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78-1-1.zip
須菩提야 汝勿謂如來作是念하되 我當有所說法이라 莫作是念하라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설한 바 법이 있다’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何以故하면 若人이 言하되 如來有所說法하면 卽爲謗佛이니 不能解我所說故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능히 내가 설한 바를 알지 못한 연고이니라.
圭峰:世尊이 達諸法空하시어 畢竟無執되셨는데 今言有說하면 是謗佛執法也니라.
규봉:세존께서 모든 법이 空함을 통달하시어 필경엔 집착이 없게 되셨는데 지금 설함이 있다고 말하면 이는 부처님이 법에 집착했다고 비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그대로 법의 실상이라고 하면 법이라는 것이 相이 있음이 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淸峯) 이 대목(규봉)에서 수용하지 못한는 바는 경의 뜻(무설설의 뜻은 법에 집착함이 없다는 뜻보다는 법은 말에 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임)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冶父:是則是나 大藏小藏은 從甚處得來인가
說誼:佛無所說이 是則固是나 頓漸偏圓의 大小乘藏이 充樑溢宇하여 如今天下에 無在不在하니 若都無說이면 如是法門은 其誰說來인가
야부:옳기는 곧 옳으나 大藏經 小乘藏經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왔는가?
설의:부처님이 설한 바 없음이 옳기는 진실로 옳으나 頓敎(유마경과 같이 문자나 언어를 여의고 대, 소승 등의 수행의 차례를 떠나 말이 끊어진 진여를 바로 가르킨 교법) 漸敎(始敎와 終敎로 문자의 이치를 나타내고 수행의 계급을 세워 점차로 증과하는 것을 가르킨 교법) 偏敎(방편 수단으로 말한 가르침이니 즉 한편으로 치우친 교법) 圓敎(원만한 교법이라는 뜻으로 화엄경 등을 이른다) 대승장경(성불한다는 고상하고 원대한 큰 이상을 말한 교법:법화경 등) 소승장경[작게 싣고 운반(小乘)하여 이상경(涅槃)에 이르게 하는 교법 곧 성문승(4제 이치를 관하여 열반에 이름)과 연각승(12인연법을 관하여 벽지 불과에 이름)]들이 들보에 가득 차고 우주에 넘쳐서 지금 천하에 있지 않는 곳이 없으니 만약 그 모두가 설함이 없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법문은 그 누가 설한 것인가?
청봉착어:설해도 설함이 없는 뜻 분명하나
부처님의 일대 시교는 천하에 넘치는데
이 법문은 어디로부터 쫓아 나온 건가?
그러므로 옳지(是)도 않고 그르지(非)도 않다 하니라.
冶父:有說皆成謗이요 無言亦不容이로다 爲君通一線하노니 日向嶺東紅이니라
說誼:有說無說이 二俱擔板漢이라 無念說示가 同谷響이요 亦如日輪이 照無心이로다.
야부:說함이 있다 해도 모두 비방을 이루고
말이 없다 해도 역시 용납하지 못하도다.
그대를 위하여 한 가닥 線을 通하노니
해가 嶺東을 향해 붉으리라.
설의:설함이 있음과 설함이 없음이 둘 다 모두 변견(擔板漢)이로다.
無念으로 설하여 보이신 것이 골짜기의 메아리 같고, 또한 해가 비추되 無心히 비춤과 같도다.
청봉착어:설함이 있다 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설함이 없다 하면 공견(空見?斷見)에 떨어지니
설함 있음과 없음이 모두 변견이 되는 것은
숨을 쉬어도 공기는 증감이 없음과 같으니라.
圭峰:三은 示正見이라
규봉:(3)은 바른 견해를 보인 것이다.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수보리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 것(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설법이라 하는 것이니라.”
淸峯:설법이라는 것은 法(모든 것)의 본질이 공적하여 이름과 모양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일체 모든 실상의 진리를 말의 도구를 빌려 삼켰다 토한 것이요, 미혹한 중생을 방편으로 이끌어 자성을 보아 무상보리를 증오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설법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야는 차별상이 끊겼으므로 설명할 수 없는 데서 설명하는 것으로 일체의 구족한 진리는 설명하되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하는 것이다.
路逢劍客須獻劍 노봉검객수헌검 하고
不逅詩人莫獻詩 불우시인막헌시 하리니
愚鈍猛犬逐土塊 우둔맹견축토괴 하고
伶?獅子應咬人 영리사자응교인 하니라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치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지니
어리석고 사나운 개는 흙덩이를 좇고
영리한 사자는 응당 사람을 무느니라.
說誼:法身은 本無說이며 報化方有說이나 有說은 非眞說이요 無說이 是眞說이니라 十方佛土中에 唯有一乘法이니 離此一乘法하고는 更無可說底라 故로 云하되 無法可說이요 只以一乘法으로 開示諸衆生이니 故로 云하되 是名說法이니 若是一乘法이면 直是無開口處로다 然이나 亦不離衆生日用이니라
설의:法身은 본래 말이 없으며 보신 화신이라야 바야흐로 설함이 있으나 설할 것이 있음은 참다운 설함이 아니요 설할 것이 없음이 참다운 설함이니라.
시방의 佛土 가운데 오직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유일한 가르침인 법문(一乘法)이 있으니, 一乘法을 여의고는 다시 가히?설할 것’이 없도다.
그러므로 이르되 ‘설할 만한 법이 없다’ 하는 것이요, 다만 일승법으로 모든 중생에게 열어 보이셨으므로 이르기를 ‘이름을 설법이라’ 하는 것이니 만약 일승법 이라면 바로 입 열 곳이 없음이로다.
그러나 또한 중생의 나날이 쓰는 것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