑크스를 역시 뒤치기로 쌈싸먹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는 몸소 기병대를 이끌고 로마군의 좌익을 공격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되어 너무 깊숙히 쫒아갔다가 로마 예비대에게 몸이 묶여 버리고, 그틈에 기병대와 분리된 팔랑크스는 전열을 돌파당한후 쌈싸먹혀 죽습니다.
그리고, 피드나 전투에서,
로마군은 팔랑크스를 정면에서 발라버립니다.
'로마전쟁영웅사 제3장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서 피드나 전투를 제법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기원전 167년 6월 21일. 피드나.
행정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있고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가 막강한 팔랑크스를 이끌고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전투는 우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파울루스와 페르세우스는 둘다 그날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로마의 노예 몇명이 달아난 노새를 찾다가 마케도니아 진영으로 넘어가게 되고, 노새를 주운 그리스 병사를 때려죽이자 근처에 있던 그리스병사들이 도우러 오고, 잇달아 그리스의 본대까지 패싸움에 합류하게되자 전투가 시작된겁니다.
얼떨결에 전투가 시작된 까닭에 양쪽다 허둥대며 전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전투준비를 마치는건 마케도니아군이 조금 더 빨랐고 따라서 마케도니아가 먼저 공격했습니다.
전열을 갖추고 천천히 전진해 올라오던 3000명의 아게마(황실 호위대)는, 로마군 좌익의 이탈리아 용병들과 먼저 격돌합니다. 파일리그니인과 마루키니인들로 구성된 용병단은 팔랑크스의 옆면을 공격하려고 하지만, 아게마의 왼쪽엔 마케도니아의 용병부대가 단단히 지키고 있습니다. 질서정연히 늘어선 팔랑크스가 서서히 다가오자 용병대는 그 거대한 위압감에 겁을 먹어 전진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용병대의 사령관 살비우스가 부대의 군기를 적군들 사이로 던져버립니다. 소중한 군기를 지키기 위해 용병대는 어쩔 수 없이 돌격을 시작하고, 6m에 달하는 사리사의 창끝을 피해 팔랑크스의 대열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마케도니아의 최정예부대, 친위대 아게마는 무너지지 않고 차분히, 꾸준히 방진을 유지합니다. 16열로 구성된 날카로운 사리사의 창끝은 이탈리아인들의 허약한 방패와 갑옷을 관통하고, 결국 용병대는 무침히 패퇴해 물러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로마군 제 1군단과 2군단이 전투대형을 잡습니다.
그리고 동맹군에게서 제공받은 로마의 기병대와 코끼리가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에 충돌합니다. 로마의 기병은 대부분 동맹군에서 지원받은 비 로마인들이었고, 이들 기병대는 코끼리의 돌격으로 흩어진 마케도니아의 좌익을 휩쓸어버립니다. 로마군은 항상 코끼리에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피드나전투에서 만큼은 코끼리는 로마군의 훌륭한 돌격대 역할을 했습니다.
그사이 중앙에선 팔랑크스와 군단병이 정면으로 부닥낍니다. 전투 초반에 '아게마'는 이탈리아 용병들을 발라버립니다만, 로마군 제 1,2군단과 조우한 청동방패와 백색방패 부대는 군단병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울퉁불퉁한 지형에, 꽤 먼 길을 이동해온지라 팔랑크스는 이미 몇개의 덩어리로 해체되고 대열 자체도 고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군단병이 던진 필룸에 몇명의 병사들이 쓰러지고, 그들의 시체 때문에, 그리고 지형 덕분에 견고한 팔랑크스에 균열이 생깁니다. 팔랑크스는 16열이나 되지만, 그만큼 두껍기때문에 유동적이지 못하고 재정비하기도 어렵습니다. 팔랑크스의 특성상 부대는 점점 밀집되고 부대간에 커다란 틈이 생깁니다.
팔랑크스사이에 점차 틈이 생기고, 그 틈을 노리고 소규모 단위의 로마군단병들이 진입합니다. 질서정연하게 유지되었던 사리사의 창끝은 혼란스럽게 뒤섞였으며 결국 길다란 창대는 거추장스러워지고, 군단병들이 휘두루는 짧은 칼에 마케도니아니들은 하나둘씩 쓰러집니다.
결국 팔랑크스는 측면이 노출되고 순식간에 붕괴됩니다.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투가 끝납니다.
이날 약 20000명의 마케도니아인들이 사망했고 6000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에반해 로마군은 약 100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를 끝으로, 그리스의 패권은 완전히 로마의 손으로 넘어옵니다.
어쨌든 팔랑크스는 군단병에게 깨졌습니다. 많은 분들은 '팔랑크스는 정면에선 무적이다. 다만 전술적으로 유연하지 못해 격파된것 뿐이다.' 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플루타르코스도 '팔랑크스는 정면에선 무적이다' 어쩌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피드나전투를 보면 다른 특별한 우회기동이나 전술적인 배치 없이 그냥 두 부대가 정면으로 부딫친 상황에서 팔랑크스는 군단병에게 패배합니다. 물론 지형과 행군의 영향으로 전술적인 작전이 없이도 팔랑크스가 측면을 노출 시키는 상황이 오긴 했습니다만, 그냥 앞으로 걸어 갔을 뿐인데 측면이 노출된다는건 팔랑크스의 대열이 누군가에 의해서 깨어졌다는 겁니다. 팔랑크스를 돌파한 군단병이 있었다는거지요.
그 용감한 군단병에 대해서,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에 재미있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이 저랬다고 장담은 못합니다만, 두번째 그림을 보시면 팔랑크스 사이로도 충분히 군단병이 파고들만한 틈이 보인다는걸 아실겁니다. 어디가 충분하냐고 반문 하실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팔랑크스는 저런식으로 5명씩 묶여있기 때문에 그 사이는 취약한게 사실입니다. 안될것 같지만, 우리 무적의 로마 군단병은 까라면 깝니다. 루시우스 보레누스나 티투스 풀로같은 군단병이라면 충분히 가능할꺼라고 봅니다.
암만그래도 전성기 알렉산더가 지휘하던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와 로마군이 붙으면 누가 이길꺼라고 장담 할 수가 없습니다. 알렉산더의 팔랑크스는 강한데다 유동적이기까지 하니까요. 멍청하게 한줄로 좌악 늘어서지도 않고 말이지요. 게다가 알렉산더는 기병대도 잘 쓰니까 변수가 많겠지요. 기원전 2세기의 마케도니아군대는 이전의 장점들을 많이 잊어버리고 퇴화된 팔랑크스였으니까요.
그리고 피드나 전투에선 거듭 강조했듯이 울퉁불퉁한 지형과 행군으로 팔랑크스가 흔들렸기 때문에 발린거지, 팔랑크스가 제자리에서 방어하고 로마군이 공격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결과가 또 달라졌을겁니다만, 가만히 있는 팔랑크스에 꼬라박을만큼 로마 지휘관이 멍청하지도 않겠지요. 흐음.
결국 머리 좋은놈이 이기겠지요. 홀홀홀.
좀 더 크게 본다면 창을 잘 쓰던 국가가 거의 다 망해가던 시점에서 로마라는 칼쓰는 국가가 등장했으니 늙은게 지는건 당연한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로마도 초기엔 창을 썼지만요.
기회가 되면 스위스 파이크 용병대와 도펠졸트너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군요.
기회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