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솟은 천진석상
신라 선덕여왕 (649)때에 따뜻한 봄 5월 이었다.
보문사 아래 매음리의 어부들은 새봄을 맞아 풍어를 염원하면서 배를 타고 보문사 앞바다로 나아갔다. 고기잡이 그물을
바다 속에 내렸다가 거두어 보니 굉장히 무거운 것이 딸려 오므로 큰 고기를 예상하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막상 그물을 올려보니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크게 실망하여 돌덩이를 즉시 바다에 쏟아 버리고 새로 그물을 쳤더니 역시 이 돌이 또 걸렸다. 그럭저럭 날이 저물어 어부들은 할 수 없이
그 날은 각기 집으로 돌아와 잡을 잤다. 그 날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 그대들은 어찌하여 귀중한 것을 2번씩이나 바다에 던졌느냐" 하고 책망했다.
"내일 다시 그물을 치면 그 돌덩이들이 또 올라올 터이니 그 돌을 잘 모셔 명산에 봉안하라" 그리하면 길조가 거듭 되리라
하였다. 선주들은 깨어보니 한 바탕 꿈 이었으므로 이상히 생각하면서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다시 그물을 던졌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돌덩이들이 올라왔다. 그들 어부들은 노승이 일러준 대로 신령스러운 장소를 찾아 이 돌을 옮겼다. 낙가산으로 올라 오다가 석굴 부근에서 갑자기 돌이 무거워 더 나갈 수 없는지라 바로 이곳이 영기 있는 곳이구나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모아 모시게 되니 이 돌들이 바로 굴 법당 안에 현존하는 주세삼존과 성중나한과 나반존자 이다.
그 후 뱃사공들은 모두 거부가 되었다 하며 현재도 이곳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보문사 나한
깊은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동짓날의 일이다.
주지를 비롯하여 여러 승이 동짓날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으나 아궁이에는 불이 죽고 성냥마저도 없어 모든 승은 걱정만 하고 있을 뿐 길이 막혀
어디로도 못가고 그대로 있었다.
이와 달리 보문사 아래 마을에 사는 [고재원]댁엔 어린 승이 추운데 맨발로 성냥을 빌리러 왔다.
주인 고씨는 안타까이 여겨 방으로 들여 팥죽을 먹이고 성냥을 주어 보냈다.
얼마 있다가 절간 부엌에 불이 붙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아궁이에는 벌건 불이 타 오르는지라 환호성을 울리고 급히
팥죽을 쑤어 불공을 드리고 시장한 김에 맛있게 먹었다.
그 후 며칠만에 주지승이 고재원댁에 가니 고씨가 있는데 하필 추운 날 어린 승으로 하여금 불을 얻어 오라 하였느냐고
꾸짖는지라 주지가 " 우리 절 에는 어린 승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으므로 이상하여 급히 절로 돌아와 다른 승들에게
마 말을 전하고 석실 나한전에 가 살펴 보니 맨 끝에 있는 나한의 입에 팥죽이 뭍었다 라고 한다.
그 후로 승들은 나한의 영겁한 것을 알고 더욱 정성을 다 하여 불도를 닦았다고 전하여 온다
깨어진 옥등잔이 붙다
보문사에는 옥등잔이 있다.
한 때 보문사의 어린 사미가 그날도 부처님께 등불을 켜기 위해 참기름을 준비하여 굴 법당으로 갔다. 등잔을 내리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켜고 등을 올리려다가 그만 잘못하여 등잔을 깨뜨렸다.
절의 보물을 깨뜨린 어린 사미승은 겁이 나서 가만히 방으로 돌아와 울고 있었다.
그러자 승려들이 그 연유를 물은즉 옥등을 깨뜨렸다 하므로 큰 중들은 몰려 법당으로 갔더니 이상하게 그 옥등에는 불이
켜져 있고 깨어졌다던 옥등은 조금의 상처도 없이 멀쩡했다. 이로써 나한의 신통이 묘하다고 했다. 또 하루는 이곳 보문사에 도적이 들어 절에 있는 유기그릇 일체를 훔쳐 잔뜩 한 짐 비고서 밤에 도망쳤다.
언덕아래 나무사이로 들길을 돌아서 도망쳤다. 이제 한 80리쯤 왔겠기에 안심하고 짐을 내려 놓고 조금 쉬려고 하는데
바로 발 아래서 정 소리가 꽝 하고 울리지 않는가. 도적은 깜짝 놀라 이 절에서 훔쳐 저쪽 절로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어서
도망치려는데 새벽에 노전승이 염불하러 왔다가 이 도적을 잡았다.
그에게 물어본 즉 밤새 길을 걸었으나 결국 그 절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빙빙 돌았음을 알고 나한의 신통함을
감동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