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0편부터 134편까지 열다섯 개 시편의 표제어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 순례 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유월절(무교절), 칠칠절(맥추절), 초막절(수장절, 장막절) 등 민족의 대 명절이 다가오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순례의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라고 외쳤습니다. “형제אח(아흐)”는 복수형입니다. 직역하면 “형제들”입니다.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섬기는 언약 백성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동시에 피를 나눈 가족을 가리킵니다.
값없이 선물로 부어진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연합하여 동거함이”를 직역하면 “함께 거처居處하다.”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연합하여”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동거ישׁב(야삽)”는 “모두 함께 앉다, 다 같이 함께 머물다, 함께 동행 하다.” 등의 뜻입니다. 머무르고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함께 동행 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한 뜻을 가져야합니다.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더불어 함께 동행 할 수 있어야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나 함께 연합할 수 있어야합니다. “선하다טוֹב(토브)”는 “훌륭하다, 가치 있다, 옳다, 행복하다, 즐겁다, 풍부하다, 쾌활하다, 평안하다, 준수하다, 최선의, 최상의, 최고의, 더 잘” 등의 뜻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좋다는 표현들을 단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동원한다 할지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지극히 넓고 깊고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과 인간 모두 다 하나 같이 선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선했습니다.
모세 역시 그야말로 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었던 성민 이스라엘을 바로의 혹독한 압제로부터 완벽하게 구원하시기 위하여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고 탁월하며 출중한 지도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아름답다(나임)”는 “기쁘다, 즐겁다, 유쾌하다, 감미롭다, 신명나다, 행복하다, 흐뭇하다.” 등의 뜻입니다. “선하다.”가 외적인 상태라고 한다면, “아름답다”는 내적인 상태 곧 정서적인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고 아름다운고!”는 반복입니다. 강조입니다. “선하고 또 선하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다른 번역 역시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공동번역),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새번역)”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이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더불어 함께 동행 하는 모습은 지극히 선합니다.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선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서로 연합하는 것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없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b)라고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시133:2)라고 이어집니다. 이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거룩한 기름이 대제사장의 머리에 넘칠 정도로 흥건하게 부어졌습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수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옷깃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대제사장이라는 거룩한 통로를 통해서 하나로 연합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야말로 크고 놀라운 축복을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골고루 부어주십니다. 차별 없이 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라.”(히4:14a)라는 증거에 따르면,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을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여 더불어 함께 동행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온갖 축복들의 거룩한 통로가 되십니다. 특히, 한 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기름 곧 축복은 절대로 쉬지 않습니다. 영원히 쉬지 않고 변함없이 흐릅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정도라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상황에 꼭 맞고 필요한 은혜를 쉬지 않고 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3)라고 이어집니다. 역시 비유입니다. “헐몬”은 “신성한 산, 봉헌된 장소”라는 뜻입니다. 안티레바논 산맥의 남쪽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는 산들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정상은 해발 약 2,804m 정도에 이릅니다. 항상 만년설로 뒤덮여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최고의 산입니다.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 자리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헐몬 산까지요”(신4:48)라는 증거에 따르면, 시온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헐몬은 요단강의 근원根源입니다. 헐몬 산에서 시작된 물은 강이 되어 흐릅니다.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으로 흐르던 물은 갈릴리 호수로 들어갑니다. 갈릴리 호수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살아 호흡하는 생명력 넘치는 바다가 됩니다. 갈릴리 바다를 가득 채운 물은 또 다른 요단강을 거쳐 사해로 흘러들어갑니다. 이렇게 헐몬은 사해와 갈릴리 바다와 요단강의 근원입니다.
무엇보다 헐몬이 헐몬이 될 수 있는 비결은 하나입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내리는 이슬입니다. 이슬은 조용히 흘러내리는 은혜입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내리는 은혜입니다. 요란한 소낙비처럼 내리지는 않지만 옷을 흠뻑 적시는 충분한 은혜입니다. 주목해야할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명령하셨다.”입니다. 강조입니다.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반드시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 “영생חַיִּים(하임)”은 복수입니다. “풍성한 생명력 또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해 같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환난과 시험을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동안 각지에 흩어져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다 추석 명절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저와 여러분은 피로 맺은 소중한 가족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할 때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연합을 이루어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살과 피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부활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저와 여러분 안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으로 임재 하여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저와 여러분의 삶에 가장 큰 원동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상황에 꼭 맞는 은혜를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어지는 복된 삶, 어떤 환난과 시험이 다가오든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복된 삶, 무엇보다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거룩한 통로가 되기에 충분한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