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집에서 만난 따뜻한 밥상머리 교육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희석
정읍 연지동 순댓집에서의 일이다. 지난 토요일 점심때, 혼자 사시는 선배를 모시고 5천 원짜리 순댓국과 정우막걸리 한 주전자를 먹다가 우연히 할머니와 40대 젊은 아들의 식사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8천 원짜리 모둠순대 한 접시와 순댓국 두 그릇을 시켜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많이 시켰느냐? 다 못 먹는다. 못 먹어.”
“많이 드세요. 더 좀 드세요.”
하면서 자꾸 돼지 막창을 어머니 수저에 얹어 드리곤 하였다. 그 모습이 정겨워 보여 아들에게 물어보니 어머니는 아픈 데가 많아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고 했다. 자기는 전주에 살고 있는데 직장에 다니느라 틈을 내기 어려워 쉬는 주말이 되면 어머니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두 분 참 보기 좋습니다. 초면이지만 제가 계산해도 좋을까요?”
양해를 구하고 기꺼이 옆자리 식사비까지 계산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요즘 보기 드문 천연기념물’을 만난듯하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후배의 장모님 초상 소식을 듣고 같은 날 오후 한서요양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조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때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옆에서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는 이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한 분을 알고 있는데 그 할머니는 자식이 돈만 내주고 석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러 온다고 했다. 그 말에 대뜸,
“여러분은 그런 자식이 잘못인가요? 아니면 할머니가 잘못인가요?”
물음을 던져 보았다. 좌중의 많은 사람이 자식의 불효를 지적하였고 일부는 요즘 세태에 그 정도 만해도 효도하는 편이라고 자식을 두둔하였다. 여러 말끝에 나는 그런 자식으로 키운 할머니 탓이 크다고 했다.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도 그 할머니는 자식을 기를 때 밥상머리교육 같은 비공식적 상호작용의 과정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요즈음 공부·공부, 학원·학원, 대학·대학 하면서 오로지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학력에만 치중하고, 조상 전래의 효(孝)를 중시하는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내 말을 듣던 어느 친지는 찬성하여 말하기를
“나는 요즘 공경하고 순종하며 잘 섬겨주는 자식들이 있어 행복하다.”
하며 흐뭇해했다. 어쩌면 그렇게 자식들이 바르게 성장했는지 알아보니, 어릴 적부터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수저 바르게 사용하기와 식사예절을 실천하도록 했고 올바른 생각과 제대로 된 삶의 자세를 갖도록 본을 보여주며 교육했다고 한다. 교육의 틀이 무너졌다고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는 요즈음, 우리 조상들이 해온 밥상머리 가정교육의 맥을 찾은 것 같아 신선한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찾아오지 않는 자식보다 개가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좋은 생각’ 12월 호에 어느 할머니가 떠돌이 개 3마리를 키우는데, 자식들보다 이 녀석들 때문에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할머니의 자식 한 녀석은 미국에 가서 소식이 없고, 다른 녀석은 돈 번다고 집을 나가서 아직 감감무소식인데, 그렇게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다 지쳐서 길에서 하나둘 주어 기른 강아지가 세 마리라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소외당하여 외로움이란 생채기를 안고 사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자식보다 개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염려될 뿐이다.
요즈음 70대를 청노인(靑老人)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청년 같은 노인이라는 의미다. 얼마 전 70대 선배를 만나 근황을 물었더니 정읍노인회에 들어가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며 지낸다고 하셨다. 그런데 뜬금없이 노인정에 나가 어울리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하소연하셨다. 노인정에 갔더니 나이 든 동네 형들이 심부름을 시켜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제일 막내라고 청소를 시키거나 술, 담배, 라면을 사오라는 심부름 때문에 귀찮아 못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노후 대책 없이 오래 살까 봐 걱정되는 세상이다. 지난달 26일 목요일 KBS 1TV 아침마당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날 특강에 의하면, 어느 요양병원에 93세의 뇌졸중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병구완하는 70세의 딸이 죽을 떠먹이면서 “죽어, 죽어, 제발 죽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더란다. 그 이유를 알아본즉 자기 위로 75세, 73세 두 언니가 있으나 모두 몸이 편찮아서 막내인 자기가 엄마의 병시중을 하고 있는데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자신도 자식들의 눈치를 보고 사는 처지라는 것이다. 그나마 병원비 분담 문제로 언니들과 다투어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고 치료비는 댈 길이 없어 그렇게 엄마더러 어서 죽으라고 푸념했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의지하며 살던 시대는 지났다. 의학이 발전하여 수명이 늘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노인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의 미래상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연지동 순댓집에서 본 따뜻한 밥상머리!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한 반찬이 아니라도 대가족 식구들이 함께 나누었던, 어렸을 적 살가웠던 밥상이 생각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끼리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한 끼만이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지혜와 관심을 나누고 사랑으로 연합하는 가정이 많아지면 좋겠다.
(2014.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