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법수행자료13~삼위 태백 그리고 천산 그리고 돈황 고대 환인시대에는 모든 사람의 주업이 도를 닦는 것이었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bdrr&articleno=1219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bdrr&articleno=1219
Daum블로그
MY통합검색
허공이 돌다[스크랩] 이전원(伊甸園)에서 돈황으로 이주한 한民族 - 율곤학회 펌
2013.06.11 17:19 단조
카테고리펌
댓글쓰기
원문주소 : http://yulgon.pe.ne.kr/board/list.php?board_num=8&page=14&rowid=322
이전원(伊甸園)에서 돈황으로 이주한 한民族 bc8937
이전원(伊甸園)은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라는 책에 나오는데, 상고시대에 한民族의 조상이었던 반고환인천제(盤古桓因天帝) 즉 제석환인씨(帝釋桓因氏 B.C.8937년)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 이전원이었다.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이전원적건설자(伊甸園的建設者)'편에는 환인씨가 신강성 탑리목분지에 있는 이전원을 건설하였다고 되어있다.
" 上帝所造, 自無理由住進上帝的伊甸園. 眞正的伊甸園其中心區就是今日新疆省的塔里木盆地.
'중국민족기원어탑리목분지(中國民族起源於塔里木盆地)'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上帝之下都, 太帝之居, 天皇被跡的聖地, 我們業已知道, 所謂 開天闢地, 首出御世的盤古氏, 乃套取苗 等族的人類起源設.
천제의 도읍지 아래 太帝가 살고 있었다. 이곳은 天皇이 자리한 聖地이다. 아문(我們) 즉 君臣들의 가문에서는 道를 알기 위함을 主業으로 했다.
이런 일은 天地를 개벽(開闢)하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世上에 나타난 으뜸가는 사람이 반고씨(盤古氏) 즉 환인씨(桓因氏)이다. "
바로 12,000년전에 환인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가 도통(道統)하는것을 주업(主業)으로 삼았다고하니 아마 지금시대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만큼 엄청난 정신문명이 발달하였을 것으로 생각이된다.
이와관련하여 다른 몇가지 기록을 언급하고 이전원(伊甸園)을 떠나 삼위산으로 이동해오는 한民族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1992년 호남성(湖南省) 악록출판사(岳麓出版社)에서 발행한 성씨심원(姓氏尋源) [지은이 청(淸)나라때 장주(張澍) ]이란 책의 서문(序文)에 " 초목의 뿌리는 곤륜산(崑崙山)이며 上古代때부터 한일자의 성을 천신(天神), 즉 하늘의 신(神)인 반고환인씨(盤古桓因氏 BC. 8937年)께서 姓氏를 사용해 왔다. " 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고려말(高麗末) 이승휴(李承休)는 삼오역기(三五曆記)를 인용(引用)하여 인류역사상(人類歷史上) 최초(最初)로 나라가 세워지면서 한일(一)자의 姓氏가 반고환인씨(盤古桓因氏 BC. 8937年)에 이어 천황씨(天皇氏 BC. 8479年), 지황씨(地皇氏 BC. 8364年), 인황씨(人皇氏 BC. 8247年)로 이어져 내려 왔다는 사실(事實)을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 밝히고 있다.
한民族은 상원갑자(上元甲子)년을 기준으로 하여 한 일(一)자의 姓氏를 사용하게 된 것은 한일(一)자가 하늘이라는 뜻에서 한民族은 하늘의 자손(子孫)임을 의미(意味)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신문기사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에서 단군신화의 태백산 위치를 규명
2003-12-06 오후 12:31:15
보도지면:대구 매일신문
보도일자:2002년3월21일
단군신화에 기록된 우리민족의 기원은 중국의 천산(天山) 일대라는 문헌자료가 제시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민족의 유래를 서역(西域)으로 확대시키면서 중국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민족의 동진을 뒷받침하고 있어 향후 우리 학계의 중요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박은용(76) 전 효성여대 교수(인문대 국문과)는 중국 청(淸)나라 건륭 28년(1763년)에 편찬된 지리서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에서 단군신화의 태백산 위치를 규명할 수 있는 '삼위'(三危)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다며 20일 이를 처음 공개했다.
흠정서역동문지 4권(卷之四) '천산남북로산명'(天山南北路山名)에 적힌 삼위에 대한 설명은
'古天山東盡境(山海經)三危山西三百五十里曰天山… 一統志天山一名白山自哈密東北境綿亘而西…'
등으로, 삼위산(三危山)의 위치와 삼위산이 곧 천산(天山)이며 이를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산해경'과 '대명일통지' 등의 고서를 인용해 기록하고 있다.
흠정서역동문지는 박 전 교수가 30년전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 시절 우여곡절 끝에 입수한 지리서로 한자와 만주어.몽골어.아라비아어.타밀어.티베트문자 등으로 된 희귀본이며 '삼위'에 대한 기록을 남긴 현존 유일의 고서이다. '삼위'에 대한 이같은 문헌학적 입증은 단군신화의태백산 위치 설명을 위한 결정적인 학술자료를 제시할 전망이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는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내려다 보니 삼위 태백이 가히 널리 인간을이롭게 할만하다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란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지금까지 '삼위태백'(三危太伯)이란 글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던 게 우리 학계의 실정이다.
따라서 민족의 기원을 밝힌 단군신화의 태백산을 두고 주로 백두산을 가리키는가 하면 강원도 태백산과 북한의 묘향산.구월산 등지로 해석하는 등 명확한 근거자료나 학설을 제기하지 못한 상태이다.
박 전 교수는 "우리 학계가 민족의 기원신화에 나오는 '삼위'란 글자가 태백을 수식하는 관용어인지, 별도의 지명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규명도 못하고 있다"며 "천산 일대의 위구르족 등과 우리 민족은 인종적.언어풍속학적으로 유사점도 많아 역사.언어.문화인류학계의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
우리가 잘 알고있듯이 삼국유사에는 환인(桓因)이 서자(庶子) 환웅(桓雄)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삼위태백(三位太伯)에 내려보내 홍익인간 하라고 하였노라고 기록하고있다.
상당히 함축적인 말이지만 일연은 많은 사서들을 참고하여 그렇게 썼을 것이다. 지금도 삼위산은 중국 감숙성의 돈황현 남쪽에 있으며 태백산도 그곳에 있다.
더 확실한 기록이다.
신시개천경(神市開天經) 본문 4페이지에
下視 三危太白, 三危, 山名, 非今 外興安嶺也, 叉 非今 文化九月山也, 乃今支那甘肅界,
하시 삼위태백, 삼위, 산명, 비금 외흥안령야, 차 비금 문화구월산야, 내금지나감숙계,
燉煌縣所在地 三危山也, 本黎苗祖盤古, 初降之地 是也
돈황현소재지 삼위산야, 본려묘조반고, 초강지지 시야
아래를 보니 삼위태백(三危太白)이 보였다. 삼위(三危)란 산의 이름(山名)으로 지금의 홍안령(興安嶺)이 아니다. 또한 지금의 문화구월산(文化九月山)도 아니다. 지금의 지나 서역편에 있는 감숙성 경계이다. 이곳은 돈황현에 있는 바로 삼위산이다. 본시 구려(九黎)와 묘족의 조상반고가 처음 내려온 땅이다.
구려(九黎)와 묘(苗)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므로 다음에 언급함
즉, 천산에서 환인씨의 무리들이 험난한 산맥의 줄기를 헤치고 죽을고생을하면서 일만리길을 걸어서 東으로 東으로 이동해온 곳이 바로 삼위태백인 것이다.
다음은 율곤이중재선생님의 저서에서 발췌한 글이다.
" 天山은 지금도 天山山脈으로 불려오고 있다. 또 地名도 남아있다. 그러나 天山이 白山이니 雪山이니 하는 말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부 학자들은 白山을 白頭山이라 하여 억지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런 행위는 참된 歷史를 오도하는 위험한 짓이다.
天山은 분명히 중국 서부 끝 국경선 주위에 있으며 따라서 南部까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반고환인(盤固桓因) 때부터 黃帝에 이르기까지 6250여년이 흐른 뒤에는 天山의 南部는 곤륜산(崑崙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BC.3898년까지 유소씨(有巢氏)는 天山이었던 곤륜산(崑崙山)의 이전동산(伊甸園)에서 서석기 文化時代에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던 것이 이전(伊甸)은 우전(우전 또는 우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8년 6월 북경에서 제작한 4백만분의 1로 된 중국지도에는 우전(于田)으로 지명을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옛 문헌과 지도에는 우전(于 : 성할 전)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많다.
天山은 白山이다. 그렇다면 宇宙와 萬物 또한 흰색이다. 한民族은 대대로 흰옷을 입고 살아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필연적인 자연의 사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民族은 이전낙원(伊甸樂園)에서 점차 동쪽으로 이주해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돈황(敦煌)의 三危太白이다. 이것은 天山이 끝나는 동쪽 부분이다. 三危太白을 三危山이라고 하며 太白山이라고도 한다. 또는 黑水三危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黑水太白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天山의 남쪽 곤륜산 속에 이전원(伊甸園)이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
이전(伊甸) 아니 이덴 또는 에덴동산은 분명히 天山이었던 곤륜산(崑崙山)에 있다. 그러므로 이전낙원(伊甸樂園)은 한民族의 樂園이자 故土였다. 왜냐하면 이전동산은 천제울국(天帝울國)의 아홉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홉 나라는 九族을 뜻하며 九夷族이다. 九夷의 선조는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반고환인(盤固桓因)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東夷의 선조였던 桓因氏의 부족국가임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桓因은 모든 史書에서 밝혀진 대로 天山의 남쪽 곤륜산(崑崙山)정에서 東으로 이주해왔다. 그러므로 天山과 白山, 雪山은 이전낙원(伊甸樂園)과 함께 잊을 수 없는 한民族의 靈山이자 故鄕인 것이다.
1981년 2월 홍콩에서 발행된 이당(李唐) 著「上古史」에는(본문 2쪽 참고) 上古 때부터 내려오던 민족은 모두동방민족(東方民族)이며, 황제(黃帝) 이후 요, 순, 하, 은, 주 (堯舜夏殷周)로 부터 고구려 주몽(朱蒙)에 이르기까지 묘족(苗族)의 후예임은 의심할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 2008년 03월 18일 11시 55분 조회:1631 추천:149 )
이태수2008-03-18 15:18:28 중국사전사화 문장을 보니 현대중국어입니다. 중공의 문화혁명에도 불구하고 사서를 비밀리 간직하여 연구된 것이 많은 가 봅니다. 위 지도는 날조되지 않은 지명으로 보입니다. 감숙성 란주지역이 섬서성이었습니다. 돈황과 옥문관 역시 동쪽으로 이동되었군요. 공동산이 주천에 있네요, 현재는 녕하성에 있고 징기스칸의 사망지인데.
이 지도는 위도가 표시된 것으로 보아 고지도를 근거하여 최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코이넷으로 퍼가겠습니다.이태수2008-03-18 17:45:46 지도 우측 상단에:
甘肅 古匈奴月氏 漢河西郡
武帝所開 以斷匈奴右臂者 蘭州爲金城郡 過河西至凉州爲武威郡 凉州至甘州爲張掖郡 甘州至肅州爲酒泉郡 肅州至玉門關爲沙瓜州敦煌郡 地方三千餘里
감숙은 예전의 흉노 월씨이고 한의 하서군이다. 무제가 개척한 곳으로 란주를 금성군으로 삼고, 하서를 지나 량주는 무위군으로, 량주에서 감주까지는 장액군으로, 감주에서 숙주까지는 주천군으로, 숙주에서 옥문관까지는 사과주 돈황군으로 삼았는데 땅이 3천여리이다.
이태수2008-03-18 20:25:08 지도 옥문관 아래에 赤斤蒙古:
古西戎地 戰國月氏居之 秦末漢初 屬匈奴 武帝時爲酒川敦煌? 歷晉隋唐 皆中國治 至宋爲西夏 明永樂初 降附今奉貢
적근몽고: 예전에는 서융의 땅이다. 전국시대에는 월씨가 살았다. 진나라 말 한나라 초에는 흉노에 속하였다. (한)무제는 주천 돈황으로 삼았다.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 기간에는 중국의 통치를 받았다. 송나라때에는 서하(西夏)였다. 명나라 영락 초에 항복하여 지금은 조공을 받친다.
현재의 녕하성이 서하가 아니라 옥문관의 남쪽지역이 서하였습니다.bc89372008-03-19 20:26:33 그림의 출처는 구리넷입니다.
게시판 검색란에 삼위라고 치시면 그림이 검색됩니다.
구리넷에 회원가입은 안됫지만 매일가서 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정보가 거기에 있었는지 머리속에 기억은 하고 있지요.
필요할땐 가서 검색어로 찿아씁니다.
주인장께서 마음대로 퍼가고 주소는 안밝혀도 된다고해서 밝히지않았습니다. ^^
그런지도를 가장 잘 찿아내시는 분이 솟대님으로 알고 있습니다.이태수2008-03-21 11:26:09 coo2.net의 게시판에 '푸른바다'님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를 보고서 느낀 점이 감주와 숙주가 별도로 있었으며, 현재의 감숙성은 섬서성이고 원래의 감숙성은 북서쪽으로 비정됩니다. 自遼東開原抵此七千里: 요동개원에서 이곳까지 7천리. 그런데 가욕관은 북서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개원은 가욕관에서 북서쪽으로 가야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지도 역시 가짜 지도로 보이는데 목적은 동북삼성의 개원으로 오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태수2008-03-21 11:33:16 개원을 찾다보니 회녕과 연결되고, 오르무치 북쪽으로 잡힙니다. 그런데 7천리라고 했으므로 준가리 분지를 넘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령까지 비정됩니다. 회녕은 근세조선의 6진에 해당되는 데 회시(무역)가 있었던 곳이고 여진,명과 무역을 하던 곳입니다. 또 회녕은 상경용천부이고, 발해,만주지역에 해당됩니다.
출처 :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 글쓴이 : 농욱 | 원글보기
댓글쓰기
카톡카스트윗페북그룹메일
더보기
10월 3주 이 블로그 인기글거북선정우택 대만을 검색해 보니.. 조선일보는 없다
윗 글특이하군..
아랫글2012년 5월 24일 오후 08:01
홈 | 방명록
블로그 바로가기 홈화면에 추가맨위로
DaumPC화면고객센터상거래 피해구제신청© Kakao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