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길
5월 화창한 어느 오후, 남산 둘레 길을 걸었다. 장충단 공원에서 긴 계단을 오르기에는 조금 숨이 가쁘지만 둘레 길에 접어들면 시야가 확 트인다. 단풍나무가 길 양쪽으로 차양을 두른 듯 시원하게 뻗어있어 걷기에 쾌적하다. 길옆에는 실개천도 만들어 물을 흘려보내고 간간이 조성된 꽃밭에는 온갖 색깔의 들꽃들이 절정을 이룬다. 북악산을 비롯하여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와 4대문 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평온한 성읍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가다보니 숲속에 오래된 아카시아나무 군락이 만개한 꽃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힘들어 보인다. 어릴 때 그 향긋한 향기와 내음에 끌려 한 움큼씩 따 먹던 추억이 생각났다. 그리고 영국의 작가인 알란 알렉산더 밀른(1882-1956)의 ‘아카시아 길’(Acacia Road)이란 수필이 생각났다.
이 수필을 좋아하시던 한 분이 계셨다. 첫 직장의 상사였고 우리들의 롤 모델이셨다. 바흐와 브람스를 좋아하시는 꽤 젊은 교회장로였으며, 개성이 강한 분이시라 일에는 매우 엄격하셨지만 예사롭지 않게 멋을 아는 분이셨다. 그분이 결재하실 때에 서명은 독특하여, 본인의 한글이름을 훈민정음창제 당시의 글자로 쓰셨다.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에는 직원들을 조금 일찍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급하게 비운 뒤, 회사 앞 교회의 직장인 금요기도회로 인도하셨다. 그 영향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그 분께서 ‘아카시아 길’이란 수필의 영문원본을 구해 줄 수 없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대학도서관에 가서 어렵게 찾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왜 그분이 그 수필을 원하시는지 몰랐다. 그 후 그분이 중역이 되셨을 때 갑자기 서울근교에 주말에 계실 집을 지으셨다고 하여 집사람과 함께 구경간일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세곡동 허허벌판에 2층으로 양옥집을 생뚱맞게 지으신 것을 보고 놀랐다. 집사람이 ’동네 조용한 풍경을 다 버리셨네요.‘하자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그분은 ’아카시아 길‘과 같은 꿈을 그 집에서 실현하신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소유하셨다면 대박이 터진 재테크가 되었을 것인데!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 수필은 교외 전원생활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겨운, 참 인간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사람이 생활할 집이란 복잡한 도시 한 복판에서 단순히 들어오고 나가는 구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직장에서 퇴근 후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한적한 교외로 나와 ‘아카시아 길’과 같은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며, 가족에게 들려줄 즐거운 이야기를 상상하다, 문득 도착해야 하는 시골집이야말로 참다운 집이고 가정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나는 숲을 사랑한다. 도시에선 살기가 좋지 않다. 도시에선 음탕스런 자들이 너무 많다’며 순결에 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콩코드의 ‘월든’호수 숲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여 동안 혼자 자급자족해온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될 용기는 없지만, 이 땅의 은퇴자들에게는 도시교외의 전원주택에서 텃밭을 가꾸며 여유 있게 노후를 보내는 것이 로망일 것이다.
그런데 ‘아카시아 길’수필에서 보여주는 정감 있는 풍경을 제대로 공감한 것은 80년대 말경 런던에 주재할 때였다. 퇴근길엔 금융 중심가인 시티(City)에서 워털루 역에 나와 남행기차를 탄다. 한 25분 후면 우스터파크란 한적한 역에 내린다. 그리고 가로수 길을 10여분 걸어가면 집에 도착한다. 길거리엔 사람이 없다. ‘아카시아 길’은 아니지만 온 동네가 숲이며 공원이다. 그래서인지 살던 동네 이름이 ‘오소리 숲’이다.
이제 그분이 누구인지 알릴 차례이다. 그분은 퇴임 무렵에 용평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하셨다. 직장에서 그분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셨지만, 더 나은 ‘이니스프리’ 호수 섬을 찾으셨다. 그분 말씀으로 ‘지구의 가장 시골’인 뉴질랜드로 90년대 초 이민을 가셨다. 그분은 고교선배님이신 ‘ㅎ、ㄴ 둉 ㅂ、ㅣ’ 전무님이시다. 선배님은 영원한 로맨티시스트이시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셨다. 문득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