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결단
사도행전 7:20 - 29
2017.10.1 주일낮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서로 인사합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서론
인생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무엇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식사할 때도 무슨 메뉴를 먹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결정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모두 아담의 자손입니다.
모세는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23절에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태어나자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 처합니다.
애굽 바로 왕이 이스라엘 자손 남자 아기는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한 것입니다.
모세 부모는 아기 모세를 3개월 숨겨서 기르다가 물이 안새게 역청 방수처리한 갈대 바구니에 담아서 나일 강 갈대 숲 사이에 버립니다.
바로의 딸 공주에게 발견되어서 공주 아들로 입양됩니다.
2. 본론
모세 엄마가 젖을 뗄 때까지 아기 모세를 공주 허락하에 삯을 받고 키우게 됩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너는 히브리 인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손이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궁전에 들어가서 바로 공주 아들로 자라게 됩니다.
모세가 세살 전후에 바로 궁전에 들어갔을 것이나 언제 들어갔는지 정확한 나이는 모릅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라며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습니다(22절).
모세는 지혜와 지식이 뛰어나고 무예도 탁월하고 유능한 군 지휘관이었습니다.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풍족한 궁궐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40세에 불현듯 히브리 민족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 요게벳 품에서 배운 교육이 이 때 드러난 것입니다.
세살짜리 제 손자가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모태 교육 유아 교육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합니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는 이때 갈림길에 서는 것입니다.
애굽 왕자로 살아갈 것인가.
히브리인 동족 편에 설 것인가.
예수 복음은 결단의 선택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마귀 편에 설 것인가.
교회에 속할 것인가.
세상에 속할 것인가.
주일에 나와 예배하는 것도 결단입니다.
모든 것을 이기고 나와 예배를 드릴 것인가.
다른 사정과 형편을 따라 갈 것인가.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선악 지식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할 것인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보다 뱀의 말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가시와 엉겅퀴 등 잡초와 싸우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아기를 낳을 때 큰 진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자손대대로 죄인이 태어나게 되어 지금도 죄인이 태어납니다.
후에 아브라함도 두갈래 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갈대아인들의 땅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지금까지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떠날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근처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모세의 고별 설교 유언 설교를 듣게 됩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긴 유언은 그들에게 두갈래 선택의 길이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복의 길과 저주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복을 받습니다.
불순종과 우상 숭배의 길로 가면 저주를 받습니다.
(신27,28장).
여호수아도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24:15).
이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아세라 숭배자들과 대결하는 가운데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왕상 18:21).
중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마귀를 택할 것인가 결단해야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 유혹 앞에서 결단해야 했습니다.
그 여자의 달콤한 유혹을 받아 들이고 즐길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함을 지킬 것인가.
요셉은 그 여자의 유혹을 거절하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감옥 훈련 기간이 지나자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나라의 국무총리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사람들은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싫어 합니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는 반드시 고난과 고생을 거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두갈래 중 하나의 길을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넓은 문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가는 길입니다.
돈 명예 쾌락 지식 취미 안락함 쇼핑 맛집을 찾아 다닙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좁고 험하고 인기가 없습니다.
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못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돈도 하나님도 둘 다 주인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남편을 둘을 둘 수 없습니다.
아내를 둘을 둘 수 없습니다.
창기나 창부는 그리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혹은 책을 읽다가 결단을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배중 말씀을 듣다가 결단을 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루디아 라는 여성은 바울의 말을 듣고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 16:14).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있었는데 바울과 실라 두 사람을 지하 감옥에 넣고 발에 차꼬를 채웠습니다.
그 후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 터가 흔들리고 감옥 모든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차꼬가 풀렸습니다.
간수는 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칼로 자결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이때 간수를 향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소리쳤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간수가 회심하게 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간수가 물었습니다(행 16:19-34).
그 간수 역시 그대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로 살아갈 것인가.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를 주님으로 믿을 것인가
결단의 기로에 섰던 것입니다.
질병, 사고, 사건, 등등 여러 계기로 예수님을 믿는 결단을 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모세는 40세까지 애굽 나라 궁전의 왕자로 살다가 어떤 계기로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하나님은 모세의 가족이나 꿈 혹은 계시 혹은 천사 등등 어떤 방법을 통하여 모세를 결단의 디딤돌에 서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어쩌면 애굽 나라 왕의 자리를 이어갈 수도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이집트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나라의 명예와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결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요즈음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대한민국 백성에게 묻고 계십니다.
오늘날 너희가 결단하라.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세상나라에 속할 것인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편을 택했습니다.
모세가 애굽 나라 왕자로서 영광과 권세와 명예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바로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세상나라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세상 나라는 돈이 하나님입니다.
병원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 봅니다.
기업은 사람을 돈벌이 대상으로 봅니다.
세상은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 애굽 나라의 지혜입니다.
세상은 인간을 동물처럼 이용대상으로 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영혼과 정신을 가진 생각하는 인격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삶을 누리고 즐거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위대해 질 수 있는 것은 보이는 세계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되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단의 고민과 고뇌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37).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죽이니라.”
모세의 결단은 의와 공의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땅을 도망쳐 미디안 광야의 목자 양을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왕자가 양을 치는 자로 낮아졌으니 불쌍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낮추시고 연단하고 훈련을 겪게 하시면서 모세를 향한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애굽인들은 매우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착취하고 핍박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들이 노예로 부당한 대접을 받는 현실에 고뇌하고 결단합니다.
모세는 부당한 현실에 개입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의와 공의에 눈을 떠서 불의한 현실에 개입한 것이지만 모세 혼자 힘으로는 그 부당한 상황을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모세는 도망자 신세로 미디안 광야로 가서 양을 치는 자가 되어 40년을 더 연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 왕자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서게 된 결단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3. 결론
히브리서 11:27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마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애굽의 보화나 왕궁의 부귀영화가
다 배설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오직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