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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 파주 DMZ 투어 글/사진: 이종원
북한땅을 바라보면 참 안타깝다.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희망으로 삶을 이어갈까? 하긴 그들의 틀안에서 행복속에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발치에서 바라본 낡고 적막한 건물을보면 제대로 숨이나 쉴 수 있는지 걱정이 된다. 가까운 내 혈육이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지 모른다.
<신의주의 북한 어린이들> 오두산통일전망대, 철원, 금강산, 만포철교, 백두산북파와 서파, 도문의 두만강 건너에서도...관음증 환자마냥 가슴을 조리며 북을 바라보았다. 그중 뇌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다. 압록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한의 아이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찬 바람이 이는 강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쓰레기와 고철을 줍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여린 손을 흔들고 있었다.북쪽에 태어난 죄밖에 없었다. 단동 호산장성 너머 바라본 북한군도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를 보더니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면서.... 애타게 담배 요구한다. 몰래 담배를 던져 주었더니 슬며시 숲속으로 사라진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그것을 땅속에 묻는단다. 가지고 나가면 빼앗기니까... 밤에 몰래와서 그걸 파간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17살 정도 엣된 얼굴이었다. 고생에 찌든 그 표정에는 한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너른 집단농장에서 홀로 소를 몰고 쟁기질 하는 노인들도 내 가슴에 박혔다. 망나니 동생이 하나 있었다. 주먹질만 일삼고 동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 하도 말썽을 부려 밥도 주지 않고 그냥 내쫒아 버리면 정신 차리고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잘 구슬러서 착한사람을 만들까? 어쩌겠는가 내 유일한 혈육이니 희망을 가지고 도닥거려줄려고 했는데 ....마을에서 왕따를 당한 동생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나보다. 못된 짓을 하면서 조막칼이나 새총을 팔면서 야금야금 뜯었던 수입도 빼앗기고...기어코 부엌칼을 들고 동네 사람들을 위협한다. 이웃사람도, 마을 촌장도...모두 포기했다. "저놈 죽일 놈이야." 이럴 때 형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탕자인 동생이 한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 겨웠다. 북녘을 바라본 심정이 바로 이렇다.
비둘기호가 없어져 안타까웠는데 통일호까지 없어져 기차타는 재미가 사그라져 영 기차타기가 싫어졌다. 그나마 비둘기호 냄새가 슬며시 풍겨오는 기차가 바로 서울역에서 임진강까지 달리는 통근열차다. 기차란 서울아래쪽으로 달리는 것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북쪽으로 달리는 기차도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근대유적지로 지정된 신촌역을 지나 기차병원인 수색을 지나면 아파트촌 일산이 나온다. 교하와 파주들녁에서 기러기떼를 만난다.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민통선 안쪽의 도라산역까지는 하루 3번 운행한다. 도라산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인데 일단 임진강역에서 내려 신원조회 및 수속을 밟고 임진강 건너 도라산역까지 가게 된다. 대신 도라산역까지 가면 달랑 그곳만 보고 돌아와야 한다. 또 다른 코스는 dmz관광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다. 제 3땅굴,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통일촌을 묶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임진강 역 031-954-1074/도라산역031-953-3334 /열차시간 1544-7788
설운도가 부른 '잃어 버린 삼십년.' 어렸을 때 여의도의 방송국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산가족 찾는 안내종이를 본 적 있다. 눈물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전쟁이 낳은 비극이 30년을 훌쩍 넘어 이젠 반백을 넘겼다. 1세대도 별로 남지 않았다. 실향민들은 노래비에 잘 서려고 하지 않는단다. 이 노랫말을 음미하다보면 가슴속에 간직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명절 때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망배단이다. 제 2의 고향인 남한 어느 곳에 터를 잡아도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총알에 뚫린 철모가 전쟁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임진강을 잇는 철교는 자유의 다리가 아니라 독개다리다. 앙상하게 교각만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는 그 앞에 놓인 작은 나무 다리다. 이 다리는 임진각에서 주민등록증을 맡기지 않고 갈 수 있는 최북단이어서 늘 실향민으로 북적거린다. 다리끝에는 국토순례를 마친 학생들이 깃발이 꽂혀있다.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7km 부근에 있는 자유의 다리는 1953년 전쟁포로 교환당시, 남으로 넘어오는 국군 포로를 통과시키기 위해 임시로 가설했다고 한다.
세계 64개국 86곳에서 모아 온 돌로 만든 조형물인 평화의 돌이 서 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임진각에서 표를 끊고 DMZ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제 3땅굴-도라전망대-도라산역-통일촌 코스다.(문의: 031-954-0303 성인:8,700원, 어린이 6,700원)
셔틀버스를 타고 출입수속을 밟고 통일대교를 건넜다. 바로 정주영애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건넜던 바로 그 다리다. 왜 한 마리는 왜 더했을까? 소 한 마리를 연결고리로 삼아 더 많은 교류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실제 1마리덕에 500마리가 더 갔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는 기분이 묘하고도 비장하다. 가장 먼저 간 곳이 제 3땅굴이다. 그 앞에 화합을 상징하는 조각물이 세워있다.
북한군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파주, 개성지역을 밟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DMZ의 자연과 분단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꾸며진 영상관, 마치 DMZ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제 3땅굴로 들어가는 셔틀엘리베이터. 핼멧을 쓰지 않으면 머리를 부딛칠 수 있다. 320m 갱도. 왕복 24분 땅굴은 1978년 6월 10일 발견한 남침용 땅굴로 폭 2m 높이 2m, 총 길이 1,635m 로서 한시간당 군인 1만명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서울까지 거리는 52km지점에 자리잡은 냉전의 현장인 것이다. 안에 들어가면 위에서 뚫은 시추공을 볼 수 있다. 위에서 물을 담았는데 물이 빠져 땅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노래 '잃어 버린 30년'이 설운도를 일약 스타를 만들었다면 제 3 땅굴은 전두환 소장을 탄탄대로를 달리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땅굴을 여러 개를 찾아놓고 발표는 선거때 했다든지.. ....보수표를 결집하기 위해서... 암반지역이라 소리를 내지 않고 파기가 참 힘들었을텐데....어째튼 총 12개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 4개가 발견되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 그 많은 땅굴에서 인민군들이 쏟아져 나온다니....상상도 하기 싫다.
개성공단 물류센타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바로 뒤가 도라산 전망대다. 사방이 평야지역인데 이 산만 우뚝 솟아 있고 북한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최고의 군사 요지다.
도라전망대. "대통령각가의 경륜을 받들어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조국 통일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이 전망대를 세우다. 1986. 9.8."
개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그 뒤에 있는 산이 송악산이렷다. 그 속내에 박연폭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서경덕과 황진이 지족선사의 이야기가 들릴 듯말듯하다. 선죽교와 고려궁터는 잘 보존 되어 있을까? 시인 고은이 개성에 갔을 때 남쪽을 바라보며 "저 멋진 산 이름이 뭡니까?" 안내원 동지는 씩 웃으면서 "서울의 북한산입니다."
전망대 5미터 후방에 노란색 포토라인이 있어 그 안쪽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물류센타. 매일 서울서 개성공단까지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도라산역이다. 벽면에는 남북출입사무소라고 써있다. 남과 북은 한나라이기 때문에 '출입국 사무소'라고 쓰지 않았다. 지붕은 남과 북이 손을 잡는 것을 형상화 했다. 국제선 플랫홈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렇다.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이곳에서 출발한 기차는 평양-신의주를 거쳐 하얼빈-러시아의 미루쿠프로- 모스크바등을 거쳐 유럽까지 내달리는 철의 실크로다다. 고구려의 고대 초원로가 재현되는 첫 출발지이다.
2002년 2월 20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김대중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친필 사인을 볼 수 있다.
평양이 대략 200km 떨어졌으니 만약 KTX를 타고간다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용산서 신의주까지는 518.5km.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 종관철도로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하다가 1945년 서울-개성간 74.8km 구간만 단축운행하다가 6.25 이후 완전 중단되었다. 200년 8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경의선 복원 사업이 구체적으로 논의된후 2003년 6월 연결 하였다.
북한에서 경의선이야 말로 생명줄이다. 북한내 여객의 60% 화물수소의 90%를 담당하고 있어 복원이 되면 남북교류는 물론, 중국, 러시아, 유럽의 철도와 연결되어 그 효과는 커질 것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국경통과는 이런 역사에서 이루어진다. 여권에 도장을 받고 다시 기차에 오르면 된다. 도라산 역이 그렇다. 건너편에 국제선 환승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 너머는 남측군사분계선. 철책이 서 있었다. 냉전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도라산역이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북한을 달려가 여행지를 취재할 것이다. 그때 도라선 역을 지나가게 되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어여 오기를........
하루 3번밖에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도라산역은 관광객이 늘 붐빈다. 특히 외국사람들은 기념으로 스탬프를 찍는다.
도라산역을 지키는 우리 군인.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북단마을인 대성동마을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주일 전에 신원조회를 받야야하고 ...대성동마을 사람들의 에스코트를 받야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다. 그곳에서는 개인행동을 할 수 없으며 국군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 사진 찍은 것도 일일히 검열을 받아야 한다. 말로만 들었던 공동경비구역 JSA 부대를 거쳐가게 된다. 영화속에서 이병헌이 선그라스를 끼고 폼을 잡았던 곳이다. 그러나 영화속 이야기지....이병헌은 키가 작아서 들어올 수 도 없단다. JSA에 들어가려면 키가 우선 180 이상은 되고 영어도 유창해야 한다. 1,2000명 훈련해서 6명 정도 뽑혀올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다. 대성동마을은 군사분계선에서 약 400미터에 떨어져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6.25 이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다. 총 48가구에 217명 주민이 살고 있는데 국방의 의무와 납세 의무가 없는 특혜를 누린다. 가구당 년소득이 1억에서 1억 5천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남자들은 들어 올 수 없고 오로지 여자들만 결혼을 전제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불편한 점도 있다. 원칙상 3일이상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북으로 넘어갔는지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는 부부가 함께 이곳에 올 수 없단다. 함께 월북할까봐...청바지도 않되고, 손가락질도 안되고...여행이 아니라 규제와 통제에 답답할 따름이다. 초등학교도 보인다. 9명의 학생에 9명의 선생님이 있다. 금년에 1명이 졸업했다고 하는데 사단장까지 왔고, JSA의 중립국 장교도 참여하여 졸업식도 영어, 한국어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1명이 졸업했지만 1명이 입학하여 아직도 전교생은 9명^^ 대성동마을 100미터 높이 첨탑 위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남한의 대성동마을과는 직선거리로 1.8km 떨어져 있는 곳에 북한의 기정동마을이 자리잡고 있다.1982년 조성된 마을은 판문점 평화협동농장. 일명 평화촌이라고 하며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 이후 3층 망루석건물로 증축하여 선전마을로 활용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높이 160m 인공기계양대다. 가로 30m, 세로 14m, 무게 275kg에 달한 인공기가 서 있다. 양측 모두 냉전의 바벨탑을 쌓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탈북자의 말을 빌리면 이 마을 거주자들은 특별히 선발된 농장원으로 군대식 생활을 하면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통제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산자락에는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성동마을에서 먹은 민물참게매운탕. 국물이 끝내줍니다..
독수리만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북쪽으로 훌쩍 넘어갈 수 있는 기러기도 부럽다.
장단이 원래 개성인삼의 산지였다. 인삼을 수확하면 땅의 기를 돋기 위해 콩을 심었다고 한다. 민통선 안쪽의 청정지역에서 자라 콩맛이 진하다. 인삼묻은 콩이라서 그런가 맷돌에 콩을 갈아 따끈한 두부만들기, 절구를 찧어만든 청국장, 간장달이기등 콩에 대한 모든 체험을 할 수 있다.(체험료 1인당 1만3천원) 조합직영식당의 콩요리도 추천할 만하다. 콩정식(7천원),두부전골(3만~2만5천원)두부보쌈(2만5천원), 순두부김치(7천원)등 콩비지 된장등 각종 백반류는 6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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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좋은곳.아름다운 우리 강산을..더군다나 그에 깃들인 노래까지..잘 들었습니다..
평소에 가 보지 못한곳을 이 카페에서 여러곳을 두루 볼수 있어서 좋앗습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명소들을 보여 주시길 바라며,여건이 된다면 함께 여행을 해 보고 싶기도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볼수있어 좋았읍니다..
우리강산인데 마음놓고 가지못함을 ...... 감상 잘 했습니다.
추석에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때 기차로 다시 한번 오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제 3땅굴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20여년전에 그 곳에 걸어내려갔다가 올라올때는 끌려서 올라왔는데... 폐활량이 적은 관계로 숨을 쉴수 없어서... ㅜ.ㅜ
일년전에 조카 면회 갔다가 임진각 다리 앞에서 왠지 가슴 답답함을 느낀적이 있었는데 언제 쯤이면 자유로이 왕래가 이루어 질련지???? 감상 잘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어쩐지 가슴이 무거워지는데---- 언젠가는 모두가 하나 되어 저 기러기처럼 넘나들 수가 있겠지요 항상 너무도 좋은 우리나라라는 감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고성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북한 쪽이 생각납니다. 모두 함께 잘살고 행복햇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