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택견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택견의 발차기 격투기법이 태권도 동작과 기술에 영향을 미쳤을까?
택견이 오늘날 태권도에 영향을 준 무예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택견이 무예인지, 놀이인지도 논란거리다.
최홍희는 택견이 태권도 발기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한다. 그는 1972년 저술한 『태권도교서』에서 “발만 쓰던 택견과 주로 손의 기술에만 의존하던 가라테를 종합 연구하여 (…) 태권도로 단일화하게 되었다”1)고 했다.
무덕관 창설자 황기는 태권도가 택견을 전승한 무예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사도의 기술면에서 특히, 족기(足技)에 다대한 교훈을 받았고 또 모체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2)고 말해 태권도의 발기술이 택견의 영향을 받았다고 내비치고 있다.
1956년 『파사권법(破邪拳法)』을 저술한 박철희는 “태권도에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발차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택견인지 아닌 지는 알 수 없다 태권도에는 이런 ‘발을 잘 차는 문화적 토양’의 영향을 받아서 발차기가 특징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3)고 말한다.
태권도계는 1960년대 태권도의 뿌리를 택견에 두려고 했다. 1971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국기 태권도’라는 영상물에서 태권도 사범 임창수가 근대 택견의 고수인 송덕기(宋德基, 1896~1987)에게 택견을 배우는 장면이 있고, 이듬해 대한태권도협회가 펴낸 『태권도』 가을호에 송덕기를 ‘살아있는 태권도인’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택견을 태권도의 뿌리로 보고 태권도 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은 찬반논쟁을 불러왔다. 2010년 이용복은 “택견을 모델로 인식해 발질을 많이 하는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태권도와 택견을 ‘동일한 본질의 다른 종목’으로 인식했다.
그는 <무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태권도 지도자들이 태권도와 택견의 관계에 대해 물어와 “(택견이 태권도의) 원형이라고 하기 보다 본질(intrinsic)이라고 답을 주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본질’의 사전적 의미는 본디부터 갖고 있는 사물 스스로의 성질이나 모습 또는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이다.
이용복은 원형, 즉 오리지널(original)은 복제, 각색, 모조품 따위에 대하여 그것들을 낳게 한 최초의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그러면 택견은 진짜이고, 태권도는 상대적으로 가짜거나 모조품이 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택견이 태권도의 본질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택견이 보편화된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문화의 영향 아래서 일본의 가라테를 배웠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자 일본을 배척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가라테를 배운 한국 사람은 가라테를 한국무예로 재편성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이 때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택견적 성향에 의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건 택견을 모델로 인식하여 발질을 많이 하는 태권도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태권도를 만든 사람들은 택견을 실제로 습득한 경험이 없다. 따라서 현재 태권도는 택견과 상이하다. 그러나 태권도가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술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된 동기가 발기술을 주로 하는 택견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택견이 태권도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4)
그는 일제 강점기 시기 가라테를 배운 한국 사람들은 본질직관(本質直觀)에 의해 택견을 지향하여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택견과 가라테를 비교·상기(想起)하여 인식한 게 아니고, 가라테를 체험한 직관으로 택견을 분별하고 판단해서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영복은 태권도와 택견을 ‘동일한 본질의 다른 종목’으로 인식했다.
그는 “택견과 태권도의 상이한 모습은 실존적 현상이다. 같은 발차기라도 태권도는 강력한 타격력을 가지고 있고, 택견의 발차기는 타격력을 배제한다. 격투하는 피아의 상해를 최소화하려는 데서부터 출발한 맨몸무예의 본질적 형태이다. 두 종목이 가진 상이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동전이 한 면만 있으면 불량주화가 된다. 태권도의 타격기술과 택견의 비타격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맨몸 무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완성된 무예로 접근하는 길”이라고 밝혔다.5)
태권도 현대사와 관련된 논쟁들을 세밀하게 다뤄 화제를 낳았던 이창후는 2010년 『태권도현대사와 새로운 논쟁들』 개정판에서 태권도와 택견의 연관성을 거론했다. 그는 “태권도는 택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발전한 한국의 전통무술이다. 택견의 전통이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현대의 태권도로 발전하면서 가라테의 영향을 일부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무예전통의 본질적인 측면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용복은 태권도와 택견의 허구적 연관성을 지적한다. 태권도의 과거 명칭이 택견, 수박이라는 하는 주장은 허구라는 것이다. 그는 “태권도는 택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발전한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주장한 이창후의 논리는 “몰(沒) 사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태권도는 가라테를 한 사람들이 민족적 의식으로 택견을 지향하여 만든 것으로 가라테가 한국적인 것으로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 이용복은 “태권도의 기술 구조가 발차기 위주이고 택견도 발차기 무예니까 태권도와 택견이 동일하다는 이창후의 주장은 양쪽 모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이창후의 주장은 △태권도와 택견이 동일하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않아 설득력이 없다 △태권도에서 뚜렷하게 ‘택견적인 것’을 하나도 적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런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는 등의 논리를 펴면서 “태권도의 택견 지향은 그 자체로도 완벽하지 못했으며 가탁을 하는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향만 했지 실제로 택견을 도입을 하려는 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6)고 주장한다.
송형석은 태권도와 택견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일축한다. 그는 태권도와 택견이 발기술 중심의 특징은 매우 닮았지만 태권도와 택견 간에 기술적 교류나 인적 교류의 흔적은 극히 미미하고, 태권도가 타격중심의 발차기를 구사하는 반면 택견은 밀기나 걸기 위주의 발기술을 이용한다7)며 택견이 무술이기보다는 민속놀이에 가깝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처럼 태권도와 택견을 둘러싸고 논쟁이 여전한 가운데, 허인욱은 “(태권도는) 가라테보다는 오히려 택견의 겨루기에서 더 가까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태권도는 분명 가라테와는 다른 품격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8)며 손기술을 제외하곤 태권도가 택견의 기술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택견은 전통무예가 아니라 놀이라고 주장하는 학설도 만만찮다. 대표적인 학자가 신성대이다. 그는 “1986년 ´택견´을 무예 종목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는데, 여기에 는 큰 오해와 실수가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택견은 무예가 아니고 놀이다. 천하의 어떤 문헌에서도 택견을 무예라고 한 적이 없다. 씨름과 더불어 놀이(戱)에 불과한 ´택견´을 전통무예로 지정해 놓은 것도 이처럼 무예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실수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말했다.
김용옥은 택견에 관한 기존의 사료, 구전, 비디오 기록 등을 분석한 후 택견은 발기술 중심의 기예지만 무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상호가해적(相互加害的) 기예가 아니라 놀이, 즉 놀음이나 유희(戱)의 행위라는 것이다.
택견이 수박의 영향을 받아 조선후기 발기술 중심의 무예로 발전했는지, 아니면 놀이와 유희의 성격이 강한 기예(技藝)인지, 또 태권도와 연관성이 어떻게 되는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각주]
1.최홍희(1972). 태권도 교서. 정연사. 서문.
2.황기(1970). 수박도 대감. 삼광출판사. 41쪽.
3.허인욱(2008). 사운당의 태권도이야기-태권도, 나의 길. 관(館)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 한국학술정보. 239쪽.
4.무예신문. 2010년 10월 1일. 동전의 앞과 뒷면, 택견과 태권도.
5.태권라인. 2010년 10월 4일. 이용복 “태권도의 본질은 택견”
6.태권라인. 2010년 12월 8일. 이용복, 이창후 역사관 비판.
7.배영상·송형석·이규형(2002). 오늘에 다시 보는 태권도. 이문출판사. 102쪽.
8.국기원(2015). 태권도 9대관 정신 및 기존 정신 리뷰 연구 최종보고서. 미간행. 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