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맛집 같았으면 자기네 음식점 자랑하기에 바빴을 게다. 좋은 재료를 쓴다, 하루에 손님이 얼마나 온다 등.
하지만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성풍관 장학열(63) 사장은 어쩌면 경쟁자일 수도 있는 다른 중국집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장 사장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봐도 결국은 돌아돌아 동료들의 칭찬으로 끝이 났다. "평범하게 큰 친구들이 없어요. 다들 조실부모했거나 계부, 계모 밑에 자랐거나 딱한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 이만하면 먹고살 만하다고 다들 자장면 봉사에 나와요. 대견하죠." 그는 전국 회원 1만여 명을 두고 있는 ㈔한국중식봉사나눔회 회장이기도 하다.
한국중식봉사나눔회 회장 맡아
회원들과 격주 어르신 자장면 봉사
퍼주는 버릇에 가게서도 무료 급식
"65세 어르신만 투표하면
국회의원도 저한테 안 될 걸요^^"
■자장면 한 그릇의 소중함어느샌가,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솔푸드(soul food·추억이 깃든 음식)'가 되어버린 자장면 한 그릇의 소중함을 장 사장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언젠가 한 할머니가 자장면을 먹다 말고 가져온 봉지에 자장면을 담고 있는 거예요. 할머니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저녁에 먹으려고 그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 다 드세요, 이따 봉투만 따로 좀 주세요 하고는 나중에 몰래 국수랑 장이랑 따로 챙겨 드렸죠. 그런 할머니들이 계시는데 봉사를 거를 수가 있겠어요?"
그가 매달 자장면 봉사를 시작한 게 IMF 외환위기였던 1997년부터니까 올해로 18년째를 맞는다. 당시 본격적으로 중국집 문을 열게 되면서 자장면 봉사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채소 공판장을 했었는데 상품 가치는 없지만 먹는 데는 문제가 없는 채소들을 동사무소에 가져다주기 시작하면서 봉사를 시작했다. 벌써 28년 전 일이다.
"재미가 있더라고요. 배추, 무 이런 걸 가져다줬더니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김장을 해주자고 하더라고요. 한번 하고 나니 너무 신나는 거예요. 그 뒤로 밭에서 나는 다른 채소며 과일을 다 갖다 줬죠. 나중에는 빵 공장에 가서 이러이러하니 빵을 원가에 달라, 그랬더니 흔쾌히 그래 주더라고요. 정말 신이 났어요. 그래서 봉사 이거는 마약이랑 똑같다고 하는가 봐요."
장 사장은 지금도 매월 첫째, 셋째 화요일이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자장면 무료 급식에 나선다. 지난 17일에도 기장군에서 500여 명 어르신에게 자장면 무료 급식을 했다. 이날 함께 한 중국집 사장들이 모두 14명이란다.
"우리끼리 그래요. 대충 세어보니 지난 세월 10만 그릇은 되겠더라고요. 아파트를 사도 몇 채를 샀겠다며 우리끼리 웃었죠. 근데 그걸 돈이랑 바꿀 수 있겠어요. 자장면으로 자식들 이만큼 키우고 먹고살 만하니 자장면으로 갚아야죠."
2년 전 한 구청에서 자장면 봉사 날짜를 잡았는데 실수로 중국집이 쉬는 화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을 잡았다. 다른 동료들의 경우 중국집 문을 닫을 수 없어 봉사에 나오지 못했고 결국 장 사장 혼자 가서 500인분을 다 쳐냈다.
길을 가다가 굶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명함을 쥐여주고 "주변에 아무 중국집에라도 가서 이 명함 보여주고 내가 가라 해서 왔다고 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회원 중에 그냥 내쫓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국회의원보다 반가운 사람사실, 이 정도 되면 가족이 안 도와주면 할 수가 없다. 아내가 장 사장 대신 가게를 도맡아 주는 건 물론이고 지금도 큰딸, 사위, 막내아들이 붙어서 가게 일을 해주고 있단다.
"큰 애가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채소를 막 사다가 독거노인들에게 갖다 주고 할 때였는데 우리 딸이 아빠는 만날 일요일만 되면 낚시만 간다며 투덜대는 거예요. 당시 제 차에 낚시가방이 실려 있었거든요. 그래서 따라갈래 그랬더니 따라와요. 근데 가보니 낚시터가 아니었거든요. 딸아이가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러고 나서 학교에서 글짓기를 하는데 그 내용을 적었나 봐요. 상을 받아 왔더라고요. 딸 아이는 그 후에 회사에 들어가서도 봉사단을 직접 만들더라고요. 그런 것도 대물림되나 봐요."
하루는 어떤 행사장에 국회의원과 구청장, 장 사장이 나란히 간 적이 있었다. 한 어르신이 반가운 얼굴로 뛰어와서는 세 사람 중 장 사장의 손을 덥석 잡더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이고, 어제 잘 먹었습니다"였다고. 당시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멋쩍어하면서도 섭섭해 하자 장 사장이 우스갯소리로 "65세 이상 어르신만 투표하면 나한테 안 될 걸요?"라고 해 크게 웃은 적이 있단다.
몇십 년 마음을 다해 봉사하니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난단다. "남들은 봉사하면 남는 게 없다고, 장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알게 모르게 저희가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원래 장 사장은 15년 넘게 영도에서 '성풍관'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지적장애 3급을 가진 막내아들이 나쁜 친구들에게 당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결국 20여 년 된 삶의 터전을 떠나 이곳 기장으로 왔다. "지금은 아들이 가게 일도 곧잘 돕고 힘들어하지 않아서 좋아요. 옮겨온 후 손해 본 건 많지만 아들 하나 살렸잖아요. 후회 안 해요."
이 집 음식 맛 자랑은 한참 지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짬뽕 이거는 안 남아요." 전복까지 한 마리 '턱' 얹어 옹기그릇에 내오는 8천 원짜리 해물특짬뽕은 이 집의 대표 메뉴. 이거 먹으려고 거제도에서도 어르신들이 차를 타고 오고 울산에서도 차를 타고 온단다. "70대 어르신들인데 지금 우리 거가대교 올리니까 언제까지 짬뽕 세 그릇이랑 쟁반자장 좀 해줘 하고 전화가 와요.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장 사장은 중국집보다 '자장면 봉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한동안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2부 '부산 맛 기업의 사회 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합니다.
※ 나눔 참여 문의: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051-505-3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