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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학생이에요 -소나 이야기 남학생같은 여학생 찾아오겠다고 전화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정 언덕 아래에 웬 남학생 한 명만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 쪽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짧은 머리, 아담한 키, 먼 데서 볼 때는 꼭 남학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여학생이었다. 소나! 소나는 관절이 틀어져 있었다. 팔과 다리 등, 그래서 걷는데 자유스럽지 못했다. 이 아이는 내가 쓴 책 ‘울보선생’을 읽고 나에게 편지를 했었다. 나는 오자(誤字) 하나 없고 문장 실력이 뛰어난 소나의 글을 읽으며, 꽤 수준 높은 크리스천 문학소녀가 아닐까라고 추측했었다. 나는 감동적인 글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로 오도록 한 것이었다. 나는 소나를 데리고 그 아이의 보폭에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학교 안의 특별실로 인도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소나와의 관계가 3년을 지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 소나 소나는 홀로 살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수유리 쪽 지하 셋방에서 살아왔다. 부모님은 계신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때 서로 헤어졌고 지금까지 이렇게 오고 있다고 했다. 소나 말로는 부모님 관계에 어떤 오해가 비롯되어 그렇다고 했다. 소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부모님과 자기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었다. 제대로 걷기 힘든 몸으로 밝고 힘차게 살아가는 소나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소나의 신앙은 매우 깨끗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강했다. 소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와 만나게 하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함께 기도하며 소나는 그 후 영훈 일박기도회, 영훈찬양제에도 참여를 했다. 또한 내가 섬기는 우이제일교회의 수련회에도 참여를 했다. 영훈찬양제 때에는 간증을 읽기도 했다. 소나는 많은 분들에게 은혜의 도구가 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소나의 상황과 여건, 환경을 통해서 더욱 깊게 소나를 만나주고 계셨던 것이다. 소나는 내가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할 때도 내 홈피에 들어와 글을 남기거나 문자로 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글을 맺었다. “...선생님, 위해서 기도할게요. 기도하고 있어요.” 학교의 일과 많은 사역,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위한 기도 속에 소나를 위한 기도를 잠시 늦출 때도 어김없이 소나는 나의 중보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어주고 계셨던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소나는 이번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이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다 합해도 일주일 내 380만원이 모자라다고 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 거예요.” 내가 섬기는 교회의 한 어머니께서 100만원을 보내주셨다. 소나의 등록금에 합하라고. 그분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는데, 대출을 하면서까지 소나를 지원하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했다. 이 소식을 들은 소나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소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자기와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노라고 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사흘 후 소나는 등록금이 모두 준비되어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수술비가 천만원 소나의 삶은 밝고 힘찬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시간이 흐르면서 소나의 몸은 치료 시간을 놓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급한 마음이 들어 소나에게 자세한 사항을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보라고 했다. “선생님, 수술을 받으면 몸을 바로 잡을 수는 있다고 해요. 근데 1년이 걸리고 치료비가 천만 원이나 된데요... 그냥 지금처럼 매일 진통제 먹으며 이겨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거라 저는 믿고 있구요.” 소나는 돈을 걱정하고 있었다. 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냥 이렇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환한 웃음을 머금고 소나에게 말했다. “그래, 소나야. 하나님께서 한 번에 네 몸을 정상으로 해주실 수 있어.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을 하시는 분이거든. 의사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너를 치료하게 해주실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거야...” 수술하도록 하자 며칠을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소나가 이 상태로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당장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러한 몸의 상태로 살아갈 이유는 없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몰라도 치료가 가능하고, 또 치료를 받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마음의 결심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소나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는 영훈고기독학생들을 돕는 학교 앞 ‘낙원꽃집’ 권사님도 자리를 했다. “소나야, 너 수술 받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 너는 당장 대학 생활 하는 것이 급할 지 모르지만 대학을 휴학한다하더라도 네 몸을 먼저 정상대로 돌려놓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소나에게 나는 말했다. “필요한 돈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거야. 너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 않니? 그 믿음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생활에 충실하면 되는거야, 알겠니?” 소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는 듯 하더니 환한 미소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네, 선생님!” 고민하며 기도하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 소나도 허락을 했으니까 방송의 도움을 받아볼까? 아니면 몇몇 분에게 소나를 위해 물질 후원을 부탁드릴까? 모금 운동을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중요했다. 먼저 기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천만 원 가량이 든다면, 한 달에 백만 원 꼴이다. 물론 그 전에 물리치료를 받고 또 수술 후에도 필요로 하는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소나의 몸을 낫게 하시고 또 아름답게 더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피스텔 심방 소나가 이사를 했다. 수유역 쪽에 8평짜리 오피스텔로 집을 옮긴 것이다. 아빠, 엄마가 따로 다녀가실 때가 있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분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았다. 이제 대학생이니까 성인이고, 알아서 살아가라는 뜻으로 소나에게 말을 남겼다고 했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고등부 선생님들(강성욱, 양효경, 이혜규)께서 소나의 이야기를 듣고 가정에 방문하기를 원하셨다. 소나도 좋다고 하여, 저녁 시간을 빼어 수유리에서 만났다. 소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 때 그 아이의 웃음은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다. 즐겁고 기쁜 만남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해주고 계셨다. 식사를 하고 소나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오는 화장실 문, 그리고 왼쪽에 작은 침대 하나, 싱크대, 책상, TV. 방바닥에는 세 명 가량 앉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계시면서도 함께 있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못 소나의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인지도 궁금해졌다.
저보다 어려운 아이들예요 동행한 선생님들께서는 사랑과 격려를 소나에게 전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며 활짝 웃는 소나의 모습은 여느 여학생과 다름이 없었다. 내가 쓴 책이 모두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소나야, 내가 이 책을 너에게 다 준거니?” 소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뇨, 한 권만요. 나머지는 제가 다 산거예요.” 까르륵 웃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말했다. “소나야, 너는 참 훌륭한 아이야. 맞아, 책은 그렇게 사 보는 거야.” 한참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중 책상 유리판에 깔린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섯 명의 어린 아이들 사진인데, 우리나라 아이들 같지는 않았다. “소나야, 예들은 누구니? 네 친구들이니?” 소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제가 돕는 아이들예요. 딴 나라 아이들인데, 저보다 더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어서요.” 울컥 치솟아 오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가슴이 ‘콱’ 막히는 듯 했다. 그 자리에 있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그래~ 언제부터 이렇게 돕고 있었니?”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렴 나는 소나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소나야, 혹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니?” 잠시 얼굴이 굳어지는 소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소나는 말했다. “이게 편해요, 선생님. 예전에 아빠랑 같이 산 적이 있었는데 제가 크다 보니까...” 그리고 매우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빠, 아빠보다는 말이 그래도 수월했던 엄마이지만 소나와의 대화 속에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나가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소나야, 기도하는 사람은 아빠 엄마를 품고 용서해야 한단다. 그것이 매우 힘들어도 말야. 그렇지 않으면 네 속에 분노가 너와 너를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거든.” 소나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나는 계속 말했다. “네 아빠, 엄마도 너와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던 분이야. 그렇지? 6.25를 경험했고 또 힘들게 살았던 세대야. 지금 너에게 이렇게 대하시는 것은 어쩌면 그분들이 어렸을 때 좋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나타난다고 볼 수도 있는 거야. 이해되니?”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나야. 네가 할 일이 있단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렴. 그리고 함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렴. 네 말대로라면 오해라고 했지 않니? 그 오해가 풀리게 해달라고... 말야? 네가 시집갈 때까지라도 같이 살게 해달라고 말야.”
돕는 손길 동역자 신성교회의 한 자매님이 익명으로(나에게도 끝까지 밝히지 않은) 소나를 5만원씩 1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어려운 한 사람을 붙여달라고, 자기도 풍요롭지는 않지만 돕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소나의 계좌를 알려주었고, 소나는 감사히 받고 있다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우이제일교회의 고등부에서도 소나를 돕기 시작했다. 정해진 액수는 아니지만 기도하며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을 모은 것이다. 또한 우이제일교회의 소나 또래의 한 여학생이 소나와 친구가 되겠다고 나섰다. 집이 멀지 않으니 가끔씩 만나고, 음식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소나 역시 기뻐했다.
선생님들께서 소나를 위해 한 명씩 돌아가며 축복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깊은 감동을 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나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 한겨울의 따뜻함을 맛보고 있었다. 소나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가운데 물질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도 또한 합력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물리치료 후에 수술을 하도록 할 예정이며, 오피스텔도 매월 45만원씩 지출된다고 합니다. 대학과 생활을 위한 물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아이를 위해 먼저 기도해주십시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데 최선의 열정을 다하는 소나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소나의 계좌번호는 ‘356-11-008579(신한은행) 이소나’입니다. 감사합니다. (여고생 소나의 신앙일기-영훈찬양제 때 읽은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작은 십자가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십자가는 금도, 은도 아닌 단지 저의 작은 장애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실 때 저에게 무슨 계획하심이 있으셨는지, 10개월 만이 아닌 8개월 만에 세상으로 보내 주셔서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큐베이터 속에 있으면서 산소호흡 조절에 오차가 생겨 운동신경에 마비가 오면서 신체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 장애가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면 나을 수 있는 작은 병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금씩 커가고 철이 들면서 이 장애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제가 평생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들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에, 제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에 불평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가’ 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며 이런 저의 생각은 싹 바뀌고 그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점차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제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시켰고, 전 그런 아이들이 못 견디게 싫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며 나아가라는 마음을 주셨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과 감동으로 제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년 생활을 마칠 때까지 아이들의 따돌림과 그런 아이들을 향한 저의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하면서 저는 고등학교에 가서는 좋은 담임선생님과 좋은 친구들, 그리고 원만한 교우관계를 허락해 달라고 죽자사자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담임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하루하루 감사함으로 생활하며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따돌리지 않고 그들과 가까워지게 해주세요’라는 저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저를 사용하셔서 담임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 모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켜 주세요’라는 모두를 위한 기도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루하루 기도하며 변해가는 저를 예쁘게 보셨는지 지난 5월, 처음으로 교장선생님 앞에서 극기부문 표창을 받을 수 있는 은혜도 허락해 주시며, 아이들과 다른 게 아니라 다만 아이들보다 조금 더딜 뿐이라고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난 10월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또 한 번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처음 수학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처음 가는 수학여행에 기대감보다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서 여러 사람한테 폐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걱정이 가득했고, 그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을 잃지 않으며 어려울 땐 도움의 손길을 붙여 주시고 가는 날부터 오는 날까지 아무 사고없이 저와 함께 동행하는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좋은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도하다보니 마침내 제주도 수학여행 날이 다가왔고 마음속에 걱정 근심이 가득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떠나기 전 공항에서 또 한 번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은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인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라는 말씀을 주셔서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여행길에 오르게 하시고, 제 기도대로 2박 3일 동안 도움의 손길도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통해 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시고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일들 중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제 삶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행하시고 앞으로도 저에게 더 큰 축복을 허락하실 거니까요. 이제 저는 더 이상 저의 장애를 가지고 제 처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창조하신 목적이 분명 있으시고, 하나님은 저에게 제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을 예비해 두셨고, 앞으로 저를 더 크게 사용하실 줄 믿으니까 그저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 장애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주님이 주신 특별한 복음의 도구로 사용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제 삶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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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 오른손이 얹혀진 아이가 소나입니다. 왼쪽은 동급생 지용이 이번에 신학대학을 진학했습니다. 지용이도 몸이 불편합니다. 둘다 효문고 졸업생입니다.
지난 영훈찬양제 떄고 그렇고 이 글을 읽고도 그렇고 소나를 생각하면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소나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영훈찬양제때 소나를 둘러싸고 함께 기도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너무나 담대하고 강한 믿음..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주님의 섭리 안에 더 많이 배우고 그 만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소나가 될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길 원합니다.
귀한 선생님.. 인상도 참 좋으시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 너는 내것이라 -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현명해도 미련해도
너의 지혜되어 사용하리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잘났으나 못났으나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강하여도 약하여도
너의 힘이 되어 일으키리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의로워도 악하여도
너를 나의 피로 바꾸었으니
너는 내것이라
-송 명 희/詩-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귀하신 모습으로...주님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