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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먼 친척 아이의 이야기다. 그는 서울에서 대를 이은 부유한 한의원 집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5. 16이 나고 여의도에서 산업 박람회가 열렸다.
그 산업박람회 입장권에 복권번호를 붙여서 1등 당첨금이 당시 100만원이었다고 했다. 글쎄, 지금 돈으로 따지면 1억 쯤이나 될까 아니면 10억 정도는 될까? 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박람회 구경을 갔는데 바로 그 아이에게 1등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이 안겨졌다.
당연히 할아버지가 돈을 맡았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점점 공부를 게을리 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불량학생이 되어갔다. 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은 불량학생에게는 늘 부족하기만 했다.
점점 많은 용돈을 요구했고 더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와 조손간의 불화가 커져갔다. 나중에는 맡겨놓은 "내 돈" 다 내놓으라고 날이면 날마다 할아버지를 졸라댔다. 공부를 마치고 어른이 되면 그 때 내 주겠다고 야단도 치고 어르기도 했지만 "내 돈" 내 놓으라는 성화는 계속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학교는 뒷전이고 싸움질로 경찰서를 드나들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는 술이 만취되어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흉기까지 휘둘렀다. 사람 만들기를 포기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집을 나간다는 약속을 받고 돈을 내주고 말았다. 자유와 돈이 생기자 제 세상인 듯, 하고 싶은 방탕한 생활이 이어졌다.
술과 여자와 놀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에게는 덫이었다. 돈이 바닥이 나면서 모든 게 끝이 났다. 친구도 여자도 그로부터 멀어져 갔다. 한 동안의 환락 뒤에는 끝없는 나락의 허무만이 그를 외롭게 했다.
할아버지를 찾았다면 돌아 온 탕자를 맞는 심정으로 보살폈을테지만 그에게는 차마 할아버지를 찾을 용기조차 없었던지 어느 날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감당키 어려운 어린 나이에 안겨진 엄청 난 행운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2
직장 동료였던 몇 년 선배의 이야기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 주택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 금세 소문이 돌아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거나하게 턱을 냈다.
그 때나 이 때나 남들은 한 푼 두 푼 열심히 저축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가 어려울 때 그는 좋은 집도 사고 결혼도 했다.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행복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그런 그에게 직장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놀러 다니듯 했고 일에도 심드렁해져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는 애써 눈치 보며 직장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홀연이 사표를 내 던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 가서도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열심히 복권을 샀다. 언젠가는 또 다시 엄청 난 행운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이십여 년을 복권을 샀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 오지 않았다.
그가 가져간 재산을 축내며 곤고한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같이 입사했던 한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뒤 늦게나마 집도 마련하고 안정된 가정을 일궈나갔고 직장에서는 중견 간부로, 부서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게 굴러 들어왔던 엄청 난 행운으로 마련한 재산은 오래가지 못했고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못했다.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떠났던 옛 직장의 미국 지사가 생기자 그는 다시 말단 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입사동기인 지사장의 배려 덕분이었다.
3
태양을 향해 높이 솟았다가 너무 높이 날아올라 날개에 붙인 초가 녹아 바다에 추락한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서 어리석음과 과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한 때 미노스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에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이의 부정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왕의 미움을 사서 아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왕이 모든 배를 통제했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이달로스는 성 위에 떨어지는 새의 깃털을 모으기 시작했다.
깃털이 어느 정도 모이자 아들과 함께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가 완성되자 초로 날개를 붙여 감옥을 탈출했다. 하지만 아들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에 가까워지는 바람에 날개의 초가 녹아내려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말았다.
마티스 <이카루스> 1947 색종이
일확천금 한탕주의 부동산 투기 광풍이 휩쓸고 있다. 땀흘려 일해 모은 재산만이 오래 갈 수 있다.
우연한 행운이 계기가 되어 좋은 결실을 맺은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행운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세상살이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와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끄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루스의 꿈을 꾸고 있지 아니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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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수원에서 있었던 곤고한 시절에는 매주 로토복권을 사는 재미가 있었지. 당첨이 불가능함을 모른 바는 아니지만 그저 복권이 수중에 있는 동안은 그 지루한 게임을 잊을 수 있었기에 그런대로 나에겐 가치가 있었다네. 물론 지금은 거들떠 보지도 않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