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
1. 인간의 기억은 때로는 삶을 지배하는 위험한 폭력으로 작용한다. ‘트라우마’라는 병명이 붙을 정도로 커다란 재해나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남은 시간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은 기억과 치유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프루스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기억은 약국이나 편의점과 같다.” 즉 우리는 모든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선택에 의해 각인되는 것이다. 그러한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2. 영화 속 젊은 피아니스트 A는 늙은 이모 두 명과 같이 생활한다. 그는 2살 때 부모를 잃은 충격때문에 말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은 따듯한 어머니의 모습과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는 거부해야 하고 제거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두 명의 이모는 조카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피아노 콩쿨대회를 준비시키지만 아쉬운 결과만을 받을 뿐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삶이 지속될 때 A는 우연히 아래층에 사는 프루스트 부인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권유에 의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3. A가 만난 과거의 기억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거칠은 성품의 인물이었고 그에게 특별한 애정도 주지 않는다. 특히 개구리 악단이 등장하는 묘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이런 장면은 A에게 더 심한 아픔과 공포를 심어준다.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받은 고통이 그에게 더 고통으로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여행을 진행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은 결코 치명적인 갈등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왜곡된 기억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면서 A를 사로잡고 있었던 부정적인 모습이 하나씩 사라지게 된다. 결국 A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
4. 하지만 성공은 언제나 위험과 함께 동반하여 오는지 모른다. A의 기억을 정화시켜준 푸르스트 부인은 우쿠룰레만을 남기고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A도 사고로 인하여 피아노 연주를 더 이상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A는 더 이상 과거의 어둠 속에 잡혀있는 모습이 아니다. 어떤 기억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그에게 부모의 모습이 새롭게 이해되듯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삶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A는 피아노 연주는 포기하지만 새롭게 우쿠룰레 연주를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한다. 폐쇄적이던 인간관계도 여유로워졌고 그를 따르던 한 여성과 결혼에 이른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고통받던 존재는 기억의 허구를 극복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까지 터득한 것이다.
5. ‘기억과 치유’에 대한 영화는 매우 독특한 배경과 동화적 분위기 그리고 조금은 유머스러운 모습으로 전개된다. 조카를 위해 헌신하는 두 이모의 과장되며 사랑스러운 모습, A를 둘러싼 나이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 프루스트 부인의 용기와 자신감있는 태도, 자신의 현재에 대해 의심하면서 방황하는 사람들, 일상의 모습 속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존재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그들은 살아간다. 그 속에서 결국 자신의 선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는 아무리 고통스런 모습으로 다가올지라도 결코 치명적일 수 없다.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기억의 선택자이다. 그런 이유와 같이 현재의 문제도 인간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에게 다가온 위험도 결코 회피의 대상만은 아니다. 삶 속에는 위험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선택함으로써 과거에서 벗어나듯이,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아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는 A의 모습은 사랑스러운 보통의 인간이다. 그것은 평범하지만 따뜻하고 소중한 아빠의 얼굴이다. 영화 처음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었던 A는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아빠로 살아가는 힘을 획득했다. 인간에 대한 격려와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첫댓글 - 아직은 사람들의 정이 묻어나는 영화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