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5.18기념재단과 5월 제단체는 지만원 박사를 지난 5월 30일 광주지검에 고소했다"고 6월 3일에 밝힌바, 5월 단체는 고소장을 통해 "전사모, 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광주사태(화려한 휴가) 증언자료 등 3곳의 인터넷 사이트와 지만원씨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지칭하고 있다"며 고소 사유를 밝혔다 (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80603_0007811324 )
본래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는 노태우스러운 혹은 물태우스러운 칭호이다.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사용되었는데,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5.18민주화운동"으로 승격시키면서 왜 그 칭호를 사용해야 되는지 이유를 제시해 주지 않고 승격시켰기에 물태우스러운 명칭이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는 분명하다.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를 쓰지 않으면 소송을 걸라는 것이 그의 취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문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5월 단체는 노태우 대통령을 고발하였으며, 그들이 고발한 대통령이 물려준 물태우스러운 명칭을 그토록 선호하는가?
본래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훗날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된 서울 운동권이 정한 명칭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한화갑, 이해찬 등 수십 명의 동교동 사람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시민군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서울의 운동권에게 왜 함께 전국적 민중봉기 일으키기로 하고 가만히 있느냐며 유언비어를 계속 전해 주었다. 그러나, 서울대 운동권은 광주의 시민군처럼 무기탈취하여 관공서를 점령하는 대신 광주사태 대자보를 제작하여 대학가 벽보에 붙이거나 유인물을 시내에 뿌렸는데, 그때 그 대자보 명칭을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라 불렀으며, 언론이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서 광주사태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광주사태든 518민주화운동이든 광주에서는 그런 용어들이 사용하지 않았다. 폭동 주동자들이 사용한 명칭은 "전라국"이었다. 전라도에 해방구를 설치하여 전라국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의문은 이것이다. 당시 그들이 정한 명칭이 "전라국"이었을진대, 왜 그들이 정한 명칭을 저버리고, 그들이 1995년에 고발한 노태우 대통령의 물태우스러운 칭호를 사용하는가? 분명한 것은 광주사태 당시 그 아무도 그 물태우스러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10년 후에 그 물태우스러운 용어가 공식 명칭이 되리라고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만들어 냈을까? 아마 그 비밀은 한홍구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일 것이다. 따라서, 한홍구가 참으로 과거사에 솔직해지려면 서울대 운동권 중 누가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제안하였는지 밝혀야 한다. 5월 22일로 예정되었던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를 광주의 운동권과 함께 주동하였던 자들이 만든 용어였기에 한홍구는 그 용어의 출처에 대하여 침묵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지만원 박사께서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5월 단체에 고발당하셨으니, 이제 광주사태 용어의 유래에 대하여 한홍구는 밝혀줄 책임이 있다.
1980년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국적 민중봉기 주동 세력 중 서울의 운동권이 처음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한 선례에 이어 우리는 1995년 12.12-5.18 재판 고소 · 고발인들이 다시 그 용어를 사용한 선례를 발견한다. 그들의 고소사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전두환과 노태우가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야기했다는 것이다. 누가 광주사태를 야기하였는가? 전두환과 노태우가 광주사태를 야기했다는 것이 5월 단체의 주장이다. 그런데, 만약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5월 단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란 의미로 사용하여 두 전 대통령을 고소하였던 것이라면 그 논리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그런데, 정말로 노태우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는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면 자기가 8년 후에 6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사용하자고 공식 발표하게 될 것을 내다 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는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아니면 5월 단체의 픽션 소설인가? 정말로 노태우가 장구치고 북 쳤는가? 전두환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으면서도 전두환만 백담사에 유배보냈는가? 노태우가 실로 그토록 유능한 인물이었는가?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제조해낸 서울의 5월 시위 주동자들은 또한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홍구는 단 한번도 "노태우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두환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위원회도 노태우가 시위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 시위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으려 혈안이었다. 그럴진대, 노태우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무 관계가 없었으니, 1995년 5월 단체의 주장은 이 시점에서는 "전두환이 광주사태를 야기했다", 즉 전두환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했다"로 귀결된다.
1988년 12월 7일 광주청문회 때 무장 공비들 사진을 광주 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치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 1호로 등극하는 이해찬의 모습.
그런데, 우리가 서울의 김대중 홍위병들이 지정한 명칭 "광주사태"와 노태우 정권이 지정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중 어느 명칭을 선호하든 누가 광주사태를 야기했느냐의 질문에 우선하여야 하는 질문은 "누가 광주에 해방구를 설치하였느냐?"는 질문이다. 오늘날 중국 영토가 넓지만 모택동은 한 지역 한 지역에 먼저 해방구를 설치하고 점령 지구를 넓혀 나갔다. 김일성도 6.25남침 전에 남로당에 해방구 설치 지령을 내렸고, 광주사태 당시는 여전히 북한이 해방구 설치를 목적으로 무장공비들을 남파하던 시점이었다. 이해찬이 광주청문회 때 무장공비 사진이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쳐 일약 청문회 스타로 등극한 사건 역시 그만큼 무장공비가 거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시대 배경을 말해 준다.

중무장한 518광주시민군

5월 21일 광주시민군이 무슨 이유로 전남도청을 점령하고 해방구를 설치하였느냐의 의문에 대한 한 단서가 과연 누가 이 시민군 보초병이었느냐의 질문이다. 힌츠페터를 광주로 데려온 자들은 시민군이 전남대생이라고 말했다. 5월 단체들은 전남대가 평화시위했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 이 시민군 보초병의 철모와 군복과 장비는 어디서 왔는가? 돌발적으로 시민군 보초병이 생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남대가 보초병을 훈련시켜 두었는가? 실제로는 전남대 학생회 간부들이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없었기에 그런 가정도 불가능하다.

시민군 보초병들이 출입을 금지시켜 힌츠페터가 도청 안에서부터 촬영하지는 못했지만 수기에 기록하였으며, KBS가 "푸른 눈의 목격자"를 편집할 때 숨기는 장면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자마자 보초병들이 아주 빠르게 자기 위치로 가서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보초 근무는 현역병도 훈련이 필요한데, 어떻게 자기 초소를 미리 알고 순식간에 시민군 초병들이 근무를 하기 시작할 수 있었을까? 분명 조직적인 사전 준비가 있었다. 전남대가 그런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기에 어느 배후 세력이 사전 준비를 시켰느냐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다.
5월 21일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였을 때 시민군은 엄청난 양의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동사무에서 가져온 것이라느 것이 5월 단체의 입장인 듯하나, 저 철모들과 저런 실탄들이 동사무소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운동하는데 저런 철모와 총기들과 실탄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지만원 박사께서 노태우 정권이 지정한 명칭 대신 김대중의 서울 홍위병들이 지정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셨다는 이유로 5월 단체들이 고소할 때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은 해방구 설치의 주체는 누구였으며, 민주화운동하는데 저런 철모와 총기들과 실탄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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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http://cafe182.daum.net/_c21_/bbs_list?grpid=rUoh&fldid=3IBb 에서 237, 240, 241, 242 번 글들을 열어 첨부 파일을 클릭하시면 <검찰질의에 대한 전두환 전 대통령 각하의 소견 및 논평>을 그림 파일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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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봄 김일성이 중국에 가서 년 5월15일에서 5월20일어간에 남한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키면서 남침을 감행할 것임을 통보하던 바로 그 무렵 북한군 특수부대가 여러 루트를 통해 침투하고 있었다. (발견된 무장간첩들은 침투한 전체 간첩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 선동하기 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 이창룡
검찰질의에 대한 전두환 전 대통령 각하의 소견 및 논평
12.12-5.18 재판의 패자는 518 단체들
첫댓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구나.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것만이 고소 사유인양 헛소리를 해대고 있구나. 니가 링크를 걸어논 뉴시스 기사 그대로 옮겨줄테니 고소사유가 무엇인지 다시 공부하고 소송준비 쳐 하길 바란다. ===5.18당시 북한이 간첩을 보내 시위를 조장했다는 등의 각종 허위 사실을 유포해 광주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되셨습니다. 역사학도씨. 정신 좀 차리세요.
이해찬이 광주청문회 때 (남한에 해방구 설치하기 위해 침투한) 무장공비들 사진 들고서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쳐서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되었었는데, 이해찬이 허위사실 유포로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
역사학도야 나한테 이해찬이 어땠는지 저쨋는지 쳐 이르지 말고 억울하면 너도 이해찬 고소를 쳐 하든가 하세요.
이해찬이 남한에 해방구 설치하기 위해 침투한 무장공비들을 가리켜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라고 사기친 공로로 광주시민군도 아니었던 이해찬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특별 포상받고 문교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 아닌지.
역사학도야 오늘 덕분에 많이 웃는다. 니가 지금 몰고 가려는 논의는 이미 우리 예전에 했었는데 기억 안나니? 너의 부족한 기억력때문에 많이 피곤하구나. 다시 상기시켜 줄테니까 똑똑히 잘 쳐보거라. 1998년 7월 30일 동아일보 15면 기사 내용으로 니가 자주 써먹는 레파토리중에 하나인데. 그 기사 그대로 옮겨와 줄테니까 단디 쳐 봐라.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를 열어 한승헌 감사원장 서리 등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35명과 서울 경남 등 타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자48명 등 4백9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시는 지난해 12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1월 8백34명으로부터 보상금 지급 신청을 받아 이같이 결정했다.이번 지급대상자 가운데는 이해찬 교육부장관 한화갑 국민회의 원내총무 등 정치인 35명도 포함됐다.
윗 댓글은 기사 내용 그대로 옮겨온 거거든. 서울, 경남 등 타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씌여져 있냐 안 씌여져 있냐? 역사학도야 너 맹인이냐? 서울, 경남 사람들이 광주시민군이어서 보상금이 지급됐니? 제발 좀 말이 되는 걸로 우겨라. 그리고 한 번 해서 안먹히면 제발 좀 신선한 걸로 부탁한다. 니 헛소리도 벌써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서 식상해. 이건 뭐 모든 논의가 무한 반복이야. 제발 말 좀 되는 걸루다가 꼬투리잡자 역사학도야.
그리고, 대표적 광주민주화유공자이자 5월 단체 회원인 윤기권이 1991년 2억원 보상금을 수령하자마자 어버이 수령 찾아간다며 월북하였으니, 윤기권은 민주항쟁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 5월 단체들은 그들의 회원이었던 윤기권이 왜 월북하였는지에 대하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 적이 있었는지. (만약 윤기권이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른 것과 민주항쟁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5월 단체들 편에서 어떤 설명이 있어야 함.)
이해찬이 남한에 해방구 설치하기 위해 침투한 무장공비들을 가리켜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분명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였는데, 무조건 사기쳐서 국민을 속여 김대중에게 유리한 여론 조성해 주면 민주화 운동으로 그쪽 동네에서는 정의되는 것인지.
역사학도야 오늘 아주 날 잡았구나. 예전에 우리 논의했던 거 다시 오늘 총복습하자는 거야? 윤기권은 8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광주 대동고 3학년. 고3학생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맹랑한 주장은 설마 하지 않겠지? 이재의 광주일보 기자의 말에 따르면 윤기권은 5월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한다. 보상금 2억원은 정신질환치료비조로 책정된 금액이었단 말이다. 윤기권이 그 2억원을 가지고 월북했니? 윤기권은 2백만원만 들고 유렵여행 간다고 해놓고 월북한거다. 불쌍한 애를 니들 좋아하는 좌빨이니 뭐니 이런거로 몰고 가는거 빼고 역사학도 니 주장을 관철시킬만한 내용은 없냐?
오호 그쪽 동네 운운하는 거 보니 이제 지역감정 조장까지. 참 가지가지 한다. 난 그 쪽 동네 아니니까 엮으려 하지 마시길. 이해찬이가 니 말마따나 무장공비 시체 사진을 광주 당시 피해자 사진이라고 발표한 것은 큰 잘못이지. 최종 확인을 잘못한 것은 분명 이해찬의 잘못이나 그 사진을 준 것은 사이비 기자였고, 그 기자는 그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룬걸로 알고 있단다. 또한 그런 거 말고 상큼한 걸로 부탁한다. 내가 이해찬이 대변인은 아니잖니? 이해찬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있는 거라고는 청문회에서 밖에 더 있니? 이해찬 이야기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저의는 뭐야? 꼬우면 이해찬 고소하지 그랬어. 이해가 안되네.
그리고, 한화갑은? 분명 한화갑도 광주시민군은 아니었을텐데 그쪽 동네에서는 동교동에서 서열이 높으면 무조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주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찬과 한화갑이 언제 무슨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인지? (여기서 그쪽 동네는 김대중 동네 혹은 동교동)
도대체 김대중이 1980년 5월 22일 일으키려 했던 전국적 민중봉기와 광주사태가 무슨 연관이 있기에 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 주동 세력에게 5·18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지급한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임.
아시겠습니까? 이준형님이 <이해찬 교육부장관 한화갑 국민회의 원내총무 등>등이 <서울, 경남 등 타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라고 진술하실 때, 님은 1980년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계획"을 민주화 운동이란 용어로 포장하신 것이며, 김대중 일당 편에서도 1980년 5월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계획"과 "광주사태"는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한묶음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신 것입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5월 중순 "전국적 민중봉기" 선동 대자보들을 먼저 보았고, 며칠 후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들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전국적 민중봉기" 선동이 먼저 있었던 사건입니다. 저는 그 진실을 증언해야만 했고, 이제 이준형님도 훗날 "민주화 운동"이란 용어로 포장된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여 주셨습니다 -- 그것이 사실을 입증하는 논거를 제시하심으로 시인하여 주셨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키고, 신현확 총리 내각을 강제로 퇴진시키려던 그 당시의 시위 구호들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며,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선동을 위해 어떤 내용의 대자보들이 붙었는지를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전국적 민중봉기"를 향해 돌진하는 시위들이 먼저였고, 광주사태는 그 후 터진 사건이었습니다. 이렇듯 사건의 선후를 분명히 기억하는 저에게 그것이 "항쟁의 역사"라고 강요하실 수 있는가요? 더구나, 1980년 5월의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 보지도 못하신 님이 저에게 그런 강요를 하실 수 있을까요?
역사학도야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내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니가 주장하는 개소리에 시인을 했니? 이제 진짜 웃기지도 않는구나. 역사학도야 니가 위 댓글에서 쳐 한 말이다.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시인을 했니? 무조건 우기고 보면 장땡이냐? 니가 그래서 고소를 당한거야 정신 좀 차리자.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지 마라. 경고한다.
그리고 역사학도 넌 5월 중순이라고 얼버무리며 개소리를 자꾸 해대는데 5.18일 전국 비상계엄 확대로 전국의 대학교가 다 휴교령이 떨어졌는데 대체 언제, 어디서 니가 주장하는 전국적 민중봉기 선동 대자보며,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를 봤는지 대답을 쳐 하길 바란다. 너는 5.18당시 대학생이며 대학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스스로 씨부렸는데 도대체 휴교령이 난 상황에서 어떻게 계속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인지에 대한 해명도 한 바 없다. 난 역사학도 니가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으니 해명을 하길 바란다.
도대체 역사학도 니가 공부한 대학은 어느 대학이냐?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은 니 스스로 식품공학이 전공이라고 밝혀서 알게 되었으니 도대체 니 출신대학이 어딘지도 알고 싶구나. 그리고 이 곳 까페에 올라오는 글 중 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임의로 삭제하지 마라. 니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다면 일기장에나 쳐 해대길 바라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다면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그렇게 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지 마라. 너의 개소리를 내가 시인을 했다는 등의 헛소리는 삼가하라고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해찬이 1980년 5월 서울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면서요. 그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김대중 심부름으로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계획 추진한 것 맞지요? 이해찬이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을 받은 것은 1980년 5월 추진되고 있었던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음모 주동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맞지요?
우선 내가 하지도 않은 시인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역사학도 너도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나 역시 너는 그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는구나. 또한 나는 이해찬의 변호인이 아니다. 그러나 간과하고 넘어가기에는 역사학도 너의 헛소리가 너무 지나쳐서 한마디 해보마. 너는 댓글에서 이해찬이 광주시민군 출신이 아닌데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됐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98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여줬고 거기에는 분명 광주 이외의 타지역 민주화운동관련자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역사학도 너는 이제 이해찬이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음모 심부름을 한 것 뿐이라고 왜곡, 폄하하고 있다. 왜 이제 소송때문에 김대중 내란음모라는 직설적 표현을 쓰기 껄끄럽냐? 이왕 말 가려 하려면 음모라는 말도 빼거라. 말을 돌려 표현하느라 고생하는구나. 아무튼 5월 22일 장충단 공원 및 각 지방 시청앞에서 정오에 개최하기로 예정된 "민주화 촉진 국민대회"가 역사학도 니 입을 거치면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음모"로 변하는 것이 우습다만 이는 예전에도 역사학도 너에게 착실히 설명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나는구나.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면 다시 또 애기를 해주마. 제발 단디 쳐 보거라.
사건번호 2003재노19의 판결문을 인용해주마. 피고인(김대중)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음모했거나 회동한 사실이 없고, 단순히 정치이념을 같이 하는 지식인, 종교인들끼리 회동하여 순수한 민주회복을 위한 의사표시의 방법으로서 학생운동을 하여 국민여론에 반영하도록 시도한 것에 불과하고,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그 방법이나 실력으로 보아 국헌을 문란하게할 아무런 위험성이 없었고~~~민주회복을 위한 인권운동 또는 선교활동을 위한 모임, 사제간의 모임, 직능별 사회단체 구성원간의 사교모임에 참가한 정도에 불과하고~~
위 부분 공소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범죄로 되지 아니하므로 형사소송법 제 325조 전단에 의하여 각 무죄를 선고한다. <=== 역사학도 니가 주장하는 김대중의 내란죄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재심에 의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역사적이나 언론,정치적인 자료에 의해서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이 명백하다만 법원의 판결문 만을 인용한 것은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로 소송을 시작하게 될 역사학도 너를 위해서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치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헛소리도 제발 가려서 해라.
<의사표시의 방법으로서 학생운동을 하여>라는 문구를 인용하셨는데, 김대중의 단체들 중 최상위기구였던 국민연합 사무국장 윤상원이 5월 9일부터 무기탈취조를 조직한것이 "학생운동"인가요?
광주청문회 당시 이해찬이 "남한에 해방구 설치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되었던" 무장공비들 사진 가지고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쳤을 때 5월 단체들은 이해찬이 사기치는 것을 보았을 것 아닙니까? 제가 궁금한 것은 지금껏 대다수 국민이 이해찬에게 속고도 모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5월 단체들이 그 사실을 밝혀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김대중이 5월 22일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고 내각을 임명할 목적으로 조각하였던 사실에 대한 판결문을 인용해 주시겠습니까? 도대체 "최규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신현확 내각 총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요? 대통령과 내각이 동시에 총퇴진하는 것은 정부가 전복되는 것입니다. 정권은 선거로 교체되어야 함에도 김대중이 민중봉기로 국가를 전복시키려 했던 행위에 대한 판결이무엇인가요?
댓글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져서 자꾸 오류가 나길래 역사학도 니가 쳐 해대는 거짓말에 대해 내가 새로이 덧글로 글을 써서 뒤에 붙여놨으니 눈 똑바로 뜨고 쳐 읽어보기를 바란다.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있었던 분들이라면 이해찬이 위증을 하였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인도 시민군도 저런 군복차림이 아니었으니까요. 따라서, 이해찬이 허위사실을 유포한데 대해 5월 단체들은 20년이 지나도록 마냥 침묵만 하고 있을 것인지 한마디 답변이 그렇게 어려우신가요?
주구장창 개소리로구나. 역사학도 니가 80년 5월에 광주에 있지 않았는데 시민군 복장이 저러했는지 어떠했는지 너는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것이냐? 그리고 이해찬은 광주청문회에서 증인의 신분이 아니라 해당자들에게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 신분인데 위증은 또 왠 개소리냐? 위증이라는 단어의 뜻은 알고 쓰는 것이냐? 또 위증을 했다면 무엇을 위증했다는 애기인지 밝혀 보거라. 내용은 없고 위증했다고 주장만 하면 장땡이냐? 다른 사람이 위증을 했네마네 개소리하지 말고, 역사학도 니가 해댄 거짓말들이나 반성을 좀 하거라. 한심하구나.
이해찬이 진압군이 시민군 사살한 장면이라고 기세 동등하게 소리치며 보여준 사진에서 그 군복은 1980년 5월의 군복이 아니었는데, 그 사실은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계셨던 분들 눈에 먼저 뛸 수 있는 사실이지요. // <의사표시의 방법으로서 학생운동을 하여>라는 님의 인용구에 대해 이어 질문 드립니다. 당시 "최규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직선제) 개헌 반대 구호 외에 다른 의사표현은 없었거든요. 자, 님이 "의사표시" 하셨을 때 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5월 19일까지 물러가라던 그 최후통첩을 "의사표시"린 말로 포장한 것입니까?
역사학도 니가 댓글로 주구장창 개소리를 달기에 내가 새로이 글을 써준 적이 한참 되었건만 아예 읽지도 않았구나. 16시 47분에 글을 남겼는데 아직도 조회는 0이다. 니가 맹인이 아니라면 뻔히 너 보라고 단 글을 왜 쳐 읽지 않는지 진짜 궁금하구나. 다른 글도 조회가 0이구나. 역사학도 너 보라고 글을 남기면 뭐하겠냐 쳐 읽지도 않고 이 곳에서 똑같은 질문 무한 반복하고 있는데. 이 곳 게시판 253번 글에 이해찬 이야기 써놨으니 쳐 읽도록 하여라. 의사표시 어쩌고는 대한민국 사법부 판결문이니까 직접 법원에 연락해서 쳐 물어보도록 하고 내가 너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니까 직접 쳐 알아보고 개소리 지껄여라.
난 이글을 읽으면서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알량한 글재주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 역사학도"라는 허줍지 않은 필명으로 둥그레 뭉개가는 꼴 보아줄수가 없습니다.그러니 바른말로 자신의 허구성을 찝어내는 이준형님이 눈에 가시였겠지요.그러니 글을 쓸수없게만들고 또 허줍지 않은 글 솜씨로 잘난척하며 역사적 사실을 숨긴채 지멋대로 각색하고 만들어가는 못된양반이군요. 여기 쥔장님은...
알량한 글재주? 허줍잖은 필명? 아침녘님이나 가서 역사공부와 글짓기 그리고 인성공부 좀 더 하셔야 겠네요. 참고로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비판,반박할 수는 있어도 그런식의 유치한 인신공격은 삼가주세요. 비판을 하시려거든 역사학도님이 쓴 내용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됬는지에 대해 통찰력있고 논리적으로 하시란 말씀입니다. 나와 반대 입장이라고 감정적으로 어린아이처럼 무조건 억지쓰지 마시고요. 아침녘이나 이준형님같이 토론에 욕설과 감정적 흥분을 일삼는 분들때문에 우리나라 토론문화 수준이 뒤떨어지는 겁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717호 좀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