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주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사회
1) 개혁개방 정책 20년
- 1978년 11월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三中全會) 이래?. 사실상 권력투쟁과 정책 갈등 속에서 서서히 진화되어 온 것.
<1978-1984>
- 1980년 五中全會
- 1981년 『건국 이래 당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결의(建国以来党的历史若干问题的决议)』-- 1949년 이래 중국공산당과 모택동의 功過를 총체적으로 평가.
- 1982년 제12차 중앙위원회 선출 - 당정 지도부 획기적 교체, 문혁수혜파 숙청, 전국적인 平反 집행. 개혁파의 확고한 권력 장악.
- 이윤유보제도/ 利改稅/ 撥改貸/ 鄕鎭企業의 등장
- GDP 연간 10% 가량의 증가
<1984-1993>
- 1984년 10월 제12기 3중전회. “사회주의 상품경제” 제시.
- 기업자율권 확대와 경영자 권한 확대/ 노동의 시장화(종신고용제를 계약제로, 일자리 상속 금지)/ 기업경영의 계약책임제/
- 경제 과열, 인플레이션, 기율 이완 민주화요구와 보수파 모두 목소리 커짐.
- 1986년의 대학생 민주화 요구, 胡耀邦 총서기가 사임.
- 1987년 제13차 당대회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 1988년 4월 중화인민공화국 전민소유제 공업기업법 : 소유권과 경영권 분리
- 1989년 6.4 천안문사건, 趙紫陽 총서기 실각. 江澤民이 총서기로(이듬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선출).
- 1992년 등소평 南巡講話 개혁 지속 확인.
- 실업보험과 양로보험 개혁
- GDP 성장률 감소. 국유기업 생산성 악화.---> 기업에 대한 국가소유권의 포기, 더 큰 자율화로.
<1993-2000>
- 1993년 11월 제14기 3중전회.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건립에서 약간의 문제에 관한 중공중앙의 결정”, 12월 “회사법” 주식제로의 전환. 1997년 IMF 아시아금융위기로 답보, 2년이 지난 뒤 다시 추진. 2010년까지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하기로.
- 1997년 등소평 사망.
- 강택민 체제(강택민 국가주석, 朱鎔基 총리): 先富論
- 9%대 고성장. 2001년 WTO 가입
<2001->
- 胡錦濤 체제(2002년 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취임, 溫家寶 국무원 총리 : 소강사회(小康社會), 서부대개발, 화해사회(和谐社会),대국굴기(大国崛起),G2의 시대로.
- 2007년 物權法이 통과, 사유재산의 보호를 명기함.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
- 習近平 체제로 이행 예정(2010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선출, 2013년 국가주석 후보)
2) 각 분야의 변화
-농촌개혁
: 인민공사에서 生产队,工作组 중심의 생산,평균주의에서 多劳多得
: 包产到组(공작조가 생산책임)→包产到户(호별로 생산계약)→包干到户(토지를 호별로 분할 경영시킴)
- 경제특구와 대외개방지역의 확대
: 1979년(광동, 복건 4도시)→1984년(총14개 연안도시)→1988년(산동,요녕,해남 경제특구)→1992년(연강, 연변지역)→2000년(서부대개발로 내지까지)
: 이전 경제특구, 이외 개방구, 高新技术产业开发区, 경제기술개발구, 保税区 등등. 1990년대 중반 전국의 60% 가량이 대외개방구역으로 지정.
: 중국 GNP에서 대외무역 차지하는 비중도 1978년 9.85에서 2000년 44.5%로.
-분권화
: 정부 부처내 지방으로의 권한이양(放权让利, 分级管理), 条条→块块
: 국가의 통일분배, 가격통제의 폐지와 완화. 시장화.
: 私有化. 1980년대 중반 계획체제하의 상업화(有计划的商品经济)→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시장경제(社会主义市场经济)”→1997년 제15차 중앙위원회 이후 “사유를 포함한 다양한 소유제 형식의 병존(多种所有制形式的并存)“
3) 21세기 중국의 전망
: 1978년-2000년 9.6%의 국내총생산(GNP) 연평균 성장률. cf. 세계 평균 3.3%
: 세계 제1위의 외환보유국
: 해외 직접 투자의 최대 유치국. 2000년 중국과 홍콩 합해 1050억 달러,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유치총액의 78%.
: 중국 경제총량은 구매력 환산 기준으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 세계 제3대 교역국(미,일 이어), 2004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교역국으로.
: The World Bank의 1994년 전망-- 2020년에는 일본을, 2030-2050년 사이 미국과 대등 혹은 추월.
: 국제연합 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1971년 11월 대만으로부터 인수), G8 가입예상국, ASEAN+3의 주요성원, 북핵 6자회담의 주요 멤버. 이외 보아오 아시아포럼(博鰲亞洲論壇:Boao Asian Forum),상해 6국회담(上海合作組織,Shanghai Six)
: 핵무기 보유국.
* 중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에 있어서 장애요소
- 정부기관의 비대화(thickening)--财政供养人员이 1996년말 3600만명. 기구개혁(精简)
- 분권화로 인한 재정 약화 -- 1994년 分稅制 실시.
- 지역간 격차 - 西部大開發(=西進工程) 용수, 전기, 도로, 가스 및 정보망 건설에만 2조 元 필요. 중서부 19개 성급단위의 외자규모는 전국 총액의 10% 가량에 불과.
- 국유자산 유실 - 开发区热, 隐形经济.
- 금융불안 - 1983년 “재정지원에서 은행대출로(拨改贷)” 이후 지방정부 지방은행 계통 장악. 지방정부가 은행 자금 임의적 사용. 1998년 성급보다 상위의 9개 跨地区分行 설치하기도.
- 국유기업 개혁 - 구조조정 작업 중. 그 결과 下岗之工,提前退岗,不在岗의 비공식실업자 형성(4000만) 연금적자.
- 의료, 주택, 교육 등 사회보장제도의 위기 - 시장화. 法轮功, 시장화되고 있는 의료체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단위 제도 의료복지에 의지못하는 상황에서 파륜공의 자기치료에 매료됨.
- 농촌의 빈곤 - 절대빈곤인구 2600만-7000만 / 鄕鎭企業1980년대 700만명 이상 농촌노동자 흡수, 1990년대 400만명 밖에 소화 못해. 농촌 실업 많아짐. 1998년 농촌가구당 소득은 도시의 40%도 안 됨.(1978년 80%가량이었음) 1999년 한 해만 2천건 이상의 격렬한 농민시위. 반정부적 농민리더인 農民領袖의 등장.
- 民工潮 - 盲流. 8000만-1억1천만. 도시민의 슬럼 형성.
- 민주화 - 기층단위(향진단위 진장, 부진장, 촌장 선거 등)의 실험. 2010년경 중국인구의 40%가 중산층의 인식, 과연 이에 만족할까? “민주화가 결여된 자유화”
- 식량 및 자원문제
* 중국 성공의 비결 - 개방적 리더쉽/ 소련과 동유럽에 비해 낮은 수준의 공산체제 유지,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아 시장화도 더 용이했음. 특히 방위산업 및 중공업에 기반한 국유기업에 대한 경제수요의 급격한 악화, 그로 인한 경제파탄이 중국에는 없었음.
* 중국의 미래
분열과 붕괴의 유고슬라비아 형
덩치만 큰 비효율의 인도네시아 형
민주적이나 국가능력과 경제력은 취약한 인도형
비민주적이면서도 고성장을 계속하여 상당한 국제적 지위를 가지는 미래
시장화와 민주화 모두에서 성공하여 유일패권국은 아니지만 국제체제에서 패권국에 효과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 위상을 가진 프랑스형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강국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